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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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자현고등학교와 함께 맞붙어 있는

특성화고등학교 자현기계공업고등학교

하이텍기계과 2학년 김두현.

그에게는 청산가리라는 별명이 있다.


어머니와 두현을 두고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나갔던 아버지가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

가정을 꾸리겠다고 이혼을 요구했고,

그 충격으로 두현의 어머니는 청산가리를 먹고

스스로의 손으로 세상을 떠난다.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했던 이 사실을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단톡방에 올라가며

그날부터 그의 별명은 청산가리가 되었다.


특성화고라는 선입견,

그리고 파탄에 이른 가정과 그 안의 두현에게

아이들은 따스한 시선을 건네지 않고

밀어내고 외면하며 빈정거린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세상에 혼자 남겨진 좌절감,

상황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 어느것 하나 자신의 탓이 아닌데

이를 빌미로 그에게 빈정거리는

평범한 아이들에 대한 분노까지.


그를 거둬준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복집의 맹독을 가진 복어처럼

두현은 뾰족하고 날선 독을 품은 아이이다.


친구라고는 어려운 가정형편 아래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들을 보살피고,

그를 이해하며 진심으로 대해주는 준수와

특성화고의 모범적인 롤모델 같은 존재,

실습을 나갔다가 사고로 인해 큰 부상을 입고

일상을 찾지 못하는 준석선배의 동생

재경이 유일하다.


오빠의 억울함을 풀고 사과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재경과

이죽거리는 아이들에게 '내가 청산가리가 있다'며

본인의 아픔을 무기처럼 펼쳤으나

되려 살해협박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봉사 처분을 받은 두현은


봉사를 위해 찾은 무료급식소에서

아직 감옥에서 출소하지 않았을

아빠를 닮은 사람을 마주하게 되고

늘 마음속 어딘가에 덮어두고 외면하던

엄마의 삶의 마지막,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진신을 마주하고자 마음을 먹게 되는데……


이 책은 가정의 붕괴라는 아픔을 겪은 두현이

그 감정의 종류는 다르지만

나름의 아픔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친구 두명과 함께 덮어두었던 어두운 과거를

다시 펼쳐 제대로 마주하며

'무얼 알고 싶었던 것인가' 하는

본인의 감정을 제대로 깨닫고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었다.


보통 실업계 혹은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가질법한 뻔한 편견인

질이 좋지 않다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고,

가정에서도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어머니의 죽음 이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순종적이지만

마음 한켠에 있는 분노를 제어하지 않고

그대로 표출해내는 두현의 삐딱한 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조금은 위태로운 듯 흔들리면서도

스스로에게 닥친 현실을 그저 외면하거나

누군가의 탓을 하기 보다는

본인의 마음속에 맺혀있는 독을

용기있게 마주하고 마음을 열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내딛는

그의 용기가 참 멋지게 느껴졌다.


두현의 감정을 따라 이야기를 읽어가며

처음에는 어머니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과

가정을 버린 아버지의 사연이 궁금했으나,

책을 다 읽고난 이후에는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 사이에서

단단해지는 두현의 성장과 치유 앞에

진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내면,

두현의 사연뿐 만 아니라

그의 곁에 있는 준수와 재경,

그리고 강태와 또 같은 시간을 겪고

이만큼 자라나 어른이 된 정명진 선생님까지


그들의 날서고 뾰족한 바늘과 독은

시간을 지나고 스스로의 깨달음과

주변에서의 애정어리고 때로는 터프한 손길아래,

부모님을 대신해 사랑으로 감싸안으며

독을 제거한 복어로 끓여낸 할머니의 복국처럼

진한 성장의 맛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따스하고 설레이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작가는 슬픔, 좌절, 원한과 분노같은 아픈감정도

삶을 살게하는 힘이 된다고 했다.

그런 독기 어린 감정이 두현을 살게하고

더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고,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실습현장에서의 현실이나

사회적인 편견 등도 함께 깨달을 수 있어

의미있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들을 청소년 문학으로 풀어내며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또 사회적인 문제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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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살인 -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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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6월 초인데도 무더위가 기승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최고기온이 33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질 거라며 폭염 관련 소식이 전해지고,

밖에 외출하면 벌써부터 지하철을 비롯해

각종 쇼핑몰, 상점에서도 에어컨을 가동하느라 바쁘다.


작년 2023년을 떠올리면

참 이상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봄에는 따뜻하다가 이틀 후에는 갑자기

폭설이 쏟아지기도 하고,

기온이 급상승 급강하를 반복하며

과실수들의 꽃과 열매가 떨어지며

사과값이 금값이라 할 만큼 상승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이렇게 더운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36-38도를 넘어서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그야말로 살갗이 녹아내릴 것 같은 더위에

떠올리기만 해도 고개를 절로 휘저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냈으니

그야말로 기후 위기의 시대이다.


