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③ 에티엔 발리바르 Etienne Balibar

1942년 프랑스 아발롱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루이 알튀세르를 사사하고, 네덜란드 네이메헌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1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나, 1981년 당의 보수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축출된다. 현재 파리 10대학 명예교수이자 미국 어바인대 교수다. 이데올로기, 국가, 시민권 문제 등을 이론화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1980년대부터 대중들의 교통양식에 대한 스피노자의 논의를 적극 수용했다. 이를 기반으로 해방과 변혁이라는 근대 정치의 두 가지 상에 동일성들과 경계들의 폭력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인륜(civility)의 정치를 추가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는 <민주주의와 독재> <역사유물론 연구>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대중들의 공포> 등이 있다. 

 

 

 

 


 

 

 

모든 제도화된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반민주적 조건을 내장하고 있고, 민주주의가 멈춰서는 ‘경계들’을 갖게 된다. ‘국민경계’는 그 안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유효한 조건이지만, 국민이 아닌 자들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고 민주주의를 무효로 만드는 야누스적 성격을 갖는다.





지금 세계 곳곳에는 때아닌 만리장성들이 건설되고 있다. 중동에는 본디 테러리스트를 막을 목적으로 세웠지만,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스라엘로 오는 길을 차단하는 콘크리트 장벽이 있다. 또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주변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려는 이주자들을 막기 위한 감시초소 장벽이 있고, 아메리카 쪽으로 눈을 돌리면 미국-멕시코 국경에 세워진 9척 높이의 일명 ‘죽음의 장벽’이 있다. 세계화 시대에 상품들이 자유롭게 유통된다고 해서, 사람들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벽을 넘다 죽어갔다. 이렇게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죽음의 장벽’ 멕시코 쪽 벽면에 주민들은 여러 벽화를 그려 놓았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는 경계를 침범하지 않았다. 경계가 우리를 침범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당면한 삶의 필요에 따라 이동한 것뿐인데 이를 막아서는 경계야말로 부당한 것 아니냐는 항의다. 그러나 이 문구는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는 도처에 경계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해준다. 경계는 이제 국경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복제되고 증식되고 있으며, 그렇게 “우리를 침범해 오고 있는 중”이다. 이주자들에 대한 감시와 차별이 제도화됨에 따라, 사회는 일정한 경계선 안에서 동질성을 누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점점 더 다양한 경계선들에 의해 분할된 공간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외부 식민지들이 공식적으로 지도에서 사라진 시대에 중심국들의 국경 안에는 새로운 식민지들이 은밀하게 건설되고 있으며, 제국주의 국가의 옛 경계를 방어하던 비민주적 제도와 통치술도 모습을 바꿔 중심 안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도시 내 게토나 도시 외곽 빈민촌의 형식을 취하는 이러한 내부 식민지들은 세계 중심국들의 메트로폴리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속도로 같은 장애물이 그곳을 에워쌈으로써 분리(segregation)의 장벽을 이루고, 경찰은 국경을 지키는 군인처럼 이 내적 경계를 방어한다.  

경계들의 이러한 폭발적 증식 속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불렀던 것의 소멸이다. 어떤 이가 피부색을 이유로 검문당하고 강제송환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할 때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곳곳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견줄 만한 제도적 인종주의가 출현하고, 과거 민주주의의 상대적 성과들이 소실된다. 이른바 “내국인들”은 초과착취되는 이주자들의 상황에 스스로 처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권리의 현저한 후퇴를 감내하거나, 자신의 경제적 곤궁에 대한 불만을 이주자들에 대한 증오로 투사하는 극우 포퓰리즘에 휩쓸린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반드시 참조해야 할 철학자가 에티엔 발리바르다. 발리바르는 1960년대부터 그의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함께, 스피노자의 관점을 도입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발본적 개조를 도모해온 철학자다. 특히 80~90년대를 통과하면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스피노자의 논의와 그 난점을 분석하는 한편, 이를 근대 국가의 민족형태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연관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경계들”에 대한 독창적인 논의를 생산해왔다.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치체제로 정의하지 못한 채 <정치론>을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다. 그런데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엄밀한 사고의 결과다. 민주주의란 본디 하나의 정치체제에 주어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정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정치체제를 ‘민주화’하는 대중의 실천일 따름이다. 이러한 실천은 원칙적으로 종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항상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으로 재개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실존하는 모든 정치체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민주화되어야 할 것으로 남는다. 모든 제도화된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반민주적 조건을 내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가 멈춰서는 “경계들”을 갖게 된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근대적 경계가 바로 국민 경계에 놓여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민주주의가 최대한 달성되었다고 하는 서구의 “복지국가들”조차 국민 경계 안에서 다소간 평등한 사회권을 보장하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곧 국민 경계는 그 안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유효한 조건이었지만, 동시에 국민 성원이 아닌 자들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고 그 너머에서 민주주의를 무효로 만드는 야누스적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마치 멕시코 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가 미국 쪽에서는 한 점도 발견되지 않듯이 말이다.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민 경계가 가졌던 이러한 전략적 기능을 심각하게 교란했다. 이른바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것도 경계의 위기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움직이자 자본과 국가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시민들의 역량도 그만큼 위축되었고, 정치는 초국가적 기술관료들이나 국제법 전문가들의 수중으로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경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곧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경계는 복잡성을 더해가면서 인구통제와 민주주의의 제한을 위한 수단으로 그 반민주적 성격을 노골화하고 있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경계들의 민주화”를 제안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경계 내에서의 민주주의를 고민해 왔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경계들의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이는 경계들을 단순히 철거하고 세계공동체의 단일한 시민권으로 나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경계들의 제거는 더 많은 폭력으로 귀결될 수 있다. 문제는 경계들을 이루는 반민주적 제도들을 변혁하고 경계들의 내부와 외부가 민주적으로 교통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과 실천을 정치의 중심 과제로 제시하는 것이다. 상이한 정치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거주하는 바로 그곳에서 더는 “시민”과 “이방인”(또는 “적”)이 아닌,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서로-시민들(co-citizens)로 만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기 위한 정치가 발명되어야 한다.

