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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 아일랜드
김유진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평점 :




대 바이러스 시대가 지나간 후
후각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진 어느 날,
센트 그룹은 향보리 추출물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그 치료제로 인해 오히려 사람들의 후각은
전보다 더 예민해졌다.
초기에 치료제만 만들던 센트 그룹은
향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를 시작해
센트 월드를 만들어
향을 맡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향을
'체험'하는 시대로 만들게 된다.
그중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센트 아일랜드.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으로,
섬 가운데 보라색 퍼플산이 자리하고 있고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센트 그룹의 최첨단 시설이
어우러져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하다.
센트 아일랜드는 센트 오리지널,
공간의 향을 연구하는 센트 스페이스,
화장품을 연구하는 센트 뷰티,
음식과 관련된 향을 연구하는 센트 푸드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소를 겸하고 있기도 하다.
열 살 생일 기념으로 방문한 센트 월드에서
후각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센트 그룹에 입사하는 꿈을 위해 달려온 다린.
누구보다 치열하게 향을 분석하고 공부하며
전력을 다해 꿈을 이루고자 애쓴다.
특별한 후각능력을 가진 19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센트 그룹의 인턴 연구원 모집에 지원해
1차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만
다린의 엄마는 어째서인지 그녀가 센트 그룹에서
일하고자 하는 것을 영 탐탁지 않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과
간절한 꿈을 향한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던 다린은
2차 시험을 위해 센트 아일랜드로 향하게 된다.
센트 아일랜드에 채 도착하기도 전
크루즈에서 1차 테스트를 치르고,
모두가 상위 1%의 뛰어난 후각을 가진 친구들이지만
이 안에서도 등수가 나눠지고 누군가는 탈락하며
냉혹한 현실을 깨닫는다.
우여곡절 끝에 입성하게 된 센트 아일랜드에서
마주하게 되는 우정과 경쟁,
숨겨져 있는 비밀과 꿈을 향한 각자의 노력까지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과연 다린은 고대하던 인턴 연구원
합격 열쇠를 거머쥘 수 있을까?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생활기록부에는
매년 나와 부모님이 꿈꾸는 장래희망을
적어서 제출하곤 했었다.
어떤 때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고,
금세 한 해가 지나면 다른 꿈을 좇기도 했지만
대부분 부모님은 바뀌어 가는 내 장래희망에
나를 응원한다는 마음인 듯
같은 직업을 적어주며 꿈을 지지해 주었다.
이따금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판사 같은 직업을 적어주며
'진주는 규칙을 잘 지키고 인자하니까
판사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라거나
'지혜는 측은지심이 있고 다른 사람을 잘 보살피니까
의사가 잘 어울릴 것 같아." 하며
우리 자매들의 성격이나 성향에 맞는
직업을 써주며 이유를 덧붙여주어
'내가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는 생각에
뿌듯함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내 인생이니까 '내가 꿈꾸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부모님이 지지해 주거나 응원해 주지 않으면
'도대체 왜 이해해 주지 않을까?'하며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일인지 알면서,
아니면 내 마음은 신경 쓰지 않나 봐 하고
조금 날서고 비뚤어지는 마음으로
괜스레 툴툴거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다린이 그렇다.
어린 시절 우연히 방문한 센트 월드에서
본인이 후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누구보다 멋져 보였던 센트 그룹의 직원이
나중에 센트 그룹 연구소에서 꼭 만났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에 행복감은 물론
자신이 가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 일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센트 아일랜드에서 일하다가
시력을 잃게 된 엄마의 반대는
아주 오래전 일이고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거기다가 중요한 건 재능이 있고
원하는 일임에도 강경해서 서운하기만 하다.
하고 싶다고 다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잘 될 거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만큼은
내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어야 힘이 날 텐데
되려 반대하는 마음은 얄밉기만 하다.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임한 2차 시험,
가족과 떨어져 사흘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린은 같은 꿈을 좇는 다른 친구들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이 꿈에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을 뿐 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급기야 부정을 저지르고
타인과 대립하는 차갑고 냉철한 현실을 겪으며
함께 웃고 때로 울며 힘든 시간을 겪기도 한다.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조금씩 샘솟아 오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
그리고 새로 마주하게 되는 진실 앞에서도
용기 있게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는
다린과 친구들의 성장은 이미 한참은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도 꽤나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
꿈이 있는 한 네 몸에 밴 꿈 냄새는 절대 지워지지 않아."
아빠가 다린에게 해준 말이자
힘든 순간마다 다린이 스스로에게 되뇐 이 말은,
하고 싶은 일을 쫓으며 매일을 진심으로 애쓰는
우리 모두 그리고 나에게 토닥이며 전해주고 싶은
그런 말이기도 했다.
선의의 경쟁, 서로의 열정과 꿈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이지만
원하는 모습을 조금씩 더 선명하게 칠하고
찾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을 통해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잊고 있던 꿈을 돌아보고
내 주변 사람들의 '꿈 냄새'를 함께 나누며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센트 아일랜드의 총천연색의 그리고 다채로운 향이
가득한 이 책을 넘길 때마다
분명 눈으로 읽고 있음에도 코 끝에 엄마의 툴레향이,
그리고 다린이 만들어낸 마스터키 향수의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아 무척이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표현과
한창 고민하고 갈등하면서도
특유의 진심 어린 태도로 매 순간을 채워낸
다린의 따스한 마음이 더해져
꿈과 향이 영글어 가는 센트 아일랜드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독서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모가 써 내려간 리뷰를 슬쩍 보면서
'그 책 재밌어?' 하고 물어보는
한창 사춘기의 조카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