프레시안에 흥미로운 기획기사가 떴다.

장대익이라고 김영사에서 지식인 마을을 기획할 때부터 관심이 가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쓴 글이다. 생각보다 나이가 어리네 ..... 

 

 

 

 

 

종교 없이 산다는 것
  
  신재식, 김윤성 선생님께
  
  별고 없으신지요. 한국엔 제법 큰 눈이 왔다지요? 여기 보스턴에 온 지 벌써 넉 달이 넘었습니다. 듣기로는 여기에 눈이 많이 오면 1미터 정도 쌓여서 학교도 휴교하고 그런다는데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제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입니다. 여기서는 10월 말에 핼러윈(만성절 전날인 10월 31일에 행해지는 축제 : 필자), 11월 말에 추수감사절, 그리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홀리데이(Holiday)를 준비하는 식입니다. 11월에 추수감사절이 끝나니까 바로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리더군요.
  
  물론 이 모든 절기들이 상술로 포장된 지 오래지만 미국은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기독교 국가(Christian nation)'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종교 정체성 조사 결과(2001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를 보니까,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미국 국민의 76.5%, 무종교라고 답한 사람은 13.2%, 유대교는 1.3%, 불가지론자는 0.5%, 무신론자는 0.4%였습니다(☞결과 보기).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를 합해도 1%가 넘지 않고, 기독교는 80% 정도나 되니 미국은 정말로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로 몇 달 전(2006년 9월)에 있었던 갤럽 조사 결과는 더 흥미로웠습니다. 질문은 이런 것이었지요. "일반적으로 말해 당신은 미국인들이 (_______)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항목에는, 유태인, 아시아인, 여성, 흑인, 모르몬교도, 히스패닉, 무신론자, 동성애자가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을까요? 앞에서부터 나열해 보면, 여성(61%), 흑인(58%), 유태인(55%), 히스패닉(41%), 아시아인(33%), 모르몬교인(29%), 무신론자(14%), 동성애자(7%) 순이었습니다(☞결과 보기).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무신론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모르몬교도보다 낮고 동성애자보다는 조금 높다는 이야기인데, 다시 말하면 무신론자 대통령이 나올 가망성은 극히 적다는 뜻이겠지요. 미국의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라도 기독교인을 자처하게 생겼습니다. 생전에 가장 똑똑한 미국인으로 추앙받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대선에 출마했어도 미국 대통령은 도무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무신론자였으니까요!


  

 

 

 


  세이건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저는 세이건의 원작보다 이 영화를 먼저 접했었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서 세이건이 쓴 모든 책을 다 주문했을 정도로 전율을 느꼈었지요. 물론 아직도 다 못 읽었지만요. 그는 동명 소설 <콘택트(Contact)>에서 주인공인 천문학 박사 에로웨이와 복음 전도자 자스를 통해 과학과 종교에 관한 심오한 문제들을 절묘하게 다룹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과학적 진리를 굳게 믿는 여성 천문학자가 어느 날 베가성에서 온 외계 신호를 포착하고 해독하여 우여곡절 끝에 베가성을 향하는 우주선의 첫 탑승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남자 친구인 복음 전도자가 그녀의 과학적 신념을 도전한다. 결국 베가성 여행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으나, 저자는 막판에 결론을 뒤집어 과학적 신념이 종교적 믿음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다 : 필자)
  
  물론 그의 메시지는 에로웨이의 언행이 대변해 주고 있지요. 이 편지를 쓰다 말고 잠시 제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이 영화를 또 한 번 보았습니다.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너무 많은데요, 그중 하나만 소개할게요. 아마 이 장면, 기억나실 겁니다.
  
  자스 위원 : 에로웨이 박사, 당신은 자신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에로웨이 박사 : 무슨 질문이신지? 전 도덕적인 사람이긴 합니다만…….
  자스 위원 :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에로웨이 박사 : 저는 과학자로서 경험적인 증거만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문제에 관해서는 그런 종류의 자료가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위원장 : 그러면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에로웨이 박사 : 왜 이런 질문이 이번 일과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위원 : 에로웨이 박사, 세계 인구의 95%는 어떤 형태로든 절대자를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상관이 있는 질문이지 않겠습니까?
  에로웨이 박사 : (…) 저는 이미 답을 했습니다.
  
  자신의 무신론을 숨기지 않았던 에로웨이는 이 대답으로 인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 문명을 만나는 기회를 가진 탑승자 심사에서 탈락합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최후의 탑승자가 되지만 말이지요. 마치 세이건은 에로웨이의 입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진실한 무신론적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서남아시아에서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감보다는 덜 하겠지만 미국의 무신론자들도 압박감을 느낄 만합니다. 특히 이것은 미국 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가 재집권하고 나서부터 더 심화된 듯합니다. 그는 보수 기독교인의 표를 더 얻기 위한 제스처 이상으로 근본주의 기독교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미국 지식인 중에는 9・11 같은 테러가 미국의 반(反)이슬람 기독교 근본주의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학기에 참여했던 한 수업에서 저명한 언어학 교수가 학부 학생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더군요. "부시의 근본주의 기독교와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 때문에 나라의 운명이 심히 걱정된다."라고요. 미국 자유주의의 본산 보스턴(보스턴은 미국 최초로 흑인 주지사를 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하버드와 MIT 같은 미국 최고의 대학들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정신이 가득하다 : 필자)이니까 수업 시간에 이런 말이 가능한 거겠죠?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 '운동'
  
  작금의 이라크 사태를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 vs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의 대결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구도라는 느낌을 주지 않나요? 하지만 정말로 종교 간 전쟁 때문에 세계가 큰 위험에 빠졌다고 설득력 있게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 아주 흥미로운 인사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찰스 시모니 '과학의 대중적 이해' 석좌 교수로 있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입니다(헝가리 태생의 찰스 시모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프로그램 엔지니어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후에 '인텐셔널 소프트웨어' 회장으로서 여러 대학에 자신의 이름을 딴 석좌 교수 자리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만들어졌는데, 이 자리의 첫 번째 수혜자가 바로 도킨스이다 : 필자).
  

▲무신론 운동을 진행하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프레시안


  그가 최근에 출간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원제는 '신이라는 망상' 또는 '신은 망상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 필자)라는 책이 몇 달째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10위 안에 올라와 있는데요, 저도 몇 주 전에 사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신은 망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요정, 도깨비, 유니콘, 포켓몬스터처럼 상상 속의 존재일 뿐인데 많은 이들이 신은 마치 실재하는 양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망상이 일종의 '정신 바이러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종교 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혹시 선생님들도 이 책을 보셨는지요?
  
