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서 소통에 대한 기획 기사를 연재하는데 최장집의 쓴 소리 눈에 들어왔다. 

소통은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하자 진실을 소통해야만 한다고 당위적으로 강요한다면 더 움츠러든다. 소통을 유도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조건과 장치란 무엇일까. 

 [한국, 소통합시다]최장집 교수 특별기고-소통에 대한 이해와 오해 
 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  

 

 

 

 

 

ㆍ민주주의를 잘 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지,소통에 대한 강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소통이 사회적 논의의 주제가 된 데는, 이명박 정부의 권력 운영방식과 리더십 스타일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통이라는 말이 어떻게 사용되든, “불통정부”라는 말이 지칭하듯, 그것은 소통을 거부하는 현 정부를 비판적으로 겨냥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정부가 시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면, 소통이라는 말보다 정부가 시민들의 의견 및 여론에 귀기울이는 것을 뜻하는 “책임(성)”이라든가, “반응성”이라든가 하는 정치학적으로 보다 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 소통이라는 말이 현재 정치적 갈등이 양분화되고 격화되는 상황에서 사용될 때 원래의 문제의식과는 달리, 어떤 공정하고도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증진하고, 이를 통해 정치발전에 기여하기보다 의도하지 않았던 역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생긴다.

성급하게 시민을 가르치려 하는…한국 소수 언론과 지식인 엘리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경향신문 특별기고에서 “소통은 공익, 정의, 도덕적이라는 말과 같이 좋은 말이지만 캠페인 같은 방식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조건이 성숙되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실현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담당 기자들이 (소통 특집기획 준비과정에서) 나의 의견을 물었을 때 기획의 취지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 응답하지 않았다. 이 글을 통해 소통 문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며 기고했다. |경향신문자료사진 


소통문제를 생각할 때, ‘누구와 누가 무슨 내용을 가지고 어떤 맥락에서 소통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의 여론 형성은 주류언론들이 압도적인 영향력과 더불어 이슈를 설정하고, 지식인들이 이 논의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진보언론은 자주 보수언론에 대한 거울이미지로 반대 논리를 제시해왔다. 그러면서 사회의 집단적 의사형성은 냉전반공주의나 정치에 대한 도덕주의적 관점에 의해 좁게 제한된 이데올로기적 틀을 통해 만들어져 왔다. 공론장에서 논의되는 이슈들은 이렇게 정형화된 이념범주로 분류되어, 언론매체들을 통해 사회화되고 정치화되었다. 사회의 의사형성이 언론과 지식인 엘리트들에 의해 선점되고 좁게 제한된 이데올로기 범위로 한정되는 조건에서, 공공여론이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이슈화하기는 쉽지 않다. 소통의 문제가 이런 맥락에서 제시될 때, 엘리트주의라는 특징과 아울러 그러한 의사형성과 여론이 사회현실로부터 크게 괴리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나라 같으면, 여러 사회집단들, 특히 사회적 약자, 소외세력들의 의사를 정당하게 반영하고 조직함으로써 사회적 의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인 엘리트와 소수 언론매체들을 통해 형성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치 밖의 소수언론과 엘리트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는 어떠해야 하고, 공익은 무엇이고, 시민이 도덕적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정치의 밖으로부터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급하게 시민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여줄 때가 많다. 이러한 공론장의 구조에서, 소통이 강조된다고 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정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현재 정치적 조건에서 소통의 의미는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한다. 첫째는 사회적 의견이 적대적 양상을 보이는 두 개의 세력으로 양극화되었다. 둘째,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은 타기(唾棄)할 만한 것이고, 소통의 부재를 가져온다. 셋째,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소통은 더욱 악화되어 위기의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논의되는 소통문제는, 이러한 세 가지 요소가 합쳐진 것이라 하겠다.

이런 관점은 정치갈등과 경쟁이 두 개의 세력으로 양극화되었다는 이해의 방법에 기초한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말만큼 정치갈등이 두 개의 진영 사이에서 전개된다는 인식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다. 이 말은 민주화운동과 그 과정에서의 격렬한 대립과 투쟁을 상징하고 당시의 정조를 불러들이는 것으로, 분명 과거 지향적이고 복고적인 성격이 강하다. 정치에 대한 이러한 이해방식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정치갈등과 민주주의 틀 안에서의 정치경쟁을 좋은 것과 나쁜 것, 도덕적인 것과 반도덕적인 것 간의 투쟁, 곧 선악개념으로 치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집단적 열정을 동원하려고 시도한다. 일방의 진영이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 정치연합을 강조하고 이를 미덕으로 삼는 분위기에서, 내부비판이나 생각의 차이들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여러 의사형성이 가능하고 이를 토대로 다원적인 세력형성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호가 강한 사람들만이 지배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인 의사형성이란 차이를 인정하고 이들 차이 간의 합리적 경쟁을 통해 일정한 합의를 넓혀가는 과정이라 할 때, 사전에 정해진 어떤 의사, 가치를 위로부터 부과하는 것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소통이라는 말을 쓰면서 발생하는 역설적인 현상은, 그것이 개인의사든, 집단의사이든 의견, 의사의 소통을 더 자유롭게 하고 그 범위를 넓히기보다 이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이데올로기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협애하게 제한된 좌우 스펙트럼의 틀에서 비춰지는 양극단은 나쁜 것이고, 중간이 좋다는 가치판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중산층적 온정주의를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그렇지 않은 여러 의사를 제약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보다 없애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소통 대 불통’ 양극화 논리·담론…긍정적 현실변화 가져올지 의문
정치를 이렇게 양극화된 대립구조로 볼 때, 그것은 현실의 변화를 보기 어렵다. 그동안 세계화는 한국 사회를 전면적으로 변화시켰고, 빈부격차, 노동문제, 사회적 상향이동이 더욱 불가능해지는 사회구조 등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여러 중요한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투표자들의 선호 역시 크게 변했고 한나라당, 민주당 등 정당들의 사회적 기반과 정당 자체의 구조도 변했다. ‘소통 대 불통’이든 ‘민주 대 반민주’든 양극화의 논리와 담론은 이런 현실변화의 문제들을 대면하고 다루는 데 제대로 부응할 수 없다.

