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探究]<34> '독창적 짝퉁' 만들어내는 현대판 '수호지의 영웅들' 

중국 최대의 유행어 '산자이(山寨)'를 아시나요? 

지금 중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산자이(山寨)'다. 작년 12월 3일 중국 국영 CCTV가 2분간에 걸쳐 '산자이 문화'를 소개하면서 그 이름이 공식화되었으며 중국인들은 2008년을 '산자이의 해'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핫이슈가 되었다.

그렇다면 '산자이 문화'란 무엇인가? 산자이 문화의 출발은 중국 남부 광뚱(廣東) 지방의 '해적판 핸드폰' 제조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행위를 마치 <수호지>에 등장하는 산적패들이 정부군의 공격을 피해 산촌에 세워놓은 '산채(山寨)'에 비유하면서 이들 '산채'가 마치 독립적이고 폐쇄적이며 세상과 격리되어 있음을 상징하듯 '산자이'도 이른바 '주류'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풀뿌리' 문화와 같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선이 4개인 '아디도스'

중국에서 이른바 '산자이 문화'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산자이 현상'은 존재해왔다. 즉 해적판, 짝퉁, 표절 등의 행위가 광범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산자이 현상'은 모방, 희화, 풍자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산자이 아디다스'는 선이 3개가 아니라 4개가 되듯이, '산자이 콜라', '산자이 mp3' 등 종류와 내용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산자이 문화'의 개념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하나의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자이 현상'이 '문화현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중국인들의 모호한 문화 융합 현상이 나타난다.

2003년을 기점으로 당시 중국 남부의 광저우(廣州), 선쩐(深圳) 등지의 작은 공방들이 전자제품의 복제품 생산을 시작하였는데 초기에는 외국 유명메이커 핸드폰의 외관 복제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러한 복제품들은 IT기술의 발전에 비례하여 원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첨가하면서 '복제'와는 구별된 '복제+창조'의 새로운 형태의 전자제품들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러한 '산자이 현상'이 확산되자 이른바 '정품(주류문화)'에 대한 '산자이(풀뿌리문화)'의 '창신' 능력을 강조하면서 '산자이현상'이 '산자이문화'로 새롭게 진화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마침내 2008년 말부터 '산자이 문화', '산자이 기계', '산자이 공장', '산자이 유명스타'처럼 '산자이'가 홍수를 이루면서 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의 복제능력처럼 '주류문화'에 대한 변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어지럽게 핀 꽃이 점차로 사람들의 눈을 미혹시키는(亂花漸欲迷人眼)'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한 예로 2007년 '산자이 핸드폰' 판매 댓수는 1억 5천만대로 전체 중국 핸드폰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산자이 현상은 시장경제에서는 필연적이다. '산자이'의 진화는 초기의 '현상'에서 '산업'으로 변하였고, '산업'이 다시 '문화'로 진화되는 중국만의 현상으로 정착되었다.
 

그렇다면 '산자이 문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복제품'이나 '해적판' 등을 통해 주류문화를 풍자하는 대중의 새로운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산자이 문화'의 본질을 '모방성, 신속성, 대중화'로 규정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전통산업을 파괴하고 '산자이 문화'를 기초로 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산자이 문화'는 일종의 '하위문화'이자 '부차적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문화 다양성'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반문화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류문화'를 보완하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주류'에 대한 '풍자'가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문화로 발전했다고 해석을 내 놓기도 한다. 소자본 계층에 의해 생산되며 빈곤층에 의해 소비되는 새로운 문화가 바로 '산자이 문화'다.

사실 '산자이 현상'이 '산자이 문화'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방송매체가 제공하였다. 중국 중앙방송이 작년 '춘지에(春節)'때 방영한 '춘지에 완후이(春節晩會)'을 모방한 '산자이 춘완(山寨春晩)'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부터 '산자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작년 한 해 중국의 인터넷을 달구었던 '산자이 춘완'에 대한 관심 고조는 '주류' 프로그램의 '매년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식상 때문이었다. 베이징 근교 스징산(石景山)에 '산자이 디즈니랜드'가 버젓이 정식 영업을 하고 있으며 '산자이 류더화(山寨劉德華)', '산자이주제룬(山寨周杰倫)' '산자이 학교' 등등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산자이 현상'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금년 3월 정치협상회의 11기 2차 회의에서 정협 위원인 전 중국 중앙방송 아나운서이자 배우인 니핑(倪平)은 중국 정부가 법률과 행정 규제를 통해 '산자이 현상'을 강력한 단속할 것을 촉구하였다. 청소년과 국가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묵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산자이 현상'을 다양한 문화의 한 형태로 중국의 특수한 표현 형식이라고 주장하는 일단의 인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출판을 총괄하고 있는 류빈(劉斌) 중국신문출판총서서장은 '산자이 문화'가 대중들의 창조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한편 '산자이 현상'을 '짝퉁', 혹은 '해적판'의 의미를 넘어 '주류문화'와 '풀뿌리문화'의 대결형태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산자이 문화'가 이처럼 범람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취약한 법률의식의 전통과 관계가 있다. 중국인들의 속담에 '빨간불이라도 손잡고 건너면 무섭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불법이라도 대중이 함께 하면 괜찮다는 논리다. 더욱이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후진국이 선진국의 문화를 '베끼는' 일이 '병가의 상사'라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베꼈고, 영국은 네덜란드를 베꼈으며, 미국이 영국을 베꼈고, 일본은 미국을 베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진국도 모두 이러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중국의 '베끼기'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다.