오늘날 유일하게 가능한 정치는 세계정치이며, 시민권은 국민들을 관통하는 관(貫)국가적(transnational) 수준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주자들은 “우리”와 더불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을 재개할 동료 능동 시민들로 인정되어야 한다.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이 우리에게 인식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민주적 정치의 새로운 지형이다.

최원/시카고 로욜라대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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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획 연재 기사이다.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김상봉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이제 저희들의 대화가 각론으로 넘어가는군요. 오늘은 우리 헌법의 제1조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 헌법은 여러 조항에 대한 문면적(文面的)·법리적 해석에 비하면 역사와 사회, 미래의 관점에서의 정신·가치·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안 되었지요. 헌법 논의, 해석, 적용의 권한 역시 소수 법률 엘리트들에게 독점되어 있었고요. 그 결과 헌법은 국가와 국민, 사회의 역사·정체성·비전·정신·가치와 관련된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촛불 시위의 ‘헌법 1조’ 외침은 주권회복 = 대의철회 의미 담겨

그런데 2008년 촛불집회를 계기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거리에서 시민들이 헌법 제1조를 제창하면서 헌법은 법전 속에서 살아나와 국민과 민중의 조항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반복된 외침은 ‘시민의 헌법 발견’이자 헌법정신과 가치가 추상에서 구체로 비약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6월항쟁 때의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에 비견됩니다. 헌법문제가 이토록 광범하게 거리에서 불려지긴 6월항쟁 이후 처음이지요.



지난해 광우병 발생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때문에 일어난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신헌법 및 5공헌법 철폐투쟁과 달리 촛불시위의 헌법1조 제창이 지니는 의미는 ‘독재헌법’을 향한 ‘개헌투쟁’이 아니라 국가주권과 국가이익을 둘러싼 정부의 헌법정신 일탈에 맞서 ‘민주헌법’의 ‘해석주체’와 ‘해석권한’을 국민화·시민화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입니다.

이때 국민화·시민화는 헌법제정 주체 자신에 의한 헌법의 정치화·사회화라는 의미를 함께 담지요. 즉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주권회복=주권회수=대의철회의 측면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국민해석, 시민해석의 국면에 진입한 헌법1조를 정확하게 자리매김하고 이해하는 문제는, 단순한 촛불해석이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비전, 진로와 관련해 무척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헌법1조의 연원, 내용, 의미를 차례로 말씀드리며 선생님의 철학적·인문적 해석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건국헌법의 등장을 근대 이래 한국의 헌법혁명의 산물로 설명해왔습니다. 헌법혁명 개념은 민주혁명, 산업혁명, 국민혁명처럼 근대로의 이행에서 헌법부문의 혁명적 변화를 통한 입헌민주주의의 등장을 지칭하지요.

1919년 임정때 ‘민주·공화’ 첫결합…48년 건국때 최종확정 바뀐적 없어

먼저 국호를 보면 1948년 건국 당시 채택된 ‘대한민국’ 국호의 ‘대한’은 1899년 수립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로 올라갑니다. 이때 조선 ‘왕조’를 뛰어넘는 ‘국가’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고, 대한이 천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대한국국제는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헌의6조 등 초기 근대 공화주의 운동이 지향한 입헌군주제, 군민공치(君民共治)를 배반한 군주국가였습니다. 당시 고종과 엘리트가 입헌군주제와 군민공치를 수용, 공화주의 통치를 시행했으면 한국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념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후 대한제국의 몰락, 한일병합, 3·1운동을 거치며 급속히 성장한 공화주의 의식과 운동은 마침내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지요. ‘대한’과 ‘민국’, 당시의 최초 결합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민주공화’라는 말이 처음 헌법 제1조로 등장합니다. 90년 전 1919년 4월11일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였습니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흥미롭게도 3·1운동의 해에 대한민국과 민주공화라는 말이 동시에 헌법에 등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말 이래의 근대국가 건설운동, 특히 당시 아시아 최대의 공화주의 민중운동이었던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최초의 근대적 공화정부였지요.

