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할 때면

이따금 물기 어린 먹먹한 마음이 올라온다.

왜 그리 평생을 매 순간 치열하고 악착같이 살았는지

이제라도 좀 편하게 지냈으면 싶으면서도

그런 엄마에게 기대어 있는 스스로를 마주할 때면

부끄러움과 미안함 그 언저리에서 맴돈다.


그 시절 사는 게 다 그랬다지만

갑작스레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생업에 뛰어든 엄마.

한참을 나이차가 나는 이모는 그렇다 쳐도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삼촌은

그래도 아들이니까 학교를 보내야 하니

일을 해야 하는 건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던

엄마의 그 시절의 얘기를 들을 때면

때로는 애틋하고 안쓰러움으로,

때로는 엄마에게 얹어진 책임감을 덜어주지 않았던

다른 가족들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직 어렸던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방직 공장에서 직조로 원단에 무늬를 만드는 일로,

새벽같이 나가 쉴 새 없는 매일을 보내느라

돈은 벌었지만 시력이 많이 떨어졌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몸서리치게 싫다며

가끔 꿈에서 그때 그 공장이 나오면

일을 하기 싫어 눈물이 핑 돌 정도라고 했다.


어린 날을 갈아 넣은 엄마의 노동은

20대 초반 이른 나이의 결혼과

졸지에 셋이 되어버린 아이들과의

복닥거리는 매일로 이어졌고,

더 이상 공장은 아니었지만 슈퍼마켓으로,

그리고 백화점과 마트로

환갑이 될 때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엄마는 항상

'나는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게 없어서' 하고

스스로를 낮추지만

평생을 '돈을 벌기 위해' 애써온,

노동으로 점철된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면

단단하게 가족을 보살피고 먹여 살려온

그의 용기는 더없이 높고 대단하기만 하다.


생각만 해도 애틋한 엄마의 삶 때문일까.


생계보다 생존에 가까운 삶,

살기 위해서 가족을 짊어진 채 돈을 벌었고,

이른 나이에 또 다른 가족을 이뤄 무게를 더한 채

평생을 '1인분의 삶'을 가져본 적 없이 살아온 엄마.


나이 50이 넘어 태어나 처음으로 가본 해외는

여행이 아니라 일을 위해서였고,

그렇게 떠난 타지에서 인생 처음으로

'자신만의 방'을 갖게 되며

이제야 비로소 오롯이 나를 생각하는 인생을 살게 된

작가의 엄마 이야기는 짤막한 몇 컷만을 보고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 엄마의 이야기' 같았다.


베트남 파견을 앞두고

가고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엄마.

이유는 아빠와 자녀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마음.


그런 엄마에게 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용기가 안 나면 별 수 없지만

엄마 마음이 어떤지 잘 생각해 봐.

그게 제일 중요하지."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얼마 뒤, 긴 고민 끝에 말했다.

"엄마, 가기로 했어."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의 우선순위에 자신을 두지 않는다.

항상 가족, 남편이나 아이들을 생각하느라

내 마음은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그런 건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누군가를 위한 삶을 보내며 나이 들고 늙는다.


딸의 '엄마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결심한 엄마의 선택은

베트남에서의 생활 동안

늦었지만 '오롯이 나의 삶'을 찾아가는

새로운 인생의 여정이 되었다.


과연 낯선 나라에서 엄마가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딸의 매일은

휴일에 혼자 여행을 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새로운 세계로 뛰어드는 엄마의 용기에서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되려 엄마가 떠난 삶에서의 빈자리,

'이제 베트남에 돌아올 때 집에 돌아온 것 같다'라는

엄마의 말에 서운함에 낯선 감정을 느꼈던 딸은

엄마의 그림자에서 슬픔을 보았던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말고

꼭 맞는 옷을 입은 엄마의 삶을

비로소 응원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엄마의 첫 혼자 여행 앞에

마치 우리 엄마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 듯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고,

걱정과 달리 너무도 멋지게 나의 일과 삶을

꾸려가는 엄마의 인생은

다가올 나의 인생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자신'에 대한 마음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얼마 전

올해 우리의 추천으로 놓았던 학업을 다시 시작한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직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학교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며

학교에 다녀오면 이만큼 톤이 올라가는 엄마에게

"진작 학교 갈 걸 그랬다는 생각은 안 들어?"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굉장히 후련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아니야. 지금이 딱 적당한 것 같아.

오히려 더 일찍이었으면

그럴 맘이 안 생겼을 것 같아."라고 했다.


지나친 인생의 수많은 시간들에는

후회를 한 조각도 남겨두지 않은 채

지난날의 아프고 서러웠던 마음도,

노동으로 꽉 채웠던 젊고 예뻤던 날에도

미련 없이 작별을 고한 채


지금 느끼는 충만한 만족감에

그리고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기대로

또 미뤄왔던 것을 이제라도 하는 감사함으로

매일을 열심히 채우는 엄마의 모습은


베트남에서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작가의 엄마가 그랬듯,

큰 인생의 틀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마음속에도 '엄마만의 방'이 생긴 것 같아

지켜보는 우리를 뿌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엄마만의 방, 엄마만의 삶이라는 게

그 어떤 환경이나 누구의 도움보다

스스로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의 생각보다 더 단단한 엄마들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따뜻하게 마음을 데워주고,

애틋하고 울컥한 마음이 잔상처럼 남는 이 이야기는

책장을 넘겨갈수록

'당신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로 넘어와

이만큼 엄마를 더 이해하고 한 뼘 더 자란

성숙한 딸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지난한 세월을 살아온 엄마에게도

새로운 용기와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퇴근하고 돌아오는 엄마에게

슬며시 건네주며 따뜻한 포옹을 안겨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