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 

 

김행숙시인의 "타인의 의미"에 실린 '포옹'이란 시다.    

 전년도 부터 수업을 듣다가 시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해할 수 없어서 접어둔 시집이 몇권있다.  신형철평론가는 시를 이해하는 우리가 우리 안에서의 재현의 방식으로 시를 읽어나가기 보다 그 시인에 갖고 있는 또 다른 세계를 자신한테 추가하는 방식으로 시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경험, 배경 만큼만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지평을 확대하여 시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강신주 철학자는 시는 자신의 어느 때. 온전히 알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시란 것을 읽어본 경험도 없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는 오리무중의 것이지만, 그 시를 읽을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전율이 따르지 않을까 싶다.  

이 포옹이란 시에서 내 시선이 멈춰선 구절은 "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라는 구절이다. 마치 나는 그것에 " 도대체"를 넣어 도대체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라고 입속에 맴돌았다. 포옹하는 그순간 마저도 나와 너라는 것은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직감하면서  그 황망하고도 아련한 느낌을 표현한것이 아닐까? 김행숙 기사를 검색해보니 시인은 근작은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담았다고 말한것 같다. 신형철평론가의 시에 대한 강의도 함께 듣고 있는데 나로서는 신선하다. 철학이 예술, 시, 미술 등과 함께 진화하고 발전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것같다.  

P.S 읽으면서 써보고 표현하는 것이 없으면 그저 이 바닥일 뿐이다. 열심히 쓰는 것. 표현하기 힘들어도 파고드는 그 정신이 나에게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