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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들 - 개정판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3월
평점 :
책장을 펼치면 맨 처음 세 줄의 글이 나온다.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은 내가 아이들을 살게 한 기록이 아니다.
아이들로 인해 내가 살게 된 기록이다.
라는 글이 나온다. 그 짧은 구절을 읽었더니 가슴이 찡해져왔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아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는 몰랐지만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었다. 그렇게 나는 감동을 시작으로 이 책을 펼쳤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엔 하이 타니 겐지로 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하다 발견된 책이었는데 <내가 만난 아이들> 이라는 제목에 관심이 생겨 읽게 된 책이었다.
하이 타니 선생은 여느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다른 것 같다.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마음을 교류하는 편지를 주고받는 것...내가 초등학생 땐 꿈꿀 수 없는 것이었는데...선생님께 관심 받지 못한 쓸쓸한 초등시절을 보낸 나로 써는 부럽기도 하고 그 때 나는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움이 들었다.
이 책은 결코 아이들과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선 처음엔 하이 타니 선생의 전쟁으로 인해 굶주린 생활을 하며 힘겨웠던 어린 시절, 조선소에서 일하는 가족, 형의 죽음. 상냥한 그에게도 이런 절망적인 과거가 있었다.
하이 타니 선생은 처음부터 선생님이 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차별을 받고 밑바닥 인생으로 굴욕을 맛보는 등의 인생의 쓴맛을 두루 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아이들의 아픔과 절망을 이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다는 구절이 머릿속에서 자꾸 떠올랐다. 아마 그도 그런 절망을 헤치고 나왔기에 상냥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그가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과 방황의 시기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전쟁의 아픔이 드러난 시대적 배경에 우리나라 또한 그 아픔을 겪었기에 결코 그냥 볼 수 없었다. 못살고 못 먹었던 시대에 살았던 하이 타니 선생. 그의 어린 시절은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는 분명 아이들을 존중하고 이해한다. 아이들에게서 배우려 하기에 마음을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솔직히 나는 아이들을 싫어한다. 말도 안통하고 귀찮고 1살이라도 어리면 나이의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듯 거리가 느껴진다. 게다가 꼬마들은 말도 잘 안 듣기 때문에 싫어했다. 이 책을 보니 아이들을 그렇게 생각한 내가 부끄럽다..그런 아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구나. 책을 보면서 나도 그 처 럼 아이들과 마음을 교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시절을 떠올리며 입장을 바꿔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하려 한다. 그는 말한다. 아이들이 나를 구원 해 주었다고. 글을 보며 그가 초등학교를 교사로 근무하며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니 그가 고백한대로 그는 아이들로 인해 구원받은 것 같다. 아이들의 어떤 점이 그를 구원해주었을까. 절망에서 이겨내 상냥함을 가진 것 에서? 그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충격을 받고 본받는다. 추악하고 비겁하며 탐욕으로 물든 내 마음도 순수한 아이들에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잘 씻지 않고 머리도 일주일 이상 안 깜고 다니고 꾀죄죄했다. 부모님이 장사하시느라 나를 돌봐줄 여념이 없으셔서 나는 나 스스로 일어나야 했다. 매일 늦게 자고 컴퓨터만 하다 보니 매일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학교로 갔다. 매번 늦게 학교로 가며 아무도 없는...쓸쓸한 운동장을 걸으며 교실로 다가 갈 때 부끄러웠다. 창문 쪽에서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고 째 이제와요~~ 쟤 좀 봐요. 라고 수근 거릴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 갔다. 그런 고통스러운 생활임에도 나의 그 버릇은 고쳐질 줄 몰랐다. 나중에 6학년 땐 학교도 자주 빼먹었다. 그땐 누구라도 나를 지탱해주었더라면 좋을 텐데...결과는 참혹하게도 나에게 다가올 친구는 없었다. 그렇게 나의 초등시절은 고독했다.
채팅만이 유일한 나의 대화를 터주는 장소였다. 거기선 누구든 가리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었다. 나는 대화에 굶주렸기에 채팅에 몇 년을 매달렸었다. 채팅에 빠져 학교도 안 나가고...그런 어두운 시절 때 나를 바로 잡아줄 하이 타니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하이 타니 선생님에게서 뉘우치고 개선된 학생이 부럽다. 나는 그런 성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선생님이 내게 관심조차 가져주시지 않아 조금 안 좋은 시각으로 선생님을 보았었다. 선생님을 믿지 못했다. 나를 귀찮아하던 선생님들...슬펐다. 어쩌면 나는 선생님의 관심을 더 끌어보려고 더욱 발작 했던 지도 모른다.
책속에 나온 아이들은 나보다 더한 어두움과 고독함, 절망을 맛본 것 같다. 나 따위는 견 줄만도 못하는 깊은 슬픔을...그럼에도 아이들은 상냥함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왜..절망을 맛본 아이일수록 더 상냥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시가 꽤 나온다.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쓴 시에는 순수함과 생각이 그대로 들어나 있었다. 그런 점 에서 아이들의 시는 괜찮았다. 나는 무조건 멋져보이 기 위해, 짧은 구절이지만 많은 뜻이 담긴 깊이 있는 시를 쓰려 노력했었다. 가끔은 아이들처럼 솔직한 시도 괜찮은 것 같다.
소의 다리를 짚으로 문질러 주니까 눈물이 마음속에서 울고 있었다는 소와 나 라는 시를 쓴 마사히코,
뼈야, 너는 나한테 다리가 있는 줄 알고 자라주었구나 라는 나의 다리라는 시를 쓴 다카하시 사토루,
선생님은 왜 나를 예뻐 해주나요? 라고 물었던 사사오 스스무도.
모두 고독과 절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냥함을 잊지 않았던 아이들. 한자 한자에 아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글이 담겨있어서 끝내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방울이 나오게 했던 순수함 그 자체였던 아이들......아이들의 순수함이 나를 울렸다.
그가 아이들에게 구원 받은 것처럼 나도 이 책으로 인해 구원받은 기분이다...아이들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다...가슴이 마구 요동친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서로 용트림을 한다.
한 사람의 인간이 되기 위해선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하이 타니 그 역시 살아가며 자신에게 본보기가 되어준 하야시 선생이나 사카모토 선생을 보며 본받았기에, 자신에게 상냥함을 베풀어준 닷짱과 도시봉. 그를 스쳐지나갔던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오키나와에서,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생명의 의미를 배웠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무수한 생명이 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 내 생명 또한 다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이 인간의 성실함을 낳고 상냥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의 '생명'속에는 수많은 '죽음'이 살아 있으며 온갖 고통과 번민이 깃들여 있다. 그것이 흙 속의 양분처럼 새로운 생명을 길러 내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생명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이 이제야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 반평생은 회한의 반평생이다. 내게 용기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을 응시할 수 있다는 것과 내 고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리라. - p228
책을 다 읽으니 맨 첫 장의 구절이 이제 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었다. 나의 주변에 힘든 아이가 있다면, 이젠 내가 하이 타니 선생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 해야겠다.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이겨낸 사람만이 지닐 수 있습니다...
혹시 선생님이 될 사람이나 선생님인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선생님께 구원받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 써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하는 선생님이 나타나 선생님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이가 구원받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