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면과 벌꿀 - 돌아오고 싶은 집을 만드는 방법
슬로보트 지음 / 어떤우주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초등학교 교과서 음악시간에 나오는 이 노래는
누구든 한 번쯤 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인생을 많이 살아보지 못한
아직은 많이 어렸던 내 마음에도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평온함과 안정감으로
공감을 이끌었던 노래다.

5성급 호텔이니, 수영장이 딸린 풀빌라 등
즐거움만 가득한 여행지에 다녀오면서도
마지막 날이 되면 돌아올 '집'을 생각하며
그리움과 벅찬 마음이 들곤 한다.

며칠을 비워두었던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이 내뿜는 익숙한 '우리집 냄새'를 맡고나면
비로소 내가 돌아와야 할 장소에 돌아왔구나 하고
비어진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맞추어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모두에게 '집'이 이런 공간이지는 않다.
순탄지 않았던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난 작가에게
집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풍요롭고 포근한 곳이 아니라
결핍된 환경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은 늘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고,
가족들은 저마다 자기가 가진 상처를 바라보느라 바빠
서로를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며 결속력있게
지내지 못했기에 그의 집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이나 보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집에서 자라나며 세상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혹독했던 작가는 문득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사람들이 말하는 높은 수준의 보통을 갖지 못한 나는
내내 실격된 채로 침울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남들이 말하는 '보통'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으로
'보통'의 풍경을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밋밋하고 심심하지만 큰 고통없는 무엇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벌벌떠는 손을 잠재우려
주먹을 꼭 쥐고 원하는 것을 향해 애써가는 삶.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내밀은 손을 잡으며 간신히 나아가는,
모두의 평등한 간절함과 망설임으로
세상의 수 많은 보통은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믿으며 말이다.

어떤 날에는 한심스럽게 쌓여있는
설거지를 해치우며 집안의 안녕을 빌고,
작은 물건을 자꾸 사들이며 집안 곳곳을 채우는
맥시멀리스트이지만
그 작은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다정함을 음미한다.

불안이 덮쳐오는 날도 있지만
집안에서 잘 머무는 것만으로도 씩씩하게
자신을 돌보는 하루를 쌓아가며
작가는 자신만의 보통을 만들어 갔다.

누군가는 이해가 가지 않을 안정적인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둔 채
서점에서 조그만 돈을 벌고,
좋아하는 반찬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만족하는,
물을 끓이고 벌꿀을 담은 찾잔에 따라
갓 마른 순면 이불 위에서 '돌아오고 싶은 집'을
만들었다는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찬 매일을 말이다.

타고나기를 결핍으로 가득찬 삶,
불안정한 애착으로 비뚤어질 수 있는 환경에서도
그녀는 오히려 결핍이 선명한 행복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행복이라 말하는 것에
자신을 끼워 넣어 불행하기 보다는
자신이 진심으로 행복한 쪽으로 과감하게 걸어와
자신이 새롭게 만든 인생과 풍경 속에서
'보통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뒤에서 응원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돌아볼 수는 없지만,
언제나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모르는 사이 쌓인 사랑의 무거움을 알아채며 살아가자며
결핍된 사랑마저도 세상에 무수하게 존재하는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우고 만다.

얼핏 궁핍하고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힘주지 않고 작게 움직이며
나름의 방법으로 나를 돌보며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시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구원한 그녀의 생활과 삶이
어찌 '보통' 그 이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타인의 삶에 견주어 보면
나의 삶이 좀 구질구질하게 구겨져 있는 것 같고,
그런 내가 미워서 나를 잘 돌보지 않고 외면하게 될 때
이 책을 펼치게 되면 작가가 그러했듯,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나와 나를 둘러싼 평범한 '보통'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겠다는 따뜻한 믿음이 생겼다.

