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p.
..책은 시간의 시험을 뛰어넘으며 장거리 주자임을 입증했다. 우리가 혁명의 꿈에서 혹은 파국적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책은 거기에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가 지적하듯이 책은 숟가락, 망치, 바퀴, 가위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한번 창조된 이후로 그보다 나은 게 등장하지 않았다.

32p.
..그의 강박을 묘사할 수 있는 그리스어가 있다면 바로 포토스라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부재한 것 혹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이며 결코 진정되지 않기에 상처를 주는 욕망이다....

45p.
..책 수집가의 열정은 여행자의 열정과 비슷하다. 모든 도서관은 여행이며, 모든 책은 유효 기간이 없는 여권이다....

53p.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엄청난 진보였다. 수 세기에 걸쳐 돌과 흙과 나무와 금속을 이용해 쓰여오던 언어가 마침내 제대로 된 재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책은 언어가 수생식물의 줄기에 자리를 틀면서 탄생했다. 무겁고 경직된 과거의 재료에 비해 책은 처음부터 가볍고 유연하여 여행과 모험에도 적합했다. 펜과 잉크로 쓰인 긴 텍스트를 품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장차 건설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도착할 책의 단면이었다.

72p.
...당신은 지금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부터 독립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며,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글의 흐름을 침묵 속에서 따라가고 있다. 당신은 어느 방에 있을 것이며,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다시 말해 오직 당신만 볼 수 있는 환영(바로 내가 쓴 글이라는 환영)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곳에서 시간은 당신의 호기심 혹은 지루함에 달려 있다. 당신은 영화 장면과 유사한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그 현실은 오직 당신에게 의존적인 현실이다. 당신은 언제든 이 문장에서 눈을 떼고 외부 세계로 들어가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는 당신이 선택한 현실의 가장자리에 머물게 된다. 이 모든 일에는 마술적 아우라가 있다.

95p.
..우리의 피부는 종이와 마찬가지다. 몸은 하나의 책이다. 시간은 제 역사를 얼굴에, 팔에, 배에, 성기에, 다리에 써 내려간다. 세상에 나온 인간의 배에는 커다란 O, 배꼽이 있다. 그 이후 다른 문자들이 천천히 나타난다. 손금. 마침표 같은 주근깨. 의사들이 살을 갈랐다가 꿰맨 뒤에 남는 흔적들.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 주름, 몸의 반점, 혈관의 모양 등이 하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을 엮어간다.

152p.
..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말하기를, 수 세기 전 주사위, 체커, 숫자, 기하학, 천문학, 문자를 창안한 이집트의 신 토트가 이집트의 왕을 찾아가 그 발명품들을 신하들에게 가르치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에 소크라테스의 말을 옮겨본다. "그러자 이집트 왕 타무스가 글쓰기가 어떤 효용이 있냐고 묻자, 토트가 대답했다. ‘왕이여, 이 지식은 이집트인들을 더욱 현명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기억과 지혜의 묘약이다.‘ 그러자 타모스가 말했다. ‘토트 신이시여, 글의 아버지로서 그것의 장점을 말하시는군요. 글쓰기를 배우고 기억을 소홀히 하면 망각이 유발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책만을 신뢰하여 외부로부터 기억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글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지혜의 외연입니다. 진정한 교육 없이 책을 이해하게 된다면 현자가 아니면서 현자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153p.
..소크라테스는 글로 인해 사람들이 스스로 숙고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 봐 염려했다. 그는 문자의 도움 탓에 지식을 텍스트에 위탁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하여 텍스트를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그것을 소유하는 데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되면 우리의 지울 수 없는 고유한 지혜가 타인의 부속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아직도 유효하다....

155p
...이와 같은 의견을 지닌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창안한 다양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책이다. 나머지는 인간의 몸이 확장된 것이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각의 확장이며, 전화는 목소리의 확장, 쟁기와 검은 팔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사뭇 다르다.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다."

