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생활자
황보름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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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세편살이라는 말이 있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라는 뜻의
한창 유행했던 사자성어식 표현으로,
바쁘고 정신없이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애써 복잡함에 휘둘리지 말고 편하게 살자는
삶의 고단함을 달래고 위로해 주는 말이다.

나 역시 치열하게 매일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온 시간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살아본 경험의 끝에서
'복잡하게 살면 인생 복잡해진다,
단순하게 살면 인생 단순해진다.'라는
가르침을 배웠다.

그렇게 깨달은 시간 속에서
이만큼 스스로의 어깨를 누르며
잔뜩 힘주던 시간은 어느덧
조금 힘을 빼고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오늘을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쓴
황보름 작가의 일상과 생활을 담은 에세이로
깊고 느리게 쉬는 숨을 통해
본인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었는지,
'단순'이라는 키워드로 점철되는
복잡한 것도 소란스러울 것도 없는
단순하고 평화로운 삶을 채운
매일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작가는 서른 무렵,
가족들과 사는 집에서 나와 독립생활자가 되었다.
혼자 사는 집이니 오직 나의 취향에 따라,
생활방식에 맞춰 공간을 꾸리게 되었고
꼭 필요한 것들만 들이며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조금씩 채워가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나만의 삶의 방식'을 갖추게 되었다고 했다.

겉치레 없이 눈앞에 놓인 일과에 집중하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에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질서가 있는 듯했고,
그리고 그 질서를 따라
삶을 단순하게 다듬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이끌어,
닮고 싶은 마음을 쫓다 보니 어느새 그들처럼
단순한 삶을 이루게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바라던 삶에 안착한 그녀는
필요하고 좋아하는 일들만 하는 매일 속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한 삶에 대한 만족감으로,
걱정과 시름은 내일로 넘기고
마음 놓고 마주하는 지금 이 시간 속
자신의 안에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 생활자'로서 깨달은,
잘 쉬고 잘 살기 위해 삶을 차근차근 다듬어간
자신만의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펼쳐 놓았다.

매일의 사소한 행복에 감사할 줄 알고
내가 마주한 지금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머릿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한 채
여전히 복잡한 삶으로 나아가며
스스로를 채근했던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기에
나만의 생활과 삶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녀의 하루가 주는 의미가 참 컸다.

누군가는 밋밋하다 할 수도 있지만
큰 자극 없이 자신만의 생활 반경 안에서
단순하게 나를 채우는 한 사람의 모습은,
지금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며
현재의 삶에 잠시 숨을 고르며 안도할 수 있는 기회로,
따스한 손길로 다독이는 위로가 되었다.

작가도 처음부터 단순생활자는 아니었다.
내가 그랬고 우리가 그랬듯,
몇 번이나 잘 쉬지 못해 삶이 꺾이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잘 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사회적인 시선이나 압박, 불안 등에서 벗어나
단 한 시간, 단 하루라도 가벼운 상태가 되어
꼭 해야 하는 일만 쫓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단순함이
나의 평화, 행복을 가져온다는 그녀의 깨달음은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나에게 힘을 주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제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단단한 신념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고

단순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가져다주는 힘을 깨달으며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된 그녀의 생활과
불필요한 것들은 걷어내고
오롯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들로
명랑하고 안온하게 내 세계를 채우며
삶을 단순하게 다듬어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그녀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끌었던
'닮고 싶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나 역시 그녀를 닮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끌었다.

무엇이든 힘을 빼는 것이 세게 힘을 주는 것보다
되려 더 어렵다고 한다.
쉽게 단순한 삶을 쫓으며 사는 듯 보여도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만 곁에 두기 위해
수많은 마음속가지를 쳐내는 시간들이
어찌 간단하기만 했을까 싶다.

