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5p.
..분명 쇼핑을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쇼핑으로 새로운 물건을 손에 넣을 때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도파민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기분(쾌감,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뇌내 신경전달물질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의욕적으로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뇌가 ‘이건 좋은 행동이니까 자꾸자꾸 해야겠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도파민이 분비되고 사람은 행복감을 느낍니다.
..인간의 뇌는 자신을 지키고 종을 보존하는 일, 즉 생존을 가장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래서 처음 발견한 장소에서 낯선 열매나 낯선 동물을 발견하면 ‘혹시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에게 ‘주워라‘, ‘잡아라‘라고 명령합니다. 갓난아기가 신기한 물건에 흥미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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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p.
...그녀는 광고에서 황금색 하이힐을 신고 황금빛의 향수 여신으로 표현되지만, SNS에는 우리와 똑같이 청바지에 헐렁한 면 셔츠를 입고 장을 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에서 친근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이 스니커즈의 효과다. 스니커즈는 톱스타 연예인들의 일상을 우리와 가까워 보이게 하고, 우리는 유명인이 신는 스니커즈를 직접 사서 신음으로써 현실적인 욕망을 채울 수도 있다.

179p.
..하지만 업계를 믿는다. 가장 먼저 경기가 살아날 곳도 스니커즈 시장이기 때문이다. 스니커즈를 비롯한 신발은 생활필수품이어서 먹고 자는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입고 신는 것에 씀씀이가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합리적인 가격의 스니커즈부터 다시 불황을 이겨낼 것이다. 신발은 늘 불경기에 가장 늦게 반응하고 또 가장 빠르게 정상으로 올라온다. 신발은 소비를 보상받을 수 있는 가장 눈에 띄는 생활필수품이자 패션용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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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인간관계에 치여서 그런지 귀여운 무생물에 대한 집착은 날로 심해졌다. 라이언 마우스패드는 날 배신하지 않으니까. 올라프 볼펜은 본인 일을 내게 떠넘기지 않으니까. 보노보노 탁상용 선풍기는 입방정을 안 떠니까. 그렇게 하나둘씩 온갖 귀여운 얼굴들이 사무실 책상 위를 점령했다.

...그러나 양말은 사정이 달랐다. 양말까지 간섭하는 건 ‘그 정도’를 넘어서는 문제였다. 알베르 카뮈는 불세출의 에세이 『반항하는 인간』에서 "농(프랑스어로 ‘아니다’, ‘안 된다’는 뜻)"은 ‘여기까지는 좋지만 이 이상은 안 된다’ ‘당신, 너무하지 않은가?’의 의미라고 했다. 바로 그거였다. 머리카락 색깔까지는 좋지만 양말과 스타킹의 색 조합까지 단속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조금 다른 맥락에서, 고등학생까지는 그렇다 쳐도 유치원생한테까지 만세삼창을 시키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회사를 그만두고 반백수처럼 지내는 동안 많이 의기소침해졌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하루는 아무 날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만 내 존재가 인증될 텐데,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으니 내 존재가 사회에서 지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안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날은 예쁜 양말을 신을 가치가 없는 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일상이 회사원 때와는 다르게 채워지고 있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인간인 내 모습보다는, 혼자 일하고 혼자 점심을 먹으러 나서는 자연인(?)인 나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스케일링을 받으러 치과에 가는 오늘 같은 날 브라만 칸에서 울트라바이올렛 앙고라 양말을 꺼내 신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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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p.
..생활은 나를 돌보는 자리가 분명했지만, 동시에 내게서 사라져가거나 무너지는 것도 공평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했다. 이 작고 낮은 전망대에 올라서 혼자서 흔들리고 혼자서 균형을 잡았다. 중간은 없고, 언제나 모자라거나 넘치는 저울질 위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물건을 사려고 할 때 헛헛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 금세 눈치를 챌 수 있다. 물건이 집에 도착하고 그것을 내가 어떻게 다루는지 상상해본다. 잠깐 기뻤다가 또다시 새로운 것에 밀려나 잊게 되는 상상을 하면,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며 순간을 모면하곤 한다.

51p.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희미해져 갈 때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내가 많이 묻어나는 것들, 내 시간의 범주 안에서 빈티지가 되어가는 것들.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너무 많은 새것들 혹은 새로운 것들만 남겨진다면 익숙함에 기대어 서 있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새로움이 주는그 잠깐의 기쁨 대신에 고리타분한 내 것을 더 고쳐주고 돌보며 내게서 지속되는 오래된 마음과 닮은 것들을 갖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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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지, 네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이제 알았겠지. 이게 바로 평범한 작가와 문학가의 차이야. 문학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건 최고의 경지야. 그 경지에 다다르면 소설 속 인물이 문학가의 사상 속에서 생명을 얻지. 문학가는 그 인물들을 통제할 수 없어. 그들이 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지도 예측할 수 없어. 그저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을 따라다니지. 관음증 환자처럼 그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거야."
.."문학 창작이란 변태적인 일이구나."
.."적어도 셰익스피어, 발자크, 톨스토이는 그랬어.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모두 이런 식으로 그들이 상상한 자궁에서 태어난 것들이야. 하지만 요즘 작가들은 이런 창조 능력이 없어. 그들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하나같이 지리멸렬한 조각과 괴물들뿐이지. 그 짧은 생명으로 비이성적이고 난해한 경련을 일으킬 뿐이야. 작가들은 그 조각들을 자루 속에 쓸어 담아서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상징주의 같은 라벨을 달아서 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순간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이 냈던 사고력 문제가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대리석 침대 위에 누워서 시몬스 침대에 누운 것처럼 푹신함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대리석 표면을 사람의 뒷모습과 똑같은 형태로 파낸 뒤 그 안에 눕는 것이다. 그러면 몸의 각 부위에 균일한 압력이 전해지기 때문에 푹신함을 느낄 수 있다. 뤄지는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체온이 철광석을 녹여 자기 몸에 딱 맞는 요철을 만들어내는 상상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천천히 냉정함을 되찾았다. 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특별할 것 없이 수수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삼체인들이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존할까요? 그들은 인류의 문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들이 우리를 벌레라고 칭하기 때문에요? 그건 달라요. 다른 민족이나 문명을 존중하는 최고의 방식이 뭔 줄 알아요?"
.."그게 뭐죠?"
.."바로 멸종시키는 거예요. 그건 문명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에요."

..‘문명이 시간을 위해 흐르게 하고, 시간이 삶을 위해 존재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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