여름이니까 더운 건 당연하지 싶다가도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전 세계를 긴장시키는 기후 이변이 나타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나니

조금씩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는 지구의 메시지를

너무 외면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기록적인 더위를 기록한

2023년의 폭염을 예견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의 폭염 르포타주다.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정치와 경제,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기원과 실태를 그려낸 것으로

평균기온 섭씨 45도

생존불가 지대에서 살아가는 파키스탄 시민,

야외 노동 중 희생당한 멕시코인 노동자와

미국 옥수수 농장의 농부들,

그리고 수 십 명의 기후과학자부터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에 이르기까지

수년간에 걸쳐 폭염의 생생한 현장을 취재했다.


폭염은 더 이상 이상고온이 아니라 기후 위기이며,

이런 기후 위기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도

'이거 정말 큰일이네' 하면서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혹은 이런 위기를

좀 더 유예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아

읽는 내내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작년의 더위만 해도 그렇다.

너무 더워 견딜 수 없으니 '에어컨을 틀자'

라는 일차원적인 생각만 했을 뿐

이런 생각과 에어컨을 트는 행위 자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에어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더위가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 세계에 설치된 에어컨은 10억대 이상으로,

인구 7명 중 1명꼴로 혜택을 누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혜택 바깥에 있는 빈곤국, 빈곤층에게는

쉽게 꿈꾸고 누릴 수 있는 것 이 아니기 때문에

폭염 시대에 서늘한 기온은

계급과 집값을 나누는 새로운 지표로 떠올랐다는

지적은 참 씁쓸하기만 하다.


비단 에어컨의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야생의 대탈출이 벌어져

육상 동물들은 10년마다 20km씩 북상하고,

대서양 대구는 같은 기간 동안 160km,

산호마저도 매년 32km씩 북쪽으로 이동하며

따뜻해진 해류를 피해

지구적 기후 이주가 벌어지고 있고,

이런 현상은 동물뿐 만 아니라

해수면의 상승으로 빙하가 녹아내리면

인간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내용은

공포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한참 팬데믹으로 우리 모두의 일상을 묶어두었던

코로나19 역시, 전염병 매개체로 지적되는

생명체의 서식지가 북상하며

인간의 서식지에 가까워져서 발생한 문제이기에

이것은 시작일 뿐 더위로 인해 다양하고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 발생하리란 예측은

우리의 미래를 회색빛으로 그려지게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벚꽃 모기, 사과값 폭등, 실내 온도 계급화,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 등

우리에게 닥친 〈폭염 살인〉의 수많은 사례를

접하다 보니 충격과 동시에

지금껏 살아온 나는 둘째 치더라도

남은 후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현상들을 멈추게 할 수 없을까,

조금이라도 밝아진 미래를 만들 수는 없을까

사후 약방문이지만 뭔가를 해야만 하겠다는

행동 의지가 샘솟게 되었다.


저자가 만난 수많은 기후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이러한 지구 열탕화, 폭염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고 말했다.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발전을 멈추면

30년 뒤의 기온을 바꿀 수 있으며,

폭염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폭염 불감증'의

위험성을 적극 알리기 위해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브랜딩 해서

우리가 미리 폭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인지도,

혹은 이런 행동이 과연 폭염 살인을 멈출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 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극에 스키여행을 떠났던 저자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인간의 거주지 근처를

찾은 북극곰과 직면하게 된 순간,

'죽음 직전에 사형 집행이 연기된 죄인이

된 것 같았다'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가 지금의 이 현실을 만들어낸

폭염 살인의 방조자이자 공범임을

외면하고 부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다.


이대로 '이미 너무 늦었으니 내 생 안에는

지구가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 하기보다는

이런 현실을 만들어낸 우리 스스로가

하나하나씩 에어컨 가동을 줄이고,

석탄연료 사용을 줄이며 지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을 먹게끔 하는 것이

그가 이 책을 쓰고자 한 목적이 아닌가 싶다.


문제 인식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해결을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역시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면

점차 지구의 위기 앞에 '당장의 시원함'을 위해

에어컨을 우선 돌리기보다는

나와 가족과 세계와 지구를 위해 조금은 참고,

도시에 가득한 열기를 줄이고 식히기 위해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을 찾아

폭염 살인을 막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이 들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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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 킹!!!
김홍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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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자

많은 사람들이 애정 하는 책을 출간하는

문학동네에서 진행하는 〈문학동네소설상〉


지난 수상작들 역시 어마어마한 인기는 물론

드라마화, 그리고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 등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기에


일단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펼칠 이유가 충분했다.


