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무언가를 체험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것을 상상할 수는 없다. 난 녹색의 밤에 하얗게 빛나는 모래벌판 끝 지평선을 본다. 여기서부터 30킬로미터는 됨 직하다. 어째서 거기 탐피코 방향에서 내세가 시작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난 탐피코를 알고 있다. 순전히 상상으로 인해 불안해하거나 순전히 불안으로 인해 환상적으로 되는 것, 곧 신비주의를 난 거부한다. - P-1

...내 생각에, 헤르베르트는 내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데 동료로서 상처를 받은 것 같았지만, 뭘 믿기엔 너무 더웠다. 아니면 헤르베르트처럼 아무거나 믿으면 될 노릇이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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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p.
..그렇다. 정착민과 유목민을 나누는 것은 가짜 양자택일이다. 왜냐하면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여정이며, 머묾도 그 여정을 구성하는 정서·사회·지리·정치적 기착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결코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삶은 불안하고, 발을 딛고 선 땅은 흔들린다"는 말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 위를 걷는 존재다.... - P-1

12p.
..페렉은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따금 충돌은 가혹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현실의 벽 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울타리는 나를 보호하지 않고 가둬 버린다. 틈새를 찾아 파고들어 가고, 길을 내서 잠입해 들어가며, 현대 시인들의 말처럼 "자리 잡기étre dans la place" 위해 뒷문으로 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주체의 자기 전개는 자리를 옮기는 과정을 수반한다. 자리를 옮기는 일은 곧 자기를 뛰어넘는 일이다. 이는 인종 간 장벽, 유리 천장, 울타리의 논리 등 보이지 않는 구조물과 신호 체계들로 인해 방해받기도 한다. 매끄럽게 진입하고 싶지만 닫힌 문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러한 공간은 칸칸이 막힌 채 밀봉되어 있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자유로이 옮겨 다닐 수 없다. 그리하여 칸막이와 벽을 부수고 침입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보다 신중한 방식을 원한다면, 문을 개방하는 주문을 배우고, 규칙을 해독해 내고, 그곳을 지배하는 언어의 세계에 입문해야만 한다. - P-1

15p.
...우리는 우리가 머무는 장소에 이미 익숙하다. 그곳에 자신을 맞추었고 순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착한 삶, 정체된 삶에 길들여 있다. 실존은 그곳에 얼어붙었고, 우리는 그것을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실존은 움직임 없는 것이 되며, 우리는 그 항구성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 P-1

16p.
..정서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나 가족 관계는 움직이는 별자리와 같다. 그리하여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벌어지고, 관계가 구성되거나 재구성되고, 서로 의존하거나 거리를 두는 등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따라 상호적인 자리 게임은 끊임없이 갱신된다. 비어 있는 어떤 자리들은 기억의 장소가 된다. 간절히 원하는 어떤 자리가 있다면, 우리는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리의 문제는 되갚음, 보상, 화해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리의 공백이 고통의 원천이 되는 관계, 타인이나 자기 자신, 또는 구멍 난 역사와의 관계에서 말이다. 우리가 언제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백에 기록하기도 한다. 본문과 나란히 가장자리에 기록된 것은 의미의 개인적인 재전유, 성찰, 권위로부터 거리 두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가장자리에 기록하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로, 언젠가 여백에서만 자신을 주장하던 그 목소리가 텍스트의 심장부를 구성하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 P-1

17p.
...우리는 눈까지 감고 따스한 빛을 즐기기만 할 뿐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내가 이 순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괄호 안에 집어넣은 삽입구와 같은 데 비해, 도마뱀은 자기와의 순수한 일치 속에서 완벽하게 그 자신으로 존재하는 중이다. 빈둥대는 것이 도마뱀의 일이므로Le lézard lézarde.... - P-1

21p.
...라틴어 residere는 산이 무너져 내리고, 파도가 잔잔해지고, 불길이 잦아들고,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묘사할 때도 쓰인다. 그러므로 거주한다는 것은 보다 차분하게 누그러진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운동하는 삶의 격렬함과 충동, 강렬함을 잃어버린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팽이와 같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아주 조금만 이동하는 움직임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는 이처럼 소용돌이치는 에너지의 불안정한 균형 속에서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열망과 운동의 생명력을 결합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 P-1

