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p.
..그 새벽 이래로 나는 삶에 대해 희망을 품지 않았다. 내게 희망이란, 실체 없이 의미만 수십 개인 사기꾼의 언어가 되었다. 절망의 강도를 드러내는 표지기, 여섯 시간이면 약효가 사라지는 타이레놀, 반드시 그리되리라 믿고 싶은 자기충족적 계시, 그 밖에 자기기만을 의미하는 모든 단어.

97p.
..그때 나는 승주가 ‘꽃다운 존재‘라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했다. 사람 구실 못한다고 화를 내느라, 앵무새한테도 주어지는 저 따뜻한 연민을 품어보지 않았다. 어쩌면 나 역시 꽃다웠던 적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2p.
..렌소이스 사막의 생명체는 마치 아베 코보가 <모래의 여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강한 적응력을 이용하여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일 것이다....

34~35p.
..물과 공기를 제외하면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천연자원은, 모래다. 건축용 자재나 유리뿐 아니라 반도체 칩, 스마트폰 액정, 실리콘 등 모래의 변신이 너무나 신묘하기에 잊고 지낼 뿐. 컴퓨터, 콘크리트,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대도시를 상기하면 인류가 이룩한 현대 기술문명 자체가 사막과 다를 바 없는 ‘사상누각‘이다.

95p.
..배낭여행자들이 통상 ‘천국‘이라 부르는 곳은 산천이 아름답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냥 좋은 곳이다. 처음엔 히피들이 하나둘 머물기 시작하고, 이어서 배낭여행자 무리가 오가고, 나중엔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쯤 되면 숙박업소, 식당, 클럽들이 우후죽순 골목마다 들어선다. 그렇게 해서 ‘심심한 천국‘이 ‘신나는 지옥‘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나는 3년에 걸쳐 볼리비아의 사마이파타를 세 차례 방문했다. 그때마다 사마이파타는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초창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113~114p.
..인류는 오랜 세월 대지의 길을 따라 서로의 풍습과 문화를 주고받았다. 한 달을 35~36일, 1년을 10개월로 계산했던 켈트족은 한 해의 끝으로 여겼던 동지에 ‘귀신을 피하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속을 파낸 ‘순무 안에 불을 켜고‘ 밤새 돌아다녔다. 켈트족의 ‘송년 의식‘은 1년을 12개월로 계산하던 기독교로 흡수되면서, 10월 마지막 밤에 열리는 ‘핼러윈‘이 되었다. 이란에서도 동지 때면 변장한 아이들이 이웃집 앞에서 접시를 두드려 견과류를 받았다. 아제르바이잔에선 아이들이 이웃집 문 앞에 바구니를 두고 나무 뒤에 숨어 사탕을 기다렸다. 배달족 또한 동지를 한 해의 마지막 날로 여기던 시절 ‘귀신을 쫓기 위해 붉은 팥죽을 뿌리고‘ ‘밤새 등불을 켜고‘ 마을을 쏘다니며 놀았다. 동지, 핼러윈, 카니발, 홀리, 삐마이 등 송년 혹은 새해맞이 축제를 부르는 이름만 저마다 달랐을 뿐이다.

168p.
..나는 악사라이 소재 카라반세라이로 들어섰다. 현존하는 카라반세라이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했다. 수용 인원 3,000명, 짐 실은 낙타가 들고 날 수 있을 13미터 높이의 정문, 닫으면 그 자체로 요새였다. 안마당을 가로질러 곧장 낙타가 머물던 방으로 들어갔다. 유적을 방문할 때마다 나만의 관습이 있다. 첫 번째 유물이나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가 ‘환청‘이 들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낙타를 묶던 돌기둥 사이를 걷노라니 환청이 차츰차츰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낙타 울음소리, 각기 다른 부족어로 떠드는 짐꾼들의 대화, 나는 환청을 따라 햇볕 내리쬐는 마당으로 다시 나왔다. 나무 위에선 새들이 짹짹거렸고, 상인들이 피로를 달래기 위해 저마다 자기 고장의 악기로 연주하고 합주를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경험한 최고의 환청이었다.

182p.
..무더운 나라, 외딴 오지에서 지내다 보면 차가운 맥주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맥주는 ‘문명의 맛‘이다. ‘냉장고‘가 돌아가지 않으면 시원한 맥주 맛을 볼 수 없으니까. 차가운 맥주가 그리우면 도시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신호다. 아이들에겐 ‘칫솔‘을, 어른들에겐 ‘의약품‘을 드린 후 마을을 떠났다. 오지 부족민의 호의에 사탕이나 초콜릿으로 답례하면 그들의 치아를 망치고, 티셔츠로 답례하면 그들의 고유문화를 망친다.

194p.
..십승지지(十勝之地) 같은 마을이었다. 전쟁, 흉년, 전염병 같은 환란이 온 나라를 뒤덮을지라도 안심할 수 있는 곳. <정감록> 등 예언서에 등장하는 십승지지는 첫째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자급자족 가능하고, 둘째 물이 풍부하고, 셋째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야 한다....

267~268p.
..중남미 전설에 따르면 세계는 원래 까만색과 흰색밖에 없는 흑백이었다. 그러다 신이 바라보기에 너무 지루해서 여러 사물들로부터 빛을 뽑아내 다시 색을 칠했다고 한다. 그중 ‘소년들의 웃음‘에서 추출한 색깔이 노란색이었다. 카르타헤나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색이다. 노랗게 칠한 건물과 노랗게 담벼락이 연이은 골목들. 그래서 마르케스의 소설에선 노란 나비가 그토록 자주 날아다녔던 걸까?

