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야, 존엄사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사람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미래가 있는 거야. 기억이 쌓이지 않으면 미래는 오지 않아. 미래가 오지 않는다면 나는 살아 있고 싶지 않아. 언젠가, 이런 것조차 생각할 수 없게 돼. 무엇이든, 전부 잊어버리게 돼….

..분명 그 녀석 안에는 타인이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 있으리라. 벤조만큼은 아니더라도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고, 자신에게도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안을 조금은 내어 주면 좋으련만.

..사야카는 나스를 꼭 끌어안은 채로 잠이 들었다. 왜일까? 이렇게 하고 있으면 안심이 됐다. 떨어져 있으면 무서운데 밀착해 있으면 무섭지 않다. 이 모순된 감정과 감각은 자신밖에 모른다. 그러나 그 본질은 사야카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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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p.
...Even for someone like me who is superbright and gifted in her studies and different from everyone else, in fact superior to the vast majority - even for me life is already all plotted out and so dismal you could cry: no one seems to have thought of the fact that if life is absurd, being a brilliant success has no greater value than being a failure. It‘s just more comfortable. And even then : I think lucidity gives your success a bitter taste, whereas mediocrity still leaves hope for something.

32p.
...You know you have reached the very bottom of the social food chain when you detect in a rich person‘s voice that he is merely addressing himself and that, although the words he is uttering may be, technically, destined for you, he does not even begin to imagine that you might be capable of understanding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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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 둬, 어린 풋내기야, 이 세상에서 제일 우리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 하늘이야. 우리가 이 지상에서 하고 있는 일이 그의 마음에 들건 말건, 우리는 털끝만큼도 개의치 않아. 인간들에 대해 그가 아무 힘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날마다 그에게 도전하고 있으며, 우리의 정열은, 그의 의도를, 혹은 멍텅구리들이 그의 의도라고 우리에게 확언하는 것들을 거스를 때에만 진정한 매력을 가질 수 있어. 신의 의도라는 것의 실체는, 사기꾼이 가장 강한 자를 포박하는 데 사용하는 환상의 쇠사슬이야.

...나 역시 그 부자들이나 법관들, 관리들의 말을 듣는 것이나, 그들이 우리들에게 미덕을 설교하는 것을 구경하기 좋아해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의 세 배 이상을 소유하고 있을 때 도난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받기가 지극히 어려우며, 아첨꾼이나 항복받은 노예들로만 둘러싸여 있을 때 살인 사건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고, 관능이 그들을 도취케 하고 가장 기름진 음식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을 때 절제하고 검약하기가 기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하여도 그것이 그들에게 더 이상 아무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할 때 그들이 솔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때마다 그는 싫어하는 기색 없이 제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누구든 각 개체를 지배하고 있는 악습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악습은 수천의 다양한 형태로 재생되며, 나이에 따라 그 특유의 가지들을 가졌고, 10년마다 그 소유자에게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불행히도 그 악습에 한번 사로잡힌 사람은 무덤에 가는 날까지 그것을 고수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인정하는 그 신이라는 것은, 한편 무지의 결과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폭정의 결과에 불과해요. 강자가 약자를 속박하고자 할 때, 강자는 자기가 약자를 핍박하는 데 사용하는 그 무기가, 어느 신에 의해 성스러워졌노라고 약자를 설득하였고,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얼이 빠진 약자는, 강자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믿게 된 것이에요. 그 최초의 거짓말의 숙명적 결과인 모든 종교는 그 최초의 거짓말처럼 경멸을 받아야 마땅하며,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 중 사기와 어리석음의 표징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종교는 단 하나도 없어요. 모든 종교에는 우리의 이성을 전율케 하는 교리와, 자연을 모독하는 교조, 그리고 조롱을 금치 못하게 하는 우스꽝스러운 의식이 있어요. 내가 철이 들면서부터, 쏘피, 나는 그 외설스러운 짓들을 강렬하게 배척하였으며, 그것들을 내 발아래 짓밟아 버리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 종교로 귀의하지 않겠노라는 맹세를 하였어요....