182~183p.
..도시민으로서의 삶의 변화를 마주하던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배우는 데 쏟아부었다. 예속된 세상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배우려 했으며, 자기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어 자신에 대한 비전을 향상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미셸 푸코가 『성의 역사』를 집필하며 그리스인들을 연구할 때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 바로 이 존재의 미학이었다. 고대의 사유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푸코는 이렇게 피력했다. "우리 사회에선 예술이 개인이나 삶이 아니라 사물에 관련된 것으로 변해 있습니다. 왜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없는 거죠? 왜 전등이나 집은 예술작품이 될 수 있고 내 삶은 안 되는 겁니까?"

184p.
..교양을 추구하던 2세기의 누군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가치 있는 유일한 일은 교육이다. 그 외의 모든 재산은 인간적이고 작으며 노력하여 추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 귀족이라는 타이틀은 고대인들의 유물이다. 부(富)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운명의 선물이다. 영예는 불완전하다. 아름다움은 순간적이며 육체는 불안정하다. 육체는 질병과 노화에 스러질 수밖에 없다. 오직 교육만이 영원하고 성스러운 것이다. 지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회춘하면서 과거의 지혜에 새로운 것을 더해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폭풍우 같은 전쟁도 누군가의 앎을 빼앗지는 못한다."

188p.
..에세이스트 필립 블롬(Philipp Blom)이 지적하듯이 모든 수집가는 자신의 목록이 필요하다. 애써 모은 물건들이 언젠가는 팔리거나 도둑맞을 수도 있는 일이다. 소유자의 열정이나 지식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 우표, 책, 레코드판 수집가들에게 자신이 모은 물건들이 언젠가 잡동사니가 되어 고물상에 놓이게 된다는 건 고통스러운 상상이다. 그런 조난을 해결하는 방법이 목록이다. 그렇게 해야 수집한 물건이 하나의 총체로, 예술작품으로 남게 된다.

230~231p.
...수년간 여행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헤로도토스는 증인들이 같은 사건에 대해 모순된 설명을 하고, 사건을 잊어버리거나 평행우주에서나 일어날 법한 식으로 기억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진실이란 파악하기 어려우며, 과거를 있는 그대로 해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역사』에는 "내가 알기로는", "내 생각에는",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사실인지는 모르나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등의 표현이 많다. 현재의 다중관점주의가 있기 수천 년 전, 최초의 그리스 역사가는 기억이 연약하고 덧없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안도감을 찾기 위해 과거를 왜곡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래서 「시민 케인」, 「라쇼몽」 같은 작품에서 그렇듯이,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그 일면이나 다양한 버전들 혹은 무한한 해석만을 보게 된다.

245p.
...심지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유머와 공격의 한계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보통 이 문제에 대한 태도는 그 유머가 우리를 향한 것인지 타자를 향한 것인지에 따라 다르다. 관용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나는 분개하고, 너는 민감하고, 그는 독단적이다.‘

269p.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서 ‘깜둥이‘라는 욕을 지워버린 교수들도 알고 있듯이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동 청소년 도서는 복합적인 문학작품인가, 행동 지침서인가? 수정된 허클베리 핀은 어린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지만 그들에게서 중요한 교훈, 즉 거의 모든 사람이 노예를 ‘깜둥이‘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고 그런 억압의 역사로 인해 그 말을 쓰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놓치게 할 수 있다. 책에서 부적절해 보이는 모든 것을 제거한다고 해서 청년들이 나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나쁜 생각을 인식할 수조차 없게 만들 수도 있다. 플라톤의 생각과 달리 사악한 인물들은 아이들이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하는 전통적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이다. 언젠가 아이들은 악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 그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부터 대량 학살을 저지른 폭군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318p.
...스페인 작가 라파엘 아르구욜(Rafael Argullol)은 『바닷속에서 본 비전(Vision desde el fondo del mar)』에서 자신의 묘비명을 한 단어로 남겼다. "여행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탈출하려고, 다른 관점에서 나를 보려고 여행했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게 되면, 바보들에게 환호를 받는 바보처럼 자신을 최고의 자아로, 자신의 도시를 최고의 도시로, 자신의 삶을 유일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겸손하고 넓은 혜안으로 존재를 바라보게 된다."