첫 등장 이래 헌법1조는 바뀐 적이 없습니다. 2차개헌(1925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 3차개헌(1927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국권은 인민에게 있다”, 5차개헌(1944년):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제4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전체에게 있음”. 1919년 9월 1차개헌에서는 제2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게 재함”이 추가되었지요. 촛불 때 부른 현행 헌법1조(1·2항)의 원형은 건국 훨씬 이전에 등장했던 것이지요. 그만큼 대한민국의 정신·원칙·비전의 고갱이가 오롯이 들어 있는 조항입니다. 놀랍게도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정신은 물론 헌법의 구성·편제·순서까지도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유사성은 현행 헌법까지 이어집니다. 미군점령하에서 만들어졌음에도 건국헌법에 미국의 영향이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유신헌법철폐·민주화 운동 등…헌법 가치가 목표실현 기폭제

해방이 되자 신생국가 건설을 위한 헌법제정 노력이 분출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민주공화’ 정신과 가치의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일치였습니다. 저는 당시의 거의 모든 시민·사회 및 기관들의 헌법안(17개)을 입수해 분석하면서 이 일치를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랐습니다. 거의 모든 초안들이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국호는 한국·조선·대한민국이 혼용되었으나 “민주공화국” “민주공화체”라는 규정은 불변이었습니다. 좌파인 민주주의민족전선마저 “조선민주공화국 임시약법”(시안: 1946년 1월)이라 하여 민주와 공화를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다만 국회 제출 직전의 두 초안은 주권 조항을 “한국·국가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발한다”고 규정해 인민주권을 천명했습니다.




1948년 제헌과정에서 국회 헌법기초위원회가 토론용으로 사용한 헌법안(고려대 박물관 소장)이다. |박명림교수 제공 


그러면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헌법 제1조는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이것을 국가의 근본정신과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이상적 결합, 즉 민주공화주의로 해석합니다. 민주공화국가·민주공화주의야말로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제일 공준이요, 공동선인 것이지요. 한말 개혁운동으로 시작된 초기 공화주의의 솟아오름부터, 1919년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의 등장과 함께 ‘민주+공화’(=민주주의+공화주의)의 결합을 통한 헌법화 단계를 거쳐, 1948년 건국시점에 최종 확정된 대한민국의 정신·가치·비전의 제일 근간인 것입니다. 어떤 헌법변경세력도 수정,변화,삭제할 수 없는 근본원칙이지요.

제1조가 민주공화주의의 정신을 밝혔다면, 제2조는 주권의 국민소재 및 권력의 국민발원을 밝힌 것입니다. 이는 국가권력의 형성과 존립, 정당성의 근원을 국민에게 부여한 조항으로서 국민주권의 원리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인민주권에 반하여 국민주권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권력의 소재가 국민에게 있음을 밝히는, 인민주권과 국민주권의 포괄적 혼합이었습니다.

사실 임시정부 헌법부터 대한민국의 헌법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추구한 삼균주의에 기반한 공화주의를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건국헌법은 “기회균등, 개인능력 발휘 보장, 책임과 의무 완수, 국민생활의 균등 추구를 기본으로 사회정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강조했습니다. 각인의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했고요. 당시 “균형있는 국민경제발전” “경제민주주의”는 “우리나라 경제질서의 원칙”으로 불렸습니다.

실제로 경제는 주요 자원의 국유, 무역의 국가통제, 운수·통신·금융·보험·전기·수리(水利)·수도·가스·공공기업의 국영 또는 공영 등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철저한 공공·형평·균등을 추구하도록 규정되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균형을 통해 건국헌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공화주의원리에 가까운 헌법의 하나였습니다. 압축근대화의 토대를 놓은 1940~50년대 초기 평등주의 변혁, 즉 토지개혁과 교육혁명이 가능했던 것 역시 북한 급진주의와의 경쟁에 더해, 이러한 오랜 공화주의 전통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급속한 탈공공화 심각한 도전…참 ‘공화’ 위한 새로운 분출 필요

이제 헌법1조의 거시적 영향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현실과 헌법의 차원, 둘 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헌법 1조에 관한 한 그동안 규범과 사회, 조문과 현실이 일치되거나 근접하지 못했지요. 어떤 현실은 조응했으나 거의 대부분은 부조응했지요. 그러나 초기 출발조건은 거시적 영향을 미칩니다. 즉 최초의 규범과 제도의 가치는 비록 현실에서는 부족하더라도 목표로서의 의미를 지녀 미래 비전을 제시해주거나 또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촉발한다는 점입니다. 민주화운동이 유신헌법이나 5공헌법 철폐를 둘러싸고 전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제정 이래 헌법1조의 민주공화주의는 현실적으로, 헌법·법률적으로 모두 도전받아 왔습니다. 현실적 차원에서는 헌법파괴를 통한 권위주의 체제의 등장과 연장처럼 헌법1조와 헌법정신을 유린한 것도 없습니다. 헌법파괴세력이 헌법준수, 법치, 준법을 주장한 것이 민주화 이전의 한국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독재정부의 헌법파괴에 대한 헌법복원노력의 의미를 담는 것이었지요. 민주화 이후 국가의 급속한 사사화·탈공공화 역시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반공화성의 핵심인 부패는 모든 정부에 걸쳐 있고요. 헌법·법률 차원에서는 국가보안법과 유신헌법이 그것입니다. 이들은 헌법1조의 풍부한 민주적 자장과 넘치는 공화적 수원, 즉 민주공화적 상상력과 체제 디자인을 좁은 반공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위축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점은 다음 편지에서 자세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두 번의 민주공화주의 흐름이 밑으로부터 분출했습니다. 첫째는 한말-식민-해방-건국 시기로 근대 국민국가 건설로 귀결되었고, 두 번째는 민주화운동 시기로 87년 민주화를 거쳐 민주정부의 달성이란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공화주의, 민주공화국은 헌법 제1조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권위주의 시기에는 무엇보다 민주주의 파괴로 인해 실현불가였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화가 자유화와 탈공공화, 특히 시장·기업의 자유화와 국가의 탈공공화로 귀결되어 참된 공화성과 공공성은 달성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둘을 만나게 해야 할 때입니다. 참된 민주공화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세 번째 시민적·국민적 운동이 터져나와야 할 시기이고, 그것을 위한 한 공준이 민주공화주의와 대한민국 헌법1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운동에의 참여야말로 오늘의 한국 시민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시민덕성이요,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나에게로 귀결되지 않는 공화국 문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편지는 여기서 줄이며 선생님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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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변희재 때문에 욕보고 있는 우석훈의 글이다. 우석훈의 가벼운 말을 가지고 그의 근본적인 사상 검증과 같은 재판을 벌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근데 변희재에게 낚인 것은 분명하다. 우석훈의 통찰 가운데 하나가 이 지역 토호에 관한 통찰인데 이것을 좀더 사상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필요성을 나는 가지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글이다.