  도킨스는 이번에 아주 작심을 하고 이런 도발을 감행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책 출간에 즈음하여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바로 가기)를 만들더니만 '이성과 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The Richard Dawkins Foundation for Reason and Science, ☞바로 가기)'도 세워 본격적인 무신론 캠페인에 들어갔습니다.
  
  미국과 영국을 순회하며 책에 대한 강연, 텔레비전 출연, 인터뷰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고, 얼마 전에는 영국 BBC를 통해 <모든 악의 근원?(Root of All Evil?)>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직접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었지요. 이 다큐멘터리도 최근에 구입해서 보았습니다. 콜로라도의 한 대형 교회(개신교)의 예배에 (관찰자로) 직접 참석하고, 현 대통령 부시와 핫라인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까지 있는 복음주의 목사와 언쟁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 목사가 성경에는 하나의 모순도 없다고 말하자, 도킨스는 현재의 과학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모순점을 지적한다고 맞받아쳤지요. 그랬더니 그 목사는 바로 "당신같이 오만한 사람이 바로 문제"라고 비난을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동물이라고 말하는 당신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대화를 그만둡니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 서문에서 비틀스 출신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imagine)'을 패러디해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자살 폭파범, 9·11 테러, 런던 폭파 테러, 십자군, 마녀 사냥, 화약 음모 사건(1605년 영국 가톨릭교도가 계획한 제임스 1세 암살 미수 사건 : 필자), 인디언 분리 구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세르비아·크로아티아·무슬림 대학살… 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세요."
  
  그가 단지 종교가 너무나 싫어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만들어진 신>은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 즉 '신 존재 가설(God hypothesis)'이 왜 설득력이 없는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령 인생의 의미, 도덕성, 사랑, 책임감 등이 어떻게 자연적 과정을 통해 진화해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실 이런 주장은 그동안 무신론적 진화론자(진화론은 무신론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들의 단골 메뉴였지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매우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있지요. 그는 부모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종교에 따라 '무슬림 아이들', '기독교 아이들'과 같은 꼬리표를 달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에 관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더 큰 혼돈에 빠뜨리는 일종의 아동 학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아이들(Marxist children)'이나 '자유주의 아이들(Liberal children)'이 얼마나 어색합니까?
  
  도킨스가 재단까지 설립해 가며 이런 도발적인 주장들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가 지금 일종의 '운동(movement)'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종교는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될 무엇"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입니다. 현재 저의 지도 교수이기도 한 인지 철학자 대니얼 데닛(인공지능과 의식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킨 영미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현재 터프츠 대학교의 인지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진화론을 자신의 철학적 작업에 응용해 온 점이 다른 철학자들과 확연히 다른 측면이다 : 필자)은 도킨스의 운동을 오프라 윈프리의 그것에 비유하더군요.
  
  오프라는 한때 <오프라 쇼>에서 미국 내 가정의 매 맞는 여성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전국적으로 일깨운 적이 있었습니다. 데닛은 도킨스의 책과 활동도 종교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캠페인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종교(특히 기독교)에 억눌려 있는 사람들이여, 무신론의 세계로 탈출하여 당신의 지성을 구원하라." 이런 메시지가 영국식 악센트로 제 귀를 때리는 듯합니다.
  
  그가 얼마나 단호하고 도발적인 사람인지 한번 보시겠습니까? 얼마 전에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대학에서 책에 대한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나 봅니다. 마침 거기에 참석한 리버티 대학교(Liberty University, 미국의 대표적 보수 기독교 리더인 제리 파웰이 1971년 설립한 기독교 대학 : 필자)의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지요. "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화석이 5000년 전의 것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러자 도킨스는 공룡 화석의 나이를 추정하는 여러 과학적 방법들을 설명하고는, 공룡 화석이 5000년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뉴욕과 워싱턴 D.C.의 거리가 500미터 정도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말을 하더군요.
  
  "여기 계신 리버티 대학교 학생 여러분께 강력하게 말씀드립니다. 학교를 그만두시고 더 적당한 학교에 지원하십시오." 좀 심하다 싶은 말인데도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는데, 좀 놀랐습니다.
  
  종교에 대한 동상이몽? 도킨스, 윌슨, 그리고 굴드
  

▲<생명의 편지>(에드워드 윌슨 지음, 권기호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도대체 왜 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자신의 분야도 아닌 종교에 대해 이렇게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것일까요? 사실 최근에는 저명한 과학자가 종교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하버드대학의 진화 생물학 교수로서 개미 연구와 사회 생물학 창시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등을 통해 과학에 기반을 둔 지식의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다 : 필자)은 서너 달 전에 <생명의 편지(The Creation)>(원제는 '창조', '창조물', '피조물'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 필자)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도킨스의 책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제목부터 너무 다르지 않나요? 하나는 '신은 망상'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창조'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사실 제목이 참 의아했습니다. 창조는 주로 유대-기독교, 이슬람 전통에서 즐겨 쓰이는 단어이지 않습니까? 유년 시절을 신실한 침례교인으로 자랐다가 무신론자가 된 윌슨이 다시 기독교로 회귀한 것은 아닐 텐데, 왜 그런 제목을 달았는지 궁금했지요. 목차를 보니 그런 의문이 더욱 강해지더군요. 심지어 "타락(decline)과 구속(redemption)"이라는 제목의 장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내용을 보면서 의문이 좀 풀렸습니다. 서부 침례교 목사에게 지구의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같이 동참하자는 내용의 편지더군요. 과학과 종교가 형이상학적으로 서로 대립적이다 하더라도 우리 지구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이 생태계 위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는 실천적 근거들이 너무 많다고 호소합니다. 과학계의 한쪽(도킨스)에서는 종교계에 시비를 걸고, 다른 쪽(윌슨)에서는 협력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는 셈인데요, 둘 다 현대 진화론의 거장들이라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두 달 전쯤에 대니얼 데닛과 스쿼시를 친 적이 있어요. 35세인 저와 65세인 데닛이 경기를 했는데 누가 이겼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 졌습니다! 그것도 두 게임을 내리 졌지요. 대단한 체력이었습니다. 저는 힘들어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했을 정도였지요. 잠시 쉬는 시간에 윌슨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요. 제가 <통섭>의 한 장과 논의와 성격이 많이 달라 당황스러웠다고 했더니 데닛도 맞장구를 쳐주시더군요. 그러더니 "그럼 이참에 윌슨 선생하고 우리 셋이서 만나 점심이나 먹으며 이야기하면 어떻겠냐."라고 그러시더군요. 물론 저야 "감사합니다."라고 했지요. 아직은 몇 가지 사정 때문에 윌슨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2007년 1월 초에 점심 모임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 건은 그때 가서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도킨스와 윌슨의 경우처럼 진화론자들이라고 해서 종교에 대해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2년 전에 작고한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고생물학자로서 단속 평형설 등을 제시했고 진화에 대해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던 과학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2002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 필자)는 이들과도 다른 종교관을 가졌었지요.
  
