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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개
양쯔쥔 지음, 이성희 옮김 / 황금여우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을 보는 순간, 어렴풋이 작년에 인터넷에서 본 사자개라는 개의 사진이 떠올랐다. 사자개, 뭘 까? 난생 처음 보는 품종과 사진이었다. 사자와 개의 모습을 섞은 부조합의 결과물인 듯 이상했다. 얼굴은 개를 닮았는데, 털은 사자처럼 갈기가 있었고 몸집 또한 사자마냥 컸다. 다리에서는 또 다시 개의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다. 그 개를 바라보는 나의 기분이란...괴상했다.
그런데 그 이상하던 개가 주인공이며 제목인 책이 내게 왔던 것이다. 두께가 어마어마했다. 거의 700페이지를 육박하는 방대한 양의 책이었다. 나는 그 두께에 질려 선뜻 손에 책을 집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몇 날을 고민하다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강력추천 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자, 슬슬 읽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드디어 손에 책을 집고 읽었다.
먼저 작가 말인 시작하며에서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그리고 사자개와의 인연이 나와 있었다. 거기선 나도 감동을 받은 부분이 있다. 지은이가 7살 시절 아버지가 사자 개 한 마리를 데려왔었는데 그 개는 애교도 부리지 않고 무뚝뚝해서 귀여움 많은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 개를 싫어했다 한다. 그리고 다시 그 개를 초원으로 돌려보내고 14년 후, 기자가 되어 초원으로 갔는데 거기선 커다란 사자개 한 마리가 자신을 향해 뛰어오더니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한다. 지은이는 겁에 질려있는데 뒤에 계시던 숙부가 그 사자개는 몇 년 전 아버지가 데려 오셨다는 개라고 말씀하셨다. 놀랐다. 어떻게 13년이 흘렀는데, 1달간 키워주었던 주인을 기억 해주는 걸까? 서문부터 사자개의 기억력과 충성스러움에 놀랐다.
사실 중국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바다 건너 섬나라인 일본 작가의 책은 그리 많이 접해보았으면서 어찌 우리나라의 옆에 위치한 중국작가의 책은 읽어보지 못한 걸까? 중국 작가의 책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일본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일본 소설이 아주 서정적이라면 이 책은 중국의 독특한 문화와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나를 이끈다. 일본 소설에 지지 않을 매력이다. 고로 나는 중국소설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왜냐, 일본소설은 서정적이고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에 비해 중국소설은 흥미진진한 내용이 있고 재미있으며 독특한 매력이 있다.
책에 나오는 사자개는 주인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가지고 어떤 위기에 처하더라도 설사, 죽음의 길에 가로 놓였더라도 사자개는 오로지 주인을 위해 싸운다. 그리고 책에 나온 사자개 중 한 마리인 깡르썬거가 샹아마의 일곱 아이들을 찾으러 몇 번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끝까지 주인을 찾으려는 의지는 놀라울 정도다. 이렇게 충성스런 사자개의 주인이 된다는 건 영광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리라.
- 아버지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사자개가 사람하고 똑같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마이 정치 위원도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달라! 이놈들은 사람들보다 더 진실해. 사람은 이렇게 울 수 있나? 사람의 울음은 가짜가 많지. 특히 상을 당했을 때는 말이야.” -P544
책을 읽는 동안 사자개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인간처럼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 존재...여태까지 개는 나와 다른 하등한 존재로 여겼는데 티베트 사람들은 사자개를 존중하고 친구처럼 소중히 여긴다. 그런 탓일까, 책을 읽으며 어느새 사자개는 나의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책 속에 나오는 아버지는 사자개와 아주 친근하고 사자개의 말까지 알아듣는 건 희한했다. 인간과 개의 소통, 신기하기 그지없다. 또한 아버지와 사자개의 우정은 멋졌다. 자신을 문 개를 사랑으로 승화시켜 보듬어준 아버지의 관용적인 자세는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다. 나는 나를 문 개는 괘씸하고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을 텐데. 아버지에게서 배울 점이 참 많다.
- “죽으면 안 돼. 내 생명을 구했는데 절대로 죽으면 안 돼.”
회색 늙은 사자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 후 곧 눈을 감았다. 죽기 전 그는 말했다.
“대왕님, 대왕을 위해 복수하지 못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야수를 돕지 못하고 사람을 도울 수밖에 없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사자개입니다.” -P549
이 부분을 읽을 땐 마음이 찡했었다. 사자개라서 사자개로서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복수를 하지 못하고 결국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이렇기에 나는 사자개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끝부분은 모두 다 잘 되어 해피엔드로 끝이 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또 다시 한 번의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자개도 많이 죽음을 당했다. 이젠 사자개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 아, 사자개들은 정말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꿈속에서......
모래바람을 감고 가볍디 가벼운 생명의 모습으로 초원과 설산의 향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고귀하고 우아하며 신중하고 위엄이 넘치는 사자개의 모습, 조금도 이기적이지 않고 타인만을 위하는 사자개의 품격, 대의를 지키는 늠름하고 용감한 충성스런 사자개의 정신은 한 번 바라만 봐도 평생 오매불망 잊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사자개는 그 생생한 초원에서 요동치는 바람과 애석히 흐르는 강물이 되어 멀리 멀리 아주 멀리,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가슴 저미는 꿈인가 보다. 아아, 아버지의 사자개는 이제 우리의 영원한 꿈이 되었다. -P673
오랜만에 10점 만점에 10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책이다. 이게 얼마만이지...
이 책은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만큼 매력이 있었다.
나는 사자개를 읽으며 얼마나 웃고 울었던가. 나는 이 책을 두고두고 영원히 간직하리.
사자개, 사자개. 아직도 내 가슴속엔 사자개가 살아 숨 쉬는 것만 같다.
그 살아 숨 쉬는 사자 개가 내 마음속 초원을 힘껏 달리는 듯 한 기분이다.
사자개...그 끝없는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