 월드컵이 결국 지방자치를 망쳤다.  

 

 

 

 

한국 경제는 독특하다. 한편으로 자랑스럽다면 자랑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 경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특별한 '압축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가 만만치가 않다.  

많은 학자들은 9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이러한 압축성장이 자연스럽게 선진국 경제로 바뀌고, 민주주의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하나의 추세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테제는 이러한 희망을 반영한 사회적 테제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의 희망이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은 이러한 10년 전의 희망과는 다르다. 군사 정권에서도 없었던 철거민에 대한 살인적 경찰 작전이 그야말로 도심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또한 대운하는 4대강 정비사업으로 간판만 바꾸어서 다시 살아 돌아왔고, 정부는 국채까지 발행해서 건설경기 살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강남 집값을 가난한 사람들의 돈으로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솔직하게 이유 하나만 대보라고 한다면 "이게 다 월드컵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최근의 스포츠 마케팅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쇼비니즘 마케팅의 강화라는 그런 점잖고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월드컵이 이 모든 문제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들 중에 기초의원 선거나 단체장 선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서 참여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선거에서 움직여본 사람이라면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아주 공교로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기초선거 주기와 월드컵 주기가 딱 일치하고, 대체적으로 지방선거가 한참 벌어질 때 축구 국가대표팀은 16강 예선전을 치르게 된다. 

2002년 한나라당이 완전 압승으로 끝난 지방선거는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경이적인 사건과 동시에 벌어졌다. 물론 그 해에는 노무현 열풍이 불면서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일단 형성된 지방자치에서의 특정정파 독점 구도는 지금까지 해체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회에서 민주당과 당시 열린우리당이 연정을 해서 겨우 교섭단체를 꾸릴 수밖에 없던 당시의 상황은 쏠림현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초 단위에서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지역은 대부분이 지방 토호들의 이익에 아주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고, 그 기간 동안 역설적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경제가 아주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기초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전라도 지역은 어떤가? 

중앙정치에서는 여야로 나뉘어서 민주니 반민주니 갈라져 있는 것 같지만,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면 지역 자치라는 관점에서 이들은 모두 토호연합당이다. '개발연대'라고 부르면 딱 좋은 이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지역에 '개발 호재'를 만들려고 한다. 이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가장 간단하게 대운하를 살펴보자. 중앙에서는 토건경제의 해체라는 거창한 구호를 걸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울에서 하는 얘기이다. 민주당이 경인운하에 대해 보이는 어정쩡한 태도나 4대강 정비구간으로 영산강이 시범사업으로 된 것은 지역에서 민주당이 묵인해준 결과다. 

그렇다면 지역에서는 실제로 토호들만 있고, 그 지역을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생태주의자들이나 혹은 문화 프로그램의 옹호자들이 없느냐, 정말로 지역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지역토호와 그들의 추종자만으로 주민들이 구성되어 있는가라고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전국의 모든 지역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에는 생태적 지역발전을 희망하는 시민단체들도 있고, 또 "내 고향 지키기"에 나름대로 매진하는 그야말로 '건전한 보수'들도 존재한다. 만약 한국의 지역이 지방토호들이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서 일방통행했다면, 한국 경제는 더 일찍 무너졌을 것이고,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한 개발주의 열풍 지대가 되었을 것이다. 

풀뿌리의 새로운 흐름이 서울을 바꾼다 
어쨌든 전체적인 형국을 보자면, 2002년 지방선거에서 시작된 '토호 전성기'가 거꾸로 중앙을 움직여 지금의 정권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흐름이 위에서만 바꾸자고 해서 그렇게 잘 바뀌지 않는다. 지방토호들의 권력을 해체하거나, 해체가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 견제는 할 수 있는 풀뿌리의 새로운 흐름 없이 서울에서의 그 어떤 노력도 '민중적', '대중적' 혹은 '전국적'이라는 수식어를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지 '공중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여름의 촛불집회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이 지독할 정도의 중앙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서울에서 끝내리라! 이 슬픈 중앙형 구호들의 시대도 결국 해체돼야 한다. 지방에서 무엇인가 흐름이 생기지 않으면 이 시스템의 다음번 진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지방으로 내려가 '브나로드'를 다시 한 번 해야 할 것인가? 