  그는 과학과 종교가 "중첩되지 않은 영역(Non-Overlapping Magisteria, 줄여서 NOMA)"에 있는 인간의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사실의 언어를, 종교는 가치의 언어를 쓰기 때문에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지요. 둘 간의 영원한 평화를 선언해 버린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도킨스, 윌슨, 굴드가 종교에 관해 자신만의 독특한 입장이 있는 듯합니다. 그 차이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과학이 종교를 제거할 것이라는 생각(도킨스), 둘의 세계관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생각(윌슨),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굴드).
  
  종교의 유통 기한은 아직도 유효한가?
  

▲하버드대학의 진화생물학자였던 스티브 제이 굴드. 그는 "종교와 과학은 전혀 별개"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프레시안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왜 저명한 과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을 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종교에 대해 딴죽을 거는 사람들의 직업을 따져 보면 과학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아마 종교학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은 이미 과학의 시대로 넘어온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종교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감성 때문에 일군의 의식 있는 과학자들이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계몽 차원에서? 하지만 두 진영 모두 자신들이야말로 선지자인 양 떠들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과학의 끝에서 신을 만나다! vs 과학의 끝에서 신을 쫓아내다!
  
  이런 화두를 던지면 어떤 이들은 시큰둥해 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과 종교, 더 넓게는 이성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야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되던 질문들 아닌가요? 뭐 그런 거야 따지기 좋아하는 가방 끈 긴 사람들이나 관심 갖는 것이지, 우리처럼 하루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지." 라고 말이지요. 실제로 저는 그런 분들을 여럿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지금 새삼스럽게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다시 꺼내야 할까요?
  
  이 대목에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9·11 테러를 들고 나오며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의 존재 자체를 고발한 것은 꽤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가만히 보면 중세까지 종교적 세계관 속에 숨 쉬다가 계몽 시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과학적 세계관으로 이행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도킨스의 주장처럼,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낡은 종교적 세계관이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번창하여 전 세계의 비극적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상황은 혹시 아닌가요? 마치 지독한 바이러스가 퇴치되지 않고 때로 사람을 대량으로 감염시켜 인류에게 큰 재앙을 주듯이, 종교도 끈질긴 정신 바이러스가 아닐까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기독교인이건, 무슬림이건, 아니면 다른 신흥 종교의 광신도들이건, 혹은 신내림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건 간에―이 다른 견해를 인정하려 않기 때문에 생겨났던 셀 수 없는 비극들을, 그리고 앞으로도 생겨날 비극들을 도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제발 좀 관용의 태도를 가져라." 라고 충고한다고 될 문제입니까? 아니면 아주 직설적으로 "네 세계관은 사실적으로 아주 틀렸거든!" "자살 테러를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지 내세에 축복받는 것 아니거든!"이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저는 요즘 도킨스의 외침이 진실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인 정직성을 견지하다 보면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필요 없는 '밈(meme,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11장에서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밈'이라는 새로운 복제자를 제안한다. 밈은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를 뜻하며 'gene'과 대구가 되도록 'meme'으로 표기되었다. 선율, 아이디어, 캐치프레이즈, 패션 등이 바로 밈의 사례들이다 : 필자)' 같아 보입니다. 유효 기간이 지나 버린 밈인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뭐가 더 있을 줄 알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거나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유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학과 종교학을 하시는 두 분 선생님께서 들으시면 좀 불쾌하게 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 종교가 더 이상 세상을 걱정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존립 근거를 걱정해야 할 때인 것이지요. 저는 과학이 종교의 주춧돌들을 야금야금 빼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종교인의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제게는 정말 수수께끼처럼 보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초자연적 세계를 상정한 종교들은 망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소위 '영적(靈的)인 세계'를 갈구하는 이들은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교는 점점 더 자신의 세력을 불려 세계의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중세로 회귀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요? 두 분 모두 한국의 종교 상황에 대해 전문가이시니 말씀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인가?
  
  종교와 과학은 누가 뭐래도 인류의 역사를 추동해 온 두 축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종교는 과학을 낳았고 과학은 종교에 대들었지만, 아직도 못 쫓아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반격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요.
  
  선생님들!
  
  이런 편지가 언제까지 오갈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두 밈인 과학과 종교에 대해 아주 솔직한 토론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데카르트가 했던 것처럼 진실이 무엇인지를 위해 방법론적으로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 보려고 합니다. 가령, 모든 유신론자들이 믿고 있듯이 기도가 정말로 효과 있는지를 의심의 눈으로 해부해 보고 싶습니다. 종교 경전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크고 작은 기적(miracle)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대신 결론은 활짝 열어 놓으려 합니다. 편지를 통해 선생님들과 토론해 가면서 인류의 해묵은 질문에 제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건 인류의 문제만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아시듯이 저 또한 지난 십여 년 간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왔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이것이 제 첫 번째 질문입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가 몇 년 전 <뉴욕타임스>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첫 번째 장문의 편지를 띄웁니다. 연말연시,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일을 하는 좋은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The New York Times, April 20, 1999)
  
  2006년 12월 10일
  
  눈 내리는 보스턴에서
  장대익 올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점점 흥미로워지는 강철구의 세계사 읽기이다.

책으로 나온다고 하지만 퍼올 것은 퍼왔다. 계몽사상,  그 보편주의의 허실이다. 이념적인 지향은 보편주의적이며 코스모폴리탄적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차별의 원리로서 작용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현실을 차별하기 위해서는 차별의 근거로서 보편적 원리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인가? 차별의 원리인가?
  
  계몽사상은 인간성의 동질성을 내세운다. 인간 존재는 그 인간성 때문에 모두가 갖고 있는 자산인 이성을 사용할 수 있고 따라서 점차 불합리한 미신이나 나쁜 관습을 내버리고 인간사를 보편적인 자연적 질서와 조화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역사의 진보는 인간 각 집단들의 문화에 점점 더 조화를 가져와 세계는 사회나 문화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진정한 코스모폴리타니즘적 전체를 이룬다. 인류는 전쟁이라는 정복단계에서 상업과 상호교류의 단계로 나아가 국가 사이의 분쟁도 이성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전쟁이 없는 진정한 평화가 이 세계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계몽사상은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주장된다. 서양 역사가들이 계속 강조해온 이야기이다. 그러면 계몽사상은 진정으로 코스모폴리타니즘적 성격을 갖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유럽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마찬가지이다.
  