둘째, '포용성'과 '다양성'을 용인하는 문화 전통과 관련이 있다. 중국 문화에는 저변에 '포용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흐름이 있다.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문화전통과 13억 인구와 56개 민족, 968만 평방킬로미터라는 방대한 지역, 중국인들에게 '단일성'은 오히려 어색하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산자이현상'에 대해 대체로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산자이 문화'를 "민간 문화의 하나이며 다만 과거와 다른 특징은 새로운 전파수단과 새로운 매체의 형식을 빌어 전파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개혁 개방정책 실시이후 지역과 계층 간의 빈부차이에 대한 '위안'과 무관하지 않다. 산자이제품은 소득이 낮아 중저가의 제품을 선호하는 광범한 대중들의 소비패턴연관돼 있다. 예를 들면 5,000위엔이 넘는 정품을 산자이 제품일 경우 500위엔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저소득층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개혁개방의 수혜자인 '주류' 사회에 대한 '풀뿌리'들의 대체 만족감은 정치안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08년부터 시작된 '산자이 문화'는 새로운 문화 조류로 민중들의 보편적인 심리상태 즉 반 주류, 반 이데올로기, 반 엘리트주의라는 풀뿌리 의식과도 관계가 깊다. 말하자면 일반 백성들은 자신들대로 입장과 관점 및 생활방식이 있기 때문에 정부나 권위 같은 것은 필요 없으며 자신이 믿는 바대로 행동한다는 의식이다. 이 역시 개혁개방 30년이 가져온 필연적인 사상 해방 결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산자이 문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산자이 문화'는 실제로 '외국 제품' 보다는 오히려 중국 국내 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따라서 '산자이 문화'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한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산자이 문화'는 '주류문화'가 아닌 하위문화이자 부차적 문화임을 반드시 인식해야만 한다. '산자이 문화'는 표면적으로 사회현상이지만 그 형성과 발전에는 필연성과 합리성, 그리고 긍정적인 의미가 있어야 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주류문화에 진입하지 못한 문예작품, 문예형식들이 민간의 문화유산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른바 '산채'로 물러나서 소위 '포위망을 뚫고서' 주류문화를 모방을 통해 이를 이용하고 전복시켜야만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온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부차적 문화의 발양에서 분명한 것은 주류문화의 원형이 없이 발전과 붐이 조성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의 유명한 화가였던 치바이스(齊白石)의 말이 생각난다. "나를 배우는 자는 살아남지만 나를 베끼는 자는 죽는다(學我者生, 似我者死)"라는 경구를 중국인들은 잊지 말기 바란다.

 



/한인희 대진중국학과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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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프레시인  기획 시사다. 중국 지식인이라. 

21세기, 중국 지식인의 위상과 곤경 

 최근 중국에서는 마르크스와 마오쩌둥 관련 서적의 판매 부수가 갑자기 증가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는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빠져들면서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에 대해 반감을 가지면서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다. 공교롭게도 이 서적들에 관심을 보인 자들은 당대 중국의 지식인들도 아니고 관방의 공공서비스 기관도 아니었다. 그들은 중국의 노동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중국의 보통 시민들이었다.

관방과 민간의 양대 문화 권력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관방과 인민의 양대 구도로 이분되었던 중국의 문화 권력은 그 구도가 더욱 굳어지는 느낌이다. 관방은 중화주의와 애국주의를 앞세우며 당대 중국의 문화 권력을 주도하고 있다. 관방은 일찌감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하위 이데올로기를 발굴해왔다. 90년대에는 '현대신유학'에 주목하여 관방과 대학 간의 철학적 접목을 모색하였다. 현대신유학 연구에 대한 독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 신드롬으로 이어졌고, 20세기에 철저히 외면당했던 공자는 21세기에 화려한 부활을 맞이했다.

관방이 주도하는 문화적 주도행위에 인민의 생활공간인 '민간'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에선 대대적인 공자문화 복원사업이 일어났다. 방송 매체에선 공자의 사상에 대한 연속 강의가 유행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유불도(儒佛道)에 대한 강의가 줄을 이어 방영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불교의 탈세간적 교리가 방송의 황금시간대에 선포되는 요지경 중국이다. 유교의 가르침에 대해선 대륙의 학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타이완의 저명한 대학교수까지 모셔다 강연을 듣고 있다.

관방의 주도에 대한 민간의 신속 반응은 결코 문화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민감한 정치 이슈가 터져 나올 때마다 민간은 자발적으로 애국주의의 선봉에 서곤 했다. 최근 발생한 티베트 사태에 대해 프랑스가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나서자, 민간은 프랑스 다국적 기업인 까르푸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였다. 또한 일본과의 마찰이 발생하는 시점에선 민간은 어김없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나 일본 음식점 거부와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벌였다. 이러한 애국주의는 온라인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그 불똥은 우리나라와의 관계 설정에도 옮겨 붙었다. 올림픽 성화봉송 사태나 강릉단오제에 대한 중국 누리꾼의 공격은 매우 거세고 맹목적이었다.

