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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일탈에서 공포로의 여행을 떠나다!
위험한 이방인
이언 매큐언 지음 / 프레스21 / 1996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여행은 그런 일탈 가운데 하나다. 일상생활의 무료함, 답답함, 지루함을 달래고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행은 존재한다. 여기 그런 여행을 온 남녀가 있다. 그들은 여행지에서도 무료하고 지루한 나날을 보낸다. 마리화나를 피우고 섹스를 해도 허전한 그런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관광지에서 그렇듯 먹을 곳을 찾다 길을 잃게 되는데 마침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순수하게 여행객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더러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이런 일을 겪는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내렸는데 늘 나오던 출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해질 무렵이었는데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뚝 떨어진 사람처럼 내가 사는 서울 한곳, 그리고 바로 길 건너를 돌면 내가 나오는 출구가 있었음에도 낯설다는 것 하나로 공포에 떨었었다. 잠깐이었지만. 또 어린 시절 뒷산에 친구들과 올랐다가 늘 내려오던 길이 아닐 다른 곳으로 내려와서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모르는 곳임을 알았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공포는 커다란 것이었다. 아이들이 집을 나와 순식간에 길을 잃고 미아가 되는 것은 이런 공포와 당황 때문이다.

자신의 생활이라는 안전함속에서도 우린 이렇게 길을 잃고 헤매며 당황하게 되는데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모르는 사람이 이끄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건 대단히 심리적인 공포를 내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짧은 내용 속에 이런 공포를 서서히 풀어내고 있다.

이언 맥완의 글쓰기가 탁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을 보고 진짜로 느끼게 되었다. 절제된 마지막까지의 호흡은 도리어 주인공이 아닌 나를 숨 막히게 했고 그 끈적끈적함은 지금까지 나를 오싹하게 만들고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당신을 죽이도록 그냥 내버려둘 수도 있게 되죠. 필요하다면 말예요."

이 의미를 나는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어쩜 끔찍한 공포일지 모른다는 것은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공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등등...

일탈이 그저 일탈로만 끝날 수 있다면... 일상이 무료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지금보다 더 풍요로울 텐데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고 사랑도, 일탈도 적당히 하기를... 세상에 목숨 걸 무언가가 있다는 건 좋은 거지만 막상 걸고 나서 후회하게 된다면 얼마나 허망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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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시작은 있으되 끝은 없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시작은 있으되 끝은 없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그렇고 우주 또한 그렇다. 살아 있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듯 죽었다고 다 죽은 것이 아닌 그런 느낌, 이 작품을 덮으며 내가 받은 인상이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우연히 기시감 즉 처음 오는 곳, 처음 대하는 장면,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어디선가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인 데자뷰에 반대되는 말인 미시감 즉 기억의 오류의 특수한 형태로, 지금 보는 것은 모두 처음 보는 것이라고 하는 의식인 자메뷰라는 것이 있음을 알았다.


내게 이 작품은 바로 데자뷰이면서도 자메뷰인 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처음 보는 작품인데도 많이 본 듯한 면도 있고 그러면서도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 말이다. 그 만큼 이 작가가 탁월한 글 솜씨를 발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각기 다른 4편으로 나뉜 단편 같은 작품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작품마다 공통된 것은 하나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매번 등장하는 모자를 쓰고 큰 가방을 든 남자와 어디가 작품이고 어디가 책을 찾는 과정인지 처음에는 알 것 같다가도 책을 덮으면 내가 과연 액자 소설로 이 책을 읽은 건지 아님 그 액자 소설이라는 게 있기나 했던 건지를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묘한 작품이다.


예전에 <바람의 그림자>를 읽었었다. 그 작품도 책을 찾는 이야기를, 책이 나를 찾아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듯이 너무도 확연하게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바람의 그림자>가 책과 인생에 대한 사실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이 작품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책과 인생에 대한 모호함을 담고 있다. 마치 우리가 사는 이곳도 실제 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 너는 그런 생각 안했니? 하고 묻는 것 같은 작품이다.


마지막은 이 작품이 시리즈임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거기서 끝나도 손색없는 작품이다. 어차피 사람의 존재라는 것이 시작은 있고 끝은 없는 거니까 말이다. 그렇듯 이야기도 생명력을 가지게 되면 스스로 자라 처음은 있으나 끝은 없는 그런 것이 되니까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하지만 이 작품보다 더 낫지 않으면 무척 실망할 것 같다. 한 권으로 족한 작가의 말처럼 미진하지만 잔상이 오래 남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다음 작품으로 그 잔상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얼마나 나를 파묻을 수 있는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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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감상적 부르주아의 눈물!
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에는 두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감성적 킬러의 고백>과 <악어>. 내 눈을 끄는 작품은 킬러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악어>였다.