  계몽사상가들은 인간이 갖는 자연적 권리의 개념을 점점 더 특권이 아니라 인간성의 소유에 근거 지었다. 인간이 권리를 갖는 것은 그가 귀족의 지위와 법적 특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성에 기초한 이 보편적인 권리의 개념을 실제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모든 소외 집단들, 여성, 노예, 하인, 가난한 사람, 못 배운 사람도 인간적 권리를 갖고 있고 나아가 정치적 권리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은 누구에게나 동등한 참정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이나 대부분의 계몽사상가들은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유럽 내부에서도 그렇지만 비유럽인에 대해서는 더 심하다. 그것은 비유럽인들도 앞으로 이성과 합리성을 발전시킬 가능성은 갖고 있으나 아직은 그런 상태에 있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유럽인들은 심지어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인들마저도 야만적이라며 멸시하고 차별했다.
  
  계몽사상 시기의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태도, 특히 중국인에 대한 태도는 찬양과 멸시가 뒤섞인 것이었다. 한때는 중국문화를 열렬히 동경하는 중국열풍이 분 적도 있다. 그러나 18세기 말부터는 낮추어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19세기에 들어서면 그들도 점차 야만인으로 고착된다. 그러니 다른 지역의 비유럽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프리카인이 유럽인과 동등한 인간적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 1792년, 무역을 목적으로한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건륭제를 찾아간 영국의 매카트니 특사. 매카트니는 귀국 후에 남긴 기록에서 당시의 중국이 강대하기는 하나 영국에 비해 사회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계몽사상의 원리는 서유럽인에게는 제한된 수준에서 보편적 원리이고 코스모폴리타니즘적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으나 비유럽세계에 관한 한 그것은 보편적 원리가 아니라 오히려 차별의 원리가 된다.
  
  사실 계몽사상은 유럽인들이, 합리적인 유럽문화와 이성을 가진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고 비유럽인과 그 문화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사상체계이다. 그래서 그 후 서양인들이 보편성으로서의 유럽문화가 야만상태에 있는 비유럽문화에 대해 갖는 지배권을 자연스레 믿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계몽사상은 근대세계에서 유럽인이 비유럽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계몽사상과 식민주의
  
  18세기는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식민지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이 전개된 시기이다. 사실 이 시기의 거의 모든 전쟁은 식민지 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만큼 식민지는 유럽인들의 생활에 본질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 계몽사상가들은 식민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일반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의 아메리카 경영을 비판했다. 그것이 잔학성, 야만성, 광신성,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페인 인들의 착취나 억압을 비판했으나 한 편에서는 자신들의 식민주의는 옹호해야 하는 이중적 위치에 있었다. 유럽의 번영이 그것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민주의를 옹호하거나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은 별로 없다. 반대한 사람들도 대체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착취라는 비도덕적 행위 대신 발전시킨 논리가 바로 '상업'행위이다. 사실 상업의 중시는 18세기의 일반적인 풍조였다. 볼테르도 '잉글랜드인들을 부유하게 만든 상업은 그들을 자유롭게 만들었고, 자유가 반대로 상업을 팽창시켰다. 이것이 영국 민족을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영국의 상업 발전을 찬양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업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업을 도덕적 가치로까지 격상시켰다. 상업이 본국과 식민지 양쪽에 모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식민지에서도 상업을 통해 계몽, 이성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업활동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유럽의 식민국가들은, 식민지의 직접적 착취는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자기나라의 식민지가 다른 나라나 다른 나라의 식민지와 교역하는 것을 막았고 식민지의 상공업에 여러 가지 제약을 가했다. 본국의 상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본국과 식민지와의 교역관계는 불공정 무역이자 착취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18세기까지 식민지 무역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노예무역이었다. 18세기 후반은 노예무역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1780년대에는 매년 60만에서 100만의 아프리카인이 아메리카로 팔려나갔다. 그 잘난 영국이나 프랑스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상업의 찬양은 한 편에서 노예무역의 비도덕적인 성격을 가리는 자기기만적 행위이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1787년에 노예무역폐지협회가, 프랑스에서는 1788년에 <흑인 친구의 회>가 설립되어 노예무역의 폐지를 주장했으나 그 활동은 미미했으며 대중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계몽사상가 가운데 일부 양심적인 사람들은 식민지 무역의 도덕적 기초가 의심스럽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루소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식민주의는 그것이 서양 사회를 지탱하는 방식에서 인간사회 전체에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기제가 되었고 계몽의 실현을 막는 영구적인 장애물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소수자의 것에 불과했다.
  

▲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 -1778)


  계몽사상과 인종주의
  
  계몽사상은 인종주의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시기가 인종주의가 본격적으로 이론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몽사상가들은 대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인종주의자이기도 했다. 이성의 힘과 합리성을 믿으면서도 한 편에서는 인종주의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는 흄이나 볼테르, 달랑베르, 칸트, 헤겔 같은 사람의 경우 마찬가지이다. 미국을 독립시킨 토마스 제퍼슨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도 계몽사상에서 받아들인 고상한 이상들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인종주의자들이었다. 따라서 인종주의와 계몽사상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인종주의는 계몽사상의 본질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들이 쓴 글들 가운데 많은 것이 유럽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유럽인들이 문화적, 인종적 우월감을 느끼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의 글에서 '이성'과 '문명'은 백인이나 유럽인과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비이성과 야만은 비백인이자 비유럽인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예만 들자. 데이비드 흄은 <민족성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민족 사이에 성격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여러 도덕적, 물리적 결정 요인 때문이지만, 주로 도덕적 요인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도덕적 요인은 관습, 정부, 경제적 조건, 외교관계 같은 것들이며 물리적인 요인은 기후와 공기이다.
  