민간의 문화 행위는 관방에 대한 반응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자체적으로 문화를 생산하고 확대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 민간의 문화 생산은 대부분 대중문화의 다양성에 기반을 두었다. 중국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급성장한 대중문화는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는 거대한 문화 권력으로 탈바꿈했다. 대중문화는 그 생리상 정부의 통제틀 내에서만 움직이지 않고 자체 내의 자율성과 생산성을 확대해갔다. 인터넷 블로그 문화는 표현의 자유가 통제된 중국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표출할 수 있는 소중한 분출구 역할을 했다. 베이징 외곽을 중심으로 형성된 창의적인 미술 전시공간은 중국 문화계의 새로운 생산기지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인구에 회자하는 산자이(山寨)문화는 민간의 소외 계층이 만들어 낸 풍자와 조소의 문화 공간이다.

중국 지식인, 논쟁을 통한 자리 찾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이 깊어야 비로소 비상하듯이, 중국 지식인의 담론은 개혁개방으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틀 지워지기 시작한 90년대 초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중국사회는 더욱 역동적으로 기존의 계획경제 틀로부터 체질개선을 시도했다. 그 무렵, 중국 지식인들은 '인문정신'을 주제로 대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논쟁은 인문정신 위기론자의 주장에 대해 인문정신 조소론자가 대응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왕샤오밍(王曉明)으로 대표되는 인문정신 위기론자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상업화되고 저속화된 중국 문화계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조롱과 욕망의 늪에 빠진 인문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문정신 조소론자들은 이와 정반대의 논리를 폈다. 그들은 중국 사회가 이미 다원 가치의 시대로 진입했는데도, 여전히 인문정신의 우월성과 5.4식의 계몽주의 환상에 빠져 있는 인문정신 옹호론자들의 논리는 위선과 독선에 불과하다고 맹렬히 공격했다.

90년대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인문정신' 논쟁은 90년대 후반 동아시아가 금융위기봉착하면서 주춤하게 된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세계화(Globalization)' 담론이 급부상하였고, 이 화두를 중심으로 소위 '신자유주의' 학파와 '신좌파' 학파가 정면에 등장하였다. <두수(讀書)>라는 학술지를 중심으로 전개된 양대 학파의 논쟁은 수많은 부수적 국소 담론과 결합하면서, 중국 사회에 지식인 담론의 전성기를 되찾아 주었다. <두수>는 발행부수가 10만부를 육박할 정도로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기고자의 짧은 분량의 글쓰기와 독창적인 관점을 적극 지원하면서 그 세를 확장했다.

관방과 민간 사이, 소통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중국 사회에서 중국 지식인의 담론이 관방과 민간에 긴밀하고도 신속하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제한된 표현의 자유 속에서 행해지는 이들의 담론은 관방과 민간 사이에서 소통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 민간에서 조성된 대중문화의 무한진화와 다양성 속에서 그들의 무거운 주제는 한없이 따분해 보이기도 하고, 또한 관방이 주도하는 중국특색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여러 논리들은 여전히 주변적인 학설로 치부되고 있다. 중국에서 논의되는 '신좌파'의 사상은 중국 내에서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고평가된 면이 있다.

관방과 민간의 밀월 시대에 중국 지식인의 행보는 매우 독자적이고 활기차다. 그들은 비록 관방과 민간 사이에서 훌륭한 소통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들의 담론이 직간접적으로 관방과 민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적어도 그들의 담론은 다수의 주목을 받을 만큼 매우 역동적이고, 지식인들 간에는 상호 소통적이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논쟁을 유발시킬 만큼 생산적이다. 이는 우리나라 학술계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사상계'가 중국의 <두수>로 그 바통을 넘겨준 형국인 셈이다. 논문식 글쓰기에 매몰된 나머지 학파 간의 논쟁과 대화가 실종되고, 연구 프로젝트에 목매어 담론의 현주소를 잃어버린 우리나라 학계의 현실을 볼 때, 중국 지식인의 역동적인 행보는 부러움과 반성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강진석 오산대 교수. 중국문화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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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오는 김에 더 퍼온다. 이 연재를 신경쓰고 보지 않았다. 후회가 막급 

 

中國探究]<46> 중국 지식생산구조의 변화와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

스타 지식인 위추위()의 '거짓 기부'  사건  

  

 

 

 

