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띠는 글을 하나 삽질한다.  

문강형준이 쓴 글이다. 지금 미국 어디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인데 꽤 날카로운 시선이다. 

식모의 미소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인기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세경과 신애를 눈여겨보게 된다. 아마도 이들이 시트콤 내에서 하고 있는 ‘식모’라는 역할이 주는 어떤 낯설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가사 도우미’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가 많지만, 그 표현은 ‘식모’(食母)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직접적인 솔직함을 결여하고 있다. ‘식모’는 말 그대로 ‘밥을 먹이는(하는) 여자’다. ‘식모’의 모(母)는 ‘어머니 뻘의 나이많은 여자’를 뜻하며, ‘주모’(酒母)나 ‘유모’(乳母)에서와 같이 ‘아주머니’를 의미한다. ‘가사 도우미’라는 말에서 ‘도우미’는 ‘돕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세경이가 하는 식모일은 순재네 가족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고용되어 월급을 받고 거의 모든 집안일을 책임지는 일이다. ‘도우미’라는 단어는 그래서 ‘고용-피고용’ 관계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순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하며, ‘식모’가 종일 담당하는 힘든 노동의 본질을 가리는 기능을 한다.


위험한 여자 혹은 착한 여자

한국 대중문화에서 ‘식모’들은 대개 부르주아 가정의 안락함을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 혹은 비운의 운명을 겪는 ‘착한 여자’로 재현된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와 <화녀>(1971)에 등장하는 식모는 부도덕한 주인에게 몸을 뺏긴 후 히스테리적인 망상 속에서 가족 전체에 대한 복수를 도모하다 결국에는 제거된다. 조선작의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1975)의 영자는 시골에서 상경해 부잣집의 식모가 되지만, 주인 아들에게 겁탈을 당하고는 집을 나와 여공이 되지만, 결국 사창가에서 한 줌의 재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공히 지방에서 상경한, 교육받지 못한, 신분상승 욕망에 불타는, 하지만 마음은 고운, 가난한 하층계급 출신이다.

2009년에, 그것도 시트콤에서 불현듯 등장한 식모 세경은 위 작품들에서처럼 진지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역시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빚쟁이에 쫓긴 아버지를 기다리기 위해 서울에 온 하층계급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식모들과 다르지 않다. 갈 곳 없는 자신과 동생에게 머무를 곳을 주고, 일도 하게 해주면서, 거기에다 50만원의 월급‘까지’ 주는 순재네 가족에게 세경은 시간 날 때마다 ‘고마움’을 표하는데, 그건 세경과 신애의 마음이 착하고 본성이 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층계급 출신 식모는 자신의 ‘가치’보다는 주인의 ‘배려’만을 생각하는 ‘착한 사람’으로 재현됨으로써 고용관계 속에 깃든 ‘착취’들을 효과적으로 가린다. 욕망의 화신 아니면 착하고 순한 시골소녀, 이것이 주류 대중문화가 하층계급 여성을 묘사하는 이분법이다.