  이렇게 그는 사회적인 요인이 민족성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으로 믿었으나 인종적 차이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백인만이 예술과 과학에서 주목할 만하고 정교한 것을 만들었고 백인 가운데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고대 게르만 인, 타타르 인이라도 말할 만한 것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데이비드 흄 (David Hume, 1711-1776)


  칸트는 인간의 자유와 도덕적 자율성을 매우 강조한 사람이지만 퀘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철학뿐 아니라 인류학과 지리학도 함께 가르쳤다. 그 당시에 이들 학문은 전형적인 인종주의 학문들로서 그는 그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생전에 출판한 <실용적 입장에서의 인류학>이나 사후에 출판된 <자연지리학> 같은 책에 인종과 인종주의와 관련된 내용이 가득 실려 있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후대의 철학자들은 계몽사상가들의 이런 글들은 '저널리스틱'한 글이라든가, 진지한 철학적 관심과는 관계없는 글로 간주하여 소홀하게 취급했다. 이렇게 해서는 계몽사상가들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결어. 계몽사상과 유럽중심주의
  
  계몽사상이 서양을 근대 사회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인간사회를 합리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서 종교적 관용, 자연법과 자연권 개념의 발전, 정치적 자유의 확대 등은 서양 근대문화의 중요한 유산이 되었고 그것은 비유럽세계에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따라서 계몽사상을 일면적으로 비판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그것이 갖고 있는 한계도 매우 분명하고 크다. 특히 그것이 비유럽인들에 대해 보이는 차별적 태도는 비유럽인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보편적인 원리인 것처럼 주장하나 실제로는 비유럽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논리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랑하는 유럽의 문명과 진보는 비유럽 세계의 정복과 식민지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또 계몽사상가들이 강조하는 인간의 자연권이 비유럽인들에게도 적용되었다면 식민주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양 역사가들이 계몽사상을 계속 높이 평가해 온 것은 그것이 서양의 정신적, 문화적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큰 기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르네상스 - 과학혁명 - 계몽사상으로 이어지는 고리의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리고 서양인들의 이런 태도는 최근의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본질적으로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001년에 <급진적 계몽사상>이라는 책을 낸 조나단 이스라엘이 좋은 예이다.

 

 

 

 

  


  '계몽사상과 그 결과는 유럽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만약 계몽사상이 유럽사에서 세속화와 합리화를 위한 가장 극적인 단계라면 그것은 서양문명의 역사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역사, 즉 전 세계 역사에도 마찬가지로 그렇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그것은 인간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이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몇 년 된 이야기이지만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대학교수들에게 거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외국학자가 독일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였다. 그런데 그는 계몽사상의 합리성을 매우 중시하며 계몽사상을 옹호하는 사람이다. '계몽사상에는 자유, 정의, 객관성 같은 아직도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 위르겐 하버마스 (Jürgen Habermas, 1929 - )


  하버마스가 독일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반발로서 합리성을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폭력적인 나치 독재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응답한 한국 지식인들이 하버마스가 강조하는 계몽사상의 합리성이 담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만약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한국지식인들의 특징 중의 하나인 보편주의, 특히 서양 보편주의에 대한 지나친 사랑의 결과라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떤 역사적 사실의 이해도 바른 역사적 문맥에서 보지 않으면 공허할 수밖에 없다. 계몽사상의 합리성이 실제로 역사 속에서 비유럽인들에게 거대한 폭력과 야만성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명과 야만
  
  우리는 오늘날 '문명'이라는 단어에 별 주의를 하지 않고 보통명사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고 만들어진 단어이다. 근대 유럽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다른 지역의 문화와 구분되는 독특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양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문명'이라는 말에 대한 그런 애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요즈음에도 즐겨 쓰는 '프랑스 문명'이라는 말은 거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지난번 이라크를 침공할 때에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양 '문명'이 이라크의 '야만'을 벌주겠다는 이야기이다.
  

▲ 미국의 이라크 침공. 부시가 사용하는 어법에서의 문명과 야만의 2분법은 서양 사람들에게서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갖는 것이다.

  문명과 야만의 구분법은 유럽인의 해외팽창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들은 아메리카나 다른 지역에서 많은 다른 종족들을 만났는데 그 가운데에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정부나 계급구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의 문화수준이 매우 떨어져 보였으므로 그들을 야만인으로 부른 것이다.
  
  문명은 이들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이 1560년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개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특정한 정치형태를 갖고 있고, 예술이나 문학에서 어느 수준에 이르고,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보이는 관습이나 도덕을 갖고 있는 상태를 의미했다.
  
  그것은 16세기 이후에 씌어진 많은 대중적인 여행기들의 영향도 받았다. 이 책들 가운데에는 비유럽 지역 사람들의 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풍습들을 과장적으로 그린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계몽사상가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유럽문화가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었으므로 이런 구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유럽이 최고의 문명 단계에 있고 다른 지역의 사회들은 그 수준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다 야만적인 상태에 있었다. 물론 그 기준은 각 문화에서 이성의 힘이 얼마나 작용하는가의 문제였다.
  
  이때 야만인의 무지는 날 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환경의 탓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너무 풍족한 자연환경이 사람을 게으르게 하고 감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게 하여 정신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나쁜 기후나 아시아에서와 같이 전제적인 정부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렇게 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전적으로 환경의 탓으로 인간성의 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사람의 본성은 언제 어디서나 다 똑같으므로 계몽되고 교화되기만 하면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문명과 야만을 보편적 인간성의 관점에서 보고 있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리상의 이야기이다. 실제로 그 원리가 현실화할 때에는 매우 달랐다.
  
  역사의 진보
  
  계몽시대에는 역사관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물론 대부분의 계몽사상가들은 역사를 도덕교육이나, 정치에서의 교훈을 위한 지침 정도로 생각했으므로 과거 자체에 큰 가치를 두지는 않았다.
  
  또 역사는 주로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볼테르 같은 사람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그는 역사적인 사건들은 우연적인 것이므로 그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역사가 반드시 아름답다거나 바람직한 것으로 믿지도 않았다. 역사 속에서 전쟁이나 기근, 전염병, 화재 같은 참화나 범죄, 불운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어떤 일정한 변화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계절의 변화와 같은 순환이었다. 한 왕조가 탄생, 성장, 멸망하고 뒤를 이어 다른 왕조가 같은 길을 밟는 것은 그런 순환의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 1666년의 런던 대화재. 런던시의 5분의 4를 태워버린 런던 대화재 같은 사 건은 당시대인에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끌리는 역사의 불가측성을 잘 보여주 었다.

  18세기 말에 와서 이런 태도가 달라졌다. 유럽사회에서 갑자기 기술이 발전하고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며 인간의 삶이 이전 시기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이 나타났다. 영국의 애덤 퍼거슨, 프랑스의 튀르고나 콩도르세 같은 사람들이 그 선구자이다.
  
  퍼거슨과 튀르고는 인류가 사냥과 채취사회에서, 목축, 농업, 상업사회로 단계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유럽은 그런 면에서 최고의 단계에 도달한 상업사회였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야 예술과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아직 어떤 법칙에 따른 발전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콩도르세에 오면 달라진다. 그는 <인간 정신 진보의 역사적 스케치를 위한 초안>이라는 글에서 인간 정신은 감각에서 오는 정보를 무한히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지식을 무한하게 축적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에 관한 한 인간은 진보하며 개인과 함께 사회도 진보한다고 믿었다.
  
