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p. ..음악 업계의 현주소를 이렇게나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하시모토의 얼굴에는,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시대 변화와 맞닥뜨려도 도망치거나 얕보지 않고, 끈기 있게 매달리며 어떻게든 새로운 광맥을 찾아 자기 자리를 착실히 일궈온 사람 특유의 주름이 깊게 패어 있다. - P-1
34p. ..성공한 젊은이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놈들은 다 저렇다. 지금까지 해온 일,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눈에 보이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실감이 기분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미디어에는 이미 되찾을 수 없는 것들을 머릿속에 늘어놓으며 후회하는 인간의 얼굴 따위는 비치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이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인생에 그런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미리 배워둘 수가 없었다. - P-1
39p. ..나와 세상에 대한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딸인 나에 대한 해상도를 계속해서 낮추고 있는 그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 P-1
45p. ..그 아이들이 부끄럽다고 선명히 감각할 수 있는 건 지금은 교실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유행하는 것들을 제 것인 양 손에 쥐고 휘두르는 그 아이들이 무서웠다. 주체성 없는 풍향계 같은 가벼움은, 언젠가 나를 혐오의 대상으로 겨냥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표리일체였다. ..그래. 풍향계 같은 거다. ..최첨단 유행을 포착하는 심미안이 있는 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을 파악해서 그 시점의 다수파에 속해 있지 않으면 불안해할 뿐인 풍향계. - P-1
93p. ..착취하는 쪽은 언제나 책임을 추궁당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 애초에 그런 위치를 교묘하게 구축했기에 착취하는 쪽에 설 수 있는 것이다. - P-1
160p. ..시야를 좁고 작게 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나는 손안의 가챠 모형을 바라본다. ..좋아하는 마음을 출발점 삼아 한 대상을 세밀하게 파고들어갈 때 비로소 넓어지는 앎이, 분명 존재한다. - P-1
228~229p. ..나는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의 나이도 성별도 모른다. 가족관계도 출신지도 취미도,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만약 지금 이 사람에게 뭔가를 프로모션해야 한다면,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조건을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사람에게는 그 어떤 서사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사에 지나치게 몰입해 나와 타인의 경계를 잃을 정도로 시야가 협소해진다. 그 결과 지금까지의 판단 기준이 변한다. 그런 일이 이 사람에게는 지극히 일어나기 힘들어 보인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설령 구니미의 나이나 성별을 알게 된다 한들 그 데이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니미가 20대 여성이든 40대 남성이든, 그 데이터에 기반해 뭔가를 프로모션했을 때 구니미가 고개를 끄덕이는 미래가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어떤 수를 써도 이 사람의 시야와 판단 기준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뭔가를 시도하려는 상대의 속셈을 끝까지 꿰뚫어 보려 할 것이다. ..그게 이 사람의 기질이다. - P-1
345p. ..나이를 먹을수록 가족조차 운명 공동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는 누구와 교류할 때든 내가 가장 강해 보이는 면만 내세우고, 그 상태가 무너지기 전에 다시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루하루가 그런 일의 반복이다. - P-1
360p. ..모른다. 알 리가 없다.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을 살 것이다. ..그런 서사에 올라탔으니까. - P-1
377~378p. ..착각했던 거다. 나의 경우, 시야는 넓히기보다 좁혀야 하는 것이었다. 지방의 시골 마을에 살면서 "눈앞의 손님이 웃어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지요"라거나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깁니다" 같은 말을 하는 카페 주인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온갖 분야의 스타들보다 삶의 본질을 왠지 더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듯이, 시야를 좁히면 자연히 나 자신을 검열하는 시선은 줄어들고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면서 몸과 마음은 안정된다. - P-1