권력을 넘어서는 삶의 힘

하지만, 세경과 신애 자매는 단지 ‘식모’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 27회의 에피소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세경은 탁월한 계산능력을 발휘하여 숫자감각에 어두운 순재의 사위 보석의 기를 꺾고, 보석이 잘못 고른 고랭지배추를 감별하여 순재의 신임을 얻는다. 해리의 동화책을 보다가 구박을 당한 신애는 변비환자 해리가 내리지 않고 간 변기 속의 작은 똥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와 결합시켜 ‘애기똥’이라는 동화를 짓는다. 클라이막스에서 순재는 야채죽을 끓이던 세경을 불러 정산을 도와달라고 하면서 보석에게 세경 대신 죽을 끓이라 하고, 신애의 동화에 감동하여 눈물까지 흘린 해리는 신애 대신 멸치똥 따는 일을 하면서 신애에게 빨리 다음 편을 쓰라고 말한다. 순간적으로, 세경/신애와 보석/해리 간의 지위는 전복된다. 중요한 점은 세경과 신애가 가진 것이 단지 ‘재주’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 속에서 스스로 끌어올려 체화한 ‘능력’이라는 점이다. 세경은 전자계산기도 없는 산골마을에서 살면서 터득한 암산능력과 자연친화적으로 농사짓던 경험에서 나온 감별능력을, 신애는 동화책 살 돈이 없는 깡촌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경험을 서사화하여 스스로 동화를 쓰는 감각을 발전시킨 것이다. 계산능력, 감별능력, 창의력과 함께 이들은 서로 도울 줄 아는 능력, 공감할 줄 아는 능력, 친화력, 독립심도 가졌다. 이 모든 것들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힘들게 살아야 하는 주변부 하층계급이었기 때문에  갖게 된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 해리와 준혁, 지훈과 같은 부잣집 아이들이 세경과 신애의 능력과 감각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세경과 신애가 삶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이런 능력을 정치철학자 네그리와 하트는 ‘삶정치적 능력’이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했다. 반면, 타인의 삶의 에너지를 뽑아 씀으로써만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식모를 집에 두는 순재가족이 가진 힘은 ‘삶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갈 곳 없는 세경과 신애는 ‘삶권력’에 의해 흡수되지만, 이들이 가진 ‘삶정치적 능력’은 ‘삶권력’의 힘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점점 성장하고, 이 에피소드에서처럼 어느 순간 폭발하여 집안에서의 고용 관계를 역전시키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권력은 ‘삶정치적 능력’을 영원히 제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히스테릭한 욕망의 화신과 착한 순둥이라는 ‘식모의 이분법’을 뛰어넘은 곳에는 이들이 가진 진정 혁명적인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쓴 회상록에는 1848년 혁명의 와중에 귀족인 토크빌 가족이 가진 저녁식사 장면이 등장한다. 창밖 저쪽에서는 반란에 나선 노동자들을 막기 위해 부르주아지들이 쏘는 대포소리가 들린다. 가족들은 호화로운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얼굴에 공포의 기색을 떨칠 수는 없다. 그 순간 이들의 식사를 시중들던 젊은 하녀 한 명이 주인들의 공포에 떠는 얼굴을 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하층계급인 그녀에게 대포소리는 공포의 떨림이 아니라 승리의 미소를 낳는 것이다. 그녀는 즉시 해고된다. 풀리지 않은 현실의 모순이 유령을 낳는다면, 진정한 혁명의 유령은 바로 이 하녀의 미소 위에 존재한다. 세경과 신애가 가진 삶의 힘은, 언젠가, 무능한 보석과 해리가 가진 권력과 자본의 간교와 포악을 넘어서게 되어 있다. 순재네 가족 ‘지붕’을 ‘뚫’어버리는 강력한 ‘하이킥’처럼 세경과 신애의 ‘삶정치적 능력’이 정의의 폭력을 행사하는 날, 보석과 해리는 공포에 떨면서 세경과 신애의 자비를 구걸할 것이다. (여기서 ‘웃음소리’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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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국민 공략’ 넘는 진보 ‘전방위 공략’ 제안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2) 스튜어트 홀 Stewart Hall


스튜어트 홀은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이론가이자 독립 좌파 지식인이다. 1932년 자메이카에서 아프리카 출신 혼혈가정에서 태어나 1951년 영국에 건너왔다. 초기에는 신좌파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초대 편집인으로 <뉴 레프트 리뷰>를 창간했다. 그 후 리처드 호가트, 레이먼드 윌리엄스 등과 함께 ‘영국 문화 연구’를 출범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버밍엄대 현대문화연구소장을 맡아 활동하며 ‘버밍엄학파’의 독특한 학풍으로 전세계 문화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종이나 젠더, 텍스트의 의미구성 과정 등을 언어와 헤게모니의 관점에서 접근했으며, 후기에는 특히 흑인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 문제에 주력했다. <오늘의 마르크스주의> 등의 잡지를 통해 정치비평에 열성적으로 참여했으며, 영화, 사진,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진보적 관점을 전파하는 일에도 힘썼다.

 

 

 

 


이제 진보-보수의 구분은 계급 경계와 무관해졌다. 진보 역시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성 노동자 중심의 전통 지지층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다양한 주변부 층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홀이 그리는 진보의 미래이자 진보세력의 새로운 기반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독자마다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다. 한 사상가의 책은 저술 당시의 시대적 문제점들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해답을 담고 있으며, 책 속에는 저자가 거쳐 온 삶의 여정이나 배경이 생생하게 투영되어 있다. 유명한 사상가 중에는 대개 서양인이 많고, 그래서 이른바 고전의 대다수는 서양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를 해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21세기 초반의 한국에서 살면서 이 시대의 관심사를 푸는 한 방편으로 그 책들을 읽게 되니 둘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로 ‘해독’의 간극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 스튜어트 홀
 