▲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 초상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자연법칙을 믿었고 그것은 자연계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엄격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제 역사는 설명되고 예측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진보의 관념이 보다 확실해지고 그것이 진보사관이라는 하나의 역사관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산업화에 따라 물질적인 진보가 뚜렷하게 눈에 보이고 이제 인간사회는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곳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 사회의 이러한 진보는 비유럽사회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는 생각을 강화시켰다. 19세기에 들어와 아시아 정체성론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이유이다.
  
  보편사로서의 유럽사
  
  18세기의 유럽인들에게는 문명과 진보를 보여주는 유일한 곳이 유럽이었으므로 유럽이 세계사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유럽의 역사는 유럽만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비유럽지역의 역사는 주변화, 파편화되었다. 이런 생각을 가장 강력하게 대변한 것이 헤겔이다.
  
  이렇게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한 진보의 운동이라는 생각은 모든 문화적 단위가 그 나름의 문화적 동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생각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다른 지역과 사회의 문화적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사에 대한 이런 주장은 비유럽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압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헤겔은 '세계정신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그런 민족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권리에 비해 다른 민족의 정신은 아무 권리도 갖지 못한다'고 말함으로써 이런 생각이 갖고 있는 제국주의적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계몽사상의 보편주의에 대한 비판은 당대에 이미 나타났다. 독일 철학자 헤르더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문명'에 대한 반대말은 '야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라고 생각했다. 어떤 문화도 다 고유의 독자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헤르더 (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 초상

  그는 '우리의 철학을 특징짓는 일반화의 열기가 다른 사람들이나 나라, 시민이나 그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은폐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계몽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원주민들의 '진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유럽 문화를 강제하며 식민주의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도 계몽사상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또 인간성이 역사, 지리, 기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도 반대했다. 모든 사람들의 집단은 살아있는 문화적 공동체로서 그들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계몽사상이 다른 문화에 대해 보이는 억압성에 대해 정당한 경고이다. 그럼에도 그의 비판은 대다수의 계몽사상가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시안에 연재중인 강철구 교수의 글이다.

 

17세기 유럽인이 맞은 정신적 위기
  
  계몽사상이 강조하는 이성과 합리성은 16세기 이래 유럽이 경험한 커다란 지적 변화의 산물이다. 1519년에 마르틴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기독교 세계를 크게 분열시켰다. 그 결과 근 천 년 이상 카톨릭 교회가 누려오던 절대적인 지적 권위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또 16세기 이후 아메리카나 아시아와의 접촉을 통해 유럽인의 시야는 크게 확대되었다. 성경이나 고전을 통해 알았던 세계는 이에 비하면 매우 협소한 것이었다. 17세기에 들어와서는 과학의 발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통해서 본 우주는 지금까지 생각해온 것과는 전연 다른 별들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달 너머에 있는 우주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깨뜨린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지식인들은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믿어 왔던 모든 전통적 지식의 확실성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제 모든 지식이 의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 같은 17세기 프랑스 철학자가 기존의 모든 지식을 '방법론적 회의'를 통해 재검토하려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수학의 공리와 같은 가장 확실해 보이는 원리 위에 지식을 세우려고 한 것이다. 당시의 많은 사상가들이나 철학자들이 수학을 연구하고 그것을 매우 중시한 것은 이렇게 수학이 가장 이성적이고 확실한 학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새로운 사조의 발전에 있어 데카르트주의의 역할은 중요하다. 데카르트가 거의 무신론적이며 기계론적인 철학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것을 1640년대 말부터 널리 확산시켰다. 1650년대부터는 갈릴레오의 노력에 의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체계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1687년에 뉴턴이 발표한 만유인력설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본격적으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변화하는 지상계와, 에테르라는 물질로 만들어져 변화하지 않는 천상계의 둘로 나뉘어졌던 우주가 이제 중력의 법칙이라는 수학적 원리에 의해 하나의 세계로 통합된 것이다. 우주를 하나의 큰 기계로 보는 생각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1700년경이면 지식인들 사이에서, 데카르트가 차지했던 자리는 뉴턴에게 넘어갔다.
  
  기계론적 철학이나 세계관이 점차 확산되며 유럽은 17세기 중반부터 전례 없는 지적 혼란에 빠진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믿는 전통적인 스콜라적 학문체계와 새로운 학문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럽인들에게 하나의 큰 정신적 위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이 17세기말에 계몽사상이 나타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서양사의 가장 결정적인 지적 변화의 시기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18세기 계몽사상의 발전
  
  계몽사상의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나라는 영국이다. 여기에서는 제임스 2세가 다시 친카톨릭 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이 주도한 1688년의 명예혁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제임스 2세 (James II, 1633~1701)


  이 혁명을 통해 영국은 절대왕정을 끝냈다. 다음 해의 권리장전을 통해 새로 즉위한 왕이 의회의 우위를 인정함으로써 그 사회적 기반은 좁지만 대의제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또 인신보호령(habeas corpus)을 통해 개인의 신체적 자유와 상당한 정도의 종교적 관용도 허용받았다. 표현과 출판의 자유도 확보했다. 1695년에 책을 출판하기 전의 사전검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혁명에 이론적으로 크게 기여한 인물이 존 로크이다. 그는 사회계약설을 통해 국가의 주권이 인민에게 있으며 통치자가 위임된 것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 인민에게 저항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시민정부2론>은 교육 및 인식론에 대한 다른 글들과 함께 18세기에 북아메리카 식민지와 프랑스에서 널리 읽혔고 계몽사상의 성경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나중에 나온 루소의 사회계약설과 함께 미국독립과 네덜란드 혁명,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럽 대륙의 지식인들은 이제 자기네 나라들이 영국에 비해 얼마나 뒤떨어진 나라이고 불합리한 나라인가를 잘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18세기의 계몽사상은 친영국적 풍조와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 영국이 그들에게 근대적이며 과학과 상업이 발전하고 이미 대의정부를 가진 선진국가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을 소개하는 데 가장 열심이었던 사람이 볼테르이다. 정부를 풍자했다가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된 경험도 있는 볼테르는 1720년대 말에 영국을 방문하고 쓴 <영국인에 관한 편지>에서 '모든 예술이 존중받고 보답을 받는 나라로 …… 누구나 굴욕적인 두려움 때문에 제지받지 않고 자유롭고 고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곳'이라고 영국을 찬양하고 있다. 그는 뉴턴의 이론을 쉬운 말로 소개하는 데도 큰 힘을 기울였다.
  