물론 그런 일들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결국 지방 자치 그것도 풀뿌리 자치에서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들 역시 기계적인 계몽주의에 매몰되거나 아니면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98년 IMF 때 발생한 귀농 운동 이후, 크게 간판을 걸지는 않았어도 일종의 브나로드라고 할 수 있는 하방운동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2010년, 다시 지방선거의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어김없이 월드컵도 찾아올 것이고, 사람들이 "이번에야 말로 16강을" 외치면서 TV 앞에 앉아있는 동안, 경상도에서는 한나라당이, 전라도에서는 민주당이, 너무 쉬운 토호들이 주도하는 개발연합체가 재구성될 수도 있다. 이래서는 한국 경제가 분산형으로 바뀌기도 어렵다. 또한 명박 정부의 '삽질 경제'에 조그만 흠이라도 만들기 어렵다. 

지역에서 토호식 개발정책이 지역발전의 모든 옵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서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진짜 주민대표들이 개발연대의 핵심에 있는 지방토호들의 동토에서 '바늘 하나 꽂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문제투성이 기초자치를 아예 없애고, 어차피 한국은 중앙에서 그냥 통치하는 국가라고 광역지자체로 가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공간은 우리에게 맞지 않으니 치워버리자고 하는 주장도 나오게 된다. 하지만 어려워도 지역에서, 그리고 풀뿌리에서 무엇인가 변화가 발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지방토호들의 땅값 올려주기에 불과한 토건시대가 해체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한국에서 토호들과 외지 토지보유자의 세력이 가장 강성한 곳은 바로 제주도이다. 알짜 땅은 이미 외지인들이 다 가지고 있고, 그나마 남은 제주도 시민들은 토호들의 위세 앞에서 한 마디도 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제주도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자치의 상징이 아니라, 토호들과 외지인들이 결탁된 '개발 연대'에 대한 제어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녹지대비 전구 최고의 골프장 지역, 제주 군사항을 축으로 평화의 섬이 아니라 군대의 섬으로 변하는 추이, 광역 지자체 최고의 유아 아토피 발병률, 그리고 20대와 30대의 60% 가까이가 저신용으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상태인 지역, 그곳이 바로 우리의 제주도이다. 

2010년 월드컵 장애물을 넘어서자 

문제는 자치냐, 특별이냐, 그런 토호들이 갖다 붙인 허울만 좋은 명분이 아니라, 실제로 거주민이 살기에 편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조건을 어떻게 지역 생태와 결합시키면서 만들어 낼 것인가, 즉 토호의 눈이 아니라 주민의 눈으로 그 지역을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런 기초 정치의 지평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 말은 좋다. 이걸 누가 할 것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주민들이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공간이 열리는 시점이 4년마다의 주기인 지방선거 시점이고,  그게 바로 2010년이다. '개발'이라는 말 대신, '정주(human settlement)'라는 말이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관광'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정주'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지역과 중앙이 공존할 수 있는 선진국 경제로 전환되는 새로운 진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놀러오기에 좋은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보니 살기 좋은 곳"을 만들어야 지역경제가 살아나지 않겠는가?  이런 것을 구현한 '점'들이 '면'이 되는 날이 바로 선진국이 되는 날이리라. 

불안하고 미약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들에는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를 믿는 주민들이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2010년 월드컵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 다음 단계로 가야 하는 시점이다.

어렵다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버릴 때가 아니라, 지방토호들과 지역경제의 사활을 건 싸움을 한 번 해야할 때이다. 그래야 중앙정치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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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지난번에 주신 글은 다른 무엇보다 정치와 인간의 삶에 대한 선생님의 기본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제겐 참 좋았습니다. 말씀하신 내용들 모두 저 역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서 편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고 저도 선생님께 소신껏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사사화, 역근대화, 근본화, 파당화를 한마디로 표현해서 민주주의의 자기파괴로 이해했습니다. 그 네 가지 질병이 문제인 까닭은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어렵게 성취한 시민적 자유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파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생각하는 동안에 ‘미네르바’가 체포되고 구속되었는데, 저는 이 사건이야말로 현 정부가 자유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테러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맘대로 못하는 나라에 무슨 자유가 있으며 의견이 다른 사람을 구속하는 나라에 무슨 민주주의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민주주의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선생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한국 사회에 공공성의 원리가 존재하지 않고, 이 나라가 엄밀한 의미에서 공화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마시대 정치가 키케로가 원로원 의원들을 상대로 내란 음모에 대한 신속한 대책을 설득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세사레 마카리의 그림.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유민주 부정한 ‘미네르바 구속’ 


하지만 공화국이란 무엇입니까? 원래 이 낱말은 로마인들이 나라를 가리켜 부른 이름입니다. 라틴어로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는 ‘공공적인 것’(public thing)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푸블리카라는 형용사는 포풀루스(populus), 즉 인민(people)이라는 명사에서 만들어진 낱말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레스 푸블리카를 레스 포풀리(res populi)라고 풀이했는데, 이 말은 ‘인민의 것’(people’s thing)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인민이란 계급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고 나라 구성원 전체로서 겨레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나라가 특정한 집단이 아니라 ‘모두의 것’일 때 그것은 참된 공화국인 것입니다.