이 점에서 스튜어트 홀(77) 역시 독자의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으로 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사회를 지배한 ‘개입주의’ 국가 이념이 어떻게 싹트고 형성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한, 말하자면 정치제도나 이념에 관한 연구자로 통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홀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명되기도 한다. 그는 자메이카 출신의 혼혈 흑인으로 영국에 건너온 사람이다. 아프리카, 자메이카, 영국 그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이라는 ‘디아스포라’ 의식은 그의 현실 인식에서 근간을 이룬다. 그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면적인 체험이 어떻게 사회적인 정체성으로 굳어지며 정치적인 영향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탐구했다. 그래서 홀은 오늘날 문화연구에서 의미해석과 정체성의 문제를 연구하는 데 단골처럼 인용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처럼 홀의 관심 영역은 거시적 문제와 미시적인 내면 체험 문제를 넘나든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홀의 모습인가? ‘대처리즘’에 관한 홀의 분석은 바로 이런 다양한 관심사들이 여러 갈래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현실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로 체계화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미시적인 정체성 문제가 제도 정치 영역와 어떻게 서로 결합해 ‘정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하게 되는지 탐구한 이론가로서 홀을 소개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대처리즘은 1980년대 영국 사회를 휩쓴 신자유주의 경제이념이자 보수 정치이념의 대명사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대처리즘이 경제 이념뿐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된 역사적 흐름이며, 문화적·사회적 전통의 층위들이 누적되어 생성된 복합적 현상이라고 보았다. 즉 대처리즘은 경제이념으로서의 시장 자유주의와 더불어 ‘유기적 토리주의’라 불리는 도덕적 복고주의가 결합해서 형성된 독특한 이념이라는 것이다.

홀이 볼 때 대처리즘은 단지 일부 보수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등장한 게 아니다. 노동당의 정치적 텃밭이던 노동자들의 표를 얻어 집권에 성공한 사실은 대처리즘이 전통적인 계급론의 관점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임을 말해준다. 홀은 대처리즘이 아래로부터의 자생적 흐름과 위로부터의 흐름이 동시에 작용해 생겨났다고 본다. 대중의 불만과 위기의식 같은 것들이 쌓여 대처리즘의 정서적 토양을 제공했고, 대중적 상식은 이들의 보수적 현실 인식을 낳는 바탕이자 자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간과해선 안 될 점은 대처리즘의 국가 역시 개입주의적인 정치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홀은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의 개입주의적 성격은 영국 정치에서 오랜 전통으로 작용해 왔으며, 이 추세는 1880~1920년대 사이에 기본 틀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물론 대처리즘은 영국 정치의 근간이던 국가 개입주의와 노사 대타협에 근거한 복지국가 전통을 타파하고, 시장과 개인주의에 기반한 작은 국가를 추구하겠다고 표방했다. 그렇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대처리즘 역시 국민의 일상생활과 의식에 깊숙이 개입했다. 시장과 경제 문제에서는 자유주의와 탈규제를 추구하지만, 이데올로기 부문에서는 개입주의적인 양면성을 띠는 게 바로 대처리즘 국가의 특징이다.

홀이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이처럼 복합적인 대처리즘의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가 ‘도덕적 경찰’로서 개입하기 시작한 현상을 홀은 1970년대 중반 <위기의 관리>라는 책에서 이미 지적했다는 사실이다. 대처리즘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대처리즘이 출현하기도 전에 이미 그것의 등장을 예견한 셈이다.

이처럼 홀은 현실을 분석하면서 이데올로기가 갖는 중요성에 특히 주목한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좌파의 관점에서는 주변적인 문제로 치부되던 쟁점들이 홀의 논의에서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도덕적 상식이나 젠더, 인종, 종족성, 지역, 국가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홀은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이 어떻게 해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짚어간다. 대처리즘의 전략은 대중의 상식에 근거하고 이를 공략한다. 대영제국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국가나 민족 이념, 가족, 명예, 근면 등으로 표현되는 영국의 전통에는 가부장주의, 식민주의, 잉글랜드 중심의 배타적 인종주의의 요소가 배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대중적 상식과 통념의 일부로서,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허물고 국민이라는 대안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기반 구실을 했다. 노동당의 오랜 정치기반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지지세력을 확보한 대처리즘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보수의 성공담은 변화하는 현실을 읽지 못한 노동당과 진보의 실패에 대한 냉혹한 진단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홀은 대처리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좌파 내부에 고질적인 사고의 한계를 조명하고 21세기에 적합한 진보의 의미와 방향이 무엇인지 모색한다.

요컨대 이제 진보-보수의 구분은 계급 경계와 무관해졌다. 진보 역시 산업혁명 시절처럼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성 노동자 중심의 전통 지지층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그보다는 진보의 전통적인 기반세력(노동계급) 속에 내재한 부정적인 요소들(인종주의·가부장주의·배타적 민족주의)을 성찰하고, 나아가 최근 부상한 다양한 주변부 층들(여성·흑인·서비스 종사자·비정규직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진보세력(즉 ‘블록’)의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홀이 그리는 진보의 미래이자 진보세력의 새로운 기반이다. 여기서 홀은 좌파 역시 대처리즘의 지혜로운 전략에서 배워야 한다며, 이를 소홀히 하면 진보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으로서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경고한다. 이처럼 그는 현실 문제를 어떤 체계적인 이론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현실 문제는 늘 많은 요인과 세력들이 충돌하고 연계하고 각축하면서 만들어내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 곧 ‘국면’(conjuncture)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전통 좌파의 경제주의 도식을 버리고, 구체적인 현실에 작용하는 요인 분석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홀의 자세는 그람시와 아주 흡사하다.

