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p. ...그래도, 그렇게 뜰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샌드위치 반쪽씩을 먹고 있노라니 무언가를 함께 나눈 듯한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경찰들이 내게 달리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지만 자기 자신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러다 우리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될 때면 더 이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들은 그 말에 만족한 듯 보였다. 경찰들도 참, 그들은 모두 젊다.
29p. ...돈은 종이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눈에 띄지 않는다. 대체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두기 때문이다. 돈이 공중에 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목걸이나 그런 것과도 같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저러한 때에는 꺼내서 그중 일부를 내준다. 목걸이를 내주는 일은 없다. 그렇다 해도 목걸이는 돈이 있다는 신호다. 그냥 그렇다. 사람들은 숨겨놓은 것이 있다는 신호를 내비친다. 그것도 대화처럼 오고 간다.
41p. ..당신이 젊고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마도 60세, 70세, 80세, 혹은 90세가 된 여성의 눈에 떠오른 반짝임을 이해하게 되리라. 그 여자는 (미안하지만) 당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그 여자에게 당신은 그저 소녀일 뿐이니까. 아기와 신발과 섹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겪었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그저 삶을 장난처럼 즐기는 소녀일 뿐이다.
93p. ...그래, 그렇게 작고 빛나는 눈으로 부드럽고 안전하게 쉬고 있는 머리는 마치 아기가 되어 다시 살아 돌아온 듯하고, 그럼 나는 그들의 얼굴을 만져볼 수 있으리라. 그 아기의 머리를 나의 사유 재산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정말로 나는 그렇게 여긴다.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자유가 점점 외로워지고, 지루해지고, 겁을 먹고는, 또 다른 머리와 합류하기를 바라게 되는 일도 무척 잦다고 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머리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자신의 머리를 소유하는 일이 다른 이의 머리를 갖고자 하는 욕망으로 커져가는 일도 잦아진다. 사랑과 소통을 향한 완벽히 자연스러운 욕망에서 우러난 채로 말이다. 그러나 탐욕에서, 통제와 권력을 향한 욕망에서 괴물이 자라나기도 한다. 되도록 많은 머리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자란다....
129~130p. ...어쩌면 작가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하인이다. 누가 그런 하인을 고용하는지는 모르지만, 세계는 고용될 준비를 갖춘 그런 사람들로 가득하다. 각 가정이 작가 하인을 고용하여 자리에 앉힌 뒤 우리가 견뎌야 하는 인간적인 골칫거리에 집중하도록 한다면, 모든 가정은 걱정거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온종일 집에 앉아 있을 작가를 고용하는 건 실용적이라고 할 수 없다. 방이 하나 더 필요할 것이고, 작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아이들과 동물들을 조용히 시킬 하인이 한 명 더 필요할 것이며, 작가에게도 모든 생물들처럼 음식을 먹여야 할 테니까. 그리하여 세계는 상대적으로 집에 더 데려가기 쉽고, 공간도 더 적게 차지하며, 먹여 살릴 필요도 없는 책을 이용하는 천재적인 계획을 생각해낸 것이다. 각각의 책 속에는 손가락에 못이 박인 하인, 즉 작가가 들어앉아 우리가 세상의 걱정거리를 떨쳐낼 수 있도록 우리 대신 그런 것들에 집중한다....
141p. ...그게 무엇이든 모기장을 그 위에 쳐놓으면 안에 있는 물건은 부드럽고 신비해 보인다. 언젠가 무척 지적인 불교도였던 여성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여자는 되도록 집에 물건을 안 두고 하얗게 꾸미길 바랐지만, 수천 권이나 되는 책 때문에 그 공간의 활기를 살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여자는 간단하게 책을 세로 기둥으로 쌓아 그 위에 모기장을 씌움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자아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평화가 바람처럼 몰아치는 환경 속에서 사는 효과를....
165~166p. 옮긴이의 말 ..나이가 들어가면 분과에 얽매이지 않고 합일된 삶으로 향한다. 이것은 메리 루플이 <Between the Covers>라는 포틀랜드 기반의 문학 팟캐스트에 출연해 《나의 사유 재산》에 관해 나눈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가족 안의 딸로서의 나, 직장에서의 나, 친밀한 사이에서의 나…. 젊었을 때는 이같이 분화된 영역들에서 살아가지만, 노년에는 이 모든 것이 시접 없이 맞물리고 그 안에서 부드럽게 헤엄친다. 섬세한 차이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것은 아니나, 이를 하나로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노년이 주는 선물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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