이제부터라도 한 시간, 하루의 한 조각에
의식적으로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쫓아,
나만의 작은 성취와 행복을 만끽하면서
단순 생활자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게
애써봐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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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꽃상 - 박미영의 교방음식 이야기
박미영 지음 / 한국음식문화재단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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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이면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아
아이슬란드에서 한식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인 〈서진이네 2〉를 보는 것이
꽤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세계화 시대가 되어 각국의 음식을
이제는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지만
유럽의 섬나라에서 파는 한식,
추운 날씨에 잘 어울리는 꼬리곰탕은 물론
알록달록한 재료를 일렬로 줄 세워 담은
정갈한 비빔밥은 낯선 외국인들에게도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찾게 되는 메뉴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 출연진들은
'프렙'이라는 이름으로
그날 판매할 메뉴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준비해 손질하고
밑 작업하는 시간을 가진다.
많지 않은 메뉴이지만 그 준비 시간은
최소 3시간 이상 걸린다.

소꼬리의 핏물을 빼고
장시간 끓여 거품을 제거하고,
고기가 잘 떨어지도록 푹 삶아내는
곰탕도 손이 많이 가지만

각종 재료를 가늘게 채쳐 썰고,
나물을 데쳐내어 버무리고 볶아내며
수없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하는 비빔밥은
그야말로 프렙의 시작과 끝을 맡는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작업량이 많다.

오죽하면 이 비빔밥을 주로 준비하는,
출연자만 너무 '혹사'하고 있다며
인터넷이 시끄러워질 정도였다.

이렇게 정성껏 만들어낸 비빔밥이
긴 준비의 시간을 거쳐 식탁에 오르면,
외국인들도 연신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 해'하며
휴대전화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었고,
먹기에 앞서서도
이 예쁜 음식을 내가 망치고 있다며
아까워서 어떻게 먹나 싶어
숟가락이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 비빔밥의 모태이기도 한
진주 화반에 대해 담아낸
특별한 음식 이야기이다.

방송에서 현대식으로 만든
비빔밥 한 그릇에서도 탄성이 나오는데,
우리 조상들이 진주교방에서 만들어낸
그 비빔밥에는 무려 열여덟 가지의 재료가 들어가
마치 꽃과 같은 비주얼을 가졌다고 한다.

비빔밥 하면 전주, 정도만 떠올리던 나에게
진주성 전투의 혈투를 떠올리게 하는
진주의 비빔밥 이야기는,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근대에 이르기까지
천년이 넘은 역사를 추적해가며
동아시아를 휩쓸었던 고대 유교문화와
실록에 담긴 식문화, 식재료의 유통과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한반도의 음식에 담긴
사연을 만나볼 수 있게 해주었고

하나의 밈으로 "Do you know bibim-bop?"
하고 웃으며 그 음식이 가진 역사와
정성스러운 손길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작금의 우리들에게,
흥미진진하고 깊은 그리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진주 화반의 복원 과정은
하나의 음식을 바라보는 좁은 시야를 깨주고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교방 지기였던 외할머니,
어머니의 솜씨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유년 시절의 추억으로 기억된
진주교방 음식들의 풍류와
음식을 만드는 자세를 배운 저자는

'진주 화반'을 복원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추적을 이어가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짐으로써
한식 세계화를 향한 큰 울림을 주었다.

관청이 밀집해 있어 드나드는 관리들이 많고,
부유층이 많아 음식을 풍족히 차리며,
산과 바다에 있어 식재료의 유통이 원활하고
도성과의 거리가 멀어 제재가 닿기 어려워
화려해진 진주 식문화의 특징을 되짚으며

궁중보다 더 화려했던 접대상으로
궁중에서의 접대상을 받고는 지방만 못하다며
화를 내었다는 재미있는 사실을 소개하며
흥미를 자극하기도 했고,

소고기 육회가 올라가는 진주 화반은
날 것 그대로를 올리는
유교식 제사에서 시작된 유래를 쫓으며,

단순히 음식이 가지는 맛으로서의 가치나
들어가는 재료의 특별함 만을 나열하지 않고
그 기원과 시대적인 배경은 물론
상차림이 의미하는 바까지
하나하나 진중하게 깨우쳐주며
진정한 의미의 '복원'에 한걸음 가까워지는
섬세한 과정을 함께 몸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항상 '이것저것 섞어서 고추장 넣어 비비면
그게 비빔밥이지' 싶은 생각으로
'대충 만든 메뉴'라 썩 좋아하지 않았던 메뉴를
저자의 정성스러운 진주와 반 복원 과정을
읽어 내려가며 '먹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하게 된 독서였다.