그렇다고 홀의 진단의 적실성이 1980년대 영국 사회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접근하는 자세를 예시해주며, 이는 민주화 이후 혼란에 빠진 진보세력의 정체성을 새롭게 모색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홀의 분석은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서 진보의 문화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짚어볼 만한 통찰력을 안고 있다. 임영호/부산대 교수



 




 

» 임영호/부산대 교수
 
임영호는 서울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있다. 관심 분야는 문화이론과 저널리즘, 비판 언론학 이론 등이다. <전환기의 신문산업과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의 한국언론> 등의 저술이 있으며, <스튜어트 홀의 문화 이론>, <대처리즘의 문화 정치> 등 홀의 저서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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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발턴의 역사’ 엘리트 권력 향해 던지는 짱돌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4) 라나지트 구하 Ranajit Guha


라나지트 구하는 영국에 의해 아시아 최초로 근대적인 토지제도와 교육기관이 설립된 벵골 지방에서 1923년에 태어났다. 구하는 캘커타 대학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학문의 길을 포기하고 1946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여 인도 공산당을 탈당한 뒤 1959년 영국에 건너가 그곳에서 21년간 머무르면서 역사 연구를 재개하게 된다. 1982년 학술지 <서발턴 연구>를 창간하고 1983년<서발턴과 봉기>를 출간하면서 서발턴 연구를 주도했다. 1997년 <헤게모니 없는 지배>를 출간한 뒤 은퇴하여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구하는 식민주의나 민족주의 역사학이 실은 공모 관계에 있는 엘리트주의 담론들이라며 허구적 역사학들이 배제한 인도의 민중을 역사 주체로 복원하고자 했다. 궁극적으로는 민중의 정치 진출과 역사적 재현을 가로막아 온 엘리트주의와 권력관계의 강고한 벽을 깨뜨리려는 것이었다.



 

» 라나지트 구하
 
서발턴(subaltern·하층민) 연구가 출범했을 때, 구하는 인도에 관한 식민주의 역사학이나 민족주의 역사학이 외견상으론 서로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서구적 근대성을 지향하고 민중을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공모 관계에 있는 엘리트주의 담론들로 간주하면서 그 둘의 대립적 관계를 해체시켰다. 그에 따르면, 인도의 식민지 역사를 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계몽을 통한 근대 사회로의 이행 서사로 구성하거나, 부르주아 민족주의 엘리트가 이끈 인도 민족(국가)의 자기실현의 역사로 서술하는 것은 명백한 허구다.

구하는 이 허구적인 엘리트주의 역사학들에서 대상화되어 온 인도의 민중을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 낸 주체로 복원하고자 했다. 이 복원 작업을 위해 그는 그람시로부터 차용한 서발턴 개념을, 그리고 경제 결정론이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우선성을 고수하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아니라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인도사의 맥락에 접합시켜 포스트식민적 관점에서 서발턴의 역사를 재구축했다. 이런 구하의 기획은 1960년대 이후 역사주의와 휴머니즘적 보편 주체를 비판해 온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산물이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현지의 조건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하면서 근대성/식민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들과 실천들을 전개해 온 ‘트리콘티넨털 마르크스주의’(Tricontinental Marxism)의 상관물이었다.

구하는 서발턴을 계급·카스트·연령·젠더·지위를 비롯한 모든 층위에서 권력관계에 종속된 상태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말한다. 또 엘리트들을 제외한 나머지 ‘민중’(people) 전체를 서발턴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권력관계의 여러 층위에서 종속상태에 놓여 있는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가리키는 민중으로서의 서발턴 개념은 고정적이고 통일적인 어떤 본질적 정체성을 전제하거나, 계급이나 민족 등 어느 하나의 범주를 특권화하지 않는다. 서발턴은 여러 범주들 사이에서 혹은 그것들을 가로질러 작동하는 지배와 종속의 복잡하고 다중적인 관계들 안에 있는 민중이라는 의미에서 통일적이거나 본질주의적인 주체가 아니다. 이 비본질주의적 주체의 이름인 서발턴은 권력관계에서의 종속적 위치를 가리키지만, 이와 동시에 그것의 불변의 특징은 엘리트와의 차이와 지배에의 저항이다.

1783년부터 1900년까지 인도에서 발생한 110개의 농민 봉기들을 다루고 있는 <서발턴과 봉기>는 인도의 식민정부와 지배집단이 남긴 사료들에 대한 ‘징후적인’ 혹은 ‘결을 거스르는’ 독해 전략을 통해 엘리트의 지배에 대한 서발턴의 저항을 입증한 서발턴(의) 역사의 전범이자 서발턴 연구를 이론적으로 정초한 저작이다.

