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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아이들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평점 :
그의 영악함과 사악함에 함께 분노했다. 대저택에서 내쫓기게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고난이 닥칠 때면 어느 순간 옆에 와 속을 긁어대는 그를, 할 수만 있다면 가혹하게 다루고 싶었다. 이드리스에 대한 분노로 어느 샌가 아드함과 한 마음이 되어 이야기에 깊게 몰입했다. 아드함이 겪는 고난은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이었다는 생각에 더 분통이 터졌다. ‘따뜻한 전기 장판을 깔아 놓은 침대에 누워 가끔씩 탁자 위의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다가 갑자기 집에서 쫓겨나 추운 거리에서 할 일을 잃은 채 방황한다면 아드함과 비슷한 기분이 들까?’, ‘아니야, 아드함의 발끝만치도 따라가지 못하겠지.’ 온갖 소소한 생각이 내가 아드함에게 연민을 느끼게끔 만들었다.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집중을 잃지 않게 할 정도로 흥미로운 책이었지만 내가 가장 빨려들 듯 읽은 장은 1부, 아드함이었다.
우리 동네에 망각이라는 전염병이 돌지 않았다면 그는 좋은 본보기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망각은 동네에 전염병처럼 늘 창궐한다.
우리 동네 아이들1, 304p.
어쨌든 사람들은 안락한 생활을 더없이 기뻐하며 즐거운 삶을 누렸다. 그들은 자신감에 차 확실하게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망각은 전염병처럼 우리 동네를 휩쓸고 지나가는 걸까?
우리 동네 아이들1, 440p.
“우리 동네 사람들은 옛날 일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거기서 교훈을 얻어 낼 줄을 몰라!”
우리 동네 아이들2, 17p.
‘우리 동네’ 사람들은 매번, 꾸준히, 지속적으로, 망각한다.
“자발 ……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수장이 될 수도 있어.”
우리 동네 아이들1, 205p.
자발이 부동산에서 얻은 수익 가운데 일가친척들의 몫을 받던 날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 그는 자신에게 특별 대우를 하지 않았다. 함단은 이러한 공평함에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간접적으로 그런 생각을 자발에게 전했다.
“자발, 자네 자신을 속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야.”
“저는 저와 샤피까, 두 사람의 몫을 가졌습니다.” 자발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이 동네의 우두머리야.”
우리 동네 아이들1, 298p.
“그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수장이었지만 너무 유했어.” 알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 동네 아이들1, 436p.
때로는 관재인과 수장의 폭력적인 억압 아래서 이들이 증오하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이 관재인과 수장으로 대변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단지 ‘악독한 관재인’과 ‘악랄한 수장’이라는 개별 인물들을 싫어하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반복적으로 망각할 수 있을 리 없다. 수장을 없앤 이후에 평화를 가져온 선지자에게 수장이 되어 달라 부추길 수도 없을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보수주의 정치는 ‘엄격한 아버지’라는 국가 모델을 기반으로 조직된다고 말한다.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한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산다면 비록 자유는 없을지언정 내 한 몸은 편할 수 있다. 사회에서 보수파가 득세하기 쉬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지배하더라도 경제적 풍요로움을 안겨준다면 사회는 만족한다는 것을 우리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작금의 현실 정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은 폭압적인 지배,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폭압적인 지배를 견뎌내고 있음에도 빈곤하기 때문이다. 이 순간 한 사람이 떠오른다. 자비 없이 엄격한 아버지의 화신이 바로 자발라위가 아닌가. 아드함이 돌아가고 싶어했던 '에덴 동산' 역시 엄격한 자발라위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었다.
대학 시절 나의 통학 시간은 왕복 2~3시간 정도였다. 러시아워에 버스를 타게 되면 4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친구들은 내게 학교 근처에서 자취할 마음이 없느냐고 묻곤 했다. 좌석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을 내다보며 온갖 생각에 빠져드는 그 시간이 나름 매력적이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나는 전혀 자취할 마음이 없었다. 나에게 갑자기 주어질 자유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자유와 함께 주어지는 책임과 가사노동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는 게 맞다. 자취를 하게 된다면 아침에 늦잠도 잘 수 있을 것이고 몇 시까지고 친구들과 밤을 새며 놀다 들어가도 나를 혼낼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취 생활을 유지하려면 (내 기준에서) 엄청난 부지런함과 노동이 요구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이 ‘적당히’ 멀어 반드시 집에서 나와 살아야 할 조건이 아님에 감사했다.
자발라위 구역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통치하며 사는 것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관재인이나 수장이 없는 생활은 자유롭긴 해도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일이었을 게다. 이것이 힘에 부쳐 알아서 해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질 때 쯤 자연스럽게 관재인과 수장들이 재등장한다. 사람들 역시 ‘이번 관재인/수장은 괜찮겠지. 설마 그 정도로 악랄하진 않겠지.’하고 희망을 둔다. 망각이 재발하는 과정이다.
‘평화라는 것은 갈등과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갈등이 있는 곳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약함을 보호하는 저항이야말로 평화의 길이다.’(정희진)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평화는 투쟁적이고 격렬한 싸움 이후에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적이고 격렬한 싸움 그 자체다. 망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힘든 일도 꿋꿋이 해낼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더 이상 사소한 것(이드리스)에 분노하며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이 희망적인 것이라면 그 이유는 이 책의 제목이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 우리 동네 '아이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들만큼은 달리 자라줄 것이라 믿는 작가의 소망이 담겨있기에.
“우리 동네에 망각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했다면 이제 이 전염병을 퇴치할 때가, 영원히 근절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2, 203p.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