한 상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거금의
고급스러운 지배층의 요리라는 점을 떠나
여러 사연을 가지고 역사의 흐름을 거쳐
그의 손을 통해 비로소 원래의 모습을 드러낸
진주 화반의 진면모를
제대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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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호수 밤 시나몬롤 - 코펜하겐에서 전해온 도시 생활자의 휘겔리한 삶
김성은 지음 / 어반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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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를 가진 내륙,

뚜렷한 사계절을 가진 우리나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 생활자로

어느 지역을 가도 획일화된 콘크리트 숲 사이에서

치열한 매일을 보내느라 일상을 만끽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여유를 갖지 못하고

소소한 오늘의 행복감을 만끽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하고픈 마음인지

몇 해 전인가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와

첫 월급을 타면 나만을 위한 '의자'를 산다는

덴마크식 라이프 스타일이 무척이나 유행했다.


일명 휘게(hygge)라 불리는 이 단어는

편안함과 따뜻함, 아늑함과 안락함을 뜻하는데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하는 말로

이런 덴마크식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며

나만의 작은 '힐링'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우리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채 해가 뜨기도 전 어둑어둑한 시간에

미처 잠을 다 쫓지도 못한 채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싣고 직장으로 출근해서는

해가 지고 하루 끝이 다 지나가도록

집에 돌아오지 못하 채 일하고 나서야

겨우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나 역시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을 보냈기에

북유럽풍의 편안함과 아늑함을 주는 인테리어와

덴마크의 라이프는 닿을 수 없는 꿈처럼,

언젠가 이루고 싶은 로망으로 마음속에 간직해왔다.


덴마크가 아니더라도 같은 북유럽의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도

사랑하는,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삶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면서 말이다.


여기 용기 있게 그 마음을 현실로 만들어 낸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여행으로 처음 접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매력에 이끌려

과감하게 그곳에 정착하게 된 사람.


푸드 컬렉터라는 직업의 특수성도 있지만

홀로 떠나온 코펜하겐에서의 삶과

음식을 중심으로 가까운 이들과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며 조급하지 않게 단순한

매일이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놓치지 않는

그녀의 매일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우리가 그저 이런 삶을 '꿈'으로만 간직한 채

마음 한구석에 미루어 두는 반면

그녀는 불투명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용기 있는 걸음을 내디디며

스스로를 기존과 다른 삶으로,

다채로운 세상 속으로 이끌게 되는데


흥미로운 북유럽의 다양한 식재료,

채집을 통해 길에서 '먹을 것'을 만나는

자연친화적인 삶,

그렇게 만든 음식으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소중한 시간을 함께 만끽하는 삶은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고, 가지고,

그저 더 채우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회색 도시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일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법을 알려주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휘게 라이프'의

진면모를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의 시선에 담긴 코펜하겐의 찰나의 순간,

그리고 광활하고 맑게 빛나는 자연에서

마주하며 느끼게 된 깊은 감정을 담은

사진과 글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본 것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감동을 이끌어 주었다.


누구나 동경하는 '다른 곳에서의 새로운 삶'

자연친화적이고 직장도 이른 퇴근으로

늘 꿈꾸는 저녁이 있는 생활이니

'좋을 수밖에 없겠지'라고 무뚝뚝하고

조금은 질투 어린 시선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상의 보잘것없고 소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아름답게 볼 줄 알고,

낮은 행복의 기준치로 매일을 소박하게

즐길 줄 아는 그녀의 시선이라면

어느 곳에서라도 같은 아름다움을

캐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달의 여름과 아홉 달의 겨울,

백야가 있는 생소하면서도 낯선 계절 속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매일의 하루를 통해

그녀는 조금씩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덴마크에서의 생활이 모두에게 행복하거나