이처럼 소통문제가 두 개의 세력으로 양극화된 정치의 맥락에서 논의될 때, 그것이 정치발전에 어떤 긍정적 기여를 가져올지 의문이다.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사회의 최상층 이익만을 보장하고 서민과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며, 법의 지배와 인권보장, 권력 운영방식에서 경찰, 사법, 정보기구들이 권위주의적 양태를 보인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오늘의 정부를 보수정부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정부를 반민주적이라고 평하게 되면, 역으로 “민주정부”라고 생각하는 앞선 정부들은 그만큼 긍정적으로 미화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이해방식은, 소통불능을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른바 진보세력의 발전에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과 과거 정부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문제가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 과거 이른바 진보적인 정부들 역시, 경제와 사회정책에서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로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나빠졌고, 국가의 사법, 경찰기구들은 충분히 민주화되지 못했다. 또 소통이 잘 안 되었던 것은 그때도 비슷했다.

양극화 비전에 입각한 신문의 논조는, 민주화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부족했던가를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객관적으로 보고,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우는 일을 어렵게 한다. 야당(들)은 여당의 실패를 통해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노동, 분배를 결합해 보수정당보다 우월한 대안적 성장정책을 가질 때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로부터 만들어진 최대 민주연합을 강요하는 담론과 운동을 통해 그동안 표출될 수 없었던 사회적 약자의 소리나 여러 사회집단의 의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적 토대 위에서 이를 결집하는 방식으로 다수를 형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은 공익, 정의, 도덕적이라는 말과 같이 좋은 말이다. 그러나 좋은 말은 캠페인 같은 방식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조건이 성숙되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실현되는 현상이다. 민주정치에서 소통은 투표에서 다수의 평결을 통해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소통하도록 강제되는 조건의 함수로 이해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잘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지, 소통에 대한 강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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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다. 그래도 관심 가는 분야니 스크랩이당 

"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

[홍기빈과 함께 읽는 칼 폴라니①] 인간과 시장 

지난해 9월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의 몰락이 한국에 가져다준 충격은 매우 컸다. 당장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컸지만, 못지 않게 지적, 심리적 충격도 컸다. '승승장구하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로의 편입 만이 한국의 유일한 살 길'이라는 우파의 주장에 좌파 역시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표상인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지난해 한국 지식사회에서는 헝가리 출신의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1886~1964)가 주목받게 됐다. 1990년대 폴라니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던 홍기빈 박사(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는 "솔직히 대학원 논문을 쓸 때만 해도 한국에서 폴라니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홍 박사는 최근 폴라니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길 펴냄)을 번역했다.

어쨌든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고 평가되는 현 위기에서 마르크스도 아닌, 케인스도 아닌, 폴라니가 신자유주의와 다른 경제질서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홍기빈 박사는 최근 폴라니 열풍에 대해 "폴라니가 하지 않은 얘기를 씌워서 비판하거나 환상을 갖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홍 박사는 지난 9일부터 4회에 걸쳐 참여사회연구소 주최로 '위기의 시대에 읽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강연을 갖는다. 홍 박사의 강연을 요약, 발췌해 게재한다. <편집자>


▲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길 펴냄). ⓒ프레시안

폴라니의 이론은 스케일이 매우 크다. 우선 책을 절대로 순서대로 읽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거대한 변환>은 1944년에 폴라니가 동시대인들 읽으라고 쓴 책이다. 1930년 대공황 이후 파시즘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10여년 간에 걸쳐 일어난 끔찍한 일들에 대해 동시대인들이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책이다. 그래서 19세기부터 1944년까지 국제체제에서 나타났던 대사건들을 총망라했다. 절대로 순서대로 읽지 말고 맨 뒤에 역자해제부터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역자해제에 보면 책을 어떤 순서로 읽는 것이 좋을지 나와 있다. 오늘 강연은 이 책의 4장부터 나오는 인간과 시장이 주제다.

크게 3꼭지로 나눠서 얘기하려고 한다. 먼저 폴라니가 다른 경제사상가들과 어떤 다른가. 둘째, 인류역사에서 시장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셋째, 산업혁명과 기계제의 문제.

1. 케인스, 하이에크, 마르크스 그리고 폴라니

내가 지난 20년 동안 가장 크게 상처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그래서 대안이 뭐냐?'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끄떡없다. '당신들은 대안 있냐'고 물으면 누구도 대답하기 힘들다. 우선 대안담론의 허구성과 연결해서 얘기하고 싶다.

케인스, 하이에크, 마르크스. 이 세 사람과 폴라니의 대립점은 폴라니는 시장경제 자체를 허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세 사람은 시장경제에 대한 입장은 각기 달라도 시장경제 존재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폴라니는 시장경제라고 하는 틀로 사유하지 말라. 지금 살고 있는 사회도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존재하는 시장경제를 도덕성과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차원 두 가지로 판단할 때 완벽하다고 보는 게 하이에크다. 도덕성도 용납될 수 없고 합리성도 끝내 위기와 공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시장경제를 전면 부정하는 건 마르크스다. 시장경제는 도덕적으로도 완벽하지 않고 합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서 법령이나 정책으로 조정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 케인스다. 시장경제의 틀로 보면 완전 긍정(하이에크), 완전 부정(마르크스), 조건부 긍정/부정(케이즈) 세 가지 밖에 없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 신자유주의 정치경제사상에서 제일 강력한 무기는 '대안이 뭐냐?'는 질문이었다.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영국 대처 수상이다. 1976년 IMF 위기에 빠지고 79년 집권한 대처 수상은 영국의 복지자본주의를 싹 다 뜯어고쳐야 한다면서 신자유주의를 강행했다. 문제제기하면 "신자유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이 굉장히 천박하고 경박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시장경제 입장은 3가지 밖에 없다. 70년대에는 완전 부정/긍정(케인스주의)이 한계에 부딪혔다. 90년대 초 현실에서 존재하는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따라서 대안이 뭐냐는 게 정치가가 만들어진 경박한 조어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역사철학이 담긴 말이다.

인류가 실험한 2개의 옵션이 무너진 상태에서 다른 제안이 뭐냐. 이걸 이론으로 정교화 한 게 후쿠야마다. 다른 옵션은 끝났다. 그래서 시장경제를 회피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요지였다. 프리드만도 '황금구속복'의 착용을 강요당하고 있다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주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체제를 반대하고 비판하려는 사람들이 이 사고틀에 빠지면 도저히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서구의 좌파가 두 종류의 나뉘었었는데, 시장 경제에 대해 모호한 방식으로 거부하는 부류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타협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시장경제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세 가지 경우의 수 밖에 없다. 이런 예를 들어 좀 그렇지만 콧물 한 사발과 고름 한 사발을 놓고 '어느 쪽을 마실래'라고 하면 어느 쪽이 나을까 고민한다. 정답은 안 마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프레임을 걸어 얘기하면 이런 바보 같은 고민에 빠질 수도 있다.

