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깡의 사랑에 관한 정의 중 "사랑은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을 주는 것이다" 의 의미를 비로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해석이 완전히 들어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의한다. 

사랑받는 자에서 사랑하는 자로의 전환이 라깡의 이 문장에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때 왜 그를 사랑하는지 알지못한다. 그 사랑은 자신의 결여 때문이고, 그 결여를 사랑받는 자가 채워줄 것 같은 것 때문에 욕망하게 된다. 그것은 상대방의 결여를 자신의 결여로 포개는 경우도 마찬가지 일 듯하다. 왜 사랑받는지 영문을 알지 못하는 자는 마침내, 사랑을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이 곤궁을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방이 생각한 그 불일치의 결여, 즉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준다. 그것은 환상의 응답이기도 할 것 이다. 

라캉에게 있어서 사랑의 가장 숭고한 순간은 사랑받는 자가 사랑의 은유를 실연할 때, 즉 그가 사랑받는 대상의 자리를 사랑하는 자의 자리로 대체하고 지금까지 사랑하는 자가 행했던 거과 동일한 방식으로 행위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요켠대 그 순간은 사랑받는 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제공함으로써 사랑을 되돌려줄 때 발생한다. 사랑하는 것은, 즉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는 누구이며 사랑받는 자는 누구인가? - P55

사랑하는 자는 무언가를 결여하고 있다. 그는 결여의 주체이며, 욕망하는 주체이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반면에 사랑받는 자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타자의 눈에 그를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가 가진 그 무엇, 그의 내부에 숨겨진 그 무엇이다. 사랑받는 자가 가진 그 무엇은 여하간 사랑하는 자가 결여하고 있는 그 무엇과 관련이 있는가? 라캉의 말처럼 사랑하는 자가 결여하고 있는 것은 사랑받는 자의 내부에 숨겨진 그 무엇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불일치에서 사랑의 드라마가 생겨나는 것이다. - P56

사랑하는 자는 사랑받는 자 안에서 무언가를 보며, 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원한다. 반면에 사랑받는 자는 자기 안에서 타자가 보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못한다. 그는 자신을 타자의 눈에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사랑받는자가 이러한 곤궁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길은 사랑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즉, 사랑하는 자의 위치를 떠맡고, 그리하여 욕망하는 주체, 결여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결여를 기증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가지지 않은 그 무엇을 제공하는 것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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