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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평점 :
1992년생의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작가.
등단을 하지 않은 채,
본인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만 원의 비용을 내면 메일을 통해 매일같이 써내려간
따끈따끈한 본인의 '글'을 제공하겠다며
작가라는 이름을 갖게 된,
출판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은 이슬아의 이야기이다.
도통 평범한 구석이라고는 요만큼도 보이지 않는 그녀는
다양한 장르에서 종횡무진하며 일명 '글쟁이'들이
밟지 않는 길만 골라 걷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글짓기 교실의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글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있지만 뭔가 전형적이지 않는 모습을,
자정 무렵 마감을 앞둔 작가로서는 괴로워하면서도
당장의 글쓰기를 미루고 요가를 하고 딴짓을 하는
천하태평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날 것의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언제나 거리낌 없이 노브라로 다니는 사람,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누드모델로 돈을 벌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도대체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란
나와는 다른 시공간이거나 여기와 같은듯 다른
평행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건가 싶을만큼
그녀보다 인생을 이만큼 더 살아내었으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뿐더러
언제나 그녀의 행동은 예상가능한 범주를 벗어나곤 했다.
한창 이슈화 되었던 소설 '가녀장의 시대'가
드라마화 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는
그녀가 직접 드라마의 각본도 집필한다고 전했다.
그녀가 대표로 있는 헤엄출판사를 주식회사화 하며
업에 드라마 각본작업이 적혀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역시 '이 여자 난 년이네, 난 년이야.' 싶으며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했다.
그런 그녀의 신간 제목은 '끝내주는 인생'
이 책을 소개하면서도 그녀는 감히 자신이 써왔던 산문 중
이번 글이 단연코 멋지고 아름답다고 평했다.
어떻게 자신의 글에 대해 겸손 보다는
감히 단연코 멋지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렇게 자부하는 글을
어찌 읽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
기대감을 가지고 그녀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이 이상한 여자가 이야기하는 끝내주는 인생이란,
도대체 어떤 세계를 이야기하는 걸까 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고
어떤 망설임이나 후회 따위는 하지 않으며
뒤보다는 앞만 보고 달릴 것 같은 그녀는
책 속에서 어딜 가나 환대를 받았던 '사랑'으로 인해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쪽팔린 경험도,
어쩔 도리 없었던 사건 앞에 무너지고 좌절하는
보통 그만한 나이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도
무엇하나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않고
이번에도 역시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만사에 망설임 없이 척척 결단을 내리고 움직이는
천하태평일 것만 같은 그녀 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듯 그녀의 삶과 생에도
어쩔 도리 없는 사건이 수두룩하다.
덜컥 응해버린 군부대 강의에서 부터
친구와의 우정, 요가원에서의 추억은 물론
유년기의 기억과 스스로에 대한 고민,
그 와중에 지구의 재난이나 동물에 대한 연민까지
그녀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불행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이슬아는 생의 본질에 파고든다.
슬픔 하나 없는 기쁨의 생이 아니라,
숱한 실패를 딛고 마침내 성공에 이른
승리의 서사가 아니라,
도무지 기쁨인지 슬픔인지 구분되지 않는
생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하나의 고생이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생이겠으나
기어코 끝내주는 인생을 살아내겠다고,
쉼 없이 무얼 바라고 벼리며
더욱더 오래된 이슬아가 되어가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그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최고의 나야.
고통과 환희가 하나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기며 춤추듯이,
무덤가에 새로운 꽃을 또 심듯이, 생을 살고 싶어.'
라는 그녀의 글을 읽어내려 가다보니
어리고 풋내나며 통통 튀는 그녀의 글이 어느새
이만큼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져서
때로는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스스로 중심을 잡고 '이슬아 답게' 자신의 인생을
채색해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읽어내려가며
앞으로도 더 깊고 넓고 고유하게 펼쳐질
이슬아의 끝내주는 인생, 그녀의 세계가 기대되었다.
나 또한 이렇게 심지가 단단한,
나의 삶을 끝내주는 인생으로 만들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그 어떤 책보다도 그녀의 가까이에 다가간 듯한,
그리고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