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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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 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아니 에르노는 올해 노벨상 수상작가이다. 그 유명세에 떠밀려서 이기도 하고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공간에서 북클럽이 개최되어 호기심으로 조금씩 접해보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글은 전혀 현학적이지 않으며 단순 명료한 문체로 빠르게 읽히다가 '방금 뭐가 지나간 것 같다'는 쎄한 느낌의 문장들이 멈추게 만든다.


 '단순한 열정'은 내 출근길을 끈적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빠진 상태, 그녀가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는 그 정신의 상태

그녀는 그 고통과 쾌락이 버무려진 상태를  '주이상스'의 순간들을 기억으로 써내려간다. 

이 글이 13살 연하의 유부남과의 사랑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세계적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이 글이 그녀의 체험이기도 한 것이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슈퍼마켓에 가고, 영화를 보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로 가고, 책을 읽고, 원고를 손보기도 하면서 전과 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이 아니였다며, 그리고 끔찍하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상마저 내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완전히 넋을 잃고 사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말이나 문장, 웃음조차도 내 생각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입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 듯 했다. " 11P 




나는 조금 놀랐다. 한번의 수정도 없이 써내려 간 것만 같은 이 글에 대해 그녀는 말한다. 

지금 나는 내가 아니면 도저히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록 많은 삭제와 교정으로 뒤덮인 원고를 앞에 놓고 있다. 나는 이것이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않는, 철저히 개인적인 유치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고백이나 수업시간에 비밀노트 한쪽에 갈겨쓴 외설스러운 낙서처럼. 혹은 아무도 보지 않으리라 확신하면서 조용히 아무 탈 없이 써내려간 일기처럼. 그러나 이 원고를 타자로 치기 시작하고, 마침내 원고가 출판물의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나게 되면 내 순진한 생각도 끝장나고 말 것이다. "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욕망과 관계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 욕망의 가치, 즉 자기에게 어떤 지고의 쾌락을 가져다 주는 지 그녀는 정확히 알고, 그것을 누렸다. 스스로 매몰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소멸한 자리에 타자에 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언젠가 떠났을 그에 대한 상실감을 그녀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매번의 상실을 애도하지 않음으로써 그에 대한 사랑을 떠받쳤었던 것은 아닐까 

정신이 나간 그 와중에도 그녀는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놓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나는 매순간

이토록 수치스러워 하는데, 아니 에르노는 수치심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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