키케로는 공화국을 처음 고전적으로 정의한 사람인데 그에 따르면 인민이란 “합의된 법과 공공 이익에 의해 결속된 다중의 공동체”인 바, 나라가 그런 인민 모두의 것이요, 모두를 위한 것일 때 그것은 공화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법치와 공공성이야말로 공화국의 기준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민주국가가 자동적으로 공화국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많은 나라에서 공화국은 군주국의 반대말로 이해되고, 민주국가와 거의 같은 말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민주국가냐 군주국가냐 하는 것은 국가의 통치형태에 관한 문제로서, 국가의 실질적 온전함을 판단하기 위해 그것이 공화국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키케로의 ‘공화국’ 필사본.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전적 이론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법치와 공공성의 원리가 지켜진다면 군주국가도, 과두제 국가도 민주국가도 모두 공화국입니다. 반대로 그 원리가 실종되면 아무리 형식적으로 민주주의적으로 운영되는 국가라 하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공화국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화국과 민주국가의 관계에 대해 때때로 철학자들은 역설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 독일의 철학자였던 칸트는 공화국과 가장 거리가 먼 정치체제가 민주국가요, 거꾸로 군주국가야말로 진정한 공화국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좋은 정치체제라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른바 자유선거에 의한 민주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자기 나라를 (인민) 공화국이라 부르는 것을 단지 위선적인 말장난이라 치부할 수 없으며, 거꾸로 우리가 형식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었다 해서 마치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법과 공공성’ 살아있어야 공화국
그런데 한국의 민주주의의 위기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국가는 본래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전혀 민주주의적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민주정이냐 과두정이냐 아니면 군주정이냐 하는 것은 나라의 통치형태를 구분하는 이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선출하면 그것이 민주적 통치형식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양 민주주의의 요람이라 할 고대 그리스인들의 구분기준으로 보자면 선거를 통해 국가권력을 위임하는 국가형태는 민중이 권력에 참여하는 민주정과는 정반대되는 것으로서, 과두정 곧 소수에 의한 지배체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필연적으로 극소수의 재력가들만이 생업을 밀쳐두고 선거에 뛰어들 수 있으므로, 절대 다수 민중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선거 통한 권력위임은 과두정
하지만 선거가 아니라면 무엇을 통해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 민주주의적인 제도이겠습니까?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정치형태를 추구했던 아테네인들에 따르면 그것은 추첨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권력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의원도 판사도 행정관도 모두 추첨으로 뽑았습니다. 예외적으로 그들이 선거를 통해 뽑았던 공직이 꼭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장군입니다. 그런데 아테네인은 자기들이 선출한 장군들의 명령에 복종했으나, 그들의 과오에 대해서는 민회에서 가차 없이 탄핵함으로써 장군들의 권력이 민중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테네인들이 가르쳐준 민주주의입니다.

지금 우리처럼 선거로 국가권력을 위임하는 체제는 민주적 지배가 아니라, 소수지배(oligarchy) 곧 소수의 잘난 사람들을 뽑아 나랏일을 맡기는 정치체제인데, 이 체제의 가장 큰 위험은 부자들만이 선거에 나갈 수 있고,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국가로 전락하게 되며, 인간의 참된 자유와 자기실현 그리고 온전한 만남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또 다른 무엇보다 자본의 지배는 결코 나라의 공공성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원래 공화국의 반대말은 레스 프리바타(res privata)입니다. 말 그대로 ‘사사로운 것’(private thing)이라는 뜻이지요. 여기서 사적인 것이 무엇이냐면 집안일입니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말하는 집안일은 바로 돈 버는 일, 곧 경제였습니다. 영어에서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란 말은 원래 그리스말로 가정관리를 뜻하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를 그냥 영어로 쓴 말인데, 그리스인들에게서도 역시 집안일은 돈 버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은 오이코노미아라고 하든 레스 프리바타라고 하든 돈 버는 일을 사사로운 집안일로 보고, 나랏일과 엄격하게 구별했는데, 이는 돈이 절대로 공공적인 가치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잘 살아보세’를 공공가치로 오해
앞서 말했듯이 키케로의 고전적 정식에 따르면 공화국은 법치와 공공성에 존립합니다. ‘미네르바’를 죄인으로 잡아 가두는 나라에서 법치를 말하는 것은 가당찮은 사치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도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 공화국이 추구해야 할 공공적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하려 합니다. 그런데 키케로가 공화국의 조건으로서 공공적인 가치를 말한 까닭은 우리의 삶에는 개인이나 가정으로는 실현할 수 없고 오직 국가를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는 어떤 공공적이고 일반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모든 시대, 모든 겨레에 열려 있는 과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은 무엇이 국가가 추구해야 할 공공적 가치일 수 없는가 하는 부정적 기준은 명확히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돈을 벌고 부자가 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국가가 추구할 공공적 가치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시대 이래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잘 살아보세”가 국가가 추구해야 할 공공적 가치인 것처럼 오해되어 왔습니다. 오죽하면 진보정당에서조차 ‘민생정치’가 구호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잘 살아 보자는 말을 약간 우아하게 표현한 것이겠지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아마도 누군가는 ‘모두가 잘 사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공공적인 가치가 아니겠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산다’는 술어는 그 자체로서는 결코 ‘모두가’라는 보편적 주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니 도리어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그 자체로서는 철저히 사사로운 욕망으로서, 그냥 내버려두면 나의 경제적 이익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경제적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잘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이 사적으로 점유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플라톤의 철학을 독점할 수 없으며, 베토벤의 음악을 자기 지갑에 넣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에게 개방된 존재로서 그 자체로서 공공적인 것이요, 모두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돈은 사적 소유의 대상이어서 나의 지갑에 든 돈은 그 자체로서는 나를 위해 좋은 것이지 남을 위해 좋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겨레가 오로지 돈을 벌고 부자되는 것 외에 다른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들의 나라는 야수적인 무한경쟁 속에서 해체되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은 공공성과 양립할 수 없어
누구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한 겨레가 참된 공화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상의 공공적인 가치와 보편적인 이상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끊임없이 파편화시키고 분열시키는 사사로운 욕망, 곧 경제적 욕망을 규제하고 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인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말하고, 독일인들은 하나됨과 정의와 자유를 나라의 근본으로 삼습니다. 함석헌이 그리도 자주 말했듯이 국민적 이상이야말로 나라의 참된 기초이니, 우리 또한 이제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과연 우리가 더불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 벌고 부자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으니 도대체 어떤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라를 하겠다는 것입니까? 안타까운 물음을 선생님께 떠밀면서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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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선생님, 안녕하셨는지요. 이제 여독이 좀 풀리셨나요? 새해의 시작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우리들 개인과 주변을 둘러싼 거의 모든 일들이 하나도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며 한편으로는 한국현실을 고민하는 정치학도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 속한 시민으로서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제 생각엔 오늘의 한국사회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어있지 않나 싶습니다. 민주화 이후 20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진행되던 변화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급격하여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의 파행과 폭력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에 의한 합의, 즉 공동체가 함께 추구하는 가치가 사라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치와 행동의 탈공공화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부상했다. |강윤중기자