<감성적 킬러의 고백>은 로렌스 블록의 <켈러>시리즈가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킬러인 <켈러>도 자신의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점을 보며 운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킬러도 어울리지 않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 마치 레옹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사건을 처리하고 은퇴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 마지막에서 그는 본래의 킬러로 돌아온다.

 

아무리 킬러가 어떤 속세의 감정을 갖게 된다 하더라고 그의 직업에 베인 습관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건 킬러는 어쩔 수 없는 킬러라는 점이다. 킬러에게 어떤 것을 바란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킬러에게도 독자에게도 환상이라고 작가는 얘기하는 듯하다. 그래서 <데이지>는 별로 흥행하지 못한 모양이다. 킬러가 킬러답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말이다.


두 번째 작품 <악어>는 내가 이 작품을 왜 이제 읽었을까 후회하게 만든 작품이다.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 속임수를 뜻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다. 쓰는 작가도 읽는 독자도 모두. 얼핏 보면 환경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단순하다. 부르주아식 논리로 환경에 접근하는 것은 악어가 흘리는 눈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악어가죽을 얻기 위해 한 종족을 말살시키고 잘 사는 회사 사장과 그런 모의를 한 일행들이 갑자기 죽어가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이 처음에는 단순한 죽음이었지만 더 파헤쳐보니 독살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일들이 숨겨져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악어가죽 백 하나는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 북유럽에서는 많은 바다사자인지 바다표범인지 그들이 무수히 몽둥이에 때려 잡히고 있고 멸종 위기의 고래를 잡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알래스카 에스키모인 들에게는 고래잡이가 허용되고 있다. 파리에서는 모피 패션쇼가 인기고 중국에서는 고양이 가죽까지 벗겨지고 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베어지고 사라졌는지를 생각하면 책을 읽는다는 것도, 책을 쓴다는 것도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그럼 이런 모든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더 나은 세계가 만들어질까? 하루 종일 노동을 해도 1달러도 못 버는 사람들이 많고, 어린 아이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실정이라지만 임금 올려 달랬더니 저임금, 혹은 더 나은 조건의 나라로 일자리 자체를 옮겨버리고 있는 실정에서 이런 말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부르주아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부르주아식 감상일 뿐이라는 작가의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생각해보자. 쌀 시장이 개방되었다. 그래서 돈 없는 사람들은 더 싼 쌀을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더 싼 쌀을 사먹는 다고 우리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라면 값만 조금 올라도 가슴이 철렁하다는 그들에게 말이다. 그렇다고 무너지는 농민들을 보면서 선뜻 수입쌀을 사먹을 수도 없다.


어떤 것이 옳은지 나는 모른다. 어떤 것을 극단적으로 나쁘게 몰아갈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왜냐하면 나무는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이로 만든 책은 계속 읽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환경이라든가 노동 운동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내겐 버겁다. 나는 부르주아식 사고가 몸에 베여있는 모양이다. 이 땅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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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정통 밀실 살인과 사회파 범죄 소설의 절묘한 결합!
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본인도 후기에서 적고 있듯이 <푸른 불꽃> 이후 4년 만에 쓴 작품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푸른 불꽃>이 좀 늦게 출판되었고 내가 본 게 2004년이니까 2년만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에게는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작가는 시간이 지나도 <푸른 불꽃>의 불꽃을 다 태우지 못한 듯하다.


이 작품은 1부와 2부로 나눠 볼 수 있다.
1부에서는 한 회사가 주식 상장을 앞두고 밀실에서 사장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전무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변호사와 방범 컨설턴트라는 조금은 수상한 남자가 트릭을 깨트리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을 담고 있다.


2부에서는 다른 시각으로 범인을 등장시켜 그의 입장에서 범죄를 벌이게 된 사연에서부터 트릭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과정까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너무 간단해 보여 1부에서 온갖 추측과 탐색을 하던 이들을 황당하게 만든 것과 그것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약간 허무했지만 말이다. 차라리 완전범죄였다면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이 시점에서는. 하지만 2부에서 작가가 보여주려 했던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에필로그를 읽어보면 알게 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방범 컨설턴트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부분이 이 작품에서 약간 동떨어진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작가가 2부에 범인을 등장시킨 것은 아마도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작품이라면 탐정과 범인을 동시에 독자에게 보여주는 구성을 택한다. 그것은 독자에게 긴박한 스릴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렇게 1부에서는 탐정을, 2부에서는 범인을 마치 독자적인 두 편의 작품을 보여주듯이 구성하는 예는 못 본 것 같다.


