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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사랑, 바디우
박영진 지음 / 에디투스 / 2019년 4월
평점 :
만남으로서의 사랑은 덧없고 불안정하다.... 불가능성이 우연성에 의해 점이 찍히는 짧은 순간 실존하기 때문이다... 라캉에게는 사랑의 진상은 과정이 아니라 만남이다...그러나 사랑은 만남의 발생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만남의 결과를 전개하고 만남의 무작위성을 극복하는데 있다... 바디우의 비판은 여기에 있다... 단계별로 집요하고 끈덕지게 이루어진 시간적 영원성의 구축, 둘의 경험의 구축을 지지 한다. (사랑예찬,90쪽),,, 둘의 관점으로 새로운 주체적 세계를 충실하게 창조하는 데 있다. 오직 충실한 과정에 대한 불굴의 헌신과 집요한 전념만이 시간 안에 영원성을 구축하는 사랑을 지지 할 수 있다. (p.93)
오래전에 사두었지만, 올해들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라캉과 바디우 그리고 사랑을 저자는 보로메오 매듭처럼 묶었다.
수도 없이 밑줄을 치느라 읽기가 어렵지만, 진지하고 복잡하고 재미있다.
저자는 라캉과 바디우의 뒤얽힘의 지점에는 사랑이 있다고 주장한다.
라캉은 만남이 있어야 사랑 개시 되기에 "만남으로서의 사랑"을 주장한다. 사랑이라는 불가능성이 우연에 의해 짧은 순간 실존의 점이 찍힌다.
반면 바디우는사랑의 개시를 인위적 '노고'에 의해 "영원성의 구축"이 가능하다고 본다.
바디우의 "과정으로서의 사랑"은 "주체적 세계의 구축" 이자, 나와 타자의 새로운 진리의 발명품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 세상의 사람의 수 만큼 다양한 무한의 영역일 것이다.
관건은 사랑은 하나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새로운 단독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것은 하나와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하나도 둘도 아닌 새로운 둘을 하나로 만드는 것일까?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새로운 두 주체의 공동체일까?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일 속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