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에디터스 컬렉션 1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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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 실격.


워낙 유명한 소설이었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었고 책을 받고 그냥 읽었다. 때론 책에 대한 무지로부터 출발하다 보면 종착점에 가서는 나의 경험과 사고로만 이루어진 이해가 생기곤 해서 나는 가끔 이런 식의 독서를 즐긴다.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게다가 ‘인간 실격’이라니! 인간으로서의 실격이 의미하는 바가 궁금하기도 했다.

액자식 구성으로 된 이 책은 ‘요조’라는 젊은이가 남긴 수기를 서술자 ‘나’가 읽은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요조는 타인에 대한 시선의 두려움을 갖고 살아간다. 늘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는지가 두려워 상대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맞춰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래서 남들을 웃겨주고 결국 다른 이들로부터 호감을 얻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불신으로 가득찬 삶이었다. 그런데 그런 요조의 표리 부동함을 파악한 친구가 타케이치였는데 그는 요조의 겉과 다름을 알아챈 듯한 말을 건네고 그뒤부터 요조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돼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호리키라는 친구와 어울려 다니면서 요조의 삶은 방탕해진다. 요조는 호리키가 결코 유익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타인에 맞추는 삶에 익숙해서인지 호리키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며 자신을 방탕하고 퇴폐적인 생활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술집 여종원과의 동반 자살 시도, 어린 딸아이를 홀로 키우며 사는 여인과의 동거, 그리고 순진하고 자신을 무조건 신뢰해 주던 요시코와의 결혼 생활 등은 모두 실패로 끝이 난다,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관계 맺으며 살아가지만 그 어떤 것에도 주체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는 서른 아홉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5번의 자살 시도 끝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죽고자 했을까? 주체적이지 못한 삶이었을까? 사는 건 이래야 한다는 세상의 수많은 규범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산다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토록 죽고자 했던 것은 ‘삶’을 진정으로 살고자 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세네카는 “인생이란 죽음을 향한 여행일 뿐, 살아가는 동안 죽음을 위한 예행 연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요조는 아니, 작가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자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 그의 글을 읽고 있는 나는 ‘나다움’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그렇다면 인간 실격은 요조, 아니 작가가 아니라 어쩌면 ‘사는 건 이래야 한다.’고 자꾸 가르치려 드는 사회에 길들여 살아가고 있었던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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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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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사과파이를 만들려면, 우선 우주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우주’라는 궁극적 근원을 파악하는 일이 과학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그 근원의 첫걸음을 떼는 것은 호기심이고, 호기심을 근거로 여러 가설을 세우고 그리고 그런 가설을 하나 하나 증명해 가는 과정이 하나의 사과를 얻기 위해 우주로 향하는 방향키를 잡고 있는 시작이지 않을까

별이 산산이 부서지면 은하에 속한 수천억 개의 별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에너지가 우주 공간으로 방출된다. 이것이 우주 최대의 사건인 ‘초신성의 폭발’이다. 수십억 년 전에 별들의 최후 덕분에 그 원소들이 우주에 환원돼 수많은 생명체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그래서 칼 세이건이 우리가 별의 직계 후손이라 한 말에 수긍이 되었다. 나의 지식이나 능력을 환원하여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대폭발을 준비해야겠다.

빅뱅의 발견을 위해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실험을 하고 계산을 하는 과정들의 시간이 얼마큼이나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개개인의 시간으로 보면 엄청 길고, 힘들었겠지만 우주라는 시간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찰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 별이 있고 태양이 타고 있고 지구를 품어주는 우주. 그곳은 정녕 어떤 비밀을 품고 있기에 이토록 많은 물리학자들의 도전욕을 불러 일으키는 걸까?

모든 일에는(심지어 인간의 삶도 또한 마찬가지) 시작과 끝이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지점에서은 어디서부터 시작점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가 없지만 분명 시작의 지점과 끝지점은 존재한다. 우주의 비밀의 열쇠를 풀어가는 과정이 이런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의 특성이 존재하는지도 미지이고, 물질의 기원은 모호하고, 암흑 물질의 정체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 우주에 존재 이유도 불확실하다.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매달려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으나 아직까지는 걸음마 수준밖에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의 위기가 또다른 기회라고 말한다. 자기들이 해야 할 지침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가정을 재검토하고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선입견을 내려놓고 자연의 순수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이들의 겸허함이 내 마음속에 종을 울렸다. 천체 물리학은 너무 어렵고 나와는 거리가 먼 분야이지만, 초심으로 겸허하게 탐구하는 정신은 어느 분야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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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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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와 가끔 가는 식당이 있다. 한적하고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인데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리는거 말고는 나무랄 데가 없는 곳이다. 음식 하나 하나에 정성이 가득한 곳이다. 오늘은 시간 여유가 없어 미리 주문하고 식당엘 갔다. 여느 때와 달리 손님들이 꽤 있었고, 주인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분주해 보였다. 예약하고 가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한참을 기다릴 뻔 했다며 식사를 하는데 돈가쓰 고기는 넘 두꺼웠고, 식전 빵은 바삭함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한끼 해결하기엔 나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잠시 공원을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생각해 보니 여유를 두었으면 주방에서 늘 하던 대로 고기는 좀더 두드려서 얇아졌을테고, 식전 빵도 맛있게 바싹 구워져서 나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느림의 미학을 잊어버린 거다. 느긋함이 주는 여유, 기다림 속에 얻어지는 작은 만족, 가치등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딜리터...
‘당신의 사라지게 하고 싶은 물건을 이 세상에서 지워드립니다.’
내가 사라지게 하고픈 것은 뭐가 있을까? 어린 시절 친구에게 못되게 굴었던 거, 부끄러웠던 기억, 잘못 선택했던 순간, 나에게 상처준 어떤 이...
지우고 싶은 경험들, 생각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많은 실수도 했고, 세련되지 못한 행동도 있었고, 그리고 부끄러웠던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살아봤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을 절대로 지우고 싶지 않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노래 가사 같기도 하네) 그건 지금의 ‘나’를 지탱해 준 주춧돌이고 나를 키워준 ‘팔할’이기 때문이다.