...그러한 일에 대한 당신의 혐오감은 익히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당신은 사리가 밝기 때문에, 당신이 그토록 엄청나다고 생각하는 그 범죄도 기실 지극히 단순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당신의 혐오감을 지워 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어요. 별로 철학적이지 못한 당신의 눈에는 이 일이 내포하는 두 가지 죄악이 보일 것이에요. 그 하나는 자신의 유사체(類似體 semblable)를 파괴한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 유사체가 내 어머니이므로 해서 증대되는 파괴의 괴로움이에요. 자신의 유사체를 파괴한다는 것, 쏘피, 분명히 확언하건대, 파괴한다고 믿는 것은 순전한 환상이에요. 파괴의 능력은 인간에게 허락되어 있지 않아요. 기껏해야 형태를 변화시킬 수는 있으되, 절멸시킬 수는 없어요. 그런데 자연의 눈에는 모든 형태가 평등해요. 다양성이 실현되는 이 거대한 도가니 속에서, 상실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 속에 던져지는 모든 물질 덩어리들은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재생되며, 그것에 대한 우리의 작용이 어떻든 간에, 그 작용의 어느 것도 그 도가니를 손상하거나 모독할 수 없고, 우리의 파괴는 그의 능력에 활기를 줄 뿐만 아니라, 그의 에너지를 지속시켜 줄지언정, 어떠한 파괴도 그것을 약화시키지는 않아요. 오늘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살덩이가, 내일 각양각색의 수천 마리 곤충으로 재생산된다고 하여, 끊임없이 창조를 계속하고 있는 자연의 눈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우리들과 같은 개체의 축조가 한 마리 구더기의 축조보다 자연에게 더 큰 수고를 끼치며, 따라서 자연이 우리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노라고 당신은 감히 말할 수 있겠어요? 그렇다면 애착의 도가, 아니 무관심의 도가 같을진대, 소위 죄라고 하는 것을 한 사람이 저질러, 다른 사람이 파리나 상추로 변한들 그것이 자연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겠어요? 우리 인간이라는 족속의 고귀함을 누가 내게 증명해 보인다면, 또 인간이 자연에게 하도 중요하여, 인간의 파괴에 대해 자연이 필연적으로 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내게 보여 준다면, 나 역시 그러한 파괴가 하나의 범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자연에 대한 가장 심오한 연구 결과, 이 지구 표면에 붙어 서식하는 모든 생물들이, 비록 그것이 가장 불완전한 작품일지언정, 모두 자연의 눈에는 평등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이상, 그 존재들을 수천의 다른 존재로 변화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자연의 법칙을 위배한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어요.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모든 인간, 모든 식물, 모든 동물이 모두 같은 방법으로 성장하고 서식하며 서로 파괴하는 과정에서, 절대 실질적인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 속에서 하나의 다양성을 맞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모두 무심하게 서로 밀치고 파괴하며 번식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형태를 가지고 잠시 나타났다가는 얼마 후 또 다른 형태를 취하며, 그들을 움직이기를 원하거나 혹은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 존재의 뜻에 따라, 단 하루 사이에도 수천 번씩 그 형태를 바꿀 수도 있으되, 자연의 어느 한 법칙도 그 일로 인해 단 한순간이나마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불행한 처지에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작은 징후라 할지라도 놓치지 않는 법이라, 우리가 의존해 있는 사람의 억양에 따라 희망이 끊어지기도 하고 혹은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며 즐긴 쾌락이,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를 상대방에게 할애할 동기가 된다는 것은 절대 자연의 법칙에는 존재하지 않았어. 죽을 때까지 우리들을 위해 일하는 짐승들에게서 지금 네가 그토록 뽐내어 내세우는 그러한 감정의 예를 볼 수 있어? 나의 부와 힘으로 내가 너를 지배할 수 있는 처지인데, 네가 네 자의로 내게 도움을 주었다든가 혹은 너의 기본 책략이 너로 하여금 나에게 봉사함으로써 너의 자유를 회복하라고 명령했다 해서, 내가 나의 권리를 너에게 양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야? 도움이라는 것이 아무리 평등한 관계에서 주고받아졌다 할지라도, 고상한 영혼의 자존심이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비하시키지는 않는 법이야. 무엇을 받는 입장에 처해 있는 사람은 언제나 모멸받는 처지에 있지 않겠어? 그리고, 그가 느끼는 그 모멸감이 이미 그가 받은 도움의 대가를 충분히 지불하는 것 아니겠어? 다른 인간보다 스스로를 높임이 자존심에게는 일종의 즐김 아니겠어? 그런데 은혜를 끼치는 사람에게 또 무슨 보상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게다가 그러한 은혜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는, 그의 자존심을 모독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될진대, 무슨 권리로 그 짐을 계속 지고 있으라는 것이야?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와 부딪칠 때마다, 도대체 왜 나 자신이 번번이 그 모욕에 동의해야 한다는 말이야? 따라서 배은망덕이라는 것도 하나의 악덕이 아니라, 선행이 나약한 영혼의 미덕이듯, 기개 높은 영혼의 미덕이야. 노예는 자신의 필요에 이끌려 상전에게 자기의 미덕을 역설하지만, 자신의 정열과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상전은, 오직 자기에게 봉사하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만 허리를 굽혀야 돼. 그 짓이 즐거우면 마음껏 은혜를 베풀 것이로되, 자신이 즐긴 것에 대한 보상을 추호라도 요구해서는 안 돼.

