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일보에 연재되는 기획물을 옮겨와 본다. 공화국에 대한 논의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제대로된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1)왜 공화국 논의가 필요한가 (上)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구도에 놓여 있습니다. 보수 대 진보라는 구분, 절차적 민주주의로는 해결되지 않는 다양한 요구가 존재하고 충돌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와 모색의 시기에 공동체와 개인의 조화를 통해 바람직한 공공의 영역이 확보된 상태, 즉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로서 ‘공화국’의 모습을 제시해 봅니다. 철학자 김상봉, 정치학자 박명림이 ‘공화국’을 주제로 주고받은 24편의 서신이 매주 월요일 독자 여러분에게 배달됩니다.



  


학문적 배경은 다르지만 한국사회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고민을 해온 김상봉 교수(왼쪽)와 박명림 교수. 이번 서신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쉬운 언어로 제시할 예정이다. | 김세구 선임기자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새해 인사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으나 이번에는 정초부터 세상이 너무 뒤숭숭합니다. 저는 지난달 중순쯤에 학회 일로 스페인에 다녀왔는데 떠나기 전에는 일제고사에 반대했던 교사들을 파면·해임한다고 야단이더니, 돌아오니 이제 방송법으로 법석이군요. 그걸 보며 저는, 어쩌면 제 무덤을 파는 일에 저리도 열심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분노보다 연민의 감정이 먼저 듭니다.

이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20~30년 만에 한 번씩 거대한 민중봉기가 일어났음을 상기하고, 1987년 이후 잦아들었던 항쟁의 에너지가 머지않아 폭발적으로 분출하리라고 예견해왔는데, 지금 이 정부가 하는 행태를 보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정권의 위기가 닥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국가기구가 어떻게 국민의 손에 의해 전복될 수밖에 없는지를 가장 눈부시게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그런데 그 엄연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자들이 지금의 집권세력이니 어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그것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까닭은 지금의 집권세력이 오래 가지 못하더라도 그 뒤가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이 땅의 씨알들은 나랏일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물을 것입니다. 그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낡은 길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 길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나라를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는 데는 영웅적인 용기를 보였으나, 과연 무엇이 바람직한 나라인지 생각하는 일에는 게을렀던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하지만 설계도 없이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아무런 이상 없이 나라를 세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87년 6월항쟁을 통해 마지막으로 독재 권력을 무너뜨렸음에도 불구하고, 허망하게도 20여년 전 우리가 몰아냈던 독재권력의 후예들에게 다시 국가권력을 헌납한 까닭도 우리에게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전망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단순한 비판과 부정이 아니라 나라를 형성하기 위한 이상과 척도를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바람직한 국가에 대해 생각하는 일에 서툰 까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고전적 사회주의 이론이 국가를 소멸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알게 모르게 국가에 대한 적합한 인식은 물론 바람직한 국가에 대한 상상을 억압해온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시즘에 따르면 바람직한 국가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퇴행적인 일로 치부되는 까닭에 엄연히 국가의 울타리 속에서 살고 있고 내심으로도 국가의 소멸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짐짓 국가의 파괴와 소멸을 입에 올릴 뿐 바람직한 국가를 어떻게 형성하고 건설할 것인지를 물을 수 없었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고, 아직도 그 관성이 다 청산되지 않은것이 국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 한국의 진보진영에 고전적 사회주의자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다수는 일찌감치 옛 마르크스, 레닌이 꿈꾸었던 혁명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국가소멸론 따위에는 더 이상 아무 관심도 없으므로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을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국가의 상이 하나같이 다른 나라 학자들의 이론을 빌려온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남의 철학을 가지고 제 나라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남의 이론은 남의 역사에 뿌리박고 있는 까닭에 이 땅의 씨알들의 역사적 기억과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는 나’라는 자아의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 자아의식이란 자기에 대한 기억인 동시에 미래의 자기에 대한 욕구와 동경입니다. 그 기억과 동경이 조화롭게 맞물릴 때 비로소 나의 존재는 안정됩니다. 이런 사정은 집단적 주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한 겨레의 역사적 기억과 미래의 이상이 균형을 이룰 때 역사 속에서 안정된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새로운 나라의 이상이 우리들 자신의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일 때만 민중은 그것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이상이 대중성을 가질 때 비로소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됩니다. 하지만 남에게서 얻어온 국가의 이상이란 민중의 역사적 기억과는 단절된 것인 까닭에 그 자체로서는 이 땅의 씨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민족이 다른 민족과의 만남 속에서 자기를 형성하지만, 남에게서 배운 것도 자기 속에서 따라 체험하는 한에서만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족의 역사에 뿌리박지 못한 이상은 죽은 이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난날 많은 사람들이 단지 국가폭력만이 아니라 그 국가에 대항하여 싸웠던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치유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주위에서 국가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공동체에 대해 조건반사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공동체를 불신하는 사람에게 바람직한 공동체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의미를 가질 리 없으니, 이들의 관심은 온전한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가기구 또는 일체의 공동체에 포획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탈주의 자유란 망상일 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폴리스 속에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스스로 형성함으로써 그 주인으로 자유를 누리거나 아니면 국가의 노예로 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즉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고 치유하면서 우리 자신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바람직한 나라의 이상을 이끌어내는 일입니다. 