349p.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글로 된 텍스트가 온전히 완성되려면 살아 있는 목소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글자에 시선을 고정하고 읽기를 시작한 독자는 정신적이고 음성적인 점유물이 된다. 다시 말해 작가의 호흡이 그의 목에 침범하는 것이다. 독자의 목소리는 글자에 결합된다. 작가는,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독자를 소리의 도구로 사용하는 셈이다. 따라서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독자에게 힘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고대인들은 읽기와 쓰기를 노예가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노예의 기능이 바로 섬기고 복종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한편 독서를 사랑하는 자유인은 다소 의심을 받았다. 오직 텍스트를 듣는 사람, 글자에 자신의 목소리를 종속시키지 않고 타인이 읽는 것을 듣는 사람만이 안전했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그랬듯이, 사람들에겐 독서 노예가 별도로 있었다. 그 노예들은 책을 읽는 순간 자신이기를 멈췄다. 그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나‘를 말해야 했다. 그들은 타인의 음악을 위한 악기에 불과했다. 흥미롭게도 플라톤의 작품이나 카툴루스(Catullus)의 작품에서 이 행위를 가리키기 위해 활용된 메타포는 성매매 혹은 성관계에서 수동적 파트너를 지정하는 데 사용된 메타포와 동일하다. 따라서 독자는 텍스트에 비역을 당하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은 알지도 못하는 작가에게 몸을 빌려주는 난잡한 행위였다. 그것이 시민 계급과 완전히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진 않았지만, 당시에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악습이 되지 않도록 적당히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370p.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창백한 불꽃』에서 이 엄청난 혁신에 놀라지 않는 우리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불멸의 이미지, 사고의 진화, 그리고 말하고, 웃고, 웃는 사람들의 새로운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문자라는 기적에 터무니없이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언젠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전혀 읽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건 기호로 그려진 목소리와 말 없는 단어들의 기적이 있기 전의, 그리 멀지 않은 시대로의 회귀가 될 것이다.

412p.
..망자를 위한 두루마리(rotuli mortuorum)는 명망 있는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양피지 두루마리였다. 전령이 이 두루마리를 가지고 때로는 1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운반하며 고인의 생전에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가면 그들은 그 두루마리에 기도나 애도의 글을 남겼다. 정복자 윌리엄 1세의 부인이자 프랑스 캉에 있는 삼위일체 수녀회의 수도원장이던 마틸드의 두루마리는 그 길이가 20미터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루마리는 프랑스혁명 중에 파괴되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왕실 기록 보관자는 여전히 기록보관관(Master of the Roll)으로 불린다. 프롬프터가 없던 중세 연극배우들은 공연에서 두루마리를 기억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했다. 여기에서 배우의 ‘역할(role)‘이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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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p.
...놀이에 몰두했던 그 즐거웠던 감각은 어른이 되었을 때의 불안한 마음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것 같다.

28p.
.."엄마, 안 죽지?"
..몇 번이고 확인하는 남자아이처럼, 나 역시도 ‘아빠와 엄마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하고 두려워했다. 그 생각이 너무 무서워서 ‘아빠도 엄마도 애초에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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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p.
...하지만 농장이라는 곳은 진심으로 그곳이 내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외로운 공간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농장에 살긴 했지만 나의 일부는 결코 아니었다. 어두워지고 나면 땅이 확장되는 듯했고, 온 세상을 멀리, 점점 더 멀리 밀어내서 우리 농장이 고립된 섬인 듯 느껴졌다. 세상의 나머지는 아주 멀었다....

96p.
..희곡 <포기Porgy>에 나오는 대사를 살짝 바꿔치자면 "행복은 잠시 머물다가 지나간다." 행복의 느낌을—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떠올리기 쉽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일시적인데다 손에 잡히지 않으며, 거품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감을 행복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족감이란 행복함과 비참함 사이의 타협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수많은 순간들을 훗날 되돌아보면 완전한 행복의 순간을 정확히 집어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족감이 지배하던 긴 기간을 기억해 내기는 꽤나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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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언어로는 미처 숨기지 못한 눈가리고 귀막기 식의 현실인식과 허술한 자기객관화 능력. 갖가지 이상으로 치장한 주장들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은 두루뭉실하거나 아예 부재하며, 실질적 ˝내용˝으로 뒷받침하지 못한 채 늘어놓은 언뜻 현혹적인 단어와 문구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영리하게 파악하고 구성된 의도가 보여서 신자유주의를 거부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무색하다. 제목과 책 소개를 보고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대하며 읽은 책인데 실망을 넘어 실소하게 만드는 부분까지 있었다.

