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세탁소 -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하이디 지음, 박주선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어느 집에나 세탁기는 다 있으니

대부분의 옷가지들은 집에서 직접 세탁을 하지만

한 번씩 꼭 세탁소를 찾아 세탁을 맡기는 일이 생긴다.


아무리 집에서 빨래해도

얼룩이나 오염이 지워지지 않는 옷이나

추억이 담겨있어 어떻게든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주고 싶은 경우 돈이 더 들더라도

세탁소에 찾아가 '이 얼룩 지울 수 있을까요?'

하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패스트패션이라던가 저렴한 옷 가격으로

구멍이 나든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생기면

'버리고 새걸로 하나 사지 뭐' 하기 쉽지만


아무리 저렴한 가격에 산 옷이라 해도

사연과 추억이 담겨있으면

이를 쉬이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드니

그냥 '옷'이 아니라

내 시간과 추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어느 막다른 골목에 위치한

한 세탁소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반 세탁소 답지 않게

원목 책장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고,

세탁을 마친 옷을 비닐에 씌워 걸어둔

벽면만 제외하고는 책이 잔뜩 꽂혀있으니

얼핏 보면 도서관이나 서점 같은 느낌이다.


더욱이 40대 남짓의 사장님은

묘하게 철학적인 분위기는 물론,

세탁물을 맡기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따뜻한 조언을 건네기도 해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단순히 '옷을 세탁'하는 곳이 아니라

마음에 담긴 어떤 시간과 추억을

새롭게 입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있다.


좋아하는 선배가 준 손수건 한 장부터 시작해

바쁘게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의 잉크 얼룩이 묻은 셔츠,

세상을 떠난 아이가 좋아하던 속싸개,

엄마와의 이별이 담겨있는 가방끈이 끊어진 배낭이나,

떠나는 딸의 캐리어에

제멋대로 엄마가 넣어둔 스웨터 등

손님들이 맡긴 다양한 세탁물 속에 담긴

사연과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손님들은 더러워진 추억을 씻고,

또 구겨진 감정을 펴며,

찢어진 관계를 이어붙이는 과정을 겪는다.


얼핏 《시간세탁소》 라는 책 제목을 보고는

한창 유행했던 메리골드 시리즈나

편의점 시리즈처럼 시류에 편승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이 소설은 현실에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를 담은 것이 아니라,

손님들의 세탁물을 받아든 세탁소 주인이

맡긴 옷과 관련된 손님들의 사연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스스로가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주는

상담가의 역할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심리 상담가로서 일을 하는 작가의 모습이

세탁소 주인에게 투영된 게 아닐까 싶어

사연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갈수록

마음의 아프거나 구겨진 마음이 해결된 듯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상담 일을 하며 '기억이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보물'이라는 깨달음 아래

이런 기억이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는 믿음으로

이 이야기들을 써 내려갔다고 하니

그의 의도가 충분히 전해진 책이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키며

때로는 돌이키고 싶고,

때로는 후회하는 순간이나

그리운 순간을 되새길 수 있기도,

또 세탁소 주인의 한마디가

마치 나에게 건네는 따스한 조언처럼 느껴져

감동을 받기도 했다.


각 손님들의 사연을 쫓다 보니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한 소년의 이야기와

또 어딘가 미스터리한 세탁소 주인의

비밀이라는 숨겨진 반전에 다다르게 되었고,

이를 통해 비로소 세탁소 주인이

어떤 마음으로 손님들의 고민을 듣고

또, 조언을 건네게 되었는지

전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지우고 싶은 감정이나 아픔 앞에

마치 없었던 것처럼 얼룩을 지우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여전히 남아있는 얼룩을 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고,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으며

후회의 감정을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테니


그 안에 담긴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헤아리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시간세탁소를 통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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