왜 시장경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야 하나? 왜 여기서 사고를 시작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폴라니를 케인스의 아류나 마르크스의 아류로 얘기한다. 양쪽 다 잘못이다. 폴라니는 국가개입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학계가 이런 식으로 폴라니를 전유한다. 국가 규제와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주장한 사람이라고 단순화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폴라니가 마르크스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유익한 서브노트로 여긴다. 물론 폴라니가 시장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마르크스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이게 폴라니의 중심적인 논지는 아니다.

폴라니는 인간의 존재에서 시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 결과 폴라니의 결론은 시장경제는 허구다.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다. 바로 이 점이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가 중대 기로에 서 있는 현 시점에서 폴라니를 읽는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이다.

2. 인류의 역사에서 시장의 존재란?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프레시안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사람은 어떤 존재냐? 이기적인 존재다. 개인적 이기심을 추구하게 돼 있다는 것을 첫 번째 속성으로 지적한다. 두 번째는 합리적인 존재로 본다.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과 서로의 이익이 맞는다면 협조할 수 있다. 이를 이르는 말이 '호모이코노미쿠스'다.

가장 초기에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혼자서 다 구했다.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인간이다. 많은 분들이 어릴적 동화로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셨겠지만 사실 <로빈슨 크루소>는 18세기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다. 루소, 아담 스미스 등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로빈슨 크루소는 경제학의 단위로서 호모이코노미쿠스를 생각하는데 기본 바탕이 됐다.

처음 자급자족하던 인간이 필요에 의해 물물교환(예를 들어 노루와 생선)을 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분업이 생기고(노루만 잡는 '노루맨'과 물고기만 잡는 '낚시맨') 결과적으로 물물교환에 더 기대게 된다. 물물교환이 불편하니까 화폐가 만들어진다. 또 정당한 교환이 아니라 무력을 동원한 약탈을 하는 무리들이 생기고, 이런 무리들이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니까 시장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생겼다. 이기심과 교환, 즉, 시장을 만들고자 하는 본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장은 종교, 정치 등 어리석은 이유로 억압하지 않으면 어디서나 자유롭게 생겨나고 어디서나 풍요를 보장해준다. 이게 시장의 기원과 속성에 대한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본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어이없는 일이다. 지금도 숱한 경제학 교과서에서 이게 진리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인류학적으로 뒤져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거짓말 중에도 이런 거짓말이 없다. 학문의 이름으로 19세기 내내 울려 퍼진 주문이다. 폴라니는 인류학적 증거들을 통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이런 강력한 논리적 체계는 아담 스미스가 만들었다. 아담 스미스가 가상으로 만들어놓은 것을 후대 학자들이 진리로 받아들였다.

물론 아담 스미스가 어떤 목적으로 갖고 만든 것은 아니다. 당시 서양인들의 인류학적 지식은 실제로 지구가 기원전 4571년에 창조됐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왜? 성서에 그렇게 돼 있으니까. 인류역사의 초기가 이랬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억측'이라는 방법을 썼다. 18세기까지는 문제가 안 됐다. 인류학적, 역사학적 발견은 19세기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역사학이 과학이라는 인식은 19세기에야 생겼다. 사실 제국주의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인류학은 제국주의 열강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20세기 초엽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의 책을 보면 동양 고대사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터무니없다. 헤겔의 역사철학강의도 마찬가지다. 역사학과 인류학 발전의 첫 번째 수혜자가 막스 베버다. 그 당시가 돼야 어느 정도 자료가 축적된 것이다. 폴라니가 이 책을 쓴 것이 1944년이다. 폴라니도 역사와 인류학 발전의 혜택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 신화(mytos)는 진위의 영역으로 여기지 않는다. 반면 로고스(logos)는 진실과 거짓을 꼬장꼬장하게 따지는 영역이다. 폴라니가 보기에 시장의 기원과 발전은 로고스 차원에서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시장의 기원에 대해 아무도 로고스 차원에서 따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200년이 지나서 신화가 됐다. 마르크스도 이런 식의 물물교환이 존재했을 것이란 가정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폴라니가 이걸 따져보자는 것이다.

물물교환 과정이 불편해 화폐가 생겼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화폐의 가치는 단위가 커서는 안 된다. 세계 최초의 화폐 중 하나가 기원전 650년경 리디아 왕국(지금의 터키)의 동전이 있다. 이 동전은 소 5마리 가치였다.

또 페르시아에는 수도에 시장이 없었다. 페르시아를 통일했던 첫 번째 황제인 키루스가 그리스인들이 협상을 하자고 하니까 '도시 한가운데에 터 잡아놓고 조직적, 체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협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는 시장을 죄악시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시장이 허구라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과거에 있었던 경제는 어떻게 조직됐는가? 시장이 존재했는지는 모르지만 사회적 협업과 분업은 있었다. 인류는 처음 시작부터 노동분업을 했던 것은 틀림없다. 자유주의 신화의 맹점은 노동분업의 필연성에서 노동분업은 시장으로만 가능하다고 얘기한 것이다. 노동분업이 시장이 아닌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시장의 신화는 무너지는 것이다. 여기서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 시장이 아닌 노동분업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상호성과 재분배를 찾아볼 수 있다. 

상호성 : 선물경제

첫 번째 방법 상호성은 쉽게 말하면 선물을 주고받는 형태로 노동분업을 조직하는 것이다. 쌍대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적 관계에 있는 두 사람(친구, 애인, 선후배, 이웃 등)이 교환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과연 이런 방식을 통해 곡식, 집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다 조달할 수 있을까? 인간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선물은 지극히 실용적인 개념이었다. 또 이런 방식으로 큰 규모의 경제적 분업이 가능했을까?

멜라네시아의 트로블리안 제도가 있다. 여러 개의 섬들로 긴 띠 모양으로 생긴 이 제도는 각 섬마다 생산되는 물건들이 다르다. 서로 교역의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 이걸 어떻게 조직했는가. 여기 사람들이 소위 '일촌'을 맺어 파도타기를 했다. A, B, C, D 등 여러 개의 섬에서 나는 물건들이 이런 교환을 통해 한 바퀴 도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수백명에 이르고,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고받는다. 이게 바로 선물경제다.