도시 자체가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고,

결국 그 행복감을 느끼는 주체는 '나'이기 때문에

스스로 나의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음가짐과 시선을 가질 수 있어야겠다고,

지금부터 나의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도

소중하고 감사한 부분을 찾아봐야겠다는

다짐을 가지게 해주기도 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에서 받은 위로,

그렇게 여유 있게 흘려보내는 매일 속

조급했던 마음 위에 '이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꿈을 갖게 되었고,

모든 게 끝난 것만 같았을 때 찾아온 기회는

그렇게 삶을 다시 바꾸어 놓아

그녀를 바뀌는 계절마다 새로운 영감 속으로,

숲과 호수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일상은

매일을 더 설레고 소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저 매일을 회사, 집을 오가며

살아간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잊고 있던 우리에게

우리의 삶 역시 그녀가 그러했듯 예기치 않은 순간에

변화할 수 있다는, 내일을 향한 기대감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기회가 아닌가 싶다.


마냥 부러운 휘게 라이프를

이만큼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결국에는 이런 여유롭고 따사로운 그들의 매일은

소박한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나의 삶 역시 '휘겔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깨달을 수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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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 아일랜드
김유진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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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바이러스 시대가 지나간 후

후각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진 어느 날,

센트 그룹은 향보리 추출물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그 치료제로 인해 오히려 사람들의 후각은

전보다 더 예민해졌다.


초기에 치료제만 만들던 센트 그룹은

향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를 시작해

센트 월드를 만들어

향을 맡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향을

'체험'하는 시대로 만들게 된다.


그중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센트 아일랜드.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으로,

섬 가운데 보라색 퍼플산이 자리하고 있고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센트 그룹의 최첨단 시설이

어우러져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하다.


센트 아일랜드는 센트 오리지널,

공간의 향을 연구하는 센트 스페이스,

화장품을 연구하는 센트 뷰티,

음식과 관련된 향을 연구하는 센트 푸드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소를 겸하고 있기도 하다.


열 살 생일 기념으로 방문한 센트 월드에서

후각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센트 그룹에 입사하는 꿈을 위해 달려온 다린.

누구보다 치열하게 향을 분석하고 공부하며

전력을 다해 꿈을 이루고자 애쓴다.


특별한 후각능력을 가진 19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센트 그룹의 인턴 연구원 모집에 지원해

1차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만

다린의 엄마는 어째서인지 그녀가 센트 그룹에서

일하고자 하는 것을 영 탐탁지 않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과

간절한 꿈을 향한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던 다린은

2차 시험을 위해 센트 아일랜드로 향하게 된다.


센트 아일랜드에 채 도착하기도 전

크루즈에서 1차 테스트를 치르고,

모두가 상위 1%의 뛰어난 후각을 가진 친구들이지만

이 안에서도 등수가 나눠지고 누군가는 탈락하며

냉혹한 현실을 깨닫는다.


우여곡절 끝에 입성하게 된 센트 아일랜드에서

마주하게 되는 우정과 경쟁,

숨겨져 있는 비밀과 꿈을 향한 각자의 노력까지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과연 다린은 고대하던 인턴 연구원

합격 열쇠를 거머쥘 수 있을까?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생활기록부에는

매년 나와 부모님이 꿈꾸는 장래희망을

적어서 제출하곤 했었다.


어떤 때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고,

금세 한 해가 지나면 다른 꿈을 좇기도 했지만

대부분 부모님은 바뀌어 가는 내 장래희망에

나를 응원한다는 마음인 듯

같은 직업을 적어주며 꿈을 지지해 주었다.


이따금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판사 같은 직업을 적어주며

'진주는 규칙을 잘 지키고 인자하니까

판사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라거나

'지혜는 측은지심이 있고 다른 사람을 잘 보살피니까

의사가 잘 어울릴 것 같아." 하며

우리 자매들의 성격이나 성향에 맞는

직업을 써주며 이유를 덧붙여주어

'내가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는 생각에

뿌듯함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내 인생이니까 '내가 꿈꾸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부모님이 지지해 주거나 응원해 주지 않으면

'도대체 왜 이해해 주지 않을까?'하며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일인지 알면서,

아니면 내 마음은 신경 쓰지 않나 봐 하고

조금 날서고 비뚤어지는 마음으로

괜스레 툴툴거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다린이 그렇다.

