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p. ..7월의 어느 날 오후, 두 남자가 38번가의 한 건물에 기대서 있었다. 둘 다 대머리에 입에는 시가를 물고, 목줄을 맨 작은 개를 한 마리씩 데리고 있었다. 요란한 소음과 열기, 먼지, 혼란 속에서 두 마리의 개는 쉬지 않고 짖어댔다. 두 남자 모두 험상궂은 표정으로 자기 반려동물을 쳐다보았다. "왈왈, 그만 좀 짖지 못해?" 한 남자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왈왈, 그래 계속 짖어라." 다른 남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본 두 남자가 씩 웃었다. 그들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번졌다. 그들은 공연을 했고, 나는 그 공연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혼돈 속에서 그냥 증발해버렸을지도 모를 그 주고받음에 내 웃음이 형태를 부여해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덜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 거리가 꽤 자주 나를 위한 작품을,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내가 꺼내 보고 또 꺼내 보는 반짝이는 경험의 빛을 탄생시킨다는 걸 깨달았다. 거리는 내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내게 해준다. 거리에서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 P-1
21p. ..친구 관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서 활기를 얻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찬 상태여야 만날 수 있는 관계다. 첫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해물을 치운다. 두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정표에서 빈 곳이 있는지 찾는다. - P-1
22p. ...표현하는 능력을 갈망하지만 우울을 떨쳐낼 수 없는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다. 뉴욕 거리는 자기 자신의 역사라는 징역형으로부터 도망쳐 열린 운명이라는 가능성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 P-1
40p. ..남자의 머리가 어깨 위로 바보같이 축 늘어진다. "아녜요." 그는 참을성 있는 태도로 내게 설명한다. "내가 말하게 해줬잖아요. 그거는 나한테 말하는 거랑 똑같은 거지." - P-1
52p. ..사랑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준비된 순간‘이란 여전히 삶의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다.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여러 요소가 충분히 결합하는 그 순간 말이다. 그 순간에 응답하는 사람은 결코 그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 P-1
66p. ..생각해보면, 나는 어떤 것에는 ‘네‘라고, 또 어떤 것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다 보니 어느새 혼자 살게 되었다. 대답하는 일 자체가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결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내 대답에는 오직 내가 중대하게 관심을 가졌던 한 가지만이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 나는 외로움을 두려워하게 되는 일을 경계했다.... - P-1
78~79p. ..그러자 내 우울이 얼마나 평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평범하고 예상 가능하며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 매일의 우울, 그게 다였다. 매일의 우울은 에너지를 갉아먹는다는 걸 나는 마치 처음인 양 깨달았다. 에너지가 없으면 내면의 삶이 사라지고, 내면의 삶 없이는 활기도 없으며, 활기가 없으면 작업을 할 수 없다. 매일의 우울에 사로잡힌 삶은 범상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동시에 바로 이것이 외로움임을, 외로움 그 자체임을 깨달았다. 외로움이란 내면의 삶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외로움이란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차단당한 상태였다. 외로움이란 바깥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었다. ..내 우울은 슬픔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슬픔은 사랑보다도, 결혼보다도, 우정이나 정치적 견해보다도 오래된 것이었다. 그 슬픔은 내 소중한 친구, 친밀한 친구였다. 나는 여러 해에 걸쳐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해왔지만, 이것은, 이것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슬픔은 나라는 집을 마음대로 사용할 권한을 넘겨받은 감정이었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을 계속 지켜내지 못하리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정보를 흡수하기를 거부할 것이었다. 나는 잊어버릴 것이었다.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것이었다. 다시금 어쩔 줄 모르게 될 것이었다. 통찰은 그것만으로는 구원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날마다 새롭게 말끔해져야 했다. 걷는 일이 나를 정화시켜주었고 깨끗이 씻겨주었지만 오직 그날뿐이었다. 그 일이 매일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걸어야 할 운명이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함께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것. - P-1
95p. ..나는 처음으로 권력에 관해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모욕을 당한 급사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갇혀 있다는 걸, 늘 누군가는 굴욕을 당해야만 하는 노동하는 삶에 붙들려 꼼짝 못 하는 신세라는 걸 알게 되었다. - P-1
123p. ..그곳은 무분별한 갈망에 따라 앞날이 가늠되는 세계였다. 그곳의 모든 것이 그 무분별함에 달려 있었다. 무지한 채 남아있기 위해서는 힘겨운 노력이 필요했다. 모르는 채 남아 있는 일에 실패한 사람들은 고립되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누군가의 굴욕을 필요로 했다. - P-1
135p. ...그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나는 내가 그럴듯한 말을 했는가보다 누군가가 내 말을 온전히 경청해주었음을 떠올렸다. 그런 온전한 경청의 경험 덕분에 나는 할 말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내 기억이 닿는 때부터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내게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게 하려고 투쟁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온전한 경청을 얻었다.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서둘러 말할 필요도 없었다. 충분히 생각한 다음에 말해도 괜찮았다. - P-1
165p. ..갑자기 말들이 내 안에서 죽어버렸다. 익숙한 생각이 스스로 완성되기를 거부했다. 나는 내가 실은 나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던 이야기는 언제나 나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결코 로더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고, 그의 전체를 바라본 적도 없었다. 나는 필요할 때마다 그를 이용해왔다. - P-1
197p.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상대적으로 말할 때만 흥미로운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면서도 실은 잘 모른다. 그리고 은밀하게 그 반대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내가 실은 조금도 홍미로운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을 매일 직면하면서 뚫고 나가기란 겁나는 일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들이 문제일 거야. 내가 문제일 리 없잖아. 그런 다음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냐, 정말로 문제인 건 저 사람들이 아니고 나야. 세 번째 생각 ‘문제는 저 사람들과 나 양쪽 모두에 있어‘에 도달하는 데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극서부에서 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생각 사이를 이리저리 오갔고, 세 번째 생각은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 P-1
216p. ..사실은 정말로 혼자 있는 게 더 쉽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것을 해결해주려 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그럴 때 우리는 결핍과 함께하게 되는데, 그건 어째선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결핍은 가장 나쁜 방식으로 우리가 정말로 혼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 우리의 상상을 억누르고, 희망을 질식시킨다. 우리가 처음에 갖고 있던 활기를 억누른다. 사기가 꺾이고 무기력해진다. 무기력은 일종의 침묵이다. 침묵은 공허함이 된다. 사람은 공허함과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그 압박감은 끔찍하고, 사실 참기 힘들며, 견뎌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압박감을 견디다 보면 사람은 폭발하거나 무뎌지고 만다. 무뎌진다는 것은 슬픔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 P-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