'국학대사'라 불리는 지셴린(季羨林)의 서거로 잠시 소강상태를 맞기는 했지만, 올해 상반기 중국 문화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일은 아마도 위추위(余秋雨)의 '거짓 기부' 소동일 것이다. 위추위는 '가을비'라는 이름의 아우라가 말해주듯이, 중국 문화를 역사적 관점으로 해석해 대중적 수필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 왔다. 그는 최근 중국에서 대중 스타 지식인의 출현이라는 사회·문화 현상을 이끈 주요한 사례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는 '위대사(余大師)'라는 별칭까지 얻었을 정도다. 중국 문화에 관한 그의 책이 여러 권 번역, 소개된 바 있어 우리에게도 낯선 작가는 아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작년 쓰촨성(四川省) 원촨현(汶川縣)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많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하자, 학교 건물부실 공사 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 때 그가 학교를 다시 짓는 데 약 20만 위안(元)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기부 액수는 중국 작가들 중에서 으뜸을 차지할 만큼 큰 규모였고, 중국 사회는 그의 이런 선행에 다시 한 번 '감동'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올해 5월, <베이징문학(北京文學)>의 편집장 샤오샤린(蕭夏林)이 블로그에 "그의 기부는 거짓"이라는 요지의 글을 올리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1주일 쯤 지난 뒤 위추위의 비서가 나서 '주주독서인(九久讀書人)'이라는 문화 기업을 통해 직접 기부했노라고 해명했다. '주주독서인'의 이사장 황위하이(黃育海)도 학교 세 곳에 도서관을 짓는 비용으로 기부했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그런 해명에도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6월 15일에는 역시 위추위 못지않은 대중 지식인인 이중톈(易中天)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기부를 했다는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라며" 몰아붙였다. 황위하이는 일언지하에 그의 요구를 거절했으나, 불과 사흘 뒤 기부 사건의 한 당사자였던 두장옌시(都江堰市) 교육국이 기부금으로 도서관을 지은 것은 아니며 "책을 기부한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샤오샤린이 다시 이에 대해 "거짓 증언"이라며 맹공을 퍼붓자 지난 6월 22일 위추위가 공개적으로 해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해명은 자신은 "세계 토론대회 심사위원이라 논쟁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느니 "고수는 함부로 손을 쓰지 않는 법"이라며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이번 소동은 중국 사회의 지식 생산과 유통의 구조, 그리고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이라는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사회주의 이후, 중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했다. 물적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농민, 병사만이 '인민'으로 호명되면서, 독립적 권위를 가지고 지식 생산에 기여해 왔던 지식인은 사회적 냉대를 받기 일쑤였다. 지금은 형편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대학교수나 의사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상위 계층에 속하는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집단으로 분류되어 왔다. 사회주의 실험기 동안 중요한 지식은 주로 당과 정부의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 기획되었고, 역시 당과 정부가 장악한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었다. 제도권 내부의 지식과 다른 관점이나 경향은 존재할 수 없었고, 설령 제도권 밖의 지식인들이라 해도 당과 정부의 지침을 철저히 따라야만 했다.

개혁 개방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불러오면서, 이런 상황에도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지식이 유통되는 통로인 학교나 연구소 같은 기구나 출판,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과 같은 미디어에 대한 관리, 감독에 여지가 생기게 되었고 그 틈을 타고 지식의 생산이 새롭게 구조화하기 시작했다. 세기의 전환과 더불어 지식 생산의 새로운 구조를 보여주기 시작한 데는 전통적인 제도와 기구로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대학이나, <독서(讀書)> 등과 같은 잡지의 역할이 컸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흥 미디어가 새로운 지식 생산의 주요한 진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정보와 오락적 기능만을 담당하던 텔레비전이 이를 선도했다. 중국 국영 중앙방송10(CCTV10)이 2001년 "중국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보급하자"는 취지로 기획한 '백가강단(百家講壇)'이라는 프로그램은 이중톈이나 위단(于丹) 등과 같은 수많은 스타 지식인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 위추위도 여러 차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텔레비전은 중국 지식인들이 고루한 학문의 틀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대중과 접촉할 수 있는 유통의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지식의 대중화'와 '대중의 지식화'라는 목표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텔레비전 못지않게 인터넷 역시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공방은 공식적인 당사자들의 해명을 제외하고는 주로 인터넷 블로그에서 진행되어 왔다. 인터넷 블로그는 중국 사회에서도 다양한 아젠다를 창출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공격을 가하는 쪽은 주로 인터넷 블로그를 이용하는데 반해, 방어를 하는 쪽은 공식 인터뷰강연의 기회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오프라인에서 여론의 반전을 꾀하는 수비자들이 온라인의 개방성과 신속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인 듯, 인터넷 여론은 위추위에게서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중국 내 지식 생산의 구조가 큰 변화를 맞이하면서 동시에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도 급격하게 상승했고, 단지 '지식의 생산'만으로도 큰 경제적 수입을 가져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위추위는 중국의 전업 작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인세 수입을 자랑한다. 그의 인세가 연 평균 140만 위안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지식인 역시 '바오파후(爆發戶: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인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들의 부(富)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위추위는 지식인의 계층 이동이라는 댓가를 지불함으로써 '부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의혹을 제기한 측이 진실인지, 아니면 위추위의 기부가 진실인지는 여전히 분명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당사자들이 구성하는 '기부'의 라인이 그리 복잡하지 않은 데 비추어 위추위의 해명은 여전히 중국의 '인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유례없는 대재앙으로 기록됐던 쓰촨 대지진의 현장에서 중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의 선행이 도덕적 조건을 갖췄느냐의 여부에 따라 스타 지식인은 다시 추락을 거듭할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중국 사회의 '개방'은 현재진행형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개방성 또한 시간이 갈수록 투명도를 더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가 '대사'라는 칭호를 계속 보유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오늘날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어 계층 이동의 꿈을 꾸고 있지만, 거기에서 대중성이 충분조건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식인, 사회적 책임, 기부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번 소동을 곱씹어 보면, 우리 사회의 경험이 역시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오히려 강력한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할 때 참된 '계층 이동'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셴린의 죽음을 전 국민이 애도하며 그를 '국학대사'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점이 지금 그의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중국대중문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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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글 하나 퍼왔다.  

