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면과 벌꿀 - 돌아오고 싶은 집을 만드는 방법
슬로보트 지음 / 어떤우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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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초등학교 교과서 음악시간에 나오는 이 노래는
누구든 한 번쯤 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인생을 많이 살아보지 못한
아직은 많이 어렸던 내 마음에도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평온함과 안정감으로
공감을 이끌었던 노래다.

5성급 호텔이니, 수영장이 딸린 풀빌라 등
즐거움만 가득한 여행지에 다녀오면서도
마지막 날이 되면 돌아올 '집'을 생각하며
그리움과 벅찬 마음이 들곤 한다.

며칠을 비워두었던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이 내뿜는 익숙한 '우리집 냄새'를 맡고나면
비로소 내가 돌아와야 할 장소에 돌아왔구나 하고
비어진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맞추어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모두에게 '집'이 이런 공간이지는 않다.
순탄지 않았던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난 작가에게
집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풍요롭고 포근한 곳이 아니라
결핍된 환경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은 늘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고,
가족들은 저마다 자기가 가진 상처를 바라보느라 바빠
서로를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며 결속력있게
지내지 못했기에 그의 집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이나 보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집에서 자라나며 세상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혹독했던 작가는 문득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사람들이 말하는 높은 수준의 보통을 갖지 못한 나는
내내 실격된 채로 침울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남들이 말하는 '보통'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으로
'보통'의 풍경을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밋밋하고 심심하지만 큰 고통없는 무엇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벌벌떠는 손을 잠재우려
주먹을 꼭 쥐고 원하는 것을 향해 애써가는 삶.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내밀은 손을 잡으며 간신히 나아가는,
모두의 평등한 간절함과 망설임으로
세상의 수 많은 보통은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믿으며 말이다.

어떤 날에는 한심스럽게 쌓여있는
설거지를 해치우며 집안의 안녕을 빌고,
작은 물건을 자꾸 사들이며 집안 곳곳을 채우는
맥시멀리스트이지만
그 작은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다정함을 음미한다.

불안이 덮쳐오는 날도 있지만
집안에서 잘 머무는 것만으로도 씩씩하게
자신을 돌보는 하루를 쌓아가며
작가는 자신만의 보통을 만들어 갔다.

누군가는 이해가 가지 않을 안정적인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둔 채
서점에서 조그만 돈을 벌고,
좋아하는 반찬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만족하는,
물을 끓이고 벌꿀을 담은 찾잔에 따라
갓 마른 순면 이불 위에서 '돌아오고 싶은 집'을
만들었다는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찬 매일을 말이다.

타고나기를 결핍으로 가득찬 삶,
불안정한 애착으로 비뚤어질 수 있는 환경에서도
그녀는 오히려 결핍이 선명한 행복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행복이라 말하는 것에
자신을 끼워 넣어 불행하기 보다는
자신이 진심으로 행복한 쪽으로 과감하게 걸어와
자신이 새롭게 만든 인생과 풍경 속에서
'보통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뒤에서 응원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돌아볼 수는 없지만,
언제나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모르는 사이 쌓인 사랑의 무거움을 알아채며 살아가자며
결핍된 사랑마저도 세상에 무수하게 존재하는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우고 만다.

얼핏 궁핍하고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힘주지 않고 작게 움직이며
나름의 방법으로 나를 돌보며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시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구원한 그녀의 생활과 삶이
어찌 '보통' 그 이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타인의 삶에 견주어 보면
나의 삶이 좀 구질구질하게 구겨져 있는 것 같고,
그런 내가 미워서 나를 잘 돌보지 않고 외면하게 될 때
이 책을 펼치게 되면 작가가 그러했듯,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나와 나를 둘러싼 평범한 '보통'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겠다는 따뜻한 믿음이 생겼다.

부족한 통장 잔고와 결핍된 사랑 속에서도
비틀린 마음없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고,
그런 삶 역시 따뜻한 물에 벌꿀을 풀어 마시는
순간의 작은 풍요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은 물론,
조금은 꾸깃해서 힘들게 느껴지는 나의 삶을
보통이라고 이만큼 추켜올릴 수 있게 만들어준
'힘을 빼고 느릿느릿 전진하는' 삶을
알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렇기에
'수많은 보통들의 불안이 불행이 되지 않도록
곁에서 다정이 손잡아 주는 책'이라는 추천사에
너무나 동의한다.
작고 소박한 나의 집에서도 보통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책을 읽다보니 여행을 다녀온 직후
오랜만에 집을 맞이하는 기분이 되었다.
새삼 '돌아가고 싶은 진짜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조금의 흔들림으로 걱정이 생겼던 요즘,
나의 삶도 여전히 무사하고 괜찮다고
작은 다독임을 받은 느낌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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