  그가 다방면으로 개혁을 이야기하기는 했으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종교적인 문제였다. 그는 절대왕정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교황의 전횡이나 대중들이 가져올 사회적 불안정보다는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1750년경이 되면 파리가 계몽사상의 수도가 되었다. 디드로나 루소 같은 많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볼테르의 뒤를 따르며 그것이 살롱이나 프리메이슨 조직, 각종 학회를 통해 대중적인 지지기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프랑스 절대왕정의 독선, 교회의 부패와 비리, 그리고 사회 안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며 프랑스 사회의 개혁을 외쳤다. 여기에는 금서 출판에 매달린 많은 출판업자들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주변국가의 지식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계몽'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전유럽적인 현상으로 만들었다.
  
  계몽사상은 디드로가 주도해서 만든 백과사전 안에 집대성되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계몽사상가라고 하면 이 책에 기고한 사람을 의미할 정도로 거의 모든 계몽사상가들이 이 작업에 참여했다.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돌바흐, 튀르고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 디드로 (Denis Diderot, 1713~1784)


  1751년에 첫 권이 출간되고 그 후 29년에 걸쳐 36권이 출판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최신의, 가장 합리적이고 계몽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2만5천질이 팔려 사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교회는 이 책을 '사탄의 성경'으로 몰아붙이며 금서로 만들려고 애썼으나 결국 실패했다.
  
  계몽사상은 18세기 마지막 4분기에 들어서면 보다 급진적이 된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공화국'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 이에는 미국이라는 최초의 공화국이 출범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0년대 말에 프랑스혁명이 발발할 때쯤이면 볼테르 같은 사람의 주장은 이미 너무나 온건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근대 자연법과 자연권
  
  계몽사상가들의 가장 큰 업적의 하나가 자연법과 자연권을 발전시킨 것이다. 17세기에 그로티우스에 의해 근대적인 성격을 갖게 된 자연법은 계몽사상 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인간의 공동적 삶을 위한 편의성이나 사회성에 기초를 두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를 만들어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연세계가 어떤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생각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사람들은 국가 사이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자연법으로서의 국제법을 만드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것이 승자와 패자에게 공통의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정치권력의 새로운 정당화를 위해 동원된 자연법이 사회계약설이다. 국민의 의사라는 합리적 기반 위에서 국가권력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물론 토마스 홉스 같은 사람은 그것으로 절대왕정을 옹호했지만 로크나 루소는 왕의 절대주의를 부인하는 논리로 사용했다.
  
  상업의 자유도 자연법에 속했다. 그것이 다른 지역 사이에 유무상통하게 함으로써 거래 당사자들 서로에게 도움이 되게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타국을 자기 마음대로 여행하거나 교역을 할 자유가 있다고 믿었다.
  
  사유재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사회를 만드는 목적의 하나는 그들이 확보한 것, 또 확보할 수 있는 이익을 자신에게 확인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이 자신의 소유를 방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사유재산이 신성하다는 생각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조세도 사회의 자연적인 일부로서 지배자에게 바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호이익과 자기보존을 위한 것이다. 세금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것의 일부를 포기하는 데 동의하는 것은 전체 사회의 보존과 유지를 위해서이지 그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적 가치도 자연법에 속했다. 아름다움은 재산의 소유가 공리성을 만드는 것과 똑 같이 주체의 존재론적 가치를 결정짓는 자산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고전 경제학에서 균형과 공리성이 중요한 것과 같이 여기에서는 비례, 균형, 세련이 중요했다. 이외에도 많은 자연법들이 만들어졌다.
  
  자연법의 발전과 함께 자연권 사상도 발전했다. 기존의 권력이나 종교, 관습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자연히 개인에게는 신으로부터 부여받고 누구에게도 침해 받아서는 안 되는 본래적인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는 처음 종교의 자유에서 비롯된다.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 신앙의 자유를 매우 중요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양심의 자유, 출판의 자유, 인신(人身)의 자유라는 생각도 차츰 성장했다. 독립한 미국의 권리장전에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라는 자연권이 들어간 것이나 프랑스 혁명 시기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연법과 보편성
  
  근대 자연법과 자연권의 발전은 서양 근대사회의 기초로서 매우 중요하다. 보다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8세기 후반에는 유럽 전체에 걸쳐 국가, 사회를 합리적으로 개혁하려는 수많은 제안과 시도들이 나타났다. 행정, 관세, 의회, 유대인의 조건 개선, 교회와 학교의 개혁, 축산 방법의 개량 등 갖가지 주제가 포함된다.
  
  또 가장 혹독한 것으로 생각된 재판과정에서의 고문이나, 증인도 없이 할 수 있는 종교재판의 문제점을 개혁하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그 결과 프리드리히 2세는 1740년에 고문을 금지시켰으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도 18세기 말에는 이를 뒤따랐다. 마녀사냥은 영국에서는 1712년에, 프랑스에서는 1718년에, 독일에서는 1749년에, 그리고 스위스에서는 1782년에 금지되었다.
  

▲ 중세 말 마녀 사냥. 이단자로 판결이 되면 마녀로 몰려 화형이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며 이는 특히 비서양 세계에 대해 그렇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사유재산권은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근대초의 재산계급의 이익을 잘 대변한 것이다. 따라서 유산계급에게는 유리하나 무산계급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비서양세계에 적용될 때이다. 로크나 후대의 자연권론자들은 유럽인의 사유재산권은 신성시했으나 비유럽 사람들의 재산권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아메리카의 경우에 그 논리는 거꾸로 원주민들의 재산권을 박탈하는 데 이용되었다.
  
  자연법으로서의 상업의 자유는 유럽인들의 통상확대에는 도움이 되는 논리였지만 비유럽인에게는 제국주의적인 논리 이외의 것이 아니었다. 제멋대로 다른 나라에 가서 문호개방과 통상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말을 듣지 않는 경우에는 무력을 사용했다.
  
  인간의 몸의 미학적 가치도 18세기 말이면 인종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종적, 사회적 위계 속에서 개인의 위치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었다. 그리하여 백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흰 피부, 두개골의 모양, 인체의 비례가 사람들의 미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서의 자연법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의 자연법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석훈이 프레시앙에 기고한 글이다.

대운하 관련하여 참 재미있는 분석이라서 삽질해 보았다.