‘파괴는 창조보다 자연스럽고 만드는 것보다 부수는 게 훨씬 쉽다. 그리는 것보다 지우는 일이 간단하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는 인간의 무분별한 삶의 행태(자연 파괴, 불필요한 소비사회등)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게 하기 위한 소설일까 싶었다. 이 책을 읽고 딱히 주제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단지 심심풀이 땅콩처럼 무료한 시간에 굴러다니는 책을 한권 집어 든 느낌이다. 우리말도 있는데 (굳이 안 써도 되는)영어 단어는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선악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모든 악은 귀결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지. 아님 주인공을 완벽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던 건지. 작가 자신을 대변하고 싶었던 거였을까? 내가 느낀 주인공 모습은 홍길동 같기도 하고, 유충렬 같기도 하고 이몽룡 같기도 하고.
그냥, 지워주는 거였다. 지우고 싶은 것들을. 다만, 그 지움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것(당연한거 아닌가?)이라고 깨우쳤다. 하지만 지우고 싶었던 순간들도 기다리다 보면 보석처럼 빛날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건 내가 아직 판타지 작품을 소화하기에는 독서력이 넘 부족하고 작가에 대한 너무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이라고 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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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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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잡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제목부터가 아주 낯익었지만 결코 녹록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잡고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며칠 만에 뚝딱 읽어버렸다.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조드’ 일가의 삶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산업자본주의라는 사회도 그렇고 서민의 삶을 저당잡고 옥쇄를 죄어오는 은행들의 횡포도 그렇고 가진 자들의 탐욕, 그리고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단결을 두려워하는 1%의 계층도 그렇다.

조그만 땅을 일구며 사는 조드 일가는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치게 되고 그로인해 은행의 빚을 얻어 겨우 목숨을 연명해가지만 계속되는 재해로 결국 은행의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살고 있던 보금자리를 잃게 된다. 그들은 살 궁리를 위해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로 갈 결심을 한다. 모든 가족이 가진 재산을 청산하고 낡은 트럭에 의지한 채 길고 긴 여정의 길에 오르게 된다. 가는 도중 고향을 지키겠노라며 선언하셨던 할아버지가 죽지만 그들의 캘리포니아 행은 멈추지 않는다.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여정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농민들의 삶 또한 조드 일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그들의 원하는 먹고 사는 일은 풍요로움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고 노동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당한 대가를 원한 것이었다.
기회의 땅이라 여기고 그곳에만 가면 젖과 꿀이 흐를 거라 기대했던 캘리포니아는 그들에게 분노와 절망만을 안겨준다. 가진 자들의 담합과 넘쳐나는 노동수요로 인해 노동의 가치는 변질되고 무기력해지고 만다. 게다가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한 노동자들은 탐욕자본이 부당하고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마저도 감내하며 하루를 근근이 살아간다.

하지만 탐욕 자본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를 작자는 국영천막촌의 모습을 통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아 투쟁해야한다는 케이시의 말을 빌어 알려주고 있었다. 1%, 가진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99%의 단결이다. 그러나 99%는 1%의 삶을 동경하고 그들과 같아지길 원하며 그들의 삶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 투쟁이라는 건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국영 천막촌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일단 힘을 모아 서로가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 준다면 가진 자들은 감히 99%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나는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이들의 삶이 지금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탐욕자본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고 가진 자의 횡포는 날로 잔혹하다.
그리고 여전히 99%의 민중은 1%를 동경하며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굶주리고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의 눈에 두려움이 아닌 분노가 있으면 아직은 희망이 있는 거라고.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지금의 현재에 대해서.

이 책은 퓰리처상에 노벨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노동의 삶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 문제 상황을 풀어내고 해결방안까지 제시되었는데도 여전히 이 책이 발표된 미국은 왜 여전히 ing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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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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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오랜 만에 들어보는 정감어린 말이다. 예전엔 제주도하면 미개한 촌구석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천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세련되지 못한 투박함이 매력으로 대중에게 인식된 듯하다.

물꾸럭 마을에서 발견한 '하쿠다 사진관'에 정착하게 된 제비는
마치, 창호지 창문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 놓고 들여다 보는 것처럼 그곳에서 여러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일로써 다른 이들의 찰나의 순간을 차곡 차곡 담아 주기도 하고,때로는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던 것처럼 담아내기도 한다.
정작 타인의 모습들을 포착하지만 그속에는 자기의 모습 또한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기억 저편으로 담아 두고 싶었던 순간도, 두려움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도 결국엔 사진으로 찍어 내고 인화하는 것처럼 포용하게 된다.

사는 일이 다 좋을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찬가지로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이 마냥 근사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삶은 '나'의 생활을 성장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된다.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나'를 잘 돌보는 일이 '너'를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작가는 '하쿠다'라는 이름으로 사진관을 개점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네 구멍을 메꾸려고 남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 자신을 소진해서도 안 돼.'(p278)

'나'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결국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속의 내 모습을 보며 객관화 된 '나'를 들여다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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