 

 

 

 

    

여기서 제가 이웃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는 것이 무슨 단체나 조직이 아니라 온전한 만남의 문제라는 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참된 나라를 꿈꾸는 것은 국가기구에 종노릇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슨 추상적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오직 너와 내가 온전히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참된 만남 없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우정 없이 행복이 있을 수 없다면 참된 만남이란 가장 중요한 개인적 욕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욕망이 충족되고 자유가 실현되는 만남의 지평이 바로 나라입니다. 국가가 타락하면 우리의 만남이 왜곡되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이 불행해집니다. 그런 까닭에 이상적인 나라는 당위 이전에 자연스러운 욕망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적인 나라 자체는 추상적인 이념인 까닭에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이상국가의 도식이나 전형이 있게 마련입니다. 300년 전이었다면 성인이 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이상국가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30년 전에 참된 나라를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독재국가 아닌 민주적 국가를 생각하는 것을 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사라진 지금 누구도 단순히 민주국가가 우리가 꿈꾸는 참된 나라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같이 만들어나가야 할 나라의 이름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바로 공화국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키케로나 루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이 말하는 민주공화국이며, 동시에 지난 봄 여름 촛불시민들이 요구했던 민주공화국입니다. 요구하는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현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민주국가가 문제라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독재에 대한 항쟁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고 또 불완전하나마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습니다. 촛불시민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외쳤습니다만, 이명박 정권은 두 번의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확고히 권력을 위임받은 정권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공화국입니다. 그것은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구별하자면 민주국가에서 더 나아가 온전한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지난번 촛불항쟁을 통해 명확히 표출된 시대정신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공화국이란 나라가 공공적 기관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불완전한 예외를 제외하면 왕조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의 국가기구는 한 번도 온전히 공공적 기관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소수의 권력집단이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으로 점유한 수탈과 억압의 도구가 국가기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공공성이란 나라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상실하면 나라는 더 이상 나라일 수 없으며 우리가 그런 나라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나아가 민주주의 역시 공공성의 원리가 없다면 내용 없는 형식으로 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극히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이명박 정부의 폭정에서 똑똑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즉 지금까지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도 이제는 공화국에 대해 말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하지만 공화국은 무엇이며 공공성은 또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 나라 역사의 어떤 지점에서 공화국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을 찾는 것은 누구보다 철학자의 일이지만, 그 이상이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속에 뿌리내려야 하는 까닭에 이제 저는 한국정치사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오신 선생님께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나라에 공화국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공화국을 꿈꾸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현재의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서 참된 공화국으로 통하는 길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성가시지만 피할 수도 없는 물음으로 선생님을 초대하면서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세상이 비록 혼돈뿐이더라도 선생님께서는 평안하시길 빕니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칸트의 주체철학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학문의 진보성과 주체성, 민중성을 추구해왔다.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어 학벌타파와 대안교육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진보신당 정책연구소 이사장이다. <자기의식과 존재사유> <학벌사회>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서로주체성의 이념> 등의 저서가 있다.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한국전쟁 연구에서 시작해 한국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의 바람직한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학문적 대안을 제시해왔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구체적 실천으로서 헌법개혁운동, 북한과의 학술교류를 기획하고 참여해왔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2> <한국 1950-전쟁과 평화> 등의 저서는 해외 대학의 교재로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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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연재중인 기획물이다. 바디우 편이다. 

  

 

 

 

   

②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


알랭 바디우는 1937년 모로코 라바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다. 1968년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식인이었고, 1970년대에는 마오주의 운동을 활발하게 벌이며 옛 스승이었던 루이 알튀세르의 ‘이론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70년대 말 마오주의 운동의 쇠퇴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집합이론과 여러 탈근대 철학의 조류를 비판적으로 수용해 1988년 <존재와 사건>을 집필했다. 이는 새로운 진리 이론을 수립함으로써 철학을 복권시키려는 시도였다. 이후 <철학을 위한 선언> <윤리학> <조건들> <메타정치 소론> 등에 이어 2005년에는 <존재와 사건>의 2권인 <세계의 논리>를 출간한다. 이 밖에도 바디우는 현실의 정치적 이슈에 개입하는 <정황>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고, 옛 동지들과 결성한 ‘정치 조직’(Organisation Politique)을 통해 ‘당 없는 정치’를 기치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펴고 있다.
 