34p.
..그 정도로 자리가 미리 규정되어 있을 때, 내 실존의 그림이 가장 세세한 윤곽까지 미리 그려져 있을 때, 나를 가시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부재밖에 없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저항하고 자신의 힘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자리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지워 버리거나 사라지는 것이 최후의 방편인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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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p.
..이 옷의 역할은 ‘이런 옷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하고 알려주는 것이었다고 깨닫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그 옷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너를 산 순간 두근거리게 해줘서 고마워. 내게 어떤 옷이 어울리지 않는지를 알게 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고 떠나보내면 된다. - P-1

45p.
..수많은 집의 책장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책이란 주인의 소망 그 자체라고.
..‘먹으면 안 된다‘ ‘사면 안 된다‘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공포가 줄지어 있는 책장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이런 걸 해보고 싶어‘ 하는 바람이 가득한 책장도 있다.
..말하자면 이 서재는 모리카와 씨에게 ‘염원의 숲‘이었다. 그러니 버리기가 어려웠겠지. - P-1

51p.
..정리를 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과거의 베스트셀러‘들이 한꺼번에 버려지는 시기가 있다. 꿈에서 깨어난 듯 설렘이 일제히 끝나고 집집마다 똑같은 책들이 졸업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 P-1

120p.
..가방을, 수첩을, 그리고 양말을 새것으로 바꿀 때마다 나는 ‘잘 가!‘ ‘안녕!‘ 하고 인사를 나누면서 물건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건과 주인 사이에 놓인 ‘기억의 영혼‘ 같은 것이 내게 말을 거는 거다. 사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결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예로부터 무수히 많은 신을 숭상했고 물건에 깃든 혼을 두려워했다. 그 목소리는 분명 누구의 귀에도 전해진다. 단지 그것을 알아차리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 P-1

126p.
.."괜찮아. 이 찻잔의 역할은 이렇게 할머니가 너를 끌어안을 계기를 만들어주는 거였어. 제 역할을 다 하고 깨졌으니 그걸로 된 거야. 기쁘게 보내주자."
..만나는 물건에도 헤어지는 물건에도 반드시 저마다의 역할이 있어 우리의 삶을 조금씩 바꿔간다. 물건을 대하는 내 태도의 기본은 이 다정한 마녀에게 배운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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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p.
...개인 간 수평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공공성은 불투명하지만 숨이 통한다. 반면 하나의 통일된 제3자를 통해 구축된 공공성은 추상적이면서도 투명하다. 이 제3자는 역사 시기마다 다양한 형태와 효과로 나타난다. 예컨대 고도로 종교화된 사회에서는 제3자가 신일 수 있으며, 모든 개인은 신에게 충성하고 책임을 진다. 이 제3자는 화폐일 수도 있다. 짐멜이 분석한 것처럼, 화폐는 모든 것을 정량화하고 모든 사람이 통일된 합리성에 따라 계산하고 예측하도록 만든다. 또한 이 제3자는 상품일 수도 있다. 마르크스가 명확히 밝혔듯이, 상품 생산과 거래의 논리는 다양한 사회적 차이를 제거하고,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상품의 속성에 종속시킨다. 이 제3자는 정치적 권위일 수도 있다. 벤담이 설계한 원형 감옥은 고도로 투명하다. 모든 죄수는 감옥 중앙의 감시탑에 있는 병사를 핵심 기준점, 즉 만능에 가까운 유일한 제3자로 삼고, 죄수끼리는 소통하지 않는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부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사생활도, 실질적 차이나 실질적 연결도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전히 투명해진다. - P-1

34~35p.
..지방의 개천용의 낯섦은 사회생활의 ‘투명하지만 숨 막히는‘ 특성을 반영한다. 그들 삶의 투명성은 성장 과정과 성적이 체제가 정한 기준과 기대에 부합함으로써 의문의 여지 없이 인정받은 데서 드러난다. 반면 그들이 느끼는 숨 막힘은 개인의 고뇌, 망설임, 괴로움을 여유 있게 드러낼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인정‘을 받았지만, ‘관심‘이 부족했다. 인정은 시스템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한 사람의 성과를 평가하고 보상이나 처벌을 결정하는 것이다. 관심은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이해하는 것이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 고민, 갈등, 그리고 역사를 발견하는 행위다. 이는 시험이나 판단, 보상과 처벌을 수반하지 않는다. - P-1