이 책에서 구하는 전근대 시기의 농민운동을 전(前)정치적인 것으로 본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사가인 에릭 홉스봄의 근대성 논리와 유럽중심적인 보편사 논리를 비판한다. 그는 인도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 그 자체가 서발턴 농민의 정치적 의식에 관한 이름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농민은 전근대적이거나 전정치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농민들은, 비록 서발턴의 부정성을 보여 주는 요소들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일정한 조직과 강령을 구비하고 있었고, 또 그들의 오랜 삶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독자적 전술을 구사하면서 근대적/식민적 권력관계에 의식적으로 대항하여 지배적 기호체계의 작동을 단절시킨 동시대의 정치적 주체였다. 서발턴 농민들은 식민주의 역사학에 의해 식민 행정의 측면에서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거나, 민족주의 역사학에 의해 민족(주의)의 서사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물로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구하는 서발턴 농민을 식민 행정과 민족 서사의 틀 안에 귀속되지 않는, 그 어떤 것으로도 환원 불가능한 고유한 의식을 지닌 행위주체로 복원해 냈고, 그 농민의 봉기/의식의 구조 혹은 일반적 형식을 규명했던 것이다.

구하가 보여 준 것은 인도의 식민 역사에는 엘리트의 정치와는 구조적으로 분리되는 서발턴의 정치, 즉 식민 권력과 토착 권력에 대항하면서 독자적인 정치적인 행위/의식을 드러낸 ‘민중의 정치’가 엄연히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그에 의하면, 이 민중의 정치는 그 정치적 동원(動員)의 측면에서 엘리트 정치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민족주의 정치는 물론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정치와 같은 엘리트 정치들이 식민주의가 이식한 근대적 정치 제도에 의지하는 합법적이고 수직적인 동원을 보여 준 반면, 민중의 정치는 전통적인 친족 관계와 영토의식, 카스트 제도, 종교 관념 등에 의지하는 수평적 동원을, 또한 전투적이면서 자발적인 형식의 동원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비록 단속적(斷續的)이고 국지적이긴 했어도 서발턴으로서 민중의 정치 영역이 역사적으로 현존했다는 사실은 권력을 쥔 지배 엘리트들이 민중에게 헤게모니를 행사하지는 못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것이 그의 세 번째 저서의 제목이자 널리 알려진 ‘구하 테제’인 <헤게모니 없는 지배>(Dominance without Hegemony)이다. 그 테제에 따르면, 서발턴의 저항은 권력관계 안에서의 저항, 다시 말해 늘 지배의 심급에서 실행되는 강제와 설득의 효과 안에서의 저항이므로, 지배에 저항하는 서발턴의 정치는 엘리트 정치와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리트 정치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엘리트 정치와 ‘이접’(離接)해 있다. 이 이접되어 있는 위치를 ‘지배 내의 외부’라고 할 수 있다면, 서발턴으로서의 민중의 정치가 표상하거나 위치하는 저항적 차이의 공간은 엘리트 정치의 ‘내부에서의 외재성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엘리트 정치가 강제하거나 동의하기를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에 맞서 그 정체성에 차이를 만들어 균열을 내는 장소, 엘리트 정치가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 질서를 그 내부로부터 교란시키는 장소이다. 다시 말해 그곳은 서발턴이 엘리트의 지배의 완성을 저지하는 정치적 주체로 출현하는 장소인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최근의 저서 <세계-사의 한계에 있는 역사>(History at the Limit of World-History·2002년)에서 구하는 헤겔의 제국주의적인 역사철학이 역사의 산문을 국가의 기록과 동일시함으로써 국가의 삶으로서의 역사학이라는 인습적 통념을 철학적으로 확립했고, 그 국가주의적인 역사학의 굉음으로 인해 일상의 삶 속에서 민중들이 내뱉는 신음소리와 나지막한 속삭임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네 번째 저서에 이르기까지 구하의 역사 연구 작업 전체를 관통해 온 문제의식은 근대 역사학이 국가 권력의 서사양식이자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현 체계로 작동해 온 방식을 심문하고 그것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서발턴 민중의 정치적 진출과 역사적 재현을 가로막아 온 엘리트주의와 권력관계를 파열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김택현/성균관대 교수·사학




 




 