아주 간단한 조작을 하면 선물경제에서 쌍대성을 극복할 수 있다. 선물을 받은 쪽과 주는 쪽을 일치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학 다닐 때 선배들한테 술을 얻어 먹었다. 하지만 그 선배가 나중에 우리에게 자기가 쓴 술값만큼 술을 사라고 한다면? 그 선배는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다. 그 대가를 나중에 누구에게 지불하게 되나? 후배한테 하게 돼 있다. 줄줄이 내려가게 돼 있다.

그렇다면 선물경제는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좋은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앞에 선후배를 예로 들었던 것처럼 위계구조와 연결돼 있다. 이게 선물경제의 암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교환되기 때문에 굉장히 실용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적 관계를 따라 큰 규모의 경제를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또 질문이 가능하다. 시장경제에 있어 시장참여자들 사이에 경쟁은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렇다면 선물경제에서 경쟁은 어떻게 조직할 수 있는가? 앞에 얘기한 섬에서 보면 한 가족을 엄마의 오빠, 즉 외삼촌이 부양하게 돼 있다. 일년 농사를 다 지어서 여동생 집에 가져다준다. 이때 선물로 주기 전에 자기 집 앞에 곡식을 쌓아놓는다. 이는 자기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가, 또 자기가 얼마나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람인가를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다. 남들보다 더 좋은 곡식을, 더 많이 여동생 가족에게 선물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려는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시장에서 누가 1등을 하고, 2등을 하느냐. 이걸로만 경쟁이 조직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선수들이 무엇 때문에 경쟁을 했는가. 상금 때문인가. 아니다. 서로의 뛰어남에 대란 경탄을 하면서 나도 뛰어난 인간이 되겠다는 자극을 받아 경쟁했다.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는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인간의 뛰어남에 대한 찬가를 남겼다.

재분배 : 이집트의 피라미드

재분배를 통한 노동분업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수렵이다. 멧돼지를 잡을 때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사전에 돈을 받거나 계약서를 쓰고 하나. 아니다. 다 같이 멧돼지를 잡고 그 결과물을 놓고 재분배에 들어간다.

상호성과 마찬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 큰 규모의 경제를 조직할 수 있나? 국가 단위가 가능하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재분배로 경제를 조직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연인원 50만 명 정도가 참여하는 20년 정도가 걸리는 공사였다. 50만 명이 20년을 일하게 할 수 있는 경제는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했을 뿐 아니라 여기에 필요한 계산과 회계 역시 대단히 발전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현존했던 공산주의 경제도 전형적인 재분배 경제였다.

사회적 행동과 경제적 행동

상호성에서 경제에 참여하는 이유가 뭔가? 이익인가? 그렇지 않다. 선물이 실용적 측면이 있기는 아니지만 순전히 실용성만은 아니다. 선물의 사회적 관계, 서로 간의 정과 사랑을 강화한다는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서로간의 선의, 사랑이 밑받침돼 있다.

재분배에 참여하는 논리는? 의리, 충성 등 권력에 대한 복종의 논리가 깔려 있다. 참여 동기와 노동 분업이 조직되고 운영되는 원리가 순전히 경제적 돈 계산은 아니다.

위의 두 가지는 분명히 정치적, 사회적 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행위는 어디 있느냐? '묻어 들어가'(embedded) 있다. 상호성과 재분배에서 경제적 행동은 사회적 행동에 '묻어 들어가' 있다.

우리 현실로 돌아가보자.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 중에 직업을 순전히 경제적 이유에서만 선택한 사람이 있냐? 또 경제적 고려는 하나도 안 한 사람이 있냐? 다들 여러 가지 동기를 고려해 복합적으로 정한다. 고려해야 될 것 중의 하나로 경제적인 게 있다. 사람들의 실제 모습은 여기에 더 가깝다.

반면 시장경제는 어떤가? 참여하는 두 사람과 두 집단 사이에는 사회학 관계가 없다. 시장은 철저하게 돈 계산, 물질적 계획만 있다. 또 시장경제에서 참여 동기는 순전히 이익이다. 사회적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경제와 사회>에서 '시장관계는 공동체 내에서는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장은 공동체 바깥, 즉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만 발생한다고 했다. 

 

 

 



여기서 인간의 본질이 뭐냐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 신화에서는 인간의 본질을 호모이코노미쿠스로 본다. 철저하게 이익에 기반한 인간이다. 그러다보니 시장이라는 패턴 설명해낼 수밖에 없었다.

폴라니는 어떤 문제제기를 하고 있나. 총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서양에서 2000년 동안 인문학의 핵심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뭔가였다. 이 질문의 답은 영혼이 있다는 것이고, 종교의 핵심 주제가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였다.

영혼은 욕망과 이상을 창조하는 매커니즘이다. 영혼이 있는 존재는 욕망과 이상과 꿈을 계속 생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가장 큰 특징으로 상상력을 꼽았다. 마르크스는 <경ㆍ철초고>에서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징으로 동물과 다르게 욕망, 이상, 꿈을 창조하며, 그걸 현실화하는 게 노동이라고 지적했다. 폴라니는 잠시 몇백년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끄집어냈다.

인간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는? 배고파서가 아니다. 인간 경제의 패턴, 사람의 노동을 조직하는 동기는 무한히 다양하다. 실제로 그렇다. 사람의 영혼에서 어떤 욕망을 끌어내느냐는 사회에 달려 있다. 인간의 본성은 딱 규정할 수 없이 다양하다. 이걸 조직하는 것은 사회다.

19세기 근대 유럽을 제외하고 인류역사의 전 기간을 걸쳐 시장은 인간경제생활에서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핵심적인 물품과 욕망은 상호성과 재분배로 조직했다.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요구되는 물품을 시장에 맡겨놓으면 사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물론 시장은 구석기시대부터 있었다. 하지만 액세서리 이상의 위치를 넘어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시장이 어느 정도 위상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많은 기제가 있었고, 실제 일정규모 이상 팽창하지 못했었다. 1957년 고대사연구회에서 폭탄 같은 책을 냈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논쟁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누구도 고대 경제가 시장경제였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3. 산업혁명과 기계제


ⓒ프레시안


어떤 사건은 그 사건을 어느 정도 시간이나 공간의 틀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산업혁명의 의의는 어느 정도 시간 틀에서 해석해야할까? 폴라니는 1만년 정도 시간 지평에서 볼 것을 요구한다. 산업혁명을 신석기 혁명과 대비 속에서 얘기하고 있다.