바디우는 도그마로서의 진리를 거부한다. 진리는 복수로 존재하며, 항상 불투명한 성격을 가진 ‘사건’에서 출현한다. 그가 원하는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는 것이다. 이전의 철학은 진리의 생산을 한 영역에 가뒀고, 그것을 전능한 것으로 간주해 다른 진리들을 억압했다.





 

»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
 
■ 사르트르·알튀세르·마오를 거쳐

프랑스 파리의 어느 수요일 저녁. 이미 일흔을 넘긴 노교수의 강의가 파리고등사범학교의 쥘 페리 대강의실에서 진행된다.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에서부터 현직 교수, 교사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젊은 학생들까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강의 시작 30분 전부터 강의실을 채우고 있다. 시간이 되자 백발의 노교수가 천천히 강의실로 들어온다. 곧이어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200여명의 청중은 정적 속에서 강의에 집중한다. 매달 한 차례 진행되는 이 강의의 주인공은 알랭 바디우(72)라는 프랑스 철학자다.

바디우는 그의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견줘 국내에서 그다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1988년 대표작인 <존재와 사건>을 프랑스에서 출간한 이래 끊임없이 문제작들을 내놓았다. 프랑스 철학의 많은 거장들이 타계한 지금, 바디우는 오늘날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력은 복잡다단하다. 장폴 사르트르를 추종하던 젊은이였던 그는 파리고등사범학교 시절 루이 알튀세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이후 1968년 혁명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70년대 마오주의 운동의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80년대에 들어와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 독자적인 사유를 추구하게 된다. 그 결실이 바로 <존재와 사건>이다. 이 저작에서 바디우는 집합이론을 통하여 존재론을 재조명하고, 퇴장당한 것으로 간주된 ‘진리’를 다시 철학 속으로 끌어들인다.


■ 진리의 부활과 철학의 복권

프랑스를 중심으로 6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에 대한 비판은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른바 탈근대 철학은 전통 철학이 추구했던 진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허구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진리에 대한 맹목적 숭배는 모든 비(非)진리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자크 데리다, 프랑수아 리오타르와 같은 탈근대 철학자들의 비판이었다. 탈근대 철학은 이를 통하여 철학이 더는 진리를 욕망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철학은 이제 진리 없는 상대주의의 길,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추구했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떤 진리도, 어떤 유토피아도 사유할 수 없다는 우울한 승인만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지배적이던 80년대 후반, 바디우는 그에 반대하여 철학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야심찬 시도를 감행한다.

이는 무척 독특하고 흥미로운 시도이다. 바디우는 철학을 복권시키기 위해 기존의 철학을 넘어선다. 그의 시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진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에게 진리는 여러 영역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진리란 복수(複數)의 절차 속에서 생산되는 복수의 진리이다. 그러한 진리는 예술·정치·과학·사랑 같은 철학 외부의 영역에서 생산된다. 철학의 할일은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생산된 진리를 ‘사유’하는 것이다. ‘진리는 없다’고 말하는 탈근대 철학에 맞서 바디우는 ‘진리는 있다’고 응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탈근대 철학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바디우는 탈근대 철학의 진지한 문제제기를 수용하는 가운데 전통 철학의 진리와는 전혀 다른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진리는 복수로 존재하며, 항상 불투명한 성격을 지닌 ‘사건’으로부터 출현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진리는 과거의 철학이 말하고 있는 진리가 아닌 혁신된 진리이다.

이렇게 바디우는 도그마로서의 진리를 완전히 거부하고 진리를 새롭게 파악함으로써 철학을 구원하고자 한다. 이전의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철학은 진리의 생산을 어느 한 영역에 가두었고, 그것을 전능한 것으로 간주하여 다른 진리들을 억압하였다. 그리하여 진리는 폭압적인 형상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맹종하는 실증적 철학과 정치적 진리를 특권화하는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이렇게 어느 특권적 영역에만 갇혀 있는 철학을 원하지 않는다. 정치를 특권화하는 철학은 예술·과학·사랑 같은 영역을 모두 정치에 종속시키고, 과학을 특권화하는 철학은 다른 영역을 도외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는 철학이다.

바디우는 그렇게 혁신된 철학을 통해 진리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다. 진리에 대한 사유는 진리를 생산하는 ‘사건’에 대한 사유이고, 사건 이후에 생산된 ‘진리’에 대한 사유이며, 그 진리에 충실한 ‘주체’들의 실천에 대한 사유이다. 그는 사뮈엘 베케트의 산문과, 파울 첼란, 페소아의 시학에 집중하고, 현대 집합이론의 혁신에 천착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정치에 대한 그의 사유이다.