부족한 통장 잔고와 결핍된 사랑 속에서도
비틀린 마음없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고,
그런 삶 역시 따뜻한 물에 벌꿀을 풀어 마시는
순간의 작은 풍요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은 물론,
조금은 꾸깃해서 힘들게 느껴지는 나의 삶을
보통이라고 이만큼 추켜올릴 수 있게 만들어준
'힘을 빼고 느릿느릿 전진하는' 삶을
알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렇기에
'수많은 보통들의 불안이 불행이 되지 않도록
곁에서 다정이 손잡아 주는 책'이라는 추천사에
너무나 동의한다.
작고 소박한 나의 집에서도 보통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책을 읽다보니 여행을 다녀온 직후
오랜만에 집을 맞이하는 기분이 되었다.
새삼 '돌아가고 싶은 진짜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조금의 흔들림으로 걱정이 생겼던 요즘,
나의 삶도 여전히 무사하고 괜찮다고
작은 다독임을 받은 느낌의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를 위한 B컷 문학동네 청소년 64
이금이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창 중2병, 사춘기의 시기를 겪고 있는 조카가
어느날, 친구들은 모두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다며
자신도 SNS를 깔게 해달라고 푸념을 했다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만 14세 이상부터 이용가능 하기에
조카가 가입하려면 부모님이 계정을 만들어 주거나
임의의 생년월일을 넣어 가입하는
불법적인 방법을 활용해야 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가입해가며
학교와 학원만을 오가는 아이가 인스타그램에
뭘 올리려는 걸까 싶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언니부부의 허락아래 가입한 조카는
한동안 스토리와 게시물을 올리는 재미에 빠졌는데
우리가 보기엔 별 대수롭지 않은 내용이나
'앞머리가 눈썹까지 자랐다는 둥'의
허세스런 모습을 올리곤 해서 피식했다.

우리 때야 다모임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인기였고
막 도입된 이메일을 친구들과 주고받는게 전부였지만,
다양한 SNS 채널이 등장한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페이스북을 넘어
유튜브라는 영상을 매개로 한 채널까지 나왔으니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가'에 대한 부분이
아이들에게 참 중요한 포인트가 된 것 같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라는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청소년문학 작품을 집필해
나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된 이금이 작가가
요즘 아이들의 SNS, 편집과 자기표현을 소재로 한
신작소설을 출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대감과 궁금한 마음,
한창 사춘기라 도무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조카의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어 펼쳐보게 되었다.

보통의 평범한 중학생인 선우가
학교에서 일명 '인싸'이자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서빈이로부터 유튜브채널 영상편집을
의뢰받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얘가 나에게 영상편집을 부탁한다고?' 하는
생각에서 오는 놀라움과 동시에
그들이 있는 카톡창에 초대받는 것 만으로도
무리에 포함된 듯한 기분,
영상 한 건당 2만원을 지급한다는 금전적인 보상으로
선우는 망설임 없이 제의에 응하게 된다.

멀리서만 바라보던 '인싸'들을 직접 옆에서 바라보며,
현실에서는 그들 중 누구조차 알은체를 하지 않고
그들이 올린 사진에서 조차 등장하지 않아
마치 자신이 그들 사이에서 편집된 B컷 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 그들도 영상에서 만큼은
자신이 편집한 방향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우월감 이랄까 일종의 만족감을 느끼며
바로 지급되지 않고 점점 밀려가는 편집비와
본인만 모르는 조금 미심쩍은 그들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공부에 집중하기 보다
시간을 쏟아가며 그 찜찜한 것들을 외면하고만 만다.

오히려 영상편집을 하며 알게 된
서빈이의 숨겨진 이면과 본인의 편집을 믿고
욕설을 내뱉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감추어주면서 말이다.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한 선우와 서빈이의
영상편집 거래는 그들 무리 중 한 명인
정후의 문제로 인해 흔들리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의아함에 빠졌던 선우는
본인이 편집했던 영상 원본을 다시 열어보며
그제야 비로소 본인도 모르는 새
외면하고 스스로 편집해버렸던
A컷 뒤에 숨겨진 B컷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SNS 세상 속에서는 불행한 사람은 없다.
늘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로만 가득찼고
풍요롭고 넉넉하기만 하다.
그렇게 보여지는 모습으로 우리는 타인을 쉽게
고정관념화 하고 내가 보는 모습으로
상대방을 단정하게 되는 것이다.