농경과 축산이 시작돼 정착이 시작된 신석기 이전의 인간과 이후의 인간은 다른 종이다. 군집을 이루는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충격에 비해 작지 않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도구나 기계가 인간 신체의 능력을 연장하는 수단이었다. 인간이 여전히 생산 활동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는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자연이 생산활동의 중심에 있는 게 아니고 기계의 투입물이 된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원리가 사람과 자연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기계가 중심이 되면 경제적 과정을 조직하는 원리가 기계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다. 인간과 자연은 부수적 투입요소가 된다.

이처럼 신석기 혁명으로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기계의 투입물로서 인간과 자연을 어떻게 다루면 제일 편한가? 상품으로 다루면 된다. 기업의 파산을 막기 위해선 투입되는 노동과 원자재의 양이 탄력적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필요할 때 투입하고 필요 없을 때 빼내기 위해서는 상품이 되는 게 필요하다. 이게 19세기 시장자본주의 경제였다.

폴라니는 과거 1만 년 동안 부수적이었던 시장이 인간과 자연을 먹어 버린 근본 이유가 산업혁명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상주의 때도 많은 것이 상품이 됐지만 인간과 토지까지 상품의 형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게 일어난 것이 산업혁명이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풀어야할 과제의 성격은 총체적 인간이다. 인간과 자연이 기계의 투입물이 된 것의 가장 큰 문제가 뭔가. 경제적 착취나 쪼들림, 자연파괴가 아니다. 사람이 짐승이 됐다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의 영혼을 인정 안하고 스스로를 동물로 여기게 됐다. 이게 발전하면 전체주의적 사회가 된다. 파시즘에 대한 고발이다. 폴라니가 보는 19세기 자유주의 사회와 파시즘의 연속성이다. 기계제(산업생산)와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병존하는 사회로 재조직해야 한다는 게 폴라니의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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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12) 공화국의 관점에서 본 분단과 통일 下  

 

박명림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번 주제는 순서를 바꾸어 선생님께서 먼저 글을 주셨는데, 주신 글을 보고 나니
제가 먼저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통일지상주의는 결국 분단 강화에 기여한다”고 말씀하신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통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평화”라는 말씀 역시 제가 몸담고 있는 진보신당이 일관되게 취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께서 염려하신 통일지상주의보다는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통일 없이 과연 평화라는 것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는 분단의 뜻과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몇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한에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왜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더러는 그것이 건전한 비판정신의 표현이고,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구애받지 않는 진보적인 정신의 표현이라 간주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단지 논리가 문제라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일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습니까? 당연히 남북한이 자유왕래하고 평화공존하면 그만이지 굳이 통일까지 해야 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고, 그에 대해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대답이 없으니, 아무런 필연성도 없는 통일을 고집하는 사람이 맹목적인 바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물으면 어떻습니까? 자유왕래하고 평화공존할 수 있다면, 왜 다시 한 나라가 되면 안 되는가? 통일이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일이 아니듯 분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할 수 있는데 하지 말고 분단상태를 유지하자는 주장도 아무런 필연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그럼에도 분단을 유지하려 한다면 그 경우에 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들 하고 같이 살 수는 없어!’ 멀쩡하게 한 나라로 살던 사람들이 마치 남남인 것처럼 갈라져 살 수 있으려면 오직 상대에 대한 감추어진 증오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분단도 통일도 그 자체로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적어도 분단과 평화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것은 물과 불을 동시에 손에 쥐겠다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소망이며, 오직 남과 북이 통일을 향한 공동의 적극적인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만 지금의 평화도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남북이 서로 맹목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한이 미국과 합작하여 북한의 목줄을 죈다면, 그래서 북한이 정말로 참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몰린다면 북한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철학책이나 파먹고 사는 저 같은 바보라도 뻔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인데, 북한의 입장에서는 바로 코앞에 보이는 영종도 인천공항의 활주로나 서울로 들어오는 고속도로 또는 영종대교를 향해 창고에서 썩고 있는 미사일 몇 발만 쏘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것입니다. 굳이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북한은 남한을 세계로부터 고립시키고 남한 경제를 언제라도 마비상태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현실정치적 논의는 전문가이신 선생님께 맡기고 철학하는 저는 분단과 통일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를 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여기서 ‘뜻’이라는 말 자체를 함석헌이 말한 의미로 썼습니다만, 분단과 통일의 뜻에 대해서도 제 입으로 서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우리의 스승인 함석헌의 말을 전하는 것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제껏 함석헌처럼 참되고 심오하게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생각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함석헌에 따르면 분단은 우연한 비극도 아니고 단순히 국제정치적 세력관계에서만 이해할 일도 아니며, 보다 더 깊은 세계사적 의미의 표출입니다. 인간의 자유는 오직 전체와 하나됨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한갓 개체인 인간은 전체의 종일 뿐입니다. 오직 전체와 하나 되어 전체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나는 내 삶의 주인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태곳적부터 보다 더 큰 전체를 향해 끊임없이 발돋움해왔습니다. 이를 가리켜 함석헌은 ‘전체가 자라는 것’이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자라는 전체의 첫 단계는 가족입니다. 물론 가족 역시 자라는 것이어서 가족이 씨족이 되고 씨족이 부족이 되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인간은 자기를 가족과 일치시킴으로써 전체와 하나 되고 이를 통해 자유를 얻으려 합니다. 이렇게 나와 가족의 일치에 대한 욕구가 윤리적 원리로 나타난 것이 효(孝)라고 함석헌은 보았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최종적 전체일 수는 없으니, 다음에 등장한 전체가 국가입니다. 대개 고대문명의 발상은 다른 무엇보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국가의 출현으로 표시되는데, 그 이후 인류는 서쪽으로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하여 동으로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은 물론이고 더 앞으로 가서 아즈텍이나 잉카제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형태를 실험해 왔습니다. 그리고 개인은 국가와 하나 되는 삶 속에서 자기실현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개인과 국가의 일치에 대한 욕구가 윤리적 원리로 표현된 것이 충(忠)입니다.