301p.
...그런 사실을 떠올리면, 고대, 중세, 근대, 현대, 그 어느 시대에나 ‘머무는 자‘와 ‘떠나는 자‘가 동시에 존재했으며, 지금도 동시에 존재한다. 머무는 자와 떠나는 자, 두 무리를 가르는 기준은 ‘현재, 이곳에 적응하는 능력의 차이 ‘일 수도 있고, ‘현재, 이곳보다 미래, 저곳으로 가고자 하는 기질의 차이‘일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p.
..따라서 일본이 아메리칸 스타일을 받아들여 도용하고 수출하는 이야기는 문화가 어떻게 세계화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쟁이 끝난 뒤 지리적·언어적 고립 때문에 일본은 서구의 자유로운 정보 유입이 제한됐고, 이 점 덕에 미국의 풍습이 언제 어떻게 일본으로 들어왔는지, 이렇게 들어온 뒤 사회 구조의 일부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는지 이례적으로 쉽게 추적할 수 있게 됐다. 세계화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과정이고, 문화적 가닥은 시간이 흐르며 더 복잡하게 얽힌다. 일본의 패션은 첫 번째 가닥이 고리를 만들어 매듭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완벽한 사례다.

52p.
..아이비 학생들은 옷을 입을 때 또 다른 세련된 면이 있었는데, 신발의 구멍, 닳아빠진 셔츠 칼라, 재킷 팔꿈치의 패치 등 옷이 산산조각날 때까지 입는다는 점이었다. 일본의 많은 신흥 부유층은 이런 근검절약에 숨이 막히겠지만, 오랜 부자집 출신인 이시즈는 여기서 아이비 패션과 ‘헤이 하보(hei‘i habo)‘의 한량 같은 거친 룩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냈다. 헤이 하보는 20세기 초반, 일본의 엘리트 학생들이 허름한 유니폼을 입으며 명망을 과시하던 현상이다. 아이비의 옷은 미묘한 조심스러움으로 자신의 신분을 주변에 알렸고, 이시즈의 몸에 흐르는 오랜 부자집 가문의 피는 그걸 느꼈다.

59p.
...야마기와는 훔친 차에 여자친구를 태워 3일 동안 도주한다. 경찰은 손쉽게 이 젊은 연인을 체포하는데, 이 가벼운 범죄는 야마기와가 체포당하면서 일본식 영어로 "오, 미스테이크!"라고 외치면서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조사를 받는 동안 야마기와는 일본어에 무작위로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대답했고, 뜬금없이 ‘조지(George)‘라고 쓴 타투가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모든 언론이 사건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오, 미스테이크‘는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펀치라인이 됐다. 이 유사 영어 캐치프레이즈는 전후의 젊은이들의 극성 맞은, 이제 명백히 드러난 무분별한 미국 문화 수용을 완벽하게 상징했다.

83p.
..이시즈는 아이비 패션이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고귀한 삶의 방식에 대한 길이라는 확신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아이비 패션이 지난 수많은 유행처럼 흥하다 사라지는 일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던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제가 만든 건 트렌드가 아닙니다. 저는 새로운 관습을 만들고 싶습니다."

134p.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일본의 전통문화에 대한 존경심은 땅에 떨어지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가치를 열망했다. 당시 VAN 재킷은 이상적인 미국식 삶을 제공했다. 이시즈는 재능 있는 디자이너이자 경영자였지만, 부는 문화의 차익 거래로 만들어냈다. 구로스는 "VAN 재킷의 모든 일은 일본에는 없지만 미국에는 있는 걸 만드는 거였죠. 우리는 그저 카피를 했지만, 아무도 우리가 뭘 하는지 정확하게 깨닫지는 못했죠."라고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3p.
..한마디로 어른이 되면 옷의 사이즈 감각이 중요해진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체형이 있다. 자신의 체형에 알맞은 사이즈를 파악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차림도 가능할 것이다.

57p.
..그러나 색다른 것을 만들면서도 줄곧 변함없이 추구한 것이 있다. 그것은 ‘디자이너는 작가가 아니다‘라는 것. 작가는 대중이 싫어하더라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포착한 뒤,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상품화하는 것이 업무다. 그러므로 되도록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20p.
..나이가 든다는 건 변화하는 것 아닐까. 작은 글자가 안 보이게 되는 것도, 신체의 라인이 무너지는 것도 인생에 찾아오는 변화다. 나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나이 드는 것이 슬프지는 않다. 왜냐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이를 거스르려면 턱도 없이 힘들 테니까. 그보다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50대의 나, 60대의 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편이 훨씬 낫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다, 이 거실은 아무리 봐도 본가 같다.
..물론 실제 본가와는 집 구조도 그렇고 모든 게 다르지만, 분위기가 본가 같다고나 할까, 초등학교 때 친구 집 같다고나 할까. 문고리 모양새나 간접 조명의 디자인, 사소한 디테일이 절묘하게 오래된 느낌이라서 편안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예산에 맞게 선택한 디자인 가구도 이 본가 분위기에 딱 들어맞는다. 이 집만의 아늑한 맛이 있다.

..."뭐가 싫은지보다 뭐가 좋은지로 자신을 표현하자!"....

..생각해보면 우리는 생활은 공유하지만 인생은 공유하지 않아서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