■ 오늘의 현실과 19세기의 유사성

그는 오늘의 현실을 19세기와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광범위한 빈곤층의 증가, 젊은이들의 허무주의, 불평등의 확대 등은 모두 19세기를 지배했던 현상들이다. 그에 따르면 ‘파리 코뮌’이라는 19세기의 마지막 정치적 사건 이후 혁명의 기운은 쇠퇴하였고, 다시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제국주의적 세계질서가 위기를 맞이하기까지 50년에 가까운 휴지기가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확실히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관철되고 있고, 68년 혁명 이후 모든 해방의 가능성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이 노동을 지배한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 아니다. 그 관계는 분명 역전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공산주의는 끝났고, 우리에게 실현해야 할 해방의 가설이 더는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당장 무엇인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의 가설을 일신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보편적인 것의 사유를 통해 가능하다. 그것이 우리가 ‘평등의 선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 ‘평등의 선언’을 포기할 수 없다

바디우가 말하는 평등은 결코 객관적인 평등, 실현해야 할 목표로서의 평등이 아니다. 임금이나 기회의 평등, 계약에서의 평등이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평등하다’는 선언이 문제시되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지배관계를 실질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분명 평등의 선언이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해방을 포기하고 주어진 지배질서에 투항하는 일일 뿐이다. 모든 의미 있는 정치적 선언은 항상 평등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이를 통해 보편적 정치로 나아간다. ‘역전의 정치’의 동력은 항상 이러한 평등의 선언에 있는 것이다.

바디우에 따르면 이러한 해방적 정치의 길을 걷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용기’이다. 분명 오늘날을 지배하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이다. 최근 세계를 압도하는 경제 위기의 확산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이 공포라는 괴물은 객관적인 데이터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잠식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강박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모든 시련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며 인내하는 것이라고 바디우는 말한다. 그러한 인내를 통해 우리는 용기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해방을 사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용기인 것이다. 바디우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한다. 그 진리는 지켜내야 하는 진리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는 무명용사들은 어디에나 있다. 바디우는 말한다. 당신이 두 번 믿지 않을 것을 사랑하라고. 그리하여 진리 속에서 영원하라고.

서용순/세종대 초빙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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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획 시리즈다.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인 듯하다. 

 

① 연재를 시작하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미국의 보수 저널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역사의 종말’을 선포하는 글을 기고했다. 그 글은 2년 뒤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판돼 새로운 세계의 시대정신이 됐다.

얼마 못 가 그 순진함과 조야함이 드러났다는 의미에서 기만적이었던 이 선언은, 하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후쿠야마가 석학 대접을 받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종말에 대한 선언의 현실성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입증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후쿠야마의 선언이 순진하고 더 나아가 기만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사실은 반공주의)의 최종적 승리에 대한 그의 선언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논박할 것이냐에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2009년 들머리에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연재를 시작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후 어떤 진보 사상인가?

20세기 세계 진보 사상의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주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들머리 진보 사상은 역사적 종언을 고한 마르크스주의 ‘이후에’ 어떻게 지배에 맞서 저항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변혁을 사고할 것이냐란 화두와 마주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진보 사상은 근본적으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다룰 지식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더는 잉여가치의 착취 메커니즘을 유일한 지배 원리로 간주하지 않으며, 또 누구도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일한 ‘역사의 주체’에 근거를 둔 정치적 변혁과 대안 사회의 구성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극단적 폭력을 수반하는 고도의 과학기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문제들을 분석하고,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포함한 근대 문명 전체에 함축된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모두 확실하지만 낡은 답변을 되풀이하기보다, 좀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 새로운 진보 사상의 주역은 누구인가?

우리가 이번 기획에서 다룰 진보 지식인들은 20세기 후반기를 풍미했던 진보 사상의 대가들을 잇는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경우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을 계승하고 있는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장뤼크 낭시, 브뤼노 라투르,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가 이번 기획의 주인공들이다. 바디우와 발리바르, 랑시에르가 알튀세르의 지적 유산을 비판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름을 사상의 성좌에 새겨 넣고 있다면, 낭시는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마르크스, 데리다, 모리스 블랑쇼의 유산을 독창적으로 종합하여 ‘무위(無爲)의 공동체’라는 독자적인 사상 경지를 이룩했다. 라투르와 스티글레르는 각각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을 추적하면서 그것이 인간적 삶의 형식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있는지, 또 비자본주의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길은 어떤 것인지 탐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와 카를오토 아펠 이후 독일 비판이론의 전통을 계승한 악셀 호네트와 한스 요아스가 이번 기획의 핵심 인물들이다. 그리고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와 비판이론을 독창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사상 지평을 열어가는 크리스토프 멩케도 주요 인물로 소개될 것이다 아울러 <자본주의의 종말>이란 책으로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은 엘마 알트파터나 <히스테리>로 독창적인 여성 연구의 새 차원을 보여준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도 <한겨레> 독자들을 만날 것이다.  

