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끝나간다. 나는 마지막 4학기를 놔두고 포기한다. 애초에 내가 따라갈수 없는 것들이였지만, 그래도 마칠수 있었는데. 결국에는 포기한다. 핑계는 많지만, 핑계는 핑계일뿐. 내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해야된다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작했고, 그 한계를 계속 맛보면서 그 길을 걸었다. 내가 갈수 있을거라고, 변해야 된다고 하는 나의 절박성은 벽에 막혀서 계속 뒷걸음치는 관성을 유지한테, 나의 패턴을 반복한채, 나는 그렇게 루저가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을 때문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간의 나의 관성으로 미루어볼때, 나는 그 자신에 실망과 실패를 부여잡고, 그 안에서 결코 나오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문제로서 나는 나의 삶을 채워가는 것이다. 이렇게 잘 알면서 나오지 않는 것은 나오고 싶지 않기 떄문에, 이러한 고통마저 없다면 나를 지탱줄 그 무엇인가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린애같은 것이다.  

이렇게 잘 알면서도 나의 신체적 욕망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가,, 아니다 신체, 중독도 아닌 불행감에의 중독이다.  상쾌하고 신선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내가 잘살면 안된다는 죄의식이 불러온 걸까. 근원을 생각해보면 삶의 대한 허무감이겠지만, 그 허무감이 나를 지탱해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차이 없는 반복이 문제다. 차이는 조금 있겠지만, 나는 노예다.   

시간이 과거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 과거와 미래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 과거나 미래가 나를 지배하는것은 맞지만 이렇게 나를 지속하는 있는 것은 매순간의 나이다. 매순간의 내가 진다. 어떻게 해야될까... 나는 나에게 계속 진다. 나와의 싸움을 계속 지고 있다. 이긴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지만, 그건 왜인지 꼭 나같지 않다. 나라는 주체를 설정해 놓고 이래야지 저래야지 생각하는 것들, 그런것들을 생각하는 현재의 나는 무엇일까. 내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나는 부단히 유치하게 잡념에 빠져서 산다. 그래서 주체를 버리라고 했다. 동양에서는.  

 근대가 만든 주체라는 개념이 우리를 이렇게 피곤하게 한다. 나는 흐름이고 이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살면 되는것을 끊임없이 생각은 떠돈다. 주체를 설정하는 이 작업이야 말로, 이 주체, 정체성이라는 것 조차 모든 것들의 조합인것을.  우리는 집착을 한다.  어떻게 해야 나의 주체아닌 주체를 버리고 그냥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통과하는 모든 것들을 그저 지나가게 바라보야할까. 그것도 아니다...  

시간.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우리가 물리적으로 정형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은 그림이 있다. 많은 철학자들이 근대에 넘어오면서 시간을 다시 새롭게 해석한다. 베르그손은 시간이 농밀한 과거의 이빨자국이라고 까지 말한다. 들뢰즈는 현재에서 과거는 흔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건 그냥 쉽게 내가 얘기한 것이다. 수평적인 시간에서 수직적인 시간을 사유하는 것.... 그것이 말처럼 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시간이라 것..  

내 사유가 짧아서 무엇이 들어와도 그저 한마디의 말 밖에 할 수 없다. 소화가 안된다는 얘기다. 소화를 하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무엇을 바라는가...  

나의 나약함. 의지와 욕망을 구분을 하지 못했다.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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