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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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생의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작가.
등단을 하지 않은 채,
본인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만 원의 비용을 내면 메일을 통해 매일같이 써내려간
따끈따끈한 본인의 '글'을 제공하겠다며
작가라는 이름을 갖게 된,
출판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은 이슬아의 이야기이다.

도통 평범한 구석이라고는 요만큼도 보이지 않는 그녀는
다양한 장르에서 종횡무진하며 일명 '글쟁이'들이
밟지 않는 길만 골라 걷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글짓기 교실의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글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있지만 뭔가 전형적이지 않는 모습을,
자정 무렵 마감을 앞둔 작가로서는 괴로워하면서도
당장의 글쓰기를 미루고 요가를 하고 딴짓을 하는
천하태평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날 것의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언제나 거리낌 없이 노브라로 다니는 사람,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누드모델로 돈을 벌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도대체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란
나와는 다른 시공간이거나 여기와 같은듯 다른
평행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건가 싶을만큼
그녀보다 인생을 이만큼 더 살아내었으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뿐더러
언제나 그녀의 행동은 예상가능한 범주를 벗어나곤 했다.

한창 이슈화 되었던 소설 '가녀장의 시대'가
드라마화 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는
그녀가 직접 드라마의 각본도 집필한다고 전했다.

그녀가 대표로 있는 헤엄출판사를 주식회사화 하며
업에 드라마 각본작업이 적혀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역시 '이 여자 난 년이네, 난 년이야.' 싶으며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했다.

그런 그녀의 신간 제목은 '끝내주는 인생'
이 책을 소개하면서도 그녀는 감히 자신이 써왔던 산문 중
이번 글이 단연코 멋지고 아름답다고 평했다.

어떻게 자신의 글에 대해 겸손 보다는
감히 단연코 멋지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렇게 자부하는 글을
어찌 읽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
기대감을 가지고 그녀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이 이상한 여자가 이야기하는 끝내주는 인생이란,
도대체 어떤 세계를 이야기하는 걸까 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고
어떤 망설임이나 후회 따위는 하지 않으며
뒤보다는 앞만 보고 달릴 것 같은 그녀는

책 속에서 어딜 가나 환대를 받았던 '사랑'으로 인해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쪽팔린 경험도,
어쩔 도리 없었던 사건 앞에 무너지고 좌절하는
보통 그만한 나이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도
무엇하나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않고
이번에도 역시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만사에 망설임 없이 척척 결단을 내리고 움직이는
천하태평일 것만 같은 그녀 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듯 그녀의 삶과 생에도
어쩔 도리 없는 사건이 수두룩하다.

덜컥 응해버린 군부대 강의에서 부터
친구와의 우정, 요가원에서의 추억은 물론
유년기의 기억과 스스로에 대한 고민,
그 와중에 지구의 재난이나 동물에 대한 연민까지
그녀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불행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이슬아는 생의 본질에 파고든다.
슬픔 하나 없는 기쁨의 생이 아니라,
숱한 실패를 딛고 마침내 성공에 이른
승리의 서사가 아니라,
도무지 기쁨인지 슬픔인지 구분되지 않는
생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하나의 고생이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생이겠으나
기어코 끝내주는 인생을 살아내겠다고,
쉼 없이 무얼 바라고 벼리며
더욱더 오래된 이슬아가 되어가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그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최고의 나야.
고통과 환희가 하나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기며 춤추듯이,
무덤가에 새로운 꽃을 또 심듯이, 생을 살고 싶어.'
라는 그녀의 글을 읽어내려 가다보니

어리고 풋내나며 통통 튀는 그녀의 글이 어느새
이만큼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져서
때로는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스스로 중심을 잡고 '이슬아 답게' 자신의 인생을
채색해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읽어내려가며
앞으로도 더 깊고 넓고 고유하게 펼쳐질
이슬아의 끝내주는 인생, 그녀의 세계가 기대되었다.

나 또한 이렇게 심지가 단단한,
나의 삶을 끝내주는 인생으로 만들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그 어떤 책보다도 그녀의 가까이에 다가간 듯한,
그리고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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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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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3년 '싱크로놀리지'라는 시스템을 통해

과거의 어떤 순간을 지켜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

자연재해로 무너진 현실 앞에 패닉이 된 사람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일본 정부는

민심수습을 위한 계엄령 선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재일한국인이 폭동을 주도해

방화, 독극물 투입 등의 테러를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후, 계엄령을 선포해

군경과 자경단에 의해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민호는 그저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이들의 절규가 담긴 죽음이라는 역사를 두고도

과거를 외면하고 회피하는 일본의 모습에 분노하며

진상 규명 위원회 소속으로 이 숨겨진 절규를

겉으로 드러내고자 애쓰고 있다.