38p.
...모두가 비슷하다는 인식은 호기심을 잃게 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흥미마저 사라지게 한다. 모두가 같다는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비슷하다는 의미이며 언제든 경쟁과 갈등이 일어날 수 있음을 뜻한다. 모두가 너무 닮았기에 상대를 파헤치려 하면 자신의 상처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모두가 똑같기 때문에 상대방의 고생을 특별히 동정할 가치가 없고, 상대방의 성공도 특별히 축하할 가치가 없으며, 일에 대한 열정도 의심스러울 뿐이다.... - P-1

44p.
..안생식 사고는 개방적이고 끊임없이 다양한 경험과 생각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교정하도록 한다. 이러한 사고의 목적은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지 않고, 심지어 명확한 방향조차 없다. 그러나 그 단계마다 경험에 더 풍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을 현실에 더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사고 과정은 물속을 헤엄치거나 숲속을 거니는 것과 같아, 감정적·신체적 공명을 일으킨다. 마치 홀륭한 예술과 철학 작품처럼 사고를 경험 속에 뿌리내리게 하고, 경험을 사고 속에서 자라게 하며, 우리를 우리 환경 속에 깊이 자리 잡게 한다. 사고와 경험은 덩굴처럼 얽혀 우리 몸을 단단히 감싼다. 하지만 안생식 사고는 개인이 일방적으로 환경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보수와 진취를 결합해야 한다. 보수는 현실 조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형성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취란 이를 바탕으로 현 상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기존 조건을 충분히 창의적으로 활용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심지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진취적 면모가 없다면 그것은 사고가 아니다. ‘비사고‘ 혹은 ‘사고 거부‘의 평온한 나날과 ‘소확행‘은 오늘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 P-1

58p.
..하지만 샤오둥의 그림은 제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가 말하거나 쓰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가 쓰는 글은 모두 매우 직설적이며, 직접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감정조차 서정적이지 않은데, 제가 이해하는 서정적이라 함은 감정을 비교적 응고시킨 뒤 다시 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그러지 않고 감정과 행동을 함께 드러냅니다. 그의 기록은 매우 직설적이지만 저는 그의 한 글자, 한 문장마다 무게와 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그에게 물어야 합니다. - P-1

69~70p.
..확장해서 말하면, 지금 우리 삶은 너무 편리한데 이 편리함은 성실함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편리하면 다양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게 지나치면 야만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것이 교류 없이, 스스로를 교정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면, 그게 바로 야만이 되는 거죠. - P-1

74p.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먼저 아주 구체적인 사람을 보고, 그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다음 분류적 사고방식을 통해 지도를 도구 삼아 그에게 좌표를 부여하되,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는 겁니다. 이 감정은 어느 정도 개인의 생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느 정도는 일반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표준화된 분류 방법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분류 자체는 각자 스스로가 생활을 관찰하면서 얻은 이해에서 나와야 합니다. - P-1

82p.
...사고를 거치지 않은 생활은 살 만한 가치가 없고, 사고에 지나치게 몰두한 생활은 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변증법적 관계입니다. - P-1

137p.
...우리는 자주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듣지만 사실 그것들도 직접적인 의미가 있진 않잖아요.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일종의 작은 소설을 듣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의 작은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능과 의미를 따지자면, 그런 인생의 경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P-1