» 김택현/성균관대 교수·사학
 
김택현은 성균관대 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이론지 <트랜스토리아>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주요 저작으로 <서발턴과 역사학 비판>, <차티스트 운동, 좌절한 혁명에서 실현된 역사로> 등이 있고, 라나지트 구하의 <서발턴과 봉기> 및 로버트 영의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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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취를 통한 축적’ 도시재개발서 금융위기 예견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18)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지리학을 공부하고 196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196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로 옮겼으며, 1987년 영국으로 돌아가 옥스퍼드대 지리학과의 석좌교수로 있다가 1993년 다시 존스홉킨스대로 복귀했다. 2001년 뉴욕시립대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실증주의 지리학에서 출발했으나 곧 마르크스 지리학으로 전환해 <사회정의와 도시>(1973), <자본의 한계>(1982) 등을 썼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1989)을 출간했으며, 자연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정의, 자연, 차이의 지리학>(1996), 자본주의 도시공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모색으로 <자본의 공간>(2001)과 <희망의 공간>(2001)을 출간했고, 현실 문제에도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신제국주의>(2003), <신자유주의>(2005), 그리고 최근에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자유의 지리학>(2009)을 출간했다.

 


 

 

 

하비는 최근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과정 속에서 초래된 도시 부동산 시장의 위기로 보았다. 상층부의 잉여자본이 도시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입됐지만 중하위 계층 저임금 실수요자들의 구매력 부족과 신용 붕괴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 데이비드 하비. flickr.com(ID:lsyrepublic)
 

현대 사회에서 공간은 인간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자본축적을 위한 물적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서구 경제의 침체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의 논리에 따른 공간의 재구성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금융위기의 세계화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대안으로 판명되고 있다. 다른 한편,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새로운 사회공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대안적 공간이 가능한가? 하비는 신자유주의의 타락한 유토피아주의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기보다, 진정한 유토피아적 꿈을 잃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공간 개념을 사회이론의 중심으로

공간은 흔히 텅 빈 공간 또는 사물을 담고 있는 그릇 정도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디에도 텅 빈 공간은 없다. 공간은 사물을 비워버리면 남게 되는 그릇이 아니다. 공간은 항상 사물들과 함께하며, 사물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 마찬가지로 사물들은 공간(그리고 시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공간 속에서 (재)생성된다. 그동안 사회이론이나 철학에서 이러한 공간의 개념은 무시되거나 간과되어 왔다. 하비가 진보적 사회이론에 기여한 점들 가운데 하나는 공간의 개념을 사회이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하비는 사회적 과정과 공간적 형태 간 관계를 변증법적 관점에서 이론화하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공간과 사회는 각각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상호 관련적 관계 속에서 그 특성을 부여받게 된다. 공간이나 장소는 단순히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통해 생산되고 재현된다. 자연환경 역시 그 자체로서 독립된 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항상 인간 생활과의 관계 속에서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환경을 (재)생산하면서 또한 인간의 본질과 사회 구조도 (재)구성하게 된다.


“금융위기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공간 지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 곧 자본축적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된다. 하비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은 일차적으로 상품 생산-소비 과정을 통해 순환하며, 이 과정에서 형성된 잉여가치를 축적해 사회적 부를 확대해 나간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달한 노동의 분업은 생산과 소비를 공간적으로 분리시키고, 자본의 축적 과정을 공간적으로 끊임없이 확장하는 한편, 이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부는 일정한 지역들로 집중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흔히 상품 생산의 과잉으로 과잉 축적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자본은 이러한 위기를 회피하기 위하여 도로나 공단, 주택 등 도시 건조환경의 건설에 투자를 확대하게 된다.

도시공간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자본은 현재보다 미래에 발생할 수익을 앞당겨 현가화(예로, 토지의 지대나 은행의 이자와 같이)하여 이윤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용체계의 발달과 금융자본의 지나친 확대로 인해 부동산시장의 거품과 세계적 금융 공황을 포함한 새로운 위기 국면이 도래한다.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 등과 같이 건조환경의 재편성과 이를 통한 축적 과정(하비는 이를 ‘확대재생산에 의한 축적’과 구분하여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고 한다)은 금융자본의 확대로 초래될 위기를 일시적으로 해소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환경의 재편과 ‘탈취에 의한 축적’은 지역 불균등 발전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면서, 결국 제국주의의 팽창과 제국들 간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

현 단계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특히 1970년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도입된 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민영화와 탈규제와 같이 사적 소유의 확대와 자유시장의 확산을 통해 침체된 경제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실제 이 과정에서 세계경제의 성장은 회복되기보다 오히려 위축되었고, 개별 국가 내에서도 복지 지출의 축소로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하비에 의하면, 최근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이로 인한 전세계적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과정 속에서 초래된 도시 부동산시장의 위기로 이해된다. 곧 상층부의 잉여자본이 도시 건조환경의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입되었지만, 실제 중하위 계층의 실수요자들은 저임금에 따른 구매력 부족과 이로 인한 신용의 붕괴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희망의 공간으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특히 신자유주의적 공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는가?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흔히 모더니즘, 나아가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운동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하비에 의하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 간에는 차별성보다는 연속성이 더 두드러지며,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치경제적 현실과의 직면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재현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으로서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전환 및 시공간적 변화, 자본축적을 가속화하기 위한 교통통신의 발달로 ‘시공간적 압축’ 과정 및 이의 재현이 이루어졌다. 하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하에서 강조되고 있는 장소의 정체성과 ‘차이’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이들은 공간의 구성에 대한 거시적 분석과 결합할 때만 의의를 가진다.