함석헌에 따르면 우리 시대는 더 이상 국가가 최종적 전체일 수 없게 된 시대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이제 개인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타자와 만나고 자기를 실현하려 합니다. 그렇게 국가의 경계를 넘어 확장된 만남의 지평이 세계이니 지금은 세계라는 더 큰 전체가 국가라는 낡은 전체를 지양하는 시대입니다. 국가가 출현한 뒤에도 인간은 여전히 가족을 이루고 살지만 누구도 가족에 매여 살지는 않는 것처럼, 앞으로도 국가는 남아 있겠지만 누구도 국가에 매여 살지는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가족이든 국가든 보다 더 큰 전체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전체는 자동적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전체의 테두리를 정해주고 그것을 하나의 통일체로 유지해주는 형성원리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근본문제는 인간이 세계라는 보다 더 큰 전체로 발돋움하기 시작했으나 그 세계의 참된 형성원리가 아직 온전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나름으로 전체의 형성원리가 될 만한 것을 열심히 찾게 되는데, 우리 시대에 등장한 대표적인 전체의 원리가 바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는 돈에 의한 세계화를 추구하고, 공산주의는 이념에 의한 세계화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둘은 사이비 전체원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돈도 추상적 이념도 인간을 참된 의미에서 만나게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 둘 다 서로 대립할 뿐 참된 전체를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전체의 이름으로 인류를 분열시키게 됩니다.

모든 현대국가에는 보이지 않는 분단선이 있습니다. 같은 국가에 살면서도 어떤 전체를 꿈꾸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 분단이라는 것이지요. 공화국의 전통이 확고한 나라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부딪쳐도 그것이 치명적인 분열로 이어지지 않고 생산적인 정치적 긴장으로 남지만, 한국처럼 공화국의 전통은 없고 가족주의가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마치 땅속에 끓는 용암이 땅거죽이 얇을 곳을 만나면 가차없이 치솟아 지표를 찢어 놓듯이, 두 세계관이 나라 자체를 아예 현실적으로 분단시켜 버립니다.

그 뒤 남한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는 참된 통일과 전체의 원리가 아니라 배제와 분열의 원리로 작동해왔습니다. 한국전쟁은 단지 그런 본질의 현상적 표출이었을 뿐입니다. 두 체제 모두 자기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철저히 배척했으니, 남한에서는 공산주의가 그리고 북한에서는 기독교가 멸균처리되었다 할 정도로 박해받았습니다. 이것 자체가 두 체제 모두 사이비 전체의 현실태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배제하고 분열시키면서 참된 전체를 이룰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전체를 지향하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주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남과 북의 체제는 너나없이 주체성의 결핍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남한은 시민의 주체성을 추구해왔고 북한은 국가 자체의 주체성을 추구해왔습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두 체제는 각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입니다. 남한 사회의 시민적 주체성처럼 북한이 보여주는 국가적 주체성 역시 놀라운 데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주체성과 시민의 주체성은 혼자서는 결코 온전히 유지될 수 없습니다. 시민이 국가를 주체적으로 형성하는 한에서 시민도 국가도 자유롭고 주체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아무리 국가가 강고한 것처럼 보여도 위태롭고 시민이 아무리 자유로워 보여도 그 자유는 국가와 자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사이비 자유일 뿐입니다. 돈이 허락하는 자유가 참된 자유일 수 없듯이, 시민의 참된 자발성에 뿌리박지 못한 국가의 주체성 역시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자유와 주체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기 속에 전체를 품어야 하고, 전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통일해야 합니다. 통일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자기 속에 받아들이는 서로주체성의 실현밖에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없는 것을 끔찍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남한에 공산주의가 발붙일 수 없는 것 역시 똑같이 끔찍한 억압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전체를 지향하는 모든 주의주장이 억압이나 차별 없이 공공적인 토론의 장에서 주장되고 또 비판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존하는 이념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낡은 것을 모두 버리고 새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통일은 낡은 사이비 전체에 대한 아집을 버리고 참된 전체를 여는 것으로, 남한식 자본주의와 북한식 공산주의를 모두 지양할 때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이란 옛날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분단이 세계의 분열로부터 왔으니 한반도의 통일은 세계의 통일과 더불어 갈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함석헌은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새로운 세계, 참된 전체를 개방하라고 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한 사명이라 보았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구함으로써 세계를 구하는 일인 것입니다. 절망적 주변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대에 이 땅에 사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요. 평안을 빌며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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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로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간행된 발터 베냐민의 이탈리아어판 전집 편집자를 지낸 뒤 베로나대학과 유럽·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강의했다. 현재 베네치아건축대의 철학 교수로 있다. 대표작인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이후 <아우슈비츠에서 남은 것>(1998), <예외 상태>(2002), <군림과 영광>(2007)을 거치면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호모 사케르’는 희생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를 죽여도 어떤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고대 로마법 용어였다. 아감벤은 이 용어를 통해 정치를 주권 권력과 ‘생명으로서의 삶’이 맺고 있는 ‘생명정치’의 관계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현존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사유 세계 전모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아감벤의 저술 활동, 특히 그의 주저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권이 훨씬 넘는 저술들이 이미 세상이 나와 있으며, 한국 독자들도 지난 2년 사이에 두 권의 번역서를 접한 상황에서 그의 사유를 한층 상세히 재검토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호모 사케르>라는 책, 그리고 이 책에 이르는 과정과 이후의 전개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동시대의 모든 사유와 고민들을 앞선 세기와는 단절된 형태로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한다는 아감벤의 문제의식에 비춰 본다면, 또한 이를 통해 20세기가 결코 풀지 못한 과제들(여기에는 정치적 좌우의 대립, 계급과 인종의 대립, 법과 민주주의,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과 같은 핵심적인 정치적 범주들이 포함된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를 모색하는 과제와 직접 마주친다면, <호모 사케르>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아감벤은 원래 로마대학 출신의 법학도였다. 학창시절부터 이미 파졸리니, 모라비아 등이 주도한 지식인 서클에 적극 참여하면서 문학과 미학, 철학 분야로 사유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1970년대에 그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 세 명의 사상가와 본격적으로 마주쳤다. 아비 바르부르크와 발터 베냐민, 마르틴 하이데거는 초기 아감벤의 문학적·미학적 사유뿐 아니라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정치철학적 사유의 핵심적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 1978년에 이탈리아어로 간행된 <발터 베냐민 전집>의 편집자로서 그의 이름이 유럽 지성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이래, 그가 직접 수집한 청년기 베냐민의 미발굴 서한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루어진 베냐민 사상 전체에 대한 급진적인 해석(그에 따르면 베냐민 사상의 진면목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적 해석과 유대 신비주의적 해석의 자장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기성 학계와의 갈등은 그의 명성을 유럽의 좁은 문학 연구자 서클의 범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이후 데리다·들뢰즈·낭시·바디우 등 프랑스 지식계의 지도자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면서 당시 프랑스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사유를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다. <아동기와 역사>에서 <산문의 이념>을 거쳐 <언어의 죽음>에 이르는 저술들은 이런 지적 여정과 편력을 반영한 중간 결과물이자, 동시에 다음 단계의 정치적 성찰을 탄생시킨 모태와도 같은 작품들이다.