어떤 내용인가 궁금해서도 있고,

연일 온라인 서점과 북플루언서들의 리뷰가 이어져

자칭 책 좀 읽는다 하는 나도 빠지고 싶지 않은 기분.


우연히 책을 읽기 전 이 책을 먼저 읽어본

어떤 사람의 후기를 보았었다.

'정말 또라이 같은 소설이다.'라며

간단하게 평한 이 책, 과연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궁금증이 한가득이었다.


이 책은 한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 청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구천구,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스물일곱 살의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전국구로 명성이 높은 무당

억조창생 여사의 막내아들로,

이복형제인 이구와 칠구 쌍둥이 형제와 함께 살고 있다.

동네에서 불량배 짓을 하며 용돈벌이를 하는

이구와 칠구는 이복동생인 천구를 늘 괴롭히지만,

엄마인 억조창생 여사는 이 사태를 방관할 뿐

그에게 애정 어린 손길을 뻗은 적이 없다.

그 역시 그런 기대를 한 적도 없고,

그저 때리면 맞고 때로는 피해 가며 매일을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의 소개로

동네에 새로 생긴 〈킹 프라이스 마트〉에

취업하게 되며 그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킹 프라이스 마트의 사장인

'프라이스 킹' 배치 크라우더는

동서울터미널 앞 노점 장사로 시작해

세상의 모든 물건을 사고파는 전설적인 장사꾼으로

'절대로 팔 수 없는 것을 절대로 사지 않을 사람에게

팔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사들이지 않고

모든 것을 팔아내는' 신화적인 존재이다.


어머니가 천구를 취업시킨 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배치 크라우더의 금고에 숨겨진,

어떤 선거에서든 53퍼센트의 득표율로

승리하게 해준다는 전설의 성물

'베드로의 어구'를 손에 넣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


과연 천구는 어머니의 임무를 성공하고

베드로의 어구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한 천구가

맞이한 마트의 풍경은 우리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천차만별 다른 모습이다.

마트의 매대는 텅 비어있고,

물건이라고는 사장인 배치 크라우더가 앉아있는

의자와 책상, 그리고 금고가 전부이다.


설상가상 배치 크라우더는 천구에게

출근했으니까 퇴근하라고 하거나,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손님을 모두 돌려보내곤

동네에서 〈미륵 떡볶이〉를 운영하는

기우란 할머니가 주문한 신라면 다섯 박스와

대상이 누군지도 알 수 없지만

누구도 피해 받지 않는 복수를 주문하는

두 건의 주문만 받고는 그날 영업을 종료한다.


사장 배치 크라우더는 너무 어려운 주문인

라면 발주는 본인이 담당할 테니,

한결 쉬운(?) 복수는 천구에게 구해오라며

업무를 지시하는데…


이 말도 안 되는 마트의 일을 계속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하는 천구.


그 가운데 어머니의 '취업 제안'이 천구에게만

해당되어 화가 난 이복형제 이구와 칠구의

폭행으로 맞고 왔다는 것을 알아챈

배치 크라우더가 '감히 내 직원한테 손을 대?

어딨어 그 자식. 앞장서.' 하며 난생처음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에 점점 더 그와

일을 넘어서 인간적인 유대로 가까워지며


서로에게 하나뿐인 유일한 동료이자

의지할 수 있는 동지로 거듭나게 되고,

그 유대 앞에 베드로의 어구를 가져오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의문을 품게 되고

이 어구를 쫓는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며

더욱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배치 크라우더를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그의 금고 안에 정말 베드로의 어구가 있는지,

그 어구는 정말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

수많은 의문점과 물음표를 따라

천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쫓다 보니

어느덧 '보물 찾기' 같은 결론을 넘어서

우주 저 멀리까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버리는

전개에 할 말을 잃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전개에 먼저 읽은 누군가가

'또라이 같은 소설'이라 평하지 않았나 싶으며,

헛웃음과 함께 결말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이야기의 전개를 떠나

태어나 인간으로서의 대접,

누군가의 신뢰를 받지 못한 한 청년이

가족은 아니지만 유대감을 갖게 된

사장 배치 크라우더와의 동료애와 신뢰 아래


처음에는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주문을 처리해 가는 방식,

또 늘 당연하게 맞고 때로는 그 폭행 앞에도

'미안하다'라며 이복형제인 이구와 칠구에게

반항하거나 대들지 않고,

또 이들의 폭행에도 외면하던 어머니의 태도를


점차 용기를 내어 그 상황과 마주하고

싸우며 또 다른 인격체로서 나아가게 된

성장의 모습은 형태가 다를 뿐

'세상에 적당히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울림의 메시지로 와닿지 않았나 싶다.