하비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공간에 관한 철학적 의미와 역사적 발전 과정을 우선 다소 추상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사회적 및 환경적 정의를 이론화하고자 하는 한편, 지리적 상상력 또는 ‘공간적 유희로서의 유토피아’를 사회적 관계, 도덕적 질서, 정치경제체제 등에 관하여 흥미로운 사고를 탐구하고 표현하기 위한 창의적 수단으로 강조한다. 다른 한편, 좀더 구체적으로 하비는 과거의 노동운동보다는 탈취에 의한 축적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강조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다양한 자유와 권리의 개념들 가운데 어떤 것이 진정한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쟁에서 그가 강조하는 ‘도시에 대한 권리’ 운동은 도시 공간에서 사회적 잉여의 생산, 이용 및 분배에 대한 통제권의 쟁취를 목적으로 한다.


최병두/대구대 교수·지리학


 




 

» 최병두/대구대 교수·지리학
 

최병두 교수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지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7년 영국 리즈대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대구대 지리교육과에 재직하면서, 자본주의 도시공간과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공간과 환경>, <환경갈등과 불평등>, <근대적 공간의 한계>, <비판적 생태학과 환경정의> 등이 있으며, 데이비드 하비가 쓴 <사회정의와 도시>, <자본의 한계>,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 마누엘 카스텔의 <정보도시>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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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다음’ 세계는? 패권이동 지도를 그리다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3) 조반니 아리기 Giovanni Arrighi

조반니 아리기는 193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1960년 밀라노 보코니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짐바브웨의 로디지아대에서 강의하면서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만나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1979년 월러스틴, 테런스 홉킨스와 함께 미국 빙엄턴대의 페르낭브로델센터에 자리를 잡고 세계체계 분석에 주력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기원과 변화를 다룬 <장기 20세기-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시대의 기원>(그린비)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1세기의 계보>(길)가 국내에 번역돼 있다. 그의 세계체계 분석은 월러스틴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지만, 최근 경제권력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더 강조한다. 지난 6월18일 볼티모어의 자택에서 지병인 암으로 숨졌다.

 


 

 

아리기는 자본주의의 변천의 동학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지금 미국의 시기에는 선별 지역을 심층적으로 포섭하고 다수 지역을 배제한 채 축적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더 많은 군사적 개입이 없으면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탓에 결국엔 새로운 카오스가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 조반니 아리기
 
앞서 오랜 조짐을 보이다 2008년도에 본격적으로 폭발한 세계 경제위기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질문들이 줄지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위기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위기인가? 위기는 왜 미국발 금융위기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 위기에 대한 세계 각 지역의 대응과 충격파는 왜 상이한가? 이 위기하에 각 지역의 사회운동은 어떤 대응들을 하고 있고 또 할 수 있는가?