 

작년부터 수 차례 대운하와 관련된 책을 집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 때마다 거절했다. 우선은 대운하와 관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직접적인 얘기들은 이미 <한겨레>나 <경인일보> 같은 매체의 고정 칼럼란을 통해 거의 다 한 셈이라서, 나라고 추가적으로 더 할 얘기가 엄청나게 남아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굳이 생태적인 효과나 보건적인 효과, 예를 들면 안개일수의 증가에 따른 보건적 효과와 같은 것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이런 것들은 개별적인 연구자가 시간강사 급료를 쪼개어 해볼 수 있는 연구의 수준을 넘어서는 엄청난 것이라서 감히 엄두도 내기 힘들다.
  
  간단한 '코홀트' 조사 한 번 한다고 하더라도, 수 십억 원은 간단히 넘어서는 큰 조사들을 해봐야 하고, 생태조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수 십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연구들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대운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미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꼭 운하에 대한 책을 읽을 필요가 없고, 또 대운하를 찬성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 역시 책 한 권 읽는다고 자신의 이권을 내려놓거나 생각을 고쳐먹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대운하로 나라 망할 수 있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같이 환경운동 하던 사람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결국 책을 한 권 집필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책의 사회적 효과나 판매와 같은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작게는 내 양심에 관한 일이기도 하고, 크게는 정말로 이 일로 우리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겨우 대운하 하나 가지고 한국이 망할 것인가?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이, 연초에 CBS 라디오에서 같이 대담을 했던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답이었다. 그 시절에는, 나도 한국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경제가 고작 대운하 하나 가지고 경제가 망할리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규모의 문제만으로 보면, 수 십조원 잘못 지출했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전투기 구매와 잠수함 구매에 고작 몇 조원의 리베이트 때문에 잘못한 구매가 우리나라가 한 두개가 아니지 않은가? 정치실험으로 잘못된 민영화 몇 개로 이미 겪은 손실 그리고 겪게 될 손실도 간단히 수 십조원 규모는 넘어선다. 매년 대운하 규모의 잘못된 경제행위를 몇 개씩 하는 한국에서 비록 생태적 재앙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설마 나라가 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겠는가? 이 정도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대운하에 관한 이해였다.
  
  그러나 꼼꼼히 생각해본 결과, 대운하로 한국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게 최근에 내가 내린 결론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대운하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대운하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망한다. 고생태학에서는 이걸 '붕괴(Collapse) 모델'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가장 최근에 정교하게 제시한 사람은 <총균쇠>의 저자로 너무도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이다. 저자는 <네이처>지의 고정 칼럼니스트이기도 한데 우리 말로 <문명의 붕괴>라는 용어로 번역된 책 <Collapse>는 생태학 특히 고생태학에서 사용하던 '붕괴 모델'을 사회경제적 맥락으로 정교하게 가다듬은 책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알려진 참고문헌들 중에서 한반도 대운하에 가장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문헌은 바로 이 <문명의 붕괴>이고, 이 '붕괴 모델'은 현재의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안을 가장 그럴 듯하게 설명해주는 모델이다.
  
  고생태학자들이 찾아낸 최초의 붕괴 모델은 작은 섬 '이스터'에서 벌어진 모델이다. 한 때는 인구 3만명, 연 경제성장률 7%를 기록하던 이 작은 섬은 원래는 나무로 뒤덮였었다. 아주 성공한 경제모델이었던 이스터 섬은 결국 '더 큰 성공'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석상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 석상을 이동하기 위해서 나무를 베기 시작했고, 결국 생태계의 변환이 오는데, 이 변환이 더욱 더 이스터섬의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태가 악화될수록, 종교의 힘을 뒤에 업은 정치지도자들이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서 더욱 더 열심히 석상을 만들었다. 종국엔 마지막에 만들어진 석상들은 나무가 모자라 미처 해변가까지 이동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버렸고 이스터섬의 작은 사회는 붕괴하게 됐다. 이것이 대략적인 '이스터섬 붕괴 모델'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 모델로 마야 문명, 앙코르와트 등 완전히 사라져버린, 즉 '몰락'해서 멸종된 문명들이 붕괴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프레시안>의 독자 여러분들에게, 대운하가 가지게 되는 사회경제적 충격에 대해서 내가 권유할 수 있는 독서는, 좀 두껍기는 하지만 바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다. 그리고 이 두꺼운 책이 부담스럽다면, 바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묘사하고 있는 14장의 첫 번째 절 '성공을 위한 로드맵'이라도 꼭 읽어보셨으면 한다.
  
  이 절의 내용은, 한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하면 더 큰 성공을 위한 '로드 맵'이 제시되기 시작하는데 이 순간이 바로 '붕괴 과정'이 진행되기 시작하는 첫 순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프레시안> 정도의 정론지를 일부러 찾아와서 읽어주는 독자 여러분들의 지적 수준이라면, 이 한 절에서의 '숨은 그림 찾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와 이미 익숙해진 일부 선동가들의 표현을 그대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좋은 프로젝트를 왜 안 하나?"
  
  
그렇다. 한반도 대운하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고, '붕괴 절차'에 의해서 '붕괴 모델'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든 몰락한 국가와 사회에서는 다 벌어졌던 일들이다. 이미 '이스터섬의 비극'에서 앙코르와트와 마야문명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이 반복됐는데,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 가장 큰 경제적 성과를 이루었던 한국경제에서 '성공을 위한 로드맵'이 작동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구조적으로 그런 일들은 시작되도록 되어있는데, 그 사회구성원들이 이 '로드맵'주의자들의 힘과 권위에 일방적으로 밀려 실제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도록 방기한다면, 그 다음 절차는 바로 붕괴 프로세스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제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아주 재밌는 글을 쓰는 한 저명한 과학자의 충고이다.
  
  종교적 권위를 등에 업은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고, 사회의 번영을 약속하며, 그 생태계가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 프로젝트를 '로드맵'으로 제시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은 성공의 욕망에 발버둥칠 때,붕괴는 시작된다. 이게 이스터섬의 비극과 마야문명과 앙코르와트의 붕괴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 상황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똑같다. 어째 이리 같은가?
  
  이것이 바로 과학이다. 그래서 고생태학 모델이 사회과학에 적용하여 한반도 대운하로 인한 붕괴를 설명하는 것은 과학의 연장이고 경제학의 연장인데, 막상 대운하 건설 자체에서는 어떠한 과학의 흔적도 발견하기 어렵다.
  
  땅값이 올라가면 잘 산다는 미신과, 산으로 배가 가면 볼 만한 거리가 되어서 관광객이 많이 올 것이라는 관광 신화, 오직 이 두 가지가 '과학의 흔적 없는 대운하'를 형성의 논리적 두 축이다.

▲ '한반도 대운하 공약실천 촉구결의대회'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앞 한강 둔치에서 '친환경 물길잇기 전국연대' 주최로 열렸다 ⓒ연합뉴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