411p. ..덕질을 비웃는 사람들은 이 기분을 모른 채 살아가는거라 생각하면, 그들의 삶이 아무리 바르고 정당한 것들로 지탱되고 있다 해도 그 떡은 전혀 커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하든 정답인지 오답인지를 따지는 사람은 평생 누군가의 심판을 살피며 살면 된다. 그 세계에서 올바르게 존재하기 위해 시야를 계속 넓히고, 어느 각도에서 봐도 흔들리지 않는 진실을 찾아내려 눈을 가늘게 뜬 채 살아가면 된다. 그것 역시 결국 하나의 서사에 포섭되어 있을 뿐이니까.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는 교리를 내건 교회에 다니고 있을 뿐이니까. 진정한 가치라든가, 열정은 원래 이런 데 쏟아야 한다는 식의 온갖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해방된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이 충만함을 평생 모른 채 살아가면 된다. ..사람을 속이기 위한 서사라고? ..결국 누구든 자기가 믿을 서사를 정해서 살아갈 뿐이다. 그게 세계 평화든 자기 계발이든 음모론이든, 다들 각자의 마약으로 자기 뇌를 녹이면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것뿐이다. 어차피 전부 마약이라면, 옳다느니 이상하다느니 훌륭하다느니 비정상이라느니 하는 논쟁은 무의미할 뿐이다. - P-1
421p.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거리의 풍경은 바뀐다. 풍경 그 자체는 같아도 풍경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뿜어내는 정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정보들이 엮여서 태어나는 서사도 완전히 다르다. - P-1
453p. ..하지만 ‘시야를 더 넓혀 생각해보면‘이라는 생각은 영원히 반복할 수 있다. ..무엇이 진정 상대를 위한 것인가, 무엇이 지금 가장 본질적인 행위인가 하는 질문은 ‘시야를 넓혀 생각해보면‘이라는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그 답을 끊임없이 뒤집어버릴 수 있다. ..즉, 어느 각도에서 봐도 틀림없이 본질적으로 옳은 답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어느 지점에서는 ‘이 시야에서, 어느 정도의 확률로, 틀릴 수도 있다‘라는 각오를 다지고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가능한 한 본질적이고 싶은 나머지, 달리 말하면 누구에게도 공격받고 싶지 않아서 시야를 넓히려고 시점을 자꾸 뒤로 빼다 보면, 어느샌가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을 만큼 나 혼자만이 모든 것에서 멀어져 있게 된다. ..그러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각도에서 내려지는 심판을 조감할 수 있을 만큼 시야를 넓힌다는 것은, 누구와도 무엇과도 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P-1
457p. ..하지만 그렇게 기이하다 여겨질 법한 순간들을 뛰어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 들어 몸소 통감하고 있다. - P-1
476~477p. .."하지만 그건 바꿔 말하면, 자기 자신이라는 자원을 남김없이 다 써버리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모두에게 통용되는 잣대가 없어졌다는 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자신을 완전히 소진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외부의 심판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 P-1
480p. "...이렇게 모든 사상이 쉽게 반전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어떤 한 가지를 끝까지 믿는 행위에 광채가 깃듭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흔들리는 지금, 확고한 신앙 대상이 있고 그것을 위해 나 자신을 남김없이 써버리는 모습 자체에 희소가치가 생기는 거죠. 설령 그 대상이 사회 통념상 무가치하거나, 심지어 인류 존속에 해가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요. 객관성을 동반하지 않는 저돌적인 직진성, 그것만이 지금 이 시대에 작동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입니다. ‘이런 일을 열심히 하다니 대단하다‘가 아니라,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진심으로 살고 있어서 눈부시다‘. 그런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겁니다." - P-1
481p. ..정답인지 아닌지. 본질적인지 아닌지. 그런 건 모른다. 안다고 생각하게 된들, 시야를 넓히면 금세 답은 뒤집힌다. ..하지만 이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만은 안다. - P-1
523p. ..사람을 움직이는 건 넓은 시야로 증명된 완전무결한 옳음이 아니다. 좁은 시야를 빈틈없이 가득 채우며, 모든 시시비비를 튕겨내버리는 강렬한 확신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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