23~24p.
..‘나의‘라고 말할 때의 ‘나私‘. 나는 ‘나‘라는 개별적 존재를 확신하고 있지 않다. 나는 언제나 무수한 세균과 세포 들로 이루어져 있는 ‘통생명체holobiont‘이며, 나의 내부에는 생물로서의 복수성이 있다. 이를 전제하고서 ‘나의‘라고말할 때의 ‘나‘, 이는 내 의사 결정 조직의 일인칭이자 언제나 유동성을 띠고 있는 임시 주어다. 끊임없이 요동하면서도 이미 여기에 존재하는 삶을 뭉개버리려고 하는 힘에 최대한 저항하기 위해 박아넣는 쐐기의 일종, 그것을 여기서는 ‘나‘라고 한다....

35p.
..괴로움의 윤곽이 또렷해진 것은 문장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솟구쳐 올라 멈추지 않는 것을 써서 모아보자고, 느닷없이 생각했다. 글을 쓰자 비로소 내가 무엇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지 명확해졌다. 나는 어디를 가든 기호인 것이다! 기호에게는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이 있고, 그에 따르도록 강제하는 힘이 거세게 작용한다. ‘여자‘ ‘딸‘ ‘젊은이‘. 나는 그것들을 핑계 삼아 언젠가 ‘가야 할 길‘을 갈 거라고 상정되었다. 내가 나로 취급받지 못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고통이었다.

47p.
..나는 써야만 한다. 무엇을?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내가 지각한 것, 내가 생각한 것, 나 자신의 족적에 대해 되도록 많이, 되도록 자세히 써서 남겨야 한다. 나는 그런 관념에 홀려 있다. 홀려 있다고 말하면 악령에 씐 것처럼 들리고, 실제로 그건 악령일지도 모른다. 문자로 쓰는 행위에 의해 놓치는 것도 적지 않다. 소설가 나카지마 아쓰시는 단편소설 <문자화文字禍>에서 문자가 사람의 두뇌를 해치는 혼이라고 했다. 눈앞에 있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그림자를 보도록 만드는 혼이다. 문자의 혼에 매료되면 더는 돌이킬 수 없다.

62p.
..여기까지 써두고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렇지만, "죽여버린다"라는 말을 너무 자주 입 밖에 내는 것은 좋지 않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나 지나치게 외쳐대면 살의가 점점 가벼워지고,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어이없는 상대에게 살의를 쏟을 가능성이 생긴다. 살의는 소중히 여기는편이 좋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누구 하나가 사라져서 만사가 해결되는 상황은 거의 없다(주모자를 때려눕혀서 문제를 해결하는 픽션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그런 종류의 묘사는 사회의 존재를 은폐한다고 본다). 나는 자기 테러라면 지지해도, 테러리즘은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122~123p.
..두 사람이 만나는 세미마루의 암자가 위치한 곳은 관문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한 오사카산이다. 도읍과 외부 세계를 잇는 장소, 도시의 외곽. 말하자면 두 사람은 도읍의 질서와 외부 세계의 무질서가 맞붙는 장소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도읍 쪽에서 보면 그곳으로부터 쫓겨난 비슷한 처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곽 쪽에서 보면 ‘중앙‘에서 쫓겨났어도 여전히 천황가의 취미로 계승되어온 비파를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가 방문할 수 있는 고정된 주소를 가진 세미마루와, 스스로 ‘중앙‘의 바깥으로 나와 지저분한 모습으로 홀로 떠돌며 세미마루와 재회한 후에도 방랑을 계속하는 사카가미는 역시 상황이 다르다.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질서를 흐트러트리는 것과 질서 바깥으로 완전히 나가는 것은, ‘중앙‘에 대한 비평성은 동일해도 행동의 성질은 전혀 다르리라고 본다.