프레시안의 연재 기사  

 中國探究]<69>중국을 이해하는 21세기 최고의 키워드

 꿰이저(潛規則), 중국사회의 '숨겨진 규칙' 

 

 

 

 

 

올해 2월, 우쓰(吳思)가 쓴『첸궤이저(潛規則):중국 역사의 진실게임(수정판)』이 푸단(復旦)대학 출판부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이미 2001년 출판되어 중국 지식계를 뜨겁게 했었다. 특히 그 내용의 파격성 때문에 이듬해인 2002년 8월 중앙정부로부터 금서로 지정되어 출간을 금지당하기도 했었다.

우쓰는 중국에서 '첸꿰이저'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다. 그가 주장한 이 개념이 보편적으로 중국에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여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중국을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쓰는 1957년 베이징출신으로 현재는 전직 관료출신 가운데 개혁성향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출판하고 있는 잡지,『옌후앙춘추(炎黃春秋)』의 편집장으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우쓰는 중국 사회의 만연한 '부패'의 원인문제에 대해 역사 속에서 그 규칙을 찾아낸 인물이다.

'첸꿰이저(hidden rules)'란 사회 각계각층에서 보이지 않고 명문화된 규정이 없지만 사람들로부터는 오히려 광범하게 인정받으면서 실제적인 역할을 하고 반드시 '준수' 해야 할 '숨겨진 규칙'을 의미한다. 우쓰는 유구한 중국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서 '숨겨진 규칙(첸꿰이저:潛規則)'의 개념을 설명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받았다. 기존의 중국사회에서 이미 존재했던 각 분야에서의 '숨겨진 규칙'을 새삼 발견하였기에 독자들은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이 개념은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21세기 최고의 키워드'가 되었고, 우쓰에게 '첸궤이저 개념의 아버지'라는 칭호까지 부여하며 열광하게 되었다. 한국어 번역본(도희진역, 잠재규칙:5천년 중국, 숨겨진 부패의 역사, 황매, 2005)』)도 출판되었다. 필자는 한국어 번역자가 사용한 '잠재규칙'보다는 보통명사로서 '숨겨진 규칙'이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숨겨진 규칙'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중국 사회 각 분야에서의 이른바 '숨겨진 규칙'이란 무엇인가?

우쓰는 "우리의 공식적인 '규칙' 뒤편에는 숨겨진 또 다른 규칙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들이 지켜야할 행동준칙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 준칙과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몇몇 역사 인물과 역사적 사건의 관찰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들 집단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이 실제로 그들이 겉으로 늘 이야기하고 존중하는 그런 원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 역사에서 말하는 인의도덕, 충군애민, 청렴결백 등 멋진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이들 집단의 행위를 진정으로 지배하는 행동규칙은 매우 현실적인 이해관계다. 인간의 행위는 이해관계의 계산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에 그 결과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숨겨진 규칙'이다."

결국 우리 인간은 이해관계 때문에 옳고 정당함보다는 옳지 않아도 '이익'에 초점을 맞추어 행동하고, 그 결과 사회적인 '악행'도 하나의 규칙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숨겨진 규칙'이 중국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결국 불법적이고 범죄적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깨닳지 못하고 있다. 마치 "빨간불이라도 손잡고 건너면 무섭지 않다"라는 중국의 속담을 체현하는 것과 같다.

중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숨겨진 규칙' 현상을 자세하게 살펴보자.

첫째, 연예계의 '숨겨진 규칙'이다. 중국에서 '숨겨진 규칙'의 대표적인 분야로 연예계를 꼽을 수 있다.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이른바 연예계의 '첸궤이저'는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터넷에서는 "연예계의 '숨겨진 규칙' 여성"이라는 타이틀로 끊임없이 보도되고, 여러 배우들의 실명과 사진이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이를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2007년 7월 4일, 장위(張鈺)라는 여배우가 중공기율검사위원회에 13명의 영화감독과 '성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고소한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한 금년 5월 8일자 <신조우칸(新周刊)>의 이궈칭(李國慶)이라는 저자가 "연예계의 '첸궤이저'의 폭로"라는 글에서 이에 관한 배우의 실명과 구체적인 유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연예계에서는 명성을 얻기 위해 연기 이외의 것을 요구하고, 따라서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식품업계의 '숨겨진 규칙'이다. <난팡왕(南方網)>의 보도에 따르면 금년 2월 18일 광저우에서 식중독 사건으로 70여명이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원인을 보면 '주수육(注水肉:육류에 물을 주사하는 행위) 때문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정협위원이자 중국육류식품연구센터의 주임 펑핑(馮平)은 "'육류에 물을 주사하는 행위'는 이미 보편적인 '숨겨진 규칙'이다"라고 폭로하였다. 주수육은 물에 공업색소와 방부제 등을 첨가해서 주사기로 주사해서 만든다. 이렇게 제조된 제품은 쉽게 부패되고, 세균으로 인해 사람들이 쉽게 병이 생길 수 있고, 육류의 영양분을 파괴함으로써 동물성 전염병을 전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이미 보편적이고 이들 업종에서 '숨겨진 규칙'의 하나이다.