저는 무엇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공론, 공익, 공준, 공공성, 공동가치나 정신이라고 할 어떤 합의나 합의의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공동 가치 없는 공화국’ ‘공준 없는 공동체’, 이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가치와 행동의 탈공공화야말로 오늘의 상황을 근거짓는 핵심인 동시에 한국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의 혼돈과 미래의 불안의 근원 역시 따지고 보면 모두 공준 창출의 실패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합의 가능한 공준과 공공성을 찾아 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여겨집니다. 물론 갈등의 건강성 또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거쳐야겠지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은 그래도 ‘경제발전’ ‘민주화’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나름대로 합의된 가치와 준칙이 존재하여 암묵적인 공준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국가주의에 의한 강제로서의 합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 합의된 지향가치로서의 공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넓은 합의는 현실의 부조리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준 사회적 비전을 의미했지요. 진보와 보수, 좌우가 공히 인정하는 공정한 발언으로부터 파생하는 귄위와 영향력을 갖는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 경제인도 존재했고요.  

 

 

 

 

 


 
그러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 가치도 인물도 그룹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와 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고 언론과 지식과 종교의 역할붕괴처럼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습니다. 지금 공적 가치 창출과 대화의 중심이어야 할 정치에 공준이 존재하나요? 공공성과 공론의 전달자여야 할 언론에 최소한의 싹이라도 있나요? 공준, 공공성이 존재하질 않자 이를 대체하는 다른 흐름들이 이 사회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 사사화(私事化), 역(逆)근대화, 근본화, 파당화의 네 가지가 핵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먼저 사사화를 볼까요? 사회의 최소 공공 준거에 대한 합의가 부재하자 이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사적 관점과 이익의 전면화와 극대화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시장과 기업의 논리가 전체 국가와 사회를 장악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시장과 기업의 창의성, 경쟁성, 효율성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경제는 인간들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한 근본요소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적 기업논리가 인간생활, 국가, 사회의 다른 모든 공적 영역까지 지배해나갈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마저 사익 대변자로 전락하며 공공성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공적 기구들이 공공성을 상실하면서 개인들이 생존과 생활을 위해 직접 시장과 대면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사회화, 형평화, 복지화를 통해 국가·사회의 공공성, 민주성, 휴머니즘을 동시에 제고하였던 역사적 보편경로로부터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지배적 담론과는 정반대로, 사사성이 아닌 공공성의 제고야말로 삶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 공공성의 한 징표인 한국의 현재 공적 사회지출은 30년 전 민주국가들이 도달했던 수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시민성과 공공성의 표상이어야 할 국가와 정부가 ‘사적 시장정부’ ‘유사 민간기업’이 되어있고 대통령은 ‘CEO 대통령’으로 불립니다. 아니 정부와 대통령 자신이 그런 방향으로 가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시민친화 또는 민주주의 친화나 민주공화국 친화가 아니라 공공연히 기업친화, 시장친화를 말해오지 않았습니까? 세계의 민주주의 역사에 비추어 본말 전도도 이런 전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저는 당시 유행하던 CEO 대통령 담론을 두고 오토 아펠이나 하버마스의 개념을 빌려 전형적인 ‘수행모순’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언어나 개념이 형성되는 순간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명제나 조건과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사익·시장·경쟁을 대표하는 CEO로서 성공하면 할수록 공익·균형·조정을 표상하는 대통령으로선 실패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려고 하면할수록 CEO성격을 버려야 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지요. 즉 ‘CEO 대통령’은 어느 하나를 빨리 버리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공동체를 파국으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봅니다. 국가와 정부에 공익, 공공성이란 양도할 수 없는 최소 존재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말씀하셨듯 공화국이란 나라가 공공적 기관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사화의 진행과 함께 두드러진 현상은 바로 역근대화입니다. 우리는 근대성의 표상으로서의 제도적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지 두 세대 만에 세계사에 유례가 드물게 근대화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공화화를 포함하는 근대화란 무엇입니까?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 가치, 공적 지향에의 합의를 통한 사적 신분, 출신, 세습, 주인-노예나 귀족-평민 같은 양극 사회로부터의 해방이 아니었나요?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는 재산의 불평등·양극화가 교육·기회·취업·수입·신분의 극심한 불평등으로 연결되고 두렵게도 공공성·공화성의 표상인 공직·대표구성까지 좌우하고 있습니다. 중간과 중심의 강화를 통해 신분과 재산과 기회의 양극성을 넘어 통합을 지향한 것이 근대화요, 공화화요, 민주화였다면 제가 아는 역사지식으로는 요즘 우리 사회처럼 거꾸로 가는 근대화와 공화화는 존재한 적이 없으며 사사화를 통한 세습사회를 공화국이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문제는 이런 양극사회가 통합과 안정 속에 지속된 사례가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부족한 대로 비교적 일찍 시민적 공화주의나 사회적 연대, 공공성, 사회화를 주창한 것은 무슨 평등주의나 급진주의를 추구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인간화를 통해 이 사회의 해체를 막아보자는 소박한 시민윤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양극사회로 진입했고 더욱 절망적인 것인 부모의 경제, 사회적 양극지위와 자녀의 꿈, 교육, 기회, 수입의 양극성이 거의 비례하여 전승되는 근대이전 사회로 역진입하였음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 역동성의 다른 표현은 삶의 높은 불안정성인데 저는 이것이 바로 엄청난 탈공공성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공준의 부재는 또한 문제판단과 갈등의 근본화·근본주의화와 적나화(赤裸化)로 직접 연결되고 있습니다. 공론이나 공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사회갈등들은 대부분 그것의 성취를 둘러싼 절차나 방법, 자원배분에 관한 적정 갈등 또는 최소 갈등에 머무르지만 한국사회의 갈등은 언제나 근본적 이념과 가치를 둘러싼 최대갈등, 또는 감정대립으로 치닫곤 합니다. 사회·정치적 언어 역시 ‘친북좌파’, ‘수구꼴통’, ‘척결’처럼 폭력적이기 이를 데 없지요. 즉 한국사회의 또 다른 특징인 근본화로서 인간 생활의 가장 나중 또는 근본인 개인적 실존 차원의 범주들이 사회적, 정치적 판단과 행동의 기준·준칙으로 부상하였다는 점입니다. 공준이 존재하고 국가의 공공성과 중간 집단의 바른 역할이 있었다면 나타나기 힘든 현상입니다.