이어지는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현 상황 아래서 그 어느 때보다 마르크스적 질문과 탐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일시적 불균형 때문에 생기고 피해갈 수도 있는 ‘위험’(risk)의 문제로가 아니라, 내적·구조적 속성에서 나오는 진정한 ‘위기’(crisis)로 연구한 것은 마르크스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위기의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전개되었던 자본주의 위기들, 예를 들어 19세기 말의 위기, 1930년대의 위기, 1970년대의 위기와 비교하여 현재 위기가 갖는 함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의 분석이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사고와 만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며, 조반니 아리기의 중요성이 발견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무엇보다 ‘역사적 경향’을 통해 설명되었는데, 그 의미는 위기가 항상 그 위기를 상쇄하려는 반작용의 동학과 동시에 작용하며, 역사적으로 상이한 각 시기에 위기의 구체적 동학은 매우 상이한 역사적 해석을 통해 설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의 역사적 자본주의 내에서 이런 위기와 위기의 해소는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적 동학의 등장, 새로운 축적 영역의 형성, 다수 국가들 사이의 경쟁과 계서제(階序制)의 동학, 계급 간 힘관계의 변화, 금융으로의 전환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아리기의 논의의 출발점인 19세기 말~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를 살펴보자. 아리기는 19세기 말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는 독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국가독점자본주의’ 모델로 환원해 설명할 수 없고, 19세기 자유무역 제국주의라 할 수 있는 영국 중심 경제질서의 쇠퇴와, 20세기 법인자본주의에 기반한 초국적 기업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미국 주도 세계 자본주의의 등장이라는 맥락 속에서, 그리고 이는 식민주의의 위기와 노동 계급의 등장이 가져온 영향력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리기는 월러스틴과 더불어 시작된 ‘세계체계 분석’의 넓은 틀 안에서 작업을 전개하였는데, 세계체계 분석의 강점 중 하나는 근대세계를 하나의 동일한 ‘근대’라는 시간 속에 있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근대성의 요소론이 빠지기 쉬운 근대화론의 함의와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자본주의를 중심-주변이라는 공간적 불평등을 수반하는 세계경제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역사적 자본주의가 설명해야 할 각 시기 안에서는 늘 쟁점이 남아 있었는데, 아리기는 세계체계 분석에 대해 제기된 대부분의 논쟁을 ‘비논쟁’으로 규정하면서 월러스틴에 대한 내적 비판을 통해 쟁점들을 좀더 분명히 하는 동시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쟁점은 근대 세계체계 등장에 대한 역사-정세적 설명방식, 자본주의 고유의 동학으로 자본주의라는 시간대 속에서 중첩적으로 작동하는 상이한 시간대의 동학을 설명하는 문제, 세계 헤게모니의 교체를 내적 동학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 각 세계 헤게모니 시기의 역사적 자본주의가 갖는 차별성,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평가 등 핵심적 논점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의 노력은 무엇보다 <장기 20세기>에 집중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는 세계체계 분석이 제시하는 자본주의 장기추세에 대한 설명이 자본주의의 내적 동학에 기반한 설명이라기보다는 경험주의적 설명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체계적 축적순환’과 국가 간 체계의 모순적 결합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천의 동학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로부터 헤게모니의 등장을 실물적 팽창과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분하고, 금융적 팽창과 더불어 시작되는 신호적 위기, 그리고 금융적 팽창 아래서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촉발되고, 그 정도가 격화되면서 초래하는 최종적 위기 및 그에 따른 체계의 카오스라는 설명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 논리는 네그리의 비판을 반박하며 아리기가 강조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역사가 늘 같은 논리의 반복일 뿐이라는 ‘동일성의 영원회귀’가 아니다. 아리기는 헤게모니의 역사적 시기 아래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상이한 구조적 특성을 띠게 되는지, 그것이 내적 속성과 지리적 배치, 계급적 배치에 이르는 모든 면에서 어떻게 상이한 특징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어떤 새로운 모순 구조가 형성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 함의를 우리는 지금의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위기가 갖는 특이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의 위기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자본 수익성 위기에서 시작된 하나의 과정의 끝인 셈인데, 아리기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이 수익성 위기를 금융적 팽창을 통해 반전시키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기술혁신에 기반한 새로운 체계적 축적체계의 수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금융적 팽창은 1990년대 미국 ‘신경제’처럼 짧은 경이적 순간인 ‘벨 에포크’를 동반할 뿐, 오히려 체계 전반의 교란을 키워 위기는 점점 더 체계 전체로 확산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19세기 말~20세기 초와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에서 다르다. 그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가 새로운 헤게모니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순환을 쉽게 되풀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 특징들에는 세계의 금융과 군사력이 여전히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발전주의 체제가 폐기됨에 따라 배제된 주변부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부담을 다른 지역으로 전가하거나 노동에 부담을 전가하는 이외에 기술적 동학의 측면에서 이윤율을 다시 상승시킬 계기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 등이다.

무엇보다 19세기 세계 끝까지 팽창했던 영국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가 이 팽창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더 큰 모순을 잉태해갔던 것과 달리, 지금 미국의 시기에는 끝없는 팽창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재편을 통해 선별 지역을 심층적으로 포섭하고 다수 지역을 배제한 채 축적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배제된 지역에 대한 통제 불가능성을 확대시켜, 헤게모니 국가로선 더 많은 군사적 개입을 통하지 않고는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엔 새로운 체계의 카오스가 이어질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이다.

그러면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 아리기는 다소 암울한 아나키적 상황이 펼쳐지거나 중국을 중심으로 비교적 균등한 교역이 펼쳐지는 두 가지 전망 사이에서 동요해 온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와 중국에 대한 그의 다소 과도한 낙관은 그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선 유보적인 관망으로 다시 돌아서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세계경제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6월 그가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72살로 사망하였지만, 그가 남긴 쟁점들은 향후 계속될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지속적으로 논쟁의 한가운데 위치할 것으로 보인다.

백승욱/중앙대 교수·사회학



 




 

» 백승욱/중앙대 교수·사회학
 
백승욱은 중국의 노동문제를 ‘단위체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논문으로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빙엄튼대 페르낭브로델센터 객원연구원과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2008), <자본주의 역사 강의>(2006),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2005)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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