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듣고 나서 생각나는 대로 정리한다.

묵자는 보편적 사랑인 겸애를 강조하였고, 양주는 위아. 공자는 차별적 사랑 인을 강조하였다. 묵자의 겸애와 달리 양주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터럭하나도 뽑지 않는다고 하였다. 개체의 삶을 긍정하는 위아의 정신을 강조했다. 모두가 자신을 이롭게 한다면 천하가 이로울 것이라고 했다.  장자는 타인과의 연결을 중지했던 학자다. 장자는 공자의 ‘서’정신을 비판한다. 공자의 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행하라, 또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 배려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나와 남이 똑같다는 유아론적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나와 남의 욕망이 다를 진대 이것을 같다고 판단하는 자체가 폭력적이다. 장자는 노나라왕과 바다새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를 비판하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듯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코드로 맞추어야 한다. 장자는 조삼모사 에피소드를 통해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의 태도로 타인의 대한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의 대답을 하고 있다. 타인이 오케이 할때까지 타인의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기, 나 자신을 버리기... 이것은 그러면 겸애의 사랑과 어떻게 다를까. 자신을 놓고 타인과 하나로 숨쉬기가 가능할까. 그리고 그 사랑을 타인이 받아들이면 좋은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 그것이 과연 최선일까.. ?? 잊고 연결하기. 타자와의 소통은 일단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시작해야한다는것이 장자에게 가장 크게 배울점 같다. 하지만 사랑은... ?? 내가 나의 욕망을 버리고 그를 위해 그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진짜 목숨을 건 비약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복불복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을 건 비약. 내가 그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의 욕망을 죽이고 그에게 아무리 맞춘다.. 그것은 어쩌면 그런 희생이 타자와 나를 불행하게 하는 씨앗이라면 나의 넘쳐나는 사랑조차도 자제해야 하는 것이 장자가 말한 사랑에 가깝지 않을까. 타자와 소통하기 위해서 나를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비범한 일이기도 하고,,,

근데,, 자신을 버린다는 것에는 자신에 대한 자긍심까지 버리면 안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걸까?? 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정확하게 모르겠다. 자의식을 버린다는 것은 조금 알겠는데.. 
 

요즘 관심있는 공사상도 실체없음. 우리에게 자성이 없음을 인지하는 것이 공사상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본성, 자성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일 수도 있겠다. 자신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타인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럼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의심심장하게 섬세한 감각을 갖고서 반응을 해야될까.. 그럼 그 피로함은 어찌하나. 그래도 비약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되지 않나. (지금 이순간 좀 더 사유가 진행되야하는데,, 또 어물쩡 넘어가네...)

공부하면서 깊게 길을 내가면서 공부하자. 너무 욕심내지 말고 느리게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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