사고팔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를 비틀어내는 듯한

킹 프라이스 마트의 영업방식은

의미를 캐며 읽어가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블랙 코미디 느낌으로,


그 의미를 뒤로 한 채 가볍게 읽을 때에는

웹툰 원작이자 드라마화되기도 했던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떠올리게 해서

의외의 재미성과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모두 벗어나

독자들을 이끌고 끝까지 읽게 하는

작가의 흡입력 있는 전개와 문장도 무척 매력적이었고,


태어나 한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오며

'우물 안 개구리' 혹은 알 속 세상에 살던 천구가

배치 크라우더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진정한 자신의 뜻을 펼쳐가는 과정은

한 사람의 성장담이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난해한 부분도 분명 있었으나,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생각해 보면

그저 어이없게 '뻘하게 터지는' 재미만을

담아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의도에 따라

두 번, 세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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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세탁소 -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하이디 지음, 박주선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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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에나 세탁기는 다 있으니

대부분의 옷가지들은 집에서 직접 세탁을 하지만

한 번씩 꼭 세탁소를 찾아 세탁을 맡기는 일이 생긴다.


아무리 집에서 빨래해도

얼룩이나 오염이 지워지지 않는 옷이나

추억이 담겨있어 어떻게든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주고 싶은 경우 돈이 더 들더라도

세탁소에 찾아가 '이 얼룩 지울 수 있을까요?'

하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패스트패션이라던가 저렴한 옷 가격으로

구멍이 나든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생기면

'버리고 새걸로 하나 사지 뭐' 하기 쉽지만


아무리 저렴한 가격에 산 옷이라 해도

사연과 추억이 담겨있으면

이를 쉬이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드니

그냥 '옷'이 아니라

내 시간과 추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어느 막다른 골목에 위치한

한 세탁소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반 세탁소 답지 않게

원목 책장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고,

세탁을 마친 옷을 비닐에 씌워 걸어둔

벽면만 제외하고는 책이 잔뜩 꽂혀있으니

얼핏 보면 도서관이나 서점 같은 느낌이다.


더욱이 40대 남짓의 사장님은

묘하게 철학적인 분위기는 물론,

세탁물을 맡기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따뜻한 조언을 건네기도 해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단순히 '옷을 세탁'하는 곳이 아니라

마음에 담긴 어떤 시간과 추억을

새롭게 입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있다.


좋아하는 선배가 준 손수건 한 장부터 시작해

바쁘게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의 잉크 얼룩이 묻은 셔츠,

세상을 떠난 아이가 좋아하던 속싸개,

엄마와의 이별이 담겨있는 가방끈이 끊어진 배낭이나,

떠나는 딸의 캐리어에

제멋대로 엄마가 넣어둔 스웨터 등

손님들이 맡긴 다양한 세탁물 속에 담긴

사연과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손님들은 더러워진 추억을 씻고,

또 구겨진 감정을 펴며,

찢어진 관계를 이어붙이는 과정을 겪는다.


얼핏 《시간세탁소》 라는 책 제목을 보고는

한창 유행했던 메리골드 시리즈나

편의점 시리즈처럼 시류에 편승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이 소설은 현실에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를 담은 것이 아니라,

손님들의 세탁물을 받아든 세탁소 주인이

맡긴 옷과 관련된 손님들의 사연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스스로가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주는

상담가의 역할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심리 상담가로서 일을 하는 작가의 모습이

세탁소 주인에게 투영된 게 아닐까 싶어

사연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갈수록

마음의 아프거나 구겨진 마음이 해결된 듯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상담 일을 하며 '기억이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보물'이라는 깨달음 아래

이런 기억이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는 믿음으로

이 이야기들을 써 내려갔다고 하니

그의 의도가 충분히 전해진 책이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키며

때로는 돌이키고 싶고,

때로는 후회하는 순간이나

그리운 순간을 되새길 수 있기도,

또 세탁소 주인의 한마디가

마치 나에게 건네는 따스한 조언처럼 느껴져

감동을 받기도 했다.