 


 

 

 

 

 

이번 기획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의 진보 지식인들 소개다.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를 배출한 이후 20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는 탁월한 진보 지식인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세계 사상의 흐름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할 것이라는 다소 때 이른 전망을 낳고 있다. 그들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이번 기획에서 다룰 안토니오 네그리, 조르조 아감벤, 잔니 바티모는 이미 독자적인 사상 영역을 개척한 21세기 사상의 선구자들이다.  

 

 

 

 

 

   

영·미권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레이먼드 윌리엄스, 프레드릭 제임슨, 이매뉴얼 월러스틴 이후 진보 이론의 최전선에서 작업하는 지식인들이 이번 연재 기획의 중추를 이룰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현대 문화연구 창시자의 한 사람인 스튜어트 홀이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와 급진 민주주의의 제창자로 잘 알려진 샹탈 무페가 포함돼 있다. 또 탈근대 사회의 모순적인 삶의 양상들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수행하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젠더 트러블>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게 될 이론가들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이후 가장 주목받는 세계체계론 연구자인 조반니 아리기와 생명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내재한 정치철학적 함의를 추적하고 있는 니콜라스 로즈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식인들이다. ‘정보시대 3부작’으로 잘 알려진 도시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와 비판지리학의 대가 데이비드 하비의 작업에서도 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인물들은 이른바 ‘북쪽’, 곧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활동하는 진보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 이래 우리가 깨닫게 되었듯, 21세기 진보사상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는 유럽 중심주의와 식민주의의 청산이다. 우리가 서양 바깥의 진보 지식인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중에서 우리가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인도의 지식인들이다. ‘현존하는 인도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라나지트 구하는 소수 전문가들 외에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지하고 가난한 대중을 지칭하는 서발턴(subaltern)에 관한 연구로 20세기 후반 진보 사상의 새로운 시야를 열어 놓은 역사학자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에서 영감을 얻은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 연구에 비판적으로 동조하면서 탈식민주의 여성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이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제창한 ‘센코노믹스’도 21세기 진보 사상의 중요한 축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와 인접한 동아시아 진보 지식인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돼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대안을 구상하는지 살펴볼 것이며, 중국의 대표적 신좌파 지식인인 왕후이가 제창하는 ‘아래로부터의’ 동아시아 연대에 관한 구상을 들을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좀더 많은 인물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서구 형이상학의 대안을 제시하는 해방 철학의 대가 엔리케 두셀은 우리에게 남아메리카 진보 사상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 또다른 진보의 세기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도 카지노 자본주의의 거대한 도박 노름에 민중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마치 시곗바늘을 30여년 전으로 되돌린 듯 공안통치의 칼날을 사정없이 휘두르는 정권의 기세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반동의 역풍이 거셀수록 진보의 나무는 조금씩 희망의 싹을 틔울 것이다. 우리가 독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진보의 세기가 시작될 수 있고 또 시작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의지의 씨앗을 뿌리려고 하는 이유다. 진태원/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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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칼럼을 오랫만에 옮겨와 본다. 오르가즘의 정체. 물론 잘 알다시피 동물적 피스톤 운동만으로는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 필요한 것은 환상과 미묘한 떨림이겠지.

 

흥분한 남자가 오랜 피스톤 운동 뒤 2억 개의 정자가 담긴 2cc의 정액을 여자의 질 속에 방출하는 순간, 여성의 몸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황홀한 섹스의 순간, 그들의 몸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 ‘세기의 천재’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녀가 성교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성교>(copulation)는 사실 해부도가 아니라 상상화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 황홀한 순간 여성의 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혹: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예술과 섹스’ 런던 전시회에 걸린 파블로 피카소의 <에로틱 신> (사진/REUTERS/ TOBY MELVILLE)