어린 시절 우연히 방문한 센트 월드에서

본인이 후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누구보다 멋져 보였던 센트 그룹의 직원이

나중에 센트 그룹 연구소에서 꼭 만났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에 행복감은 물론

자신이 가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 일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센트 아일랜드에서 일하다가

시력을 잃게 된 엄마의 반대는

아주 오래전 일이고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거기다가 중요한 건 재능이 있고

원하는 일임에도 강경해서 서운하기만 하다.


하고 싶다고 다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잘 될 거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만큼은

내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어야 힘이 날 텐데

되려 반대하는 마음은 얄밉기만 하다.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임한 2차 시험,

가족과 떨어져 사흘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린은 같은 꿈을 좇는 다른 친구들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이 꿈에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을 뿐 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급기야 부정을 저지르고

타인과 대립하는 차갑고 냉철한 현실을 겪으며

함께 웃고 때로 울며 힘든 시간을 겪기도 한다.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조금씩 샘솟아 오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

그리고 새로 마주하게 되는 진실 앞에서도

용기 있게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는

다린과 친구들의 성장은 이미 한참은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도 꽤나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

꿈이 있는 한 네 몸에 밴 꿈 냄새는 절대 지워지지 않아."

아빠가 다린에게 해준 말이자

힘든 순간마다 다린이 스스로에게 되뇐 이 말은,

하고 싶은 일을 쫓으며 매일을 진심으로 애쓰는

우리 모두 그리고 나에게 토닥이며 전해주고 싶은

그런 말이기도 했다.


선의의 경쟁, 서로의 열정과 꿈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이지만

원하는 모습을 조금씩 더 선명하게 칠하고

찾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을 통해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잊고 있던 꿈을 돌아보고

내 주변 사람들의 '꿈 냄새'를 함께 나누며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센트 아일랜드의 총천연색의 그리고 다채로운 향이

가득한 이 책을 넘길 때마다

분명 눈으로 읽고 있음에도 코 끝에 엄마의 툴레향이,

그리고 다린이 만들어낸 마스터키 향수의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아 무척이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표현과

한창 고민하고 갈등하면서도

특유의 진심 어린 태도로 매 순간을 채워낸

다린의 따스한 마음이 더해져

꿈과 향이 영글어 가는 센트 아일랜드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독서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모가 써 내려간 리뷰를 슬쩍 보면서

'그 책 재밌어?' 하고 물어보는

한창 사춘기의 조카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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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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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할 때면

이따금 물기 어린 먹먹한 마음이 올라온다.

왜 그리 평생을 매 순간 치열하고 악착같이 살았는지

이제라도 좀 편하게 지냈으면 싶으면서도

그런 엄마에게 기대어 있는 스스로를 마주할 때면

부끄러움과 미안함 그 언저리에서 맴돈다.


그 시절 사는 게 다 그랬다지만

갑작스레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생업에 뛰어든 엄마.

한참을 나이차가 나는 이모는 그렇다 쳐도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삼촌은

그래도 아들이니까 학교를 보내야 하니

일을 해야 하는 건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던

엄마의 그 시절의 얘기를 들을 때면

때로는 애틋하고 안쓰러움으로,

때로는 엄마에게 얹어진 책임감을 덜어주지 않았던

다른 가족들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직 어렸던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방직 공장에서 직조로 원단에 무늬를 만드는 일로,

새벽같이 나가 쉴 새 없는 매일을 보내느라

돈은 벌었지만 시력이 많이 떨어졌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몸서리치게 싫다며

가끔 꿈에서 그때 그 공장이 나오면

일을 하기 싫어 눈물이 핑 돌 정도라고 했다.


어린 날을 갈아 넣은 엄마의 노동은

20대 초반 이른 나이의 결혼과

졸지에 셋이 되어버린 아이들과의

복닥거리는 매일로 이어졌고,

더 이상 공장은 아니었지만 슈퍼마켓으로,

그리고 백화점과 마트로

환갑이 될 때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엄마는 항상

'나는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게 없어서' 하고

스스로를 낮추지만

평생을 '돈을 벌기 위해' 애써온,

노동으로 점철된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면

단단하게 가족을 보살피고 먹여 살려온

그의 용기는 더없이 높고 대단하기만 하다.