160p.
..목욕을 하면서 모든 것에 사무치게 염증이 났다. 큰 실패를 했을 때 느끼는 지금 당장 사라지고픈 절망감이 아니라, 몇 년 뒤의 파멸을 며칠에 걸쳐 확신했을 때 느끼는 허무함이다....

181p.
..그건 그렇습니다. 지금 새삼 드는 생각은, 이불이 갈등의 장이라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천 사이에서 일어난다/잔다, 할 수 있다/할 수 없다, 노력한다/노력하지 않는다, 이상/현실, 그리고 생/사까지 온갖 것이 복잡하게 충돌하니까요. 갈등은 결코 마음 편하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192p.
..나는 병에 걸려서 잘됐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병 때문에 많은 시간을 잃었다. 인간관계도 변해버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도 분명히 존재한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꼼짝하지 못할 때 바라보는 천장, 존재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 속에서 어루만지는 내 두 팔의 감촉은 나의 시야를 적잖이 넓혀준 것 같다. ‘성장‘이라고는 절대로 부르지 않겠지만, 나의 현실은 병으로 인해 확장되었다.

197p.
..이런 기분도 결국은 ‘고질라가 되어 모조리 밟아 뭉개고 싶은 욕구‘와 뿌리가 같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안의 끝없는 살의도 끝없는 호의도, 결국은 대상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무책임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살의를 움켜쥐고 있다 해도 나는 실제로 살아 있는 인간의 에너지를 앞두고 그 살의를 실행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모두가 사랑스럽다 해도 "그럼 지금부터 생판 모르는 이 사람과 손을 잡고 서로 바라보며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눠봐"라는 말을 듣는다면 틀림없이 거부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을 향한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결과를 바란다면 벡터를 정해야 한다. (고질라가 아닌) 나의 신체로 모든 방향을 향해 광역 공격을 해봤자 위력이 분산되니 효과가 없다. 상대에게 공격당할지도 모르는 거리까지 다가가, 대상을 정해서 에너지를 써야 한다(항상 현실적인 결과를 바라는 건 당연히 옳지 않지만, 기왕 한다면 이기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다시 말해 어떤 마음으로 하든간에 숨통을 끊어놓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그 대상과 진심으로 마주해야 한다.

225p.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마음인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추상적이고 커다란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면, 무수한 인간을 자기 뜻대로 지배하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편리한 건 없을 터다. 그 공유된 하나의 마음을 말로 표현해주면 그것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감동받을 테니까.

227p.
..지금은 복잡한 합의 형성을 광범위하게 이루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해 무엇을 느끼는지를 치밀하게 언어화하는 작업, 자신의 우주를 개별적이고도 구체적인 것으로 재인식하는 작업을 당연한 일로 여기며 게으름 부리지 말고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종잡을 수 없고 나조차도 설교 같다고 느끼는 문장 또한 ‘개인‘을 지우지 않기 위한 실전의 일부다. 그때그때 가장 불안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글로 쓰면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 풀린다. 오늘 밤은 어젯밤보다 조금 낫다.

231~232p.
...폭력이 풍경으로 처리될 때 폭력에 대해 가져야 할 의문은 내버려진다. 우리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은 스스로 자명하다고 여기는 풍경 그 자체다. 풍경을 받아들임으로써 폭력을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그 간과가 폭력의 진행에 가담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완전히 신체화해서 뼛속 깊이 받아들인 지 오래인 그 풍경을 몇 번이라도 타자화하여 다시 바라봐야 한다.

235~236p.
...풍경을 부수는 방법은 무한하며, 사소하더라도 그 가치는 경멸당해서는 안 된다. 어느 컵으로 넣은 물이 풀장을 터트릴지 모르니, 어떤 컵도 깨트릴 필요가 없다.

253p.
..아나키스트 인류학자인 제임스 C. 스콧은 저서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에서 ‘아나키스트 유연 체조‘라는 것을 제창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언젠가 자신의 신조로 인해 중대한 규칙 위반을 범하는 날이 오는데, 그 디데이에 원활하게 법을 위반하려면 평상시부터 소소하게 법률을 어기며 몸을 유연하게 풀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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