이들의 행위는 당연히 '이익'을 위해서이다. 쇠고기 분야는 더욱 심각하여 '물을 주사하지 않은 쇠고기는 거의 없을' 정도다. 이렇듯 조금 더 돈을 벌기 위해 '숨겨진 규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중국축목축의학회이사 겸 운남농업대학 동물과기원원장 꺼장롱(葛長榮)의 발언)

금년 1월 12일, <충칭완빠오(重慶晩報)>에 따르면 이를테면 100킬로그램 중량의 돼지의 경우 물을 수십 킬로그램까지 주사하고, 500킬로그램의 소에는 105킬로그램까지 주사하여 무게를 늘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사된 육류는 주사하지 않은 고기보다 약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육류에 물을 주사하는 일은 이 업종의 오랜 기간의 '숨겨진 규칙'이다. <중화인민공화국동물방역법>에는 '주사육'과 관련된 규정이 없고 검역원도 '주사육'을 검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돼지나 소가 도살장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주사를 하고, 유통시장으로 흘러가면 공상부문에서 감독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의 미비와 '이익'을 탐하는 이들 간의 끊임없는 숨박꼭질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셋째,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다. 금년 8월 15일 <신징빠오(新京報)>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의 중앙음악학원 70세인 박사지도교수가 대학원생과 육체관계를 맺고 10만위안을 뇌물을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이 사건도 대표적인 교육계의 '숨겨진 규칙'이다. 흑룡강성 어느 대학 성인학원에서 300명의 학생들이 합격을 위해 학생마다 50위안씩 모금하여 교수에게 준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중국교육 역사상 최대의 충격사건으로 교육계의 '숨겨진 규칙'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넷째, 식당업계도 '숨겨진 규칙'이 범람하는 업종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거나 가짜 영수증을 주는 등등의 행위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너무 보편적인 일이라 현재 충칭에서는 '숨겨진 규칙'을 없애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충칭소비자위원회>는 판매업, 음식점, 여관, 여행오락, 장식업, 물류업, 미용이용, 학원중개업과 농산품 판매 등에서 '숨겨진 규칙' 교정을 위해 언론매체와 함께 공개적으로 관련 사례를 수집하는 노력을 하고 있을 정도다.

다섯째, 스포츠계에도 '숨겨진 규칙'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 12월 3일자 한국의 <헤럴드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양쯔완바오(揚子晩報)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농구계도 심각하게 오염이 됐다'면서 '조만간 축구계에 이어 농구계도 승부조작, 도박 등으로 크게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경고하고 있다. 스포츠계에서 대표적인 '숨겨진 규칙' 사건은 꿍지엔핑(龔建平)사건이다. 2004년 7월 축구심판이었던 꿍지엔핑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는 승부 조작을 뇌물을 받았다가 수뢰죄로 10년형을 받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끝으로 중국 관료사회의 '숨겨진 규칙'으로 매관매직의 경우를 살펴보자. 예를 들면 2004년 8월 건국 이래 최대의 매관매직 사건인 '마더(馬德)사건'은 전형적인 '숨겨진 규칙'이다. 흑룡강성 쑤이화(綏化)시의 시위원회 서기였던 마더가 저지른 매관매직 사건은 전임 국토자원부 부장 텐펑산(田鳳山), 흑룡강성정협주석 한궤이즈(韓桂之) 등 고관과 쑤이화시의 관료 등 모두 265명이 연루된 사건이었다. 그들은 현장 직책은 30만위안, 현서기 자리는 50만위안을 받고 관직을 팔았다. 이는 마치 중국 속담에 '3년 동안 지부(知府)를 하면 10만냥의 설화은(雪花銀)'을 만질 수 있다는 것과 같다고 중국인들은 수근 거렸다. 이것이 바로 관료사회의 '숨겨진 규칙'이다. 이는 정부기관 끼리 부정부패의 내용을 상호 묵인해주는 관례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장기간 이런 상태가 유지되면 규범의식이 부족해지고, 제도의식도 희박하게 되어 준법과 위법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숨겨진 규칙'이 존재하고 있다. 결국 '숨겨진 규칙'은 공개적이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의 내용을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어 명문으로 규정된 제도보다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따르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숨겨진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손해라는 의식과 현실적인 '살상력'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숨겨진 규칙'을 만들고 어떠한 근거에서 이러한 규칙을 만드는 것일까? 이에 대해 우쓰는 "확실한 답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만들어지고 실행되는 것은 모두 '이익'과 '금전'이라는 두 단어와 함께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 '숨겨진 규칙'이 만들어지는 것은 누가 이익을 얻을 것인지와 이익을 얻는 집단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결국 '숨겨진 규칙'은 국가의 정당한 법률과 법규에 도전하고, 사회의 공정한 정의를 파괴하고, 공공의 가치기준에 심대한 혼돈을 가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 안전, 알권리, 선택권에 침해를 가하고 공정거래권 등 합법적인 권익과 사회에 위해를 가하는 규칙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결코 한 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계층적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 규칙은 공개되지 않고 광범한 영역에 숨겨진 채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이 일반화된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인희 대진대 중국학과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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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 시사인 기사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진보, 개혁, 민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해온 이른바 ‘386 세대’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존재다. IMF 개혁 이후 ‘신자유주의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다른 진보적 인사들과 달리, 신자유주의로 불리던 앵글로색슨(미국과 영국) 계열 중도좌파들의 개혁 노선에 오히려 천착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김소장과 사회디자인연구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해왔으며 최근엔 <노무현 이후>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했다. 