<미션 임파서블을 압도하는 극 초정밀 밀실살인>이라는 출판사의 선전문구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2부와 에필로그에 있다. 1부는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맛있는 전채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 전채가 아쉽게도 주요리보다 더 맛있었을 수도 있다. 사람 입맛은 각기 다른 것이지만. 내 입맛에는 두 편이 한 작품이든 따로따로 각각의 작품이든 상관없이 작가의 <검은집>과 <푸른 불꽃>을 나란히 배열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각기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맛이 따로 놀아도 상관없이 좋았다.


1부에서는 아직도 밀실 살인이라는 고전적이며 정통적인 추리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서 좋았다. 이제 모든 추리소설은 범죄소설로 사회파소설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아직 정통은 살아있고 여전히 보여줄 것이 많다고 말하는 것 같아 즐거웠다. 추리소설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독자가 범인의 트릭을 풀어가는 맛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2부에서 사회파소설을 보여줘서 그것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음을, 추리소설에 있어서 발전이라는 것이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창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독자에게 어필하고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느냐에 있음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역시 좋았다.


날로 세상은 험해지고 각박해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 전체 모든 범인을 천편일률적으로 다루는 것은 위험하다. 세상과 격리해야 하는 범죄자도 있고 어떤 사회 제도 아래서 재교육을 하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잘 적응할 범죄자도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인간의 손이지만 범죄를 예방하고 재범률을 낮추는 것도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그 누구의 손이 아닌. 우리 모두 사회의 구성원이며 잠재적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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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한마디로 대단한 작품!!!
코핀 댄서 - 전2권 - 암살자의 문신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 근래 가장 재미있는 추리 소설을 꼽으라면 단연 이 작품을 꼽고 싶다. 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한마디로 대단한 작품이다. 아무래도 <본 컬렉터>를 안 본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기 위해서라도 봐야 할 것 같다. 아님 이 작품을 먼저 보시던가. 아무튼 안보면 무척 후회하게 되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추리 소설 가운데 범인과 탐정을 동시 선상에 두고 한 챕터씩 그들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형식의 작품들이 있다. 범인은 범죄를 저지르고 탐정은 범인이 남긴 단서로 그를 쫓는다. 이렇게 범죄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은 클라이막스에서 만난다. 마치 평행선을 달리던 기차가 레일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충돌하듯이. 우리는 그런 장면을 보며 환호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코핀 댄서라는 암살자가 등장한다. 누군지 절대 알지는 못하지만 명성은 자자한 암살범. 의뢰받은 사건은 반드시 처리하는 프로 킬러. 어떤 방법이든, 어느 곳이든 안 쓰는 방법이 없고 안 가는 곳이 없고 그러면서 절대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자.

그리고 그에게 이미 자신의 부하를 잃고 다시 그를 잡을 기회를 얻게 된 링컨 라임, 그리고 아멜리아 색스. 그들은 이미 한 명의 증인을 잃었고 두 명의 증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코핀 댄서를 잡아야 한다. 절대 단서를 남기지 않는다는 암살자를. 그리고 그들의 증인은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자처해서 코핀 댄서의 먹이가 되려 한다.

이 정도라면 많이 봤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암살자가 나오고 증인보호가 나오고 탐정과 과학 수사가 등장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할까 싶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링컨 라임의 한계는 기계의 한계와 같다. 또한 그의 한계는 현장에서 그의 지시를 받는 아멜리아 색스와 같다. 두 명의 머리와 한 명의 행동으로 펼쳐 보이는 범인과 숨막히는 한 판의 춤... 이 작품을 통해 링컨 라임이 갖는 한계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죽기는 참 쉽다. 암살자가 참 잘도 죽이니. 아니 세상은 많은 죽음이 떠돌아 다닌다. 그 만큼 사는 것도 쉬울까. 나는 링컨 라임을 보면서 사는 것도, 죽는 것만큼 쉽다는 걸 배운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던가.  

매는 절대 길들여 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매에 대한 이야기는 코핀 댄서를 말하는 것일까. 아님 링컨 라임의 창가에 앉는 매, 그리고 정신만으로 자유로워진 링컨 라임을 상징하는 것일까. 비행사는 하늘을 날아야 하고 프로 킬러는 의뢰받은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 그리고 탐정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 이 작품을 읽는 마지막까지 절대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눈을 떼게 만들지 않을 테니까. 끝까지, 마지막까지 긴장하시라... 코핀 댄서의 사신의 춤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당신이 책을 펼친 지금 막...

한마디로 "와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그리고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도 무척 궁금하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본 컬렉터>의 마지막때문에 그 마지막에서 이 작품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상상했었더랬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리즈랄까. 하지만 작가가 이 작품의 갑자기 독자 앞에 꽝하고 터트린 건 거의 마술을 보는 기분이었다. 모자속에서 토끼가 나올 줄 기대했다가 마술사가 모자속으로 사라졌을때의 놀라움이랄까... 보시라. 보지 않으면 맛 볼 수 없는 것... 늘 말하지만 百言이不如一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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