1995년에 처음 간행된 <호모 사케르>는 같은 이름으로 간행된 연작의 첫째 권에 해당하면서, 그의 사유의 전모를 밝히는 데서 반드시 거쳐야 할 대표작이다. 사회주의권 붕괴가 결코 ‘역사의 종언’일 수 없음을 증명했던 유고 내전의 쓰라린 경험은 그에게 정치를 본격적인 사유 대상으로 삼아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제기하였다. <호모 사케르>라는 이 낯선 제목은 원래 고대 로마법 전통 속에서 범죄자로 판정받은 자를 뜻하는데, 성스러운 자이자 저주받은 자여서 그를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를 죽이더라도 처벌 받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저자는 이 용어를 통해 서양 정치철학의 근원적 패러다임을 재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대 이래의 정치이론이 오랫동안 주권자와 신민의 관계, 그리고 주권자와 법의 관계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규정해 왔던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라는 모순적인 존재를 통해 그는 정치를 궁극적으로 주권 권력과 ‘생명으로서의 삶’이 맺고 있는 ‘생명정치’의 관계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니까 주권 권력에 의해 배제됨으로써 주권 속에 포함되는 이 모순적 존재, 즉 ‘벌거벗은 생명’의 존재는 법·주권·시민·인권처럼 오랫동안 서양 정치철학의 핵심 범주로 간주되었던 용어들을 의문에 부치게 만든다. 이 용어들은 결코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정치의 맥락에서 그 의미가 재구성되어야 할 사유의 재료들인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처음 간행될 당시에는 아감벤의 필생의 사유가 응축된 ‘주저’로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가 새롭게 시도한 정치철학적 사유의 단초들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제기하는 사유 실험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파시즘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 나아가 아우슈비츠와 유대인 학살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이 사회적 이슈로 변모할 때, <호모 사케르>가 제시했던 새로운 사유 모델은 한 차례 대중들의 충분한 시선을 끌 수 있었다.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의미망 속에서 의미가 점차 모호해져 가던 기억·증언·재현 같은 주요 개념들에 대해 우리를 다시금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갔던 <아우슈비츠가 남긴 것 : 호모 사케르 3>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이름과 <호모 사케르>라는 저자의 패러다임은 새롭게 주목받은 것이다. 아울러 9·11 테러와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호모 사케르>가 언급했던 “예외 상태의 영속화”가 눈앞의 현실임을 역설함으로써, 그의 명성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볼 때 예외 상태란 법의 공백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 시대 법질서의 핵심이기도 하다. 법보다 ‘법’의 ‘힘’이 우선하며, 그것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라는 20세기 정치사의 양대 열쇳말이자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사유의 근본 단위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호모 사케르>의 또다른 변용이자, 새로운 영역에서의 이론적 시도다. 2007년에 발표된 <군림과 영광>이라는 또 하나의 <호모 사케르> 연작은 ‘영광’의 스펙터클, 그것이 가리고 있는 경제 우선의 통치 메커니즘의 계보학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경제가 정치를 압도하는 근대 생명정치의 특성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새롭게 발표되는 그의 저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제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제 우리 앞에는 마지막 질문이 놓여 있다. 과연 이처럼 주권 권력으로부터 배제됨으로써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는 ‘호모 사케르’들의 사회, 혹은 ‘영속적인 예외 상태’ 속에서의 삶, 그리고 ‘군림과 영광’의 스펙터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는가. 과연 <호모 사케르> 속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 <호모 사케르>가 전개한 수많은 논의들을 거치고 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변화와 그 주체라는 오랜 패러다임을 오늘의 스펙터클 사회 속에서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호모 사케르> 연작이 진행되면서, 그가 가장 시달렸던 과제는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해답은 모호한 상황에서, 다행히도 저자는 우리에게 최종 답안을 전해 줄 것이라 약속한다. 그것이 바로 <호모 사케르> 연작이 도달할 최후의 종착점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여전히 ‘완성’을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종결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박진우/연세대 연구교수


 


박진우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5대학에서 ‘집합적 기억과 미디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1세기 유럽 지식인들이 고민하던 새로운 정치에 관한 사회이론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호모 사케르 1-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새물결, 2008)을 번역했다. 현재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 박진우/연세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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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1944~)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독일과 영국, 미국 등지에서 수학한 철학자이자 문화이론가이다. 영화제작자로도 활동했다. 젠더와 이념사의 관계, 영화 및 매체 이론, 반유대주의의 역사와 관련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으며, 50여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텔레비전 특집물도 제작했다. 1969~1981년 프랑스 파리에서 작가 및 영화제작자로 활동하다가 이후 독일에서 문화이론가 활동에 몰두했다. 1994년부터는 베를린 훔볼트대 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베일 속의 현실, 이슬람과 서구의 여자>(2007)와 <비아(非我), 논리, 거짓말, 리비도>(1985)가 있다.


서구의 정신문화사는, 자기 안에 모든 것을 통합하려는 남성적 ‘대문자 자아’가 자신을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하는 여성의 ‘소문자 자아’마저도 자신의 언어로 규정해 소멸시킨 역사였다. 
 