10㎝를 42분 만에 볼트처럼 달리다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병원 생리학자 펙 반 앤델 박사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1999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기 안에서 남녀가 섹스하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를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성행위를 하고 있는 남녀의 MRI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보고했는데, 그 결론이 바로 다빈치의 <성교>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MRI 영상에 따르면, 성행위 때 음경은 질 내에서 부메랑 모양으로 휘어 있었으며, 삽입된 음경은 삽입되지 않은 음경의 뿌리 부분과 120° 각도를 이루고 있었다. 피부 속에 감춰져 있던 음경의 뿌리가 성기 전체 길이의 3분의 1이나 차지한다는 사실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지난번 칼럼이 나간 이후, 독자들로부터 ‘황홀한 순간’에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들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여성의 질에서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르가슴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이 부메랑 구조와 관련이 있는 걸까?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이 평생 추구하는 오르가슴의 실체가 무엇인지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이 호기심 앞에서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다 과학자다.
고환에서 74일 동안 천천히 만들어낸 정자들은 약 20일 동안 부고환과 정관을 통과하며 정관 말단 팽대부에 저장된다. 그러다가 섹스의 순간 피스톤 운동과 함께 여성의 질로 방출된다. 정자의 크기는 0.05mm. 꼬리 길이가 90%를 차지하는 이 올챙이 모양의 정자들은 사정 뒤 75~90%는 질 안에서 바로 죽고, 나머지만 자궁경관까지 간다. 정자의 전진 속도는 분당 3mm 정도. 사정된 정자는 자궁까지의 8cm를 27분 만에 도달하고, 여기서 다시 난자가 있는 나팔관까지의 10cm를 42분 만에 도착한다. 따라서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위해 나팔관까지 18cm를 여행하는 데 소요하는 시간은 약 70분. 이 길이는 정자 몸 길이의 3천 배나 되지만, 약 29.5일 동안 천천히 만들어진, 정자보다 8만5천 배나 큰 단 하나뿐인 난자와 결합하기 위해 2억 마리의 정자들은 ‘자메이카의 총알’ 우사인 볼트만큼 맹주한다. 여성은 평생 500~1천 개 정도의 난자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던 윌리엄 마스터스는 버지니아 존슨이라는 여성 조수와 함께 생식생물학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아 남녀가 섹스를 하는 동안 질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은 피스톤 운동을 하는 페니스 카메라, 일명 ‘성교기계’를 만들어 인공성교 실험을 했다. 남자의 성기 모양으로 생긴 길쭉한 카메라가 질 안에서 피스톤 운동을 하게 해 질 속 변화를 관찰한 것이다. 이 기계는 ‘수백 차례의 완성된 성반응 주기’를 촬영했고 이 연구는 질의 윤활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섹스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를 정리한 <봉크>(파라북스, 2008)의 저자 메리 로취에 따르면, 일반인들도 ‘골반경’이란 걸 사용하면 누구나 질 안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물론 여성이거나 여성과 함께 작업을 해야겠지만). ‘스쿨 오브 원’(School of one)이란 단체에서 판매하고 있는 이 장치는 자궁이나 질의 변화를 컴퓨터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삽입형 비디오카메라다.

 

 

 

 



오르가슴에 오른 30%의 메커니즘?

마스터스와 존슨은 페니스 카메라를 이용해 인공성교를 하는 동안 질 안의 변화를 관찰해 그전까지 전혀 알 수 없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우선 페니스 카메라가 피스톤 운동을 하는 동안 질 안에선 윤활작용이 일어났는데, 섹스 때 질이 축축하게 젖는 이유는 샘에 의한 분비작용이 아니라 질 내의 모세관 벽에서 스며나오는 혈장에 의해서라는 걸 알게 됐다(그전까지 그걸 정확히 몰랐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마스터스와 존슨은 실험 뒤 피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연구 리포트에 따르면 플라스틱 성기를 이용한 인공성교기를 이용했던 여성들의 70%는 단순한 피스톤 운동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하진 않았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실험에 참가한 여성 중 30%는 카메라의 피스톤 운동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피스톤 운동에 의한 여성의 오르가슴,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마스터스와 존슨의 페니스 카메라 실험은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었을까?
우리는 여성이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클리토리스 자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성의 피스톤 운동이 어떻게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마스터스와 존슨은 많은 실험을 거듭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진 못한 것 같다. 다만 그들이 실험을 통해 얻은 영상으로 유추한 결론은 남성의 성기가 질 안으로 들어와 진동운동을 할 때 직접적으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진 않지만, 남성의 성기가 소음순을 끌어당기고, 소음순이 당겨지면서 클리토리스를 끌어당긴다는 것이었다.
1984년 콜롬비아의 한 과학자 그룹이 마스터스와 존슨의 추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당겨지는 소음순이 여성 오르가슴의 실체는 아닐 것이라는 게 그들의 믿음이었다. 콜롬비아 칼다스 의대 의사이자 성과학 교수인 헬리 알사테 박사와 그의 동료인 심리치료사 라디 론도뇨는 성매매 여성 16명(실험 참가를 위해 그들에게 1인당 16달러씩을 지불했는데, 이 금액은 당시 콜롬비아에서 성매매 여성이 받는 돈의 몇 배나 되는 액수였다고 한다)과 여권주의자 32명(무보수)을 실험실로 불러 질의 성감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들의 실험은 좀더 단순했다. “조사자가 손을 씻은 다음, 윤활제를 바른 집게손가락을 피험자의 질 속에 넣고 양쪽 질벽에 체계적으로 마찰을 가한 뒤에 질벽과 일정한 각도를 이룬 채 질의 하반부에서 상반부로 진행하면서 중·강 정도의 압력을 주기적으로 가했다”고 논문은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피험자들이 경험하는 오르가슴이 연구자가 손가락으로 찌르는 동작으로 인한 당김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소음순을 손가락으로 당기며 비슷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결론은 플라스틱 성기의 피스톤 운동은 결코 대부분의 여성들을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할 수 없으며(다시 말해 마스터스와 존슨의 연구결과는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소음순을 당기는 것만으로는 클리토리스가 자극되지도, 오르가슴에 도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뒤 메리 로취는 마스터스와 존슨을 인터뷰하려 했지만, 마스터스는 이미 죽었고 버지니아 존슨은 접촉을 꺼렸다.