서빈이가 촬영한 원본 영상을 보면서
자신이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가진
그에게 연민을 갖고 기존과는 다른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

편집을 통해 서빈이와 아이들을 멋지게 포장해주었던
선우가 진실을 마주한 이후 용기를 내어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SNS가 가진 명암을
아이들의 사건을 통해 예리하고 선명하게 표현함은 물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편집된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용기와 같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인스타그램을 설치하고 싶다던 조카가
그 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제대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마음의 본질에는 '남들 다 하는' 이 SNS를 통해
자신 역시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은 아이'임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
또한 SNS를 하지않아 소외되는 것 같은
외로운 느낌이 싫어 '소속감'을 느끼고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행은 다 따라 하고 싶지'라고만 생각했던
마음이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내 마음대로 단정한 조카의 A컷만을 보고
그 아이가 쑥스럽게 삼킨 B컷을
나 역시 편집해버린게 아니었을까 하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느정도 '편집'은 필요하지만
진실이나 본질을 왜곡하지 않는게 중요하는 깨달음,
그 편집을 통해 본연의 자신을 가리고
타인의 시선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내면의 이야기와 본질에 귀기울여야겠다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기도 했다.

SNS가 보편화 되며 쉽게 맺고 끊어지고
타인에 대해 속단하기 쉬운 요즘의 관계에서
상처입더라도 타인에 대한 이해를 멈추지 말아야 겠다는
관계의 본질까지 엿볼 수 있던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봉태규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기억하고 있는 봉태규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까불까불하고 약간은 불량한 모습,
혹은 철들지 않고 차분하지 않은 가벼운 느낌이라고
늘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한창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인 옥탑방 고양이를
통해 보여준 철부지 남동생의 이미지,
논스톱에서 보였던 모습을 그의 본 모습이자
봉태규라는 사람의 이미지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객관적인 잘생김에서 벗어난
약간은 입이 크고 못생긴 쪽에 가까운 외모에
독특한 패션 감각 역시 그의 모습을 고정관념화하는데
한몫을 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편견이라면 편견이랄까,
연예인들이 쓴 책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우연히 집어 든 이 책을 통해
그가 이 책을 포함해 무려 세 권의
에세이를 집필한 경험이 있으며,
또 내가 생각한 것과 꽤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임을 새삼 알게 된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은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라는 책 제목처럼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조금은 특별했던
유년기를 거치며 예민한 어른으로 자란 그가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빠로서
다양한 인생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그 치열한 삶 속에서도 괜찮은 어른으로 살고 싶은
본인의 생각과 노력을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완벽하게 결핍이 없는 삶은 없다.
그렇지만 특히나 유년기에서의 결핍은
한 사람의 인생을 흔들고 삶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이끌 만큼 참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큰아버지 댁에서 자란 6년의 시간은
충만하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결핍,
그리움의 시간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여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생활은
그를 더 위축되고 예민한 아이로
만들었을 것은 분명하고 말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또 아버지가 되었으니
받아보지 못한, 배우지 못한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가정을 지키는 방법을 어떻게 마주했을까,
얼마나 어려웠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생의 각 단계마다 새로이 부여되는 삶의 역할에서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행착오와 두려움 속에서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타인의 세상에 초대된다는 건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일'이라고 담담히 말하며

자신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려는 굳건한 의지는 물론
'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내가 고정관념처럼 가지고 있던 그의 이미지는
이미 저 멀리로 사라지고
새로이 봉태규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된 느낌이었다.

또한 사랑의 결핍, 가족과 떨어진 생활로 채워진
유년기에 생긴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외면하지 않고,
괜찮지 않았던 본인의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노력을 통해
어린 날의 상처까지 스스로 보듬고 치유해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한 아이가 자라
예민한 어른이 되었지만,
꿈을 좇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또 누군가의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고민과 질문을
수시로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변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 그는 '꽤 괜찮은 어른'이 되었으며
단단한 사람이지 않았나 싶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본인의 삶과 생각을
하나씩 읊어주는 듯한 그의 글이
봉태규라는 사람을 읽는 사람에게 새로이 재조명하고
제대로 알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의 글을 읽고 나니,
문득 '나는 괜찮은 어른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의미로 반성과 깨달음이 가득한 독서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08-0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핍은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새삼 실감나게 하네요.
 