김대호 소장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GM 매각 이전의 대우자동차에 근무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01년 대우자동차 파업 당시엔 회사와 노동조합, 은행, 관료, 지식인 그룹 등의 문제점을 모두 날카롭게 드러낸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를 출간하기도 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시사IN이 김소장을 만난 이유는, 김소장의 내면에서 이런 현실 경험과 영미 중도좌파에 대한 지적 천착이 접합되어 어떤 ‘진보적 지평’을 열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나름대로의 치열한 고민 끝에 도달한 분석과 대안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정말 ‘가차 없었다.’ 심지어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노동조합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 같은 그의 주장엔 다소 무리한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논리 그 자체로 만만치 않은 개연성과 설득력을 가져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폭넓은 성찰과 토론을 기대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영국 신노동당의 노선(107호 ‘영국 신노동당 신자유주의 투항인가 진보사상 혁신인가’ 참조)을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 지식정보화, 과학기술혁명으로 집약되는 문명사적 변화에 대한 이념적, 제도적, 정책적 응전이며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라고 정리한다. 한마디로 지구화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노동당 고유의 진보적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모색이었다는 이야기다.
신노동당 노선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의 설명을 빌어 영국 신노동당의 개혁 노선을 정리하자면, 우선 ‘지구화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다. 지구화로 인해 자본이 이 나라 저 나라로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면서 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용 안정성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중․선진국에서는 기존의 산업과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신노동당은 자본의 이동을 차단하기보다 오히려 ‘유연한 노동시장’을 지구적 대세로 받아들이고 “사회민주주의자도 이를 막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일로 영국 신노동당이 선택한 것이 바로 교육(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다. 자본의 이동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런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 있는 개인’을 ‘공교육 강화’로 대량 양성하자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누구나 ‘능력 있는 개인’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 어린이들도 노력만 하면 부유층 어린이들에 못지않게 좋은 학교에 진학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고소득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상교육, 학비지원, 아동발달계좌 등의 정책 패키지가 등장했다. 이는 시장의 역동성과 노동의 유연화를 받아들이는, 신노동당 버전의 ‘평등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호 소장 역시 이런 정책들을 “경쟁의 입구에서 그 출발선을 맞추겠다는 정신”이라고 부르며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그동안 한국 지식인들은 북유럽 사민주의를 전범으로 삼고 영국은 신자유주의로 격하해왔는데, 오히려 한국과 영국이야말로 사회적 베이스가 비슷하다.”

그런데 김대호 소장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영국 신노동당 모델의 역사적 배경과 한국의 현실을 재분석한 것이다. 그리고 영국 신노동당 노선은 한국 상황에서 작동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신노동당 노선은 ‘지구화’와 ‘시장의 확대’(과잉시장)로 인한 사회․경제적 폐해에 대응하기 위해 출현한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나타나고 있는 각종 사회․경제적 폐해 중 상당수는 ‘시장의 과잉’(영국의 경우)이 아니라 “시장이 지나치게 작아서”(과소시장)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진보는 신기득권층이 되어버렸다” 
예컨대, 한국에서 부동산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격차를 보라. 전자의 자산 소득은 때로 중산층 연봉의 몇 배를 가볍게 뛰어 넘는다. 이것이 시장 때문인가? 학식과 강의 능력이 비슷해도 전임교수의 소득은 시간강사의 10배에 이르기도 한다. 이것은 시장 때문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 직원과 하청 직원 역시 전자의 소득이 후자의 두 배를 상회한다. 공공 부문 노동자의 고용 안정도는 민간 부문 노동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김대호 소장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일단 ‘승리’해서 부동산을 가지거나, 공공 부문(공기업, 관청)에 들어가거나, 대기업(=원청기업) 정규직이 되기만 하면 능력과 헌신에 관계없이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라는 ‘특혜’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다. 그러나 이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이나 실업자,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 세대 등은 이런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없다. 패자들은 승자들과의 격차를 도저히 줄일 수 없고, 그래서 양극화는 심화된다. 그러나 이는 시장이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좋은 직장’의 노동자들과 외부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위적인 진입장벽의 탓이 더 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특혜 구조’이다.