또 다른 결론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과학실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런 연구는 인간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과정을 이해하게 해주고 불감증과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서 그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성이 오르가슴을 얻기 위해서는 클리토리스가 자극받아야 하지만, 남성의 기계적인 피스톤 운동만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페니스의 기계적인 피스톤 운동 자체는 클리토리스를 자극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남성들에게 좀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며, 그것은 결코 포르노에 나오는 슈퍼 남녀의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섹스’로는 배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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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발판으로 신냉전의 키를 쥐고"

올림픽 이후의 중국 3) 대외전략

 

 

 중화(中華)를 향한 먼 길
  
  근대 이후 중국인들이 품어 왔던 '100년 동안의 꿈'(百年夢圓)이라는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식만큼이나 화려한 폐막식으로 막을 내렸다. 올림픽을 통해 중국은 지극히 '중국적인' 문법과 언어로 세계를 해석하고자 했다. 개혁개방 30년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중국 모델의 가능성을 세계에 보여주고자 했다.
  
  다만 중국은 올림픽 내내 거대한 스케일과 물량주의를 드러내면서도 중국위협론에 대한 우려 때문에 '화(和)'라는 화두를 버리지 않았다. 이는 중국의 부흥이 '패권에 의한, 패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중국발 평화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이러한 중국의 평화적 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국제질서가 나타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후쿠야마 류의 '종언된 역사'가 부활할 징후가 곳곳에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 개막식의 축포가 울려 퍼지던 그날, 러시아는 그루지야에 폭격을 감행했다. 미국과 서방은 강한 블록을 주문하기 시작했고, 러시아도 미국의 일방주의가 독주하는 질서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래서 중미관계와 중러관계를 모두 중시하는 중국의 향방에 따라 국제질서는 새로운 냉전의 그림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중국이 강대국에서 슈퍼파워로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슈퍼파워로 성장한다 해도 미국에 필적하는 초강대국(hyper power)이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중국이 올림픽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공격적인 현실주의 정책으로 표출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더구나 올림픽 후로 미뤄두었던 국내 현안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강대국의 면모를 드러내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후진타오 체제의 국가목표인 '위대한 중화의 복원'과 같은 세계전략을 감추거나 '힘을 기를 때까지 앞에 나서지 않는다'는 대외전략을 고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미국이 주도하는 일초다강(一超多强) 체제를 현실로 수용하면서도 국제관계의 민주화와 다극화를 추진하는 노력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주권 존중과 일방주의에 반대한 후진타오의 '조화(harmonious) 외교'도 올림픽이라는 조심스러운 공간을 벗어나 보다 확대될 것이다.
  
  (☞ 올림픽 이후의 중국 ① 정치·사회 : "중국 애국주의는 폭발하지 않았다")
  
  (☞ 올림픽 이후의 중국 ② 경제 : "개혁개방 30년, 잔치는 끝났다")
  

▲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에 앞서 게양되고 있는 오성홍기 ⓒ베이징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뜨거운 감자, 미국
  
  중국 대외전략의 핵심은 미국과의 양자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후진타오 체제와 부시 행정부가 양국관계를 전략적 경쟁자 관계에서 이익상관자(stakeholder)로 규정한 것도 이러한 상호 인식의 결과이다.
  