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2년생의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작가.
등단을 하지 않은 채,
본인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만 원의 비용을 내면 메일을 통해 매일같이 써내려간
따끈따끈한 본인의 '글'을 제공하겠다며
작가라는 이름을 갖게 된,
출판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은 이슬아의 이야기이다.

도통 평범한 구석이라고는 요만큼도 보이지 않는 그녀는
다양한 장르에서 종횡무진하며 일명 '글쟁이'들이
밟지 않는 길만 골라 걷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글짓기 교실의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글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있지만 뭔가 전형적이지 않는 모습을,
자정 무렵 마감을 앞둔 작가로서는 괴로워하면서도
당장의 글쓰기를 미루고 요가를 하고 딴짓을 하는
천하태평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날 것의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언제나 거리낌 없이 노브라로 다니는 사람,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누드모델로 돈을 벌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도대체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란
나와는 다른 시공간이거나 여기와 같은듯 다른
평행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건가 싶을만큼
그녀보다 인생을 이만큼 더 살아내었으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뿐더러
언제나 그녀의 행동은 예상가능한 범주를 벗어나곤 했다.

한창 이슈화 되었던 소설 '가녀장의 시대'가
드라마화 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는
그녀가 직접 드라마의 각본도 집필한다고 전했다.

그녀가 대표로 있는 헤엄출판사를 주식회사화 하며
업에 드라마 각본작업이 적혀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역시 '이 여자 난 년이네, 난 년이야.' 싶으며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했다.

그런 그녀의 신간 제목은 '끝내주는 인생'
이 책을 소개하면서도 그녀는 감히 자신이 써왔던 산문 중
이번 글이 단연코 멋지고 아름답다고 평했다.

어떻게 자신의 글에 대해 겸손 보다는
감히 단연코 멋지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렇게 자부하는 글을
어찌 읽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
기대감을 가지고 그녀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이 이상한 여자가 이야기하는 끝내주는 인생이란,
도대체 어떤 세계를 이야기하는 걸까 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고
어떤 망설임이나 후회 따위는 하지 않으며
뒤보다는 앞만 보고 달릴 것 같은 그녀는

책 속에서 어딜 가나 환대를 받았던 '사랑'으로 인해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쪽팔린 경험도,
어쩔 도리 없었던 사건 앞에 무너지고 좌절하는
보통 그만한 나이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도
무엇하나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않고
이번에도 역시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만사에 망설임 없이 척척 결단을 내리고 움직이는
천하태평일 것만 같은 그녀 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듯 그녀의 삶과 생에도
어쩔 도리 없는 사건이 수두룩하다.

덜컥 응해버린 군부대 강의에서 부터
친구와의 우정, 요가원에서의 추억은 물론
유년기의 기억과 스스로에 대한 고민,
그 와중에 지구의 재난이나 동물에 대한 연민까지
그녀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불행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이슬아는 생의 본질에 파고든다.
슬픔 하나 없는 기쁨의 생이 아니라,
숱한 실패를 딛고 마침내 성공에 이른
승리의 서사가 아니라,
도무지 기쁨인지 슬픔인지 구분되지 않는
생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하나의 고생이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생이겠으나
기어코 끝내주는 인생을 살아내겠다고,
쉼 없이 무얼 바라고 벼리며
더욱더 오래된 이슬아가 되어가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그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최고의 나야.
고통과 환희가 하나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기며 춤추듯이,
무덤가에 새로운 꽃을 또 심듯이, 생을 살고 싶어.'
라는 그녀의 글을 읽어내려 가다보니

어리고 풋내나며 통통 튀는 그녀의 글이 어느새
이만큼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져서
때로는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스스로 중심을 잡고 '이슬아 답게' 자신의 인생을
채색해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읽어내려가며
앞으로도 더 깊고 넓고 고유하게 펼쳐질
이슬아의 끝내주는 인생, 그녀의 세계가 기대되었다.