시장 때문에 이런 결과가 벌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국 신노동당식의 대처, 즉 공교육 체계로 ‘능력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고 김소장은 주장한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이 같은 특혜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 ‘능력의 격차’를 줄이면, 예컨대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는 ‘능력 있는 자’들만 늘릴 뿐이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김대호 소장은 진보세력에게 비판의 창을 겨눈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전체 노동자 중 10%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10%는 대체로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몰려 있다.

“(그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은)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정신으로 (자기 기업 노동자만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전투적으로 추구해왔고, 그 결과 임금과 고용 안정성을 대폭 높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는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다’는 ‘약자 의식’에 물들어 자신들이 공동체 전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자본의 처지와 동학에 대한 이해도도 낮다. 결과적으로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노동시장엔 높은 진입장벽이 세워졌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70~80%에 이르는 북유럽의 경우, 노동자 계급은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임금도 함께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고용 규모(특히 사회서비스 부문)가 한국보다 훨씬 크다고 김소장은 생각한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공기업은 좋은 직장일지는 몰라도 한국처럼 ‘선망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이나 청년 실업자, 중소기업 노동자 등은 아무리 노력하고 능력을 갖춰도 양질의 일자리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국내 일부 대기업 생산직의 경우 평균 연령이 40대이고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10년 후엔 50대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대변한다는 ‘민중’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예전의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상층 노동자’라는 것이 김소장의 주장이다.


   
스웨덴 볼보자동차 노동자가 완성차를 수송 트럭에 적재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진보세력의 기본 전략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총단결해서” 자본의 몫(잉여)을 사회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높이고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며, 부자증세를 통해 재정을 확충해서 후한 복지정책을 실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김대호 소장은 이런 전략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자리(1인당 GDP의 2배 이상과 고용안정을 보장하는)를 창출할 수 있는 대기업과 공공 부문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부문에서는 ‘과잉시장’이 아니라 ‘과소시장’이 문제이며 시장과 경쟁의 활성화로 폐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가 한국을 오른쪽으로 왜곡했다면, 민주화운동은 왼쪽으로 왜곡시켰다. 양극화는 지구화와 시장의 확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과 노조의 담합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조직 노동자에겐 고용안정 등 기득권 유지가 핵심가치이다. 한편 실업자, 비정규직, 청년 세대 등에겐 제대로 된 경쟁 기회가 오히려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의 폐해만 강조하는) 진보세력은 이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병진

그래서 김대호 소장은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병진’을 주장한다. 과잉시장 부문엔 좌파적 개혁이 필요하다. 이 부문은 “적절한 규제, 감독, 약자보호 장치 없이 작동하는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시장” 하에 실업자,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시간강사, 하청 중소기업, 무연고자, 청년 세대, 미래세대가 사는 세계이다. 대안은 “교육, 의료, 복지 등에서 사회 최소한(사회가 책임지는 최소한의 혜택)의 상향, 사회투자정책, 부동산과 일자리 등에서 공공 부문의 적극적 역할, 공공 부문의 고용, 임금 및 가격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경제-금융-노동 관련 세련된 규제” 등이다.

그러나 시장(경쟁)이 없어서, 폐해가 발생하는 과소시장 부문엔 우파적 대안, 즉 시장과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개혁이 필요하다. 김대호 소장은 여기에 재벌이나 토건족, 부동산 투기꾼, 검찰 등의 권력기관을 비롯한 전통적인 보수세력 이외에 대기업 노동조합 등 진보세력의 일부까지 포함시킨다. 이에 필요한 개혁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 엄단, 정․경․관․언․법 유착 차단, 기업지배구조 건전화, 직무 직능급과 고용 및 임금 유연성 도입, 철밥통 연성화. 관료와 이익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규제 철폐 등이다.

진보를 겨누는 세 손가락의 의미

지금까지 김대호 소장의 주장은 진보, 개혁, 민주를 자처하는 인사가 내놓은 것으로는 매우 파격적이다. 그중 일부는 이른바 우파 세력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공격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소장은 영국 신노동당의 기존 노선이 세계적인 금융 탈규제, 자국의 강력한 금융 헤게모니라는 상황에서 가능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을까. 영국은 제조업에서 많은 일자리가 날아갔지만 ‘금융 종주국’이었기 때문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 사라진 세계금융위기 이후 신노동당 모델이 작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노동당의 현재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다.

또한 김소장의 말 대로 진보세력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수용한다 해도 이른바 대기업 및 공공 부문의 ‘상층 노동자’와 비정규직, 실업자 등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을까. 노동 유연화가 오히려 대기업 및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물론 노동자 전체의 처지를 더욱 곤궁하게 만들 가능성은 없을까. 혹시 김대호 소장은 시장을 ‘과잉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김대호 소장의 주장이 진보세력에게 조금 충격적인 형태지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자유주의와 시장의 폭력이라는 추상적인 구호가 진보진영에게 ‘악의 실체’로 군림해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진보세력은 시장의 충격을 방어하는 데 선수였다. 그러나 앞으로 진보세력은 시장의 폭력을 잘 막는 선수인 동시에 시장을 잘 다루는 선수이어야 한다. 시대와 현실을 통탄하면서 손가락질할 때 집게손가락은 상대를 향하지만 엄지는 하늘을,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한다. 지금은 정말로 자신을 향하고 있는 세 손가락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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