  미국은 이미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함께 이란, 이라크, 북핵, 테러 등 이른바 4대 사안을 비롯한 국제문제에 대해 협력하는 것이 절실해졌고, 중국도 미중관계의 악화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어렵게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유엔을 무시한 미국의 제국적 행태에 대해 체질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다. 미국도 인권, 민주화, 종교의 자유, 타이완 문제를 통해 중국을 변화시키려는 정책(peaceful evolution)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결국 미중 양국은 '대결하면서도 판을 깨지 않는(鬪而不破)' 채 전술적 유연성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자 할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이후 새로운 행정부의 대(對) 중국정책은 새로운 변화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고 자국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1990년대 이후 주변 국가와의 선린관계를 강조해왔고, 그 결과 국경의 불안이 상당히 해소되었다. 특히 역사상 가장 좋다고 평가받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 강화하는데 주력해왔다.
  
  중러 양국은 이미 동맹 직전의 최고 수준인 '전략적 협력(協作) 동반자관계'를 맺었다. 이를 통해 비단 에너지 협력 뿐만 아니라, 미국을 겨냥해 일방주의, 강권정치, 미사일방어체제(MD), 인권 문제를 통한 내정간섭에 반대하고 유엔에서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공동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스스로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축을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것에도 주력했다.
  
  후진타오가 올림픽 직후 한국을 경유해 상하이협력기구 국가를 순방하기로 한 것도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대중정책에 대한 이른바 '위험분산전략'(hedging strategy)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안정적인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적인 텃밭으로 알려진 제3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저개발국과 극빈채무국에 대해 채무를 탕감하거나 특혜대출을 제공하는 등 '매력공세'를 강화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빈곤지역(global South)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었고, 중국 모델을 수출하는 중국적 대응방식이기도 했다. 여기에 자원과 에너지 등 생존권역(Lebensraum)을 확보하기 위한 심모원려가 숨어있는 것은 물론이다.
  
▲ 올림픽 개막식 당시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베이징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아시아에 뿌리를 내리고
  
  중국의 대외전략이 세계적 패권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면, 중국은 아태 지역,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이것은 초강대국으로 가는 현실적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동아시아에는 미일동맹의 강화, 일본의 보통국가화, 남북관계의 발전과 교착, 북한의 불확실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미국의 축과 바퀴살(hub and spoke)체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여기에 그루지야 사태를 통해 미국과의 기싸움에서 이긴 러시아가 태평양 함대의 전력을 강화하는 등 동방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핵심은 미일동맹 체제가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를 중국이 어떻게 변경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동아시아에 대한 연성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다양한 다자안보 체제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아세안+3, 6자회담, 아시아 협력대화, 동북아 협력대화 등을 중요한 활동무대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아세안(ASEAN)과의 협력을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이 지역의 친중화(親中化) 없이는 향후 지역협력을 주도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중단기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와 힘이 감소하는 상황을 예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층적이고 제도적인 구조를 가진 지역공동체가 등장하고 규범의 제도화 과정이 빨라질 것이라는 것을 동시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이 틈새를 활용해 중심중심의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구축해 중국위협론을 중국기회론으로 바꾸는 전략을 추구하고자 한다. 일단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의 초보적 완성이나, 아세안+3를 통해 그것을 확립하고자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경제 문제라기보다 중국의 지역주의 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중간 '전략'의 동상이몽
  
▲ 5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만난 두 정상이 25일 서울에서 다시 만난다. ⓒ청와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수사(rhetoric)가 아니라, 실제로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한중간 정치경제적 상호의존을 심화시켜 미국의 멕시코와 같이 한국을 자국의 핵심 영향권에 두고자 할 것이다. 중국이 한중관계를 양자관계라는 틀에서 벗어나 지역 문제, 세계전략의 차원에서 접근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처음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구축하자는 데 합의했다. 한미동맹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구속력이 지나치게 강했고 대북정책에서도 보수적인 색채가 강화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전략관계'를 제안한 데에는 복합적인 포석이 깔려 있었다.
  
  다시 말해 중국은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한미 FTA 비준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거나, 적어도 역균형(counter-balancing)을 위해 의도적으로 한중관계 격상이라는 카드를 사용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한반도가 지정학적 완충지대로서의 효력을 다하고 있으며 신(新)지정학 전략 지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상한 중국과 공존하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것은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이상적 목표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중국경계론과 중국활용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틈새외교가 더 이상 정책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나아가 미중관계가 갈등 보다는 협력의 추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 양상에 따라서는 중국의 태도가 변할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한중관계와 한미관계는 대체재가 아니다. 그러나 한중관계를 한미관계의 종속변수로 보는 인식의 틀에 갇혀 있는 한, 대중국 정책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는 거의 없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정책 때문에 한중간 전략관계가 구축됐다는 인식으로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북한 문제를 접근했던 결과는 오늘의 남북관계의 현주소가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라는 크기를 달리하는 트랙을 각각 돌면서 교집합을 넓혀나가는 전략적 재구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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