각 손님들의 사연을 쫓다 보니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한 소년의 이야기와

또 어딘가 미스터리한 세탁소 주인의

비밀이라는 숨겨진 반전에 다다르게 되었고,

이를 통해 비로소 세탁소 주인이

어떤 마음으로 손님들의 고민을 듣고

또, 조언을 건네게 되었는지

전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지우고 싶은 감정이나 아픔 앞에

마치 없었던 것처럼 얼룩을 지우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여전히 남아있는 얼룩을 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고,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으며

후회의 감정을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테니


그 안에 담긴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헤아리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시간세탁소를 통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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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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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시대 후기

눈 내리는 어느 겨울의 정월 그믐날,

고비키초의 극장 뒤편에서 복수가 행해졌다.


열여섯 살의 한 소년이 전통 여성 예복을 입고는

우산으로 머리를 가린 채 서 있다.

소년을 여인으로 착각한 우락부락한

한 도박꾼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소년은 덮어썼던 옷을 내던지고 신분을 밝힌다.


"나는 이노 세이자에몬의 아들 기쿠노스케.

그대 사쿠베에는 내 아버지의 원수.

여기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자."


그리고 뽑아든 긴 칼.

상대 역시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길 가던 사람들마저 가던 길을 멈추고

마른침을 삼키며 이들의 승부에 눈을 떼지 못하고,

소년과 사내의 진검승부가 펼쳐진다.


누가 보아도 질 것 같은 소년이었지만

마침내 소년 기쿠노스케는 사쿠베에를 베고

피가 튀어 흰옷이 새빨갛게 물든 그는

베어낸 사쿠베에의 잘린 머리를 들곤

구경꾼 사이를 빠져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일이 '고비키초의 복수'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도 2년이 지난 후,

문득 이 사건을 쫓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기쿠노스케가 사쿠베에를 벤 사건을 목격한

다섯 명의 사람을 만나 사건의 진상을 묻고

또 알 수 없게 목격자들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데…

과연 이 사건에는 어떤 숨겨진 진실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책을 읽는 독자가

목격자들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화자의 입장이 되도록 설정하여

이들의 진술을 따라 이야기를 쫓고

진실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익숙하지 않은 타국, 시대적인 배경으로 인해

낯설게만 느껴지는 시작이었지만

사건의 발생과 이를 진술하는 목격자들과

소년 기쿠노스케의 얽힌 관계를 알게 되면서

성공으로 끝난 이 복수극의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으로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유곽에서 태어난 잇파치,

무사 신분을 버린 요이치로와 긴지,

고향을 떠나 화장터 지기의 손에서 자란 호타루,

아들을 잃은 소도구 담당 규조와 그의 아내 오요네.


그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고

원래의 신분도, 사정도 제각각이다.

겉으로 볼 때는

일명 세간에서 말하는 낙오자들로 보이지만,

아픔을 겪고 좌절하면서도

'연극'에 의지해 삶을 이어나가고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홀로 외로운 복수를 결심한 기쿠노스케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한 지원군이자

든든한 위로를 안겨주는 따스한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이지 않았을까 싶다.


시대적인 배경상 이들이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극장은 지배층에게는

'악처(악한 곳)'에 불과하지만

억압과 규제 속에서 지배층에게 시달리던

평민들에게는 '꿈을 파는 공간'이자

시름을 잊게 하는 곳이기에

복수의 배경이기도 한 극장이 주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무사로서 살고자 두렵고 내키지 않음에도

복수를 고집하는 기쿠노스케였지만,

극장에서 만난 동료들을 통해

그들의 과거와 삶의 방식에 영향을 받고

또 고민하면서도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성장담이기도 했던 이 이야기는


꼭 복수가 아니더라도

삶을 살아가며 맞이하는 다양한 위기 속에서도

주변인들의 도움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나아갈 지혜와 용기를 얻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많은 울림을 주었다.


그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복수극을 목격했고

이를 진술하는 것처럼 보이던

목격자들의 진심 어린 마음을 쫓다 보니

과연 이 복수극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이며,

기쿠노스케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고


뜻을 관철하기 힘든 고난,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을 막는 갈등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지만

그런 일들을 마냥 비웃거나 창피해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여 살아가는 극장 사람들의 삶과


그리고 그들의 도움과 따스한 배려 아래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따를 힘을 얻게 된

기쿠노스케의 용기 있는 선택은

진정한 의미의 성장에 다다른 것 같아

후련함과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나 하나만 생각하기 쉬운 요즈음의 사회에

부족하지만 타인을 보듬고 헤아리며 도울 줄 아는

에도시대의 복수극이 참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목격자들의 하나같이 입을 모으던 진술처럼

훌륭한 복수였다고,

좌절을 끝내는 가장 인간다운 방법이자

성장담이 담긴 최고의 미스터리 극이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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