...숱한 법률이 질서를 회복하고 인간을 미덕으로 다시 인도해 오려고 하지만 그것은 헛수고예요. 그 일을 시도하려는 법률 자체가 우선 너무 사악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에는 너무 약하여, 이미 닦인 길에서 인간을 잠시 떼어 놓을 수는 있으되 그 길을 영원히 버리도록 할 수는 없어요. 다수의 이익이 인간들을 부패로 이끌어 가고자 할 때, 어느 특정인이 자기만은 부패하지 않겠노라고 한다면, 다수의 인간들과 싸우게 되고, 결국 전체의 이익에 대항하여 투쟁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끊임없이 다수의 이권에 반대만을 일삼는 사람이 기대할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이지요?....

...회한을 가져다주는 행위를 돈담무심하게 고찰하는 습관을 가지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윤리와 관습을 깊이 고려하여 그 행위 자체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한 사유에 입각하여 어떠한 행위이든 부단히 반복하면, 이성의 횃불이 즉시 회한을 불태워 버릴 것이고, 무지와 소심함, 그리고 교육의 소산에 불과한 그 음침한 마음의 움직임을 절멸할 거예요....

(해설)
...디오게네스가 어떤 사람이냐고 누가 묻자, 플라톤은 그가 〈미쳐 버린 소크라테스〉라고 대꾸하였다고 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야유하며 심지어 소피스트(돈벌이 선생)라고까지 부르던 디오게네스를 그렇게 평한 플라톤의 말 속에는, 디오게네스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애정과 존경이 서려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싸드를 그러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듯도 하다. 품은 뜻은 고결하되, 검도 무리도 시운(時運)도 얻지 못한 기사나 외로운 군주, 그리하여 몽상이 오히려 잔혹하고 변덕스러우며 섬세하고 역설적일 수밖에 없게 된, 네로나 칼리굴라처럼 중병에 걸린, 다시 말해 미쳐 버린 근본주의적 혹은 급진적 치자(治者)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듯하다. 또한 싸드의 작품을 읽으면서 『여우 이야기』를 쓴 중세 어느 문인의 다음 말을 뇌리에 떠올리는 것도, 우리의 경직된 시선을 완화시키는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학교에서 얻어들은 바에 의하면, 지혜로운 말은 미친 자의 입에서 나온다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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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과몰입 파티»
...원래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기대할 미래가 있을 때 행복하다고.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이세계 과몰입 파티»
..이런 식으로 역사서 찬술 내용의 상당 부분이 자화자찬이라고 봐야 했다. 암묵적으로 우리들 넷은 각자의 영웅적 행위에 무조건 호응했다. 그게 우리들 머릿속 깊은 곳에 봉인된 기억에서 꺼낸 진짜 사건이니까 말이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이런 자화자찬에도 각자의 취향이 확고하게 나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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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감정이 반사나 소화 작용처럼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반대로 감정이 완전히 통제 가능하다면 옷장에서 셔츠를 고르듯 감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감정이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있고, 또 감정이 그 스펙트럼의 어디쯤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19세기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색다른 예를 제시한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는 사실… 고양이 창자에 말총을 긁는 것이다." "고양이 창자에 말총을 긁는 것"은 바이올린의 활과 현을 만들 때 쓰는 재료에 대한 언급인데, 활은 말의 털로 현은 동물의 창자로 만든다(실제로는 고양이가 아니라, 가축의 창자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베토벤 현악 사중주는 ‘사실’ 고양이 창자에 말총을 긁는 것일까? 뭔가를 ‘사실대로’ 기술하는 유일한 방법이 물질적 원인을 파악하거나 근본적인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그렇다.

..『에세』는 체계적인 내용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책이 될 수도 있다. 몽테뉴는 주제 간의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주제를 전환하기 때문이다. 또한 몽테뉴는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다수의 에세이가 그냥 끝나 버리고 독자는 요점이 뭔지 궁금해진다. 그중 일부는 의도적인데, 몽테뉴는 독자들이 자신의 견해에 지나치게 안주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메달을 만들어서 "나는 판단을 삼간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페코epecho를 새겨 넣기까지 했다....

..오웰의 요점은 성인이 되려면 인간성을 덜어 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인간성을 덜어 내면 소중한 것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우리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하릴랄이 옳고 간디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하릴랄의 우선순위가 옳고 간디의 우선순위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높은 기준에 부응하지 못한 적이 없다. 그는 그저 좋은 인간이 되길 원할 뿐이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좋은 인간이 되는 게 성인이 되는 것보다 낫다. 인간은 실패한 성인이 아니다. 성인이 실패한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그것에 중요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부 대상에 중요성을 부여하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무언가가 내 정신 상태를 결정하도록 허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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