생각만 해도 애틋한 엄마의 삶 때문일까.


생계보다 생존에 가까운 삶,

살기 위해서 가족을 짊어진 채 돈을 벌었고,

이른 나이에 또 다른 가족을 이뤄 무게를 더한 채

평생을 '1인분의 삶'을 가져본 적 없이 살아온 엄마.


나이 50이 넘어 태어나 처음으로 가본 해외는

여행이 아니라 일을 위해서였고,

그렇게 떠난 타지에서 인생 처음으로

'자신만의 방'을 갖게 되며

이제야 비로소 오롯이 나를 생각하는 인생을 살게 된

작가의 엄마 이야기는 짤막한 몇 컷만을 보고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 엄마의 이야기' 같았다.


베트남 파견을 앞두고

가고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엄마.

이유는 아빠와 자녀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마음.


그런 엄마에게 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용기가 안 나면 별 수 없지만

엄마 마음이 어떤지 잘 생각해 봐.

그게 제일 중요하지."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얼마 뒤, 긴 고민 끝에 말했다.

"엄마, 가기로 했어."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의 우선순위에 자신을 두지 않는다.

항상 가족, 남편이나 아이들을 생각하느라

내 마음은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그런 건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누군가를 위한 삶을 보내며 나이 들고 늙는다.


딸의 '엄마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결심한 엄마의 선택은

베트남에서의 생활 동안

늦었지만 '오롯이 나의 삶'을 찾아가는

새로운 인생의 여정이 되었다.


과연 낯선 나라에서 엄마가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딸의 매일은

휴일에 혼자 여행을 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새로운 세계로 뛰어드는 엄마의 용기에서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되려 엄마가 떠난 삶에서의 빈자리,

'이제 베트남에 돌아올 때 집에 돌아온 것 같다'라는

엄마의 말에 서운함에 낯선 감정을 느꼈던 딸은

엄마의 그림자에서 슬픔을 보았던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말고

꼭 맞는 옷을 입은 엄마의 삶을

비로소 응원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엄마의 첫 혼자 여행 앞에

마치 우리 엄마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 듯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고,

걱정과 달리 너무도 멋지게 나의 일과 삶을

꾸려가는 엄마의 인생은

다가올 나의 인생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자신'에 대한 마음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얼마 전

올해 우리의 추천으로 놓았던 학업을 다시 시작한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직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학교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며

학교에 다녀오면 이만큼 톤이 올라가는 엄마에게

"진작 학교 갈 걸 그랬다는 생각은 안 들어?"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굉장히 후련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아니야. 지금이 딱 적당한 것 같아.

오히려 더 일찍이었으면

그럴 맘이 안 생겼을 것 같아."라고 했다.


지나친 인생의 수많은 시간들에는

후회를 한 조각도 남겨두지 않은 채

지난날의 아프고 서러웠던 마음도,

노동으로 꽉 채웠던 젊고 예뻤던 날에도

미련 없이 작별을 고한 채


지금 느끼는 충만한 만족감에

그리고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기대로

또 미뤄왔던 것을 이제라도 하는 감사함으로

매일을 열심히 채우는 엄마의 모습은


베트남에서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작가의 엄마가 그랬듯,

큰 인생의 틀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마음속에도 '엄마만의 방'이 생긴 것 같아

지켜보는 우리를 뿌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엄마만의 방, 엄마만의 삶이라는 게

그 어떤 환경이나 누구의 도움보다

스스로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의 생각보다 더 단단한 엄마들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따뜻하게 마음을 데워주고,

애틋하고 울컥한 마음이 잔상처럼 남는 이 이야기는

책장을 넘겨갈수록

'당신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로 넘어와

이만큼 엄마를 더 이해하고 한 뼘 더 자란

성숙한 딸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지난한 세월을 살아온 엄마에게도

새로운 용기와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퇴근하고 돌아오는 엄마에게

슬며시 건네주며 따뜻한 포옹을 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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