140~141p.
...일부 학자는 두려움이 일종의 멤버십처럼 작동한다고 봅니다. 특정 사회 계층에 도달하거나 그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만이 두려움을 표현할 자격을 가지며, 그 계층의 구성원들은 서로 두려움을 공유하고 전달하면서 특정 두려움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강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한다고 말합니다. 앞서 언급한 중산층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범죄에 대한 걱정을 계속해서 표현함으로써 단지 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보안 요원 수를 늘리는 등의 조치를 끌어냅니다. 결국 이는 자신의 신체와 재산상의 안전 및 부동산 가치 보호라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이 됩니다. 반면 하층 사람들은 대개 두려움을 표현할 자격이 없거나, 설사 두려움을 표현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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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p.
..그러나 영어반 시절에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장면은 역시 유인물을 넘겨주며 내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던, 전교 학생회장의 ‘부드러운 적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환대보다 적대를, 다정함보다 공격성을 더 오래 마음에 두고 기억한다. 어떤 환대는 무뚝뚝하고,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환대였는지 적대였는지 누구나 알게 된다. - P-1

31p.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좋은 곳에 온 사람들끼리 환대하는 것은 쉽다. 원치 않았지만 오게 된 곳,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다. - P-1

31~32p.
..그런데 로봇 3원칙은 열여섯 살의 나에게 왜 그렇게도 인상적이었을까. 저 3원칙에 ‘로봇‘ 대신 ‘아이‘를, ‘인간‘ 자리에 ‘부모‘를 넣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한창 사춘기였던 그 시절의 나는, 부모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부모의 지시를 따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에 의해 창조되었고 부모의 통제하에 있었다는 점에서 나와 로봇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 P-1

63p.
...잡초가 이름을 모르는 식물을 의미하듯 잡귀는 이름이 잊힌 귀신이다. 잡귀가 아닌 귀신은 그 이름을 불러줄 누군가가 있다. 이름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불러 초대하면서 제사가 시작된다. - P-1

72p.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 P-1

77p.
..‘테세우스의 배‘는 조금씩 변했지만, 법과 권위, 대중의 동의가 그 배가 테세우스의 배임을 인증해주었기에 계속 테세우스의 배로 남을 수 있었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테세우스의 배보다도 더 큰 변화를 겪는다. 이십대의 나는 길에서 마주쳐도 지금의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 십대의 나를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이 과거의 그 사람과 같은 존재라고 애써 믿으며 살아간다. 변하지 않은 어떤 것들을 애써 찾아내, 사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 P-1

80p.
...모든 지도에 축척이 있듯이 실제 세계는 이야기의 세계를 초과한다. 다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뿐. - P-1

102p.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 P-1

113p.
...순교자와 양심수들에게 세이프워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배교‘와 ‘전향‘이면 고문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안전어를 쓰지 않았다. 원하면 내려올 수 있는 러닝머신과 처벌 기계로서의 트레드밀. 아예 안전어가 없는 무의미한 시련과 있어도 내뱉지 않고 감내하는 극한의 고통. 그것은 그저 의미의 있고 없음의 차이일까? 만약 그렇다면 언젠가 ‘잘 통제된 고통‘이 아닌, 그야말로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끝 모를 고통에 직면할 때, 나는 무엇으로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고통이 닥치지도 않았는데 앞질러 두려워하는, 아니 혐오하는 이런 증상은 전세계적 현상이 되어 있다. - P-1

135p.
...내가 어딘가 잘못된 곳에 와 있고,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다시 ‘이탈‘해야만 할 것 같은 이 익숙한 충동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 P-1

137p.
..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 P-1

143p.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 P-1

169p.
..지금은 고전이 된 두 편의 논문에서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 (1979)과 버나드 윌리엄스Bernard Williams (1981)는 인간의 도덕성이라는 것이 일종의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논증한다. 이른바 ‘도덕적 운moral luck‘이다. 이들은 도덕적 평가는 운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과 무관해야 한다는 칸트의 주장을 반박한다. 거칠게 말해 1930년대 독일에 살게 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치의 악행을 방관하거나 그에 가담하게 되는데, 이는 도덕이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 게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고귀한 행위를 하기가 쉽다. 이런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P-1

192~193p.
...내 삶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무한한 삶들 중 하나일 뿐이라면, 이 삶의 값은 0이며(1/∞=0) 아무 무게도 지니지 않을 것이니, 존재의 이 한없는 가벼움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더는 단 한 번의 삶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태어나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을 몰랐기에 전혀 애통하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도 내가 죽었음을 모를 것이고, 저 우주의 다른 시공간 어디엔가는 내가 존재했는지도 모르는 내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위안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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