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끝이 없는 이야기 푸른숲 어린이 문학 3
노경실 지음, 김호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초등학생의 수준인 책이라 길래 처음엔 이 책을 얕봤다. 초등용 책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설마 유치한 거 아냐? 라며 글씨도 크네. 금방 읽겠네 라며 이런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펼치면서 읽는 순간 그게 아니었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 이 책은...중3인 나를 힘들게 한다. 내용이 너무 가슴 아프다...사회의 밑바닥의 암울한 곳을 훔쳐본 기분. 내용은 초등용이 아니라 중학생용이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명훈이네 가족은 2칸짜리 방이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산다. 옛날 명훈이네도 아버지가 대기업 건설회사의 아파트 건설 소장으로 일할 땐 누구 못지않게 아주 잘 살았다. 넓은 아파트와 은색 자가용, 여름엔 해수욕장에서 방학을 보내고 겨울엔 겨울에서 방학을 보내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가족이었지만 아버지의 사고로 다리 한 쪽을 잃은 후로 퇴직금과 보상금으로 사업을 해보려다 나쁜 사람들에게 돈을 빼앗겨 빚쟁이들을 피해 지하방으로 이사 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술에 절어서 사시고 어머니는 대형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며 근근 히 식구들 입에 풀칠을 하신다. 이런 가족이 우리 사회엔 아직 많을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뿐이지...이렇게 생각을 할수록 명훈이네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하니 슬프다. 

 


책을 읽는 동안 명훈이가 사는 삶 은 하루하루를 어둠속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내 기분까지 암울해진다. 할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

 


매일 술에 절어 살며 술 가져 오라고 소리치는 집에서 두려움과 걱정으로 살아가는 명훈이가 가엾다. 생각해보면 나는 부모님 두 분 건강하시고 좋은 아파트에 살며 용돈도 많이 받고 좋은 컴퓨터, 하고 싶은 거면 노력해서 거의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공부도 실컷 할 수 있도록 제공된 환경. 명훈 이는 나 같은 환경을 부러워해 안달인데 나는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걸 모른 내가 처음에 명훈이의 생활을 보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는 듯 했다.

 


중학교 2학년인 동철 이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 후배(명훈 이를 비롯해)들을 앉혀놓고 돈을 많이 모아 백화점 사장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주유소 사장의 금고를 터는데 같이 하자며 백화점 세울 때 높은 자리를 준다고 한다. 허 참. 코웃음이 난다. 나 같으면 절대 그 말을 믿지 않을 텐데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이 6학년짜리들은 믿는다. 세상이 그렇게 쉬울까? 아니다. 돈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 벌어도 백화점 하나 짓는 거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6학년들이라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주유소를 털어 돈을 모으는 건 더러운 짓이다. 결국 그렇게 돈을 모으는 동철이 또한 부정을 저질러 더러운 돈을 가진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 우리가 부자가 되면 사람들은 쩔쩔 맨단 말이야. 니네들은 뉴스도 안 보냐?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 만날 그런 이야기들이 뉴스에 나오더라. 내 말 알겠어?(동철 대사) -p27

 


결국 돈이면 뭐든지 해결되는 세상이 참 씁쓸하다. 이 구절을 볼 때 어찌나 가슴이 저릿한지... 사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돈이면 뭐든지 해결되는 사회였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더러운 사회..매일 같은 정치인들 밥그릇 싸움, 돈에 눈이 멀어 부정을 저지르는 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세상에 정당성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위의 구절을 읽으니 몇 일전 읽었던 인터넷 기사가 생각났다. 그 기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리스 호텔의 상속 녀 인 페리스 힐튼이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40일간 감옥에 있는 다는 기사였다. 놀랐다. 우리나라라면 뒷돈을 써서 어떻게든 풀려났을 텐데 미국 이라는 나라는 저리도 정당하니...우리 나라였다면 생각을 하니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예전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은수의 집은 가난했는데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다 동생을 위해 구걸도 하고 온갖 일을 다 한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아는 형의 한번 혹한 말에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돕다가 누명을 쓰고 사람 하나를 죽이게 되어 감옥에 간다. 이 처럼 은수의 환경과 명훈이의 환경은 다른 바 없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은 명훈이나 은수처럼 어쩔 수 없이 어두운 길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 가슴이 아렸다.

 


마지막엔 명훈이가 주유소를 털기 위해 집을 나서기로 한 새벽에 문 앞에서 망설이다가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아버지가 동회에서 나오는 전동휠체어 덕분에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명훈이로선 희망적인 소식이지만 어쩐 일인지 명훈 이는 손잡이를 꽉 잡고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 명훈 이를 보고 이렇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명훈아, 그냥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방안에 들어가서 자...

 


- 명훈 이는 그 말들을 피하려는 듯 손잡이를 잡은 오른손에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다. 그러자 사라졌던 어둠이 무너지는 흙무더기처럼 확 쏟아져 내렸다. -p149

 


맨 마지막의 구절이다. 과연 명훈 이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작가는 내게 궁금증을 잔뜩 안겨두고 뒷이야기는 알아서 상상하라는 듯이  미완성의 이야기로 끝내버렸다. 아니, 어쩌면 제목처럼 끝이 없는 이야기 같다. 이야기는 계속될 것 이다. 쭈욱-

 


이 책은 초등용이지만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엔 조금 난해한 것 같다. 초등 때 읽는 다면 내용은 잘 파악 못하더라도 동철이 처 럼 막연한 상상을 가져볼 수 있겠지만 중3인 내가 이 책을 읽기엔 세상의 어두운 면을, 현실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밝은 상상을 하지 못하겠다. 마음이 몹시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 번도 이런 책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막상 읽으니 가난한 아이들의 힘든 삶이 뼈저리게 느껴져서 가슴이 묵직하다. 나까지 슬퍼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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