늘 근본주의로 돌아가니 가치의 교환을 통한 공존 체계인 정치마저도 이들 근본화의 영향을 받아 좀체 타협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근본화는 예컨대 종교화, 이념화, 지역화를 말합니다. 모두가 근대화, 민주화, 공화화의 진전과 함께 사회갈등의 전면에서 물러나야 했던 요인들이 점점 더 중요한 정치행위와 갈등요인으로 불러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다른 공공적, 민주적, 사회적 의제들은 묻히게 되고 말지요.

끝으로는 파당화를 들고 싶습니다. 이는 특히 사회문제의 수렴을 통한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 언론, 종교, 대학, 조합, 경제·사회단체와 같은 중간기제들에서 더욱 격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와 타자, 적과 동지, 흑과 백, 선과 악, 진보와 보수를 가른 뒤 모두 자기가 속한 쪽의 논리와 이익만을 부르짖을 뿐입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이익과 그것을 정당화해줄 파당적 이익과 이념을 전제로 판단하고, 또 거의 오로지, 그리고 철저하게 그것을 위해 발언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기가 속한 진영을 대변하고 자기진영에게 확인받기 위한 파당적 내지르기는 존재하나 상대 진영과의 대화를 향한 발언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공적 말의 신뢰가 붕괴되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옳은 말도 상대진영의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자기안녕과 이익은 상대의 그것을 인정할 때 확보된다는, 즉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공동체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기본 철칙조차 망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관계와 만남은 완전히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외려 한 공동체 내의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상대 진영은 공존이 아니라 제압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따라서 참된 의미의 대화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대화란 서로 다른 생각과 이익 사이의 인정, 존중, 교환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에게 본래적 의미의 대화는 실종된 지 오래입니다. 사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시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갈라져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갈라놓았고 이것을 무엇으로, 어떤 가치와 이념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요?

공적 관계와 공준의 부재, 사사화, 파당화는 근대적 계약관념조차 소멸하여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급기야 예종적·굴종적 인간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탈공공화의 궁극적 귀결로서의 비인간화이지요. 그리고 저는 이 점, 즉 ‘공적 시민’과 ‘인간적 사회’의 회복이야말로 공화국을 다시 세우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할 이유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최소 생존을 위해 온갖 사적 이해관계에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내어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근대적 주체로서 체결한 계약관계는 사라지고 전근대적 주인-노예관계가 재등장하게 되지요.

예컨대 수많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정규직과의 경제적 수입의 차이를 넘어 최소한의 삶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파괴된 상태로 내몰려 삶의 순간순간 인간적 차별과 모멸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참아야 하는 굴종은 그들을 목적적 존재가 아닌 지위로 매일매일 내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회체제가 일단 최소 공공성과 계약관계라도 유지하여 품위와 격조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안정과 자존을 유지할 수 있는 체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은 정말 공화국의 한 시민으로서 저의 최소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다시금 옷깃을 여미고 시민적 공공성에 기초한 새로운 공화국을 향한 꿈을 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소 생존과 자존의 제공의무는 국가와 사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공적 역할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또 사회 중간집단들의 공공성 회복은 가능하며 시민주체성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공준 창출과 확대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선생님과 함께 이 물음들을 되새기며 오늘의 편지를 맺습니다. 평안하시길 빕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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