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p.
...그린란드 사람들은 매일같이 기후 변화의 영향에 직면하고 자신들이 잃어버린 세상 앞에 비통해한다. 호주의 환경 철학자 글렌 알브레히트는 이러한 감정을 명명하고자 안락을 의미하는 라틴어 솔라티움solatium과 고통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알지아algia를 합성해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한때는 풍경에서 안락을 발견했다면, 이제는 고통을 발견하는 것이다. - P-1

31~32p.
..추가로 그 연구팀은 지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치료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지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요즘 시대에는 만성 공급 부족이라 할 수 있는 무언가, 즉 경외감이 찾아온다. 발화하는 순간 입이 자동으로 벌어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일종의 시각적 의성어인 경외감awe 말이다. - P-1

37p.
...해양생물학자 월러스 J. 니콜스는 우리 모두가 ‘푸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생명에 필수적인 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의미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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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p.
..간직하고픈 추억의 물건과 재회한 후, ‘뭔가 버릴 건 없을까‘ 하고 다다미방을 둘러보니 구석에 놓인 대형 제습기가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당연한 듯 자리하다보면 아무리 필요 없는 물건이래도 눈에 안 들어온다는 걸, 이번에 불필요한 물건을 골라내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슬쩍 둘러보는 게 아니라 범위를 정한 뒤 눈에 들어오는 물건을 하나하나 점검하지 않으면 못 알아채는 게 제법 많다.... - P-1

37p.
.."이사의 묘미는 중요하다고 착각했던 물건을 버리는 데 있다." - P-1

49p.
..진품, 아름다운 것, 자신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것, 마음을 채워주는 것을 모르는 인생은 역시 경박해진다.... - P-1

53p.
...젊은 여성이 보이시하게 입으면 그 나름 멋지지만, 미묘하게 아저씨에 가까운 아줌마가 남성 느낌을 주는 옷을 입으면 자칫 빌려 입은 옷처럼 보인다. 내 안에 아저씨가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거울을 봐도 매번 ‘이건 아니야‘ 하게 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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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기간에 걸친 계획이나 약속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음 날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면 그는 불편을 느꼈다. - P-1

..편력수첩을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 지니는 것은 크눌프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흠잡을 데 없는 그 수첩은 그럴듯하게 지어낸 우아한 허구였다. 그 안에 기입된 공공기관의 공증 사항들은 정직하고 건실한 삶이 거쳐 온, 진실로 영광스러운 체류지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 삶에서 눈에 띄는 것이라곤 장소가 매우 자주 바뀌는 데서 알 수 있는 그의 방랑벽뿐이었다. 이 공식 증명서가 입증해 주고 있는 삶은 크눌프 자신이 지어낸 것이었으며, 그는 온갖 수단을 다해 이 위태위태한 허구의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 P-1

.."지금 서로 모른다는 것은 장차 알게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산과 골짜기는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지만 사람은 가능하니까요. 당신 고향은 어디죠, 아가씨?" - P-1

..‘저 친구는 정말 좋겠어.’ 무두장이는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일터인 물웅덩이 쪽으로 가면서, 그저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이 독특한 친구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크눌프의 이런 태도를 거만한 것이라 해야 할지 겸손하다고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일을 하고 발전을 이루어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 가지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는 하지만, 결코 그토록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손을 가질 수 없으며 그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걷지도 못한다. 아니, 크눌프가 옳았다. 그는 자신의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따라하기는 어려웠다.... - P-1

...그는 자신의 카드를 우아하게 책상 위에 놓고는 때때로 엄지손가락으로 카드의 가장자리를 쓰다듬었다. 주인은 경탄과 관대함을 드러내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노동자이자 시민인 사람이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을 참아내며 보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여주인은 사교적 처세술의 징표라 할 이런 기술을 열성적인 관심을 가지고 구경하였다. 그녀의 시선은 중노동에 의해 한 번도 망가진 적 없는 그의 길고 매력적인 두 손 위에 머물러 있었다. - P-1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이나 미덕을 자랑하고 뻐길 경우, 대부분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양복 수선공의 경건함도 예전엔 그랬던 것이다. 사람들이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을 구경할 수도 있고, 그들을 비웃거나 동정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결국 그들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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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p.
.."별로 없습니다. 장례식도 무덤도 필요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샴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는데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키우지 못했으니, 내가 죽으면 나 대신 샴 고양이를 키워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우유는 그냥 접시 말고 커다란 부삽에 따라 먹였으면 좋겠군요. 처음 한두 모금 날름날름 핥고 나면, 부삽으로 고양이의 턱을 툭 올려 치세요. 고양이 얼굴이 우유로 흥건해지겠지요. 그걸 하루에 한 번은 꼭 부탁드립니다. 중요한 일이니 잊지 마세요." - P-1