나 또한 이렇게 심지가 단단한,
나의 삶을 끝내주는 인생으로 만들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그 어떤 책보다도 그녀의 가까이에 다가간 듯한,
그리고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3년 '싱크로놀리지'라는 시스템을 통해

과거의 어떤 순간을 지켜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

자연재해로 무너진 현실 앞에 패닉이 된 사람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일본 정부는

민심수습을 위한 계엄령 선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재일한국인이 폭동을 주도해

방화, 독극물 투입 등의 테러를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후, 계엄령을 선포해

군경과 자경단에 의해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민호는 그저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이들의 절규가 담긴 죽음이라는 역사를 두고도

과거를 외면하고 회피하는 일본의 모습에 분노하며

진상 규명 위원회 소속으로 이 숨겨진 절규를

겉으로 드러내고자 애쓰고 있다.


그에 반면 다카야는 민호와는 정 반대의 입장.

그는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창립된

산하 재단에서 장학금을 지원받고 있는 자로,

같은 시공에 놓여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을 게 뻔한 사람이다.


이들이 이 싱크로놀리지 시스템을 통해

과거의 시공간으로 투입된 데에는 각기 목적이 다르다.

표면상 이 연구는 통신채널을 활용해

진상을 규명하는 공동사업이지만,

민호는 학살 현장의 진상을 직접 목격해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었고,

다카야는 근거가 취약한 당시 증언의 오류를 확인해

본인이 속한 재단에 기록을 건네려는데 있다.



그런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도착한 곳은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 학살이 벌어진 시점.


다카야는 그간의 조선인들의 증언은 증폭된 기억일 뿐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의 기대 섞인 추측이자

희망 사항일 가능성도 높다고 여겼었다.


반면, 민호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학살 피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과거에 개입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일본인에 의해 살해된다.


예기치 못한 에러 발생으로 과거의 접속이 끊긴 경우,

검증단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고

해당 기억을 잃은 채 다시 처음 시점으로 돌아온다.


과거에서의 죽음으로 민호는 처음 시점으로 돌아왔지만

어째서인지 한 팀으로 파견된 다카야는

2023년의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채

계속 과거에 머무르게 되고,

민호가 죽음을 반복할 때마다 반복해서

처음 시점부터 다시 함께 이 여정을 반복하게 된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본인도 모르는 새

여러번의 타임슬립을 반복하는 민호와,

이를 외면하는 다카야의 무한 반복되는 루프에는

과연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현재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한국인과 일본인,

과거의 시점에서 표적이 된 조선인과

이들을 죽이려는 일본인의 시선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조명하며


미지의 공포앞에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해

거침없이 칼날을 휘두른 비틀린 분노,

또 그런 역사에 대해 시간이 흘러도

인정하거나 반성을 하지 않는 현실의 민낯은 물론


아스라이 사그러들며 죽음에 가까워져가는 삶 속에서도

그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을 生 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해 살아냈던

조선인들의 모습까지 빠짐없이 나타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분명

'역사는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민호의 타임슬립으로 과거가 바뀌길 바랐고,

소설속의 '현재'에서는 약자를 향한 혐오와 학살

그리고 외면이 없기를 바랐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만큼 화가 나서

그저 관찰하고만 있는 다카야도 참 싫었지만

나 역시 그런 상황 속에 있었다면

과연 그런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타인을 포용할 수 있었을까 질문 한다면 자신이 없다.


이토록 치열한 삶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죽어간 사람들의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해도 어쩐지 허탈한 기분마저 든다.


그렇지만 그들의 겪어낸 역사의 소용돌이를

이만큼 곁에서 관찰하고 함께 겪어낸

두 현실의 청년이 그러했듯이,


이 책을 읽어내려 가며

학살의 비극은 여전히 아프고 잔혹한 상처로 남았지만

피해자인 조선인과 가해자인 일본인의

후손인 우리들이 그 현실을 제대로 마주한다면

과거의 시간에 제대로 안녕을 고하고

미래를 향해 걸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기도 한다.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데에는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고 인정하는게 우선인데,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은

그 반성과 나아감의 노력을 소설에서나마 본다.


우리 조상들의 일 이었음에도

어렴풋이만 알고있던 아픈 역사를

나 역시 이제야 제대로 마주하고

1923년의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100년이 지난 이제야 듣게 되었다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듣게 되어 다행이라고,

참 감사한 독서였다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