 

»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을 페미니즘 사상 안에서 위치지우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는 프로이트, 라캉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데리다처럼 문자 언어나 자아 개념을 공격한다는 점에서 분명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실제 프랑스어권에서 활동했던 엘렌 식수, 뤼스 이리가레,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같은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과의 학문적 교류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어권에서 홀로 진행된 그의 작업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무엇보다 여성주의적이며 해체적이었다. 그는 ‘히스테리’라는 여성 특유의 질병 현상에서 출발하면서, 이를 토대로 서구 문명사 전반에 깔려 있는 남성적 자아상을 해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히스테리, 거식증 그리고 분열성 정체성 장애는 소위 ‘여성 질병’으로 표현되어 왔다. 거식증에 걸린 환자는 대부분 여성이며,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자아분열 증상을 보이는 것도 여성이라고 여겨진다. 오늘날 이 질병에 주목하는 것은 의사나 심리학자뿐만이 아니다. 성직자, 철학자, 사회학자 그리고 예술가들까지도 이 질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커다란 관심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이 질병의 정의와 원인을 규명하는 데서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며 치료의 성과도 아직 보잘 것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옆에 함께 살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이 질병을 앓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 병이 무엇이라고 말해 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언감생심 완전한 치료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 의학의 아이러니인 것이다.

여성주의 문화 이론가이자 철학자인 폰 브라운은 여성에게 자주 발견되는 히스테리 증상이 특정 남성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그녀는 문제의 증상들이 남성 주도적 문자(알파벳) 사회에서만 병으로 규정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로부터 서구의 알파벳 문화가 처음부터 여성의 몸에 모순되는 상징체계를 부여했고 따라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고통을 겪어왔다고 주장한다. 곧 우리가 히스테리라고 부르는 증상들은 여성의 생물학적 상태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알파벳 문화의 상징적 젠더 질서로 인해 나타난 여성의 심리학적 상태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폰 브라운은 국내에 <히스테리>란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던 <비아>라는 책에서 남성 주도적 문자 사회 혹은 알파벳 문화의 특징을 ‘대문자 자아(Ich)’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브라운에 따르면 ‘대문자 자아’는 문자 문화의 역사 속에서 남성들이 추구해온 이성적 자아상으로서 완전성과 단일성을 추구하는 자아이다. 대문자 자아는 자신을 특정한 성을 가진 존재로 이해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무한의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기 안에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소문자 자아(ich)’는 자신이 어떤 특정한 성에 속한다는 것을 아는 자아이며, 이러한 점에서 자신을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으로 인식하는 자아이다. 폰 브라운에 의하면 서구 문명의 역사는 대문자 자아가 소문자 자아를 파괴해 온 역사이며, 이를 통해 성적 차이가 은폐되는 역사이다. 곧 서구의 정신문화사는 자기 안에 모든 것을 통합하려는 남성적 대문자 자아가 여성마저도 자신의 언어로 규정하려 했던 역사였으며, 이를 통해 여성의 소문자 자아뿐 아니라 남성의 소문자 자아마저도 소멸시킬 수밖에 없었던 역사였다는 것이다.  

 

 

 


브라운에 의하면 근대에 이르러 대문자 자아로서의 남성은 자신을 이성 혹은 로고스로, 여성을 자연 혹은 몸으로 규정하고 자연으로서의 여성의 몸에 자신의 로고스를 각인하는 방식으로 통합의 욕망을 추구하였다. 예를 들어 근대국가는 여성을 아이들을 낳고 양육하는 몸으로 재현하는 전략을 통해 여성을 시민사회와 통합시켰다. 이러한 점에서 근대에 재현된 어머니의 몸은 독자적인 원리에 따라 존재하는 자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로고스의 자연이다. 어머니는 로고스의 지침에 따라 재생산 이외의 섹슈얼리티를 자신의 몸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직 아이를 사랑으로 양육하여 훌륭한 시민으로 키워내는 일에만 ‘진심으로’ 매진하는 것으로 재현된다. 폰 브라운은 이러한 근대의 어머니 몸에 대한 재현은 모든 것을 자기 안에 종속시키려는 남성적 욕망의 표현이며 이러한 점에서 ‘가짜’ 혹은 ‘남근의(phallic)’ 몸이라고 본다.

브라운에 의하면 여성 불감증과 나르시시즘은 여성의 몸이 ‘가짜’ 혹은 ‘남근의’ 몸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남근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은 곧 그녀를 향하고 있는 남성의 리비도이며,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별도로 남성을 사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몸의 불감증은 가부장적 핵가족을 지키고 사회통합을 공고화하는 데 완벽하게 기여한다. 그렇다면 여성은 이제 남성이 마련해 놓은 성 규범과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저항하여 자신의 소문자 자아를 회복할 수 없는 것인가.

여기서 폰 브라운은 여성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히스테리가 바로 소문자 자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곧 히스테리야말로 대문자 자아에 통합되지 않는 소문자 자아의 흔적을, 문자 언어에 의해 통합되지 않는 구전 언어의 흔적을 보여 주는 여성의 심리적 상태라는 것이다. 폰 브라운에게 히스테리는 자아를 잃어버리는 발작상태가 아니다. 그녀에 의하면 히스테리 속에서 여성들은 과장된 몸짓을 하는 자신을 뚜렷하게 보고 있다. 여성들은 히스테리를 통해 남성 욕망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과대하게 포장하고, 거식증을 통해 남자보다 더 남근적인 몸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몸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욕망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곧 여성들은 히스테리적 과장을 통해 자신의 남근적 몸이 사실상 ‘연출’된 것임을 폭로한다. 그들은 대문자 자아에 의한 성의 통합과정을 인위적으로 모방함으로써 그것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폰 브라운은 대문자 자아에 의해 소문자 자아가 은폐되는 다양한 방식들을 문화사적으로 고찰하고 나아가 은폐방식의 변화와 함께 히스테리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도 살펴본다. 이러한 문화사적 고찰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성차의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여타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다. 그러나 폰 브라운의 히스테리 이론은 몇 가지 한계도 지닌다. 우선 그녀는 히스테리 환자가 대부분 중산층 여성들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못했다. 그녀가 인용하고 있는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환자, 안나와 도라는 모두 가정이라는 영역에 머물러 있던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이었다. 또 한 가지, 그녀는 잃어버린 소문자 자아를 되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폰 브라운 스스로도 고백하고 있듯이, 히스테리는 하나의 동일한 언어, 곧 문자언어가 성적 차이를 은폐하고 있음을 폭로해줄 뿐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잃어버린 성적 차이를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잃어버린 성적 자아가 있다는 것이다.

이현재/서울시립대 연구교수


 





 

» 이현재/서울시립대 연구교수
 

이현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에서 인정이론과 여성주의를 접목시킨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페미니즘 유물론을 재구성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구화와 더불어 나타나는 성적 실천과 규범의 변화를 분석하는 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여성의 정체성-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책세상, 2007), <성/노/동>(여이연, 2007) 등이 있다. 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에이치케이(HK)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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