25p.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줄에 매달려 걷는 인형처럼, 책임 없는 행위의 가뿐함에 자신이 자살을 시도하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고 느꼈다. 인생은 가벼움으로 가득했다. - P-1

58p.
..‘남들이 보면 고독한 인간이 고독에서 헤어나려 애쓴 나머지 별 희한한 짓도 다 벌인다 싶겠지. 하지만 고독을 적으로 돌리면 안 돼. 나는 언제나 내 편으로 여길 거야.‘
..하니오는 드뷔시의 전주곡을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P-1

85p.
..세계가 의미 있는 것으로 변하면 죽어도 후회는 없다는 기분과, 세계가 무의미하니 죽어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어디서 서로 화해하는 것일까.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하니오에게는 죽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 P-1

93p.
..그러다 점차 일상의 감각이 되돌아왔다. 일상의 감각이란 자살미수 이후,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고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감각을 말한다. 슬픔도 기쁨도 없는 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의 윤곽이 부옇고, 밤이나 낮이나 ‘무의미‘가 간접조명처럼 부드럽게 인생을 비춘다. - P-1

97p.
..여자의 몸에서는 시골의 마른 풀더미 같은 냄새가 났다. 나중에 하니오가 자기 옷에 마른풀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을 신기하게 여겼을 정도로. - P-1

169p.
..오랜만에 보는 시내 경치 어디에도 죽음의 기운은 없었다. 사람들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생활에 푹 잠겨, 인생의 장아찌 같은 모습으로 걸어 다녔다. ‘저기 가면 나는 새콤한 피클이겠군‘ 하고 하니오는 생각했다. 그에게 장아찌는 술안주에 지나지 않았다. 삼시 세끼와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내 운명이니 어쩔 수 없지.‘ - P-1

190p.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하기 쉽지만, 무의미하게 살기 위해선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하니오는 새삼스럽게 절감했다. - P-1

206p.
..하니오는 ‘이유‘를 지닌 모든 인간을 경멸할 수 있는 지점에 서 있었다. - P-1

208~209p.
..즉 하니오는 무의미에서 시작해, 그 무의미에 하나하나 의무를 부여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절대 의미 있는 행동을 시작해서는 안 되었다. 의미 있는 행동을 시작하는 바람에 좌절하거나 절망하고 무의미에 직면한 인간은, 일개 감상주의자다. 목숨을 아까워하는 자들이다. - P-1

290p.
..혼자였다. 별 돋은 아름다운 하늘 아래, 경찰서 앞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경찰을 상대하는 술집의 빨간 초롱이 두세 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니오의 가슴에 밤이 들러붙었다. 밤이 그의 얼굴에 납죽 들러붙어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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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생이라는 생물은 두 종류로 나뉜다. 독자적인 감성을 지닌 사람과 독자적인 감성을 지니는 것을 동경하는 사람. 이케다는 후자였다.... - P-1

..폐공간에는 인간의 생활과 오래도록 단절된 데서 오는 매력이 있다. 썩은 다다미를 뚫고 나와서 늠름하게 자라는 대나무의 장엄함, 인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종교 시설이 빚어내는 디스토피아의 분위기. 그런 것은 일단 보고 나면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마성을 숨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어두운 면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숨고 싶은 인간,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싶은 인간에게는 안성맞춤인 장소가 될 수도 있어서다. - P-1

..전에 호조가 물은 적이 있다. 유령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텐데 왜 별 탈 없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때 깨달았다. 자신은 흥미가 없다는 것을.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하지만 자신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한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쩐지 제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이런 걸 사람으로서 최하라고 하던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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