그에 반면 다카야는 민호와는 정 반대의 입장.

그는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창립된

산하 재단에서 장학금을 지원받고 있는 자로,

같은 시공에 놓여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을 게 뻔한 사람이다.


이들이 이 싱크로놀리지 시스템을 통해

과거의 시공간으로 투입된 데에는 각기 목적이 다르다.

표면상 이 연구는 통신채널을 활용해

진상을 규명하는 공동사업이지만,

민호는 학살 현장의 진상을 직접 목격해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었고,

다카야는 근거가 취약한 당시 증언의 오류를 확인해

본인이 속한 재단에 기록을 건네려는데 있다.



그런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도착한 곳은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 학살이 벌어진 시점.


다카야는 그간의 조선인들의 증언은 증폭된 기억일 뿐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의 기대 섞인 추측이자

희망 사항일 가능성도 높다고 여겼었다.


반면, 민호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학살 피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과거에 개입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일본인에 의해 살해된다.


예기치 못한 에러 발생으로 과거의 접속이 끊긴 경우,

검증단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고

해당 기억을 잃은 채 다시 처음 시점으로 돌아온다.


과거에서의 죽음으로 민호는 처음 시점으로 돌아왔지만

어째서인지 한 팀으로 파견된 다카야는

2023년의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채

계속 과거에 머무르게 되고,

민호가 죽음을 반복할 때마다 반복해서

처음 시점부터 다시 함께 이 여정을 반복하게 된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본인도 모르는 새

여러번의 타임슬립을 반복하는 민호와,

이를 외면하는 다카야의 무한 반복되는 루프에는

과연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현재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한국인과 일본인,

과거의 시점에서 표적이 된 조선인과

이들을 죽이려는 일본인의 시선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조명하며


미지의 공포앞에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해

거침없이 칼날을 휘두른 비틀린 분노,

또 그런 역사에 대해 시간이 흘러도

인정하거나 반성을 하지 않는 현실의 민낯은 물론


아스라이 사그러들며 죽음에 가까워져가는 삶 속에서도

그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을 生 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해 살아냈던

조선인들의 모습까지 빠짐없이 나타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분명

'역사는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민호의 타임슬립으로 과거가 바뀌길 바랐고,

소설속의 '현재'에서는 약자를 향한 혐오와 학살

그리고 외면이 없기를 바랐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만큼 화가 나서

그저 관찰하고만 있는 다카야도 참 싫었지만

나 역시 그런 상황 속에 있었다면

과연 그런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타인을 포용할 수 있었을까 질문 한다면 자신이 없다.


이토록 치열한 삶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죽어간 사람들의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해도 어쩐지 허탈한 기분마저 든다.


그렇지만 그들의 겪어낸 역사의 소용돌이를

이만큼 곁에서 관찰하고 함께 겪어낸

두 현실의 청년이 그러했듯이,


이 책을 읽어내려 가며

학살의 비극은 여전히 아프고 잔혹한 상처로 남았지만

피해자인 조선인과 가해자인 일본인의

후손인 우리들이 그 현실을 제대로 마주한다면

과거의 시간에 제대로 안녕을 고하고

미래를 향해 걸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기도 한다.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데에는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고 인정하는게 우선인데,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은

그 반성과 나아감의 노력을 소설에서나마 본다.


우리 조상들의 일 이었음에도

어렴풋이만 알고있던 아픈 역사를

나 역시 이제야 제대로 마주하고

1923년의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100년이 지난 이제야 듣게 되었다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듣게 되어 다행이라고,

참 감사한 독서였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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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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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의 관계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다.

아직 어린 나이라 하더라도 여자아이들은

친해지면 자기들만의 공감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가장 원초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화장실 마저 함께 가기도 하고,

특히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르는 단짝 사이에서는

그 어떤 비밀도 존재하지 않을만큼

많은 감정과 이야기들을 터놓기도 한다.

마치 내가 너 인듯, 네가 나인듯.


그 끈끈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관계는

학창시절을 거쳐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기까지

결혼의 유무나 자식의 유무에 관계없이

대상이 바뀌어 갈 때도 있지만

항상 여자의 곁에 존재한다.


아마 그렇기에 이 소설이 일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름만 바꾸면 마치 '내 주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어 더 몰입하게 되었다.


세상 누구보다 어쩌면 남편보다도 서로를 더 가깝게

여기는 것 같은 특별한 관계의 나쓰코와 사에.


이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나쓰코는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는 대신

혼전임신을 한 지라 한 번도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해 본적이 없고

사에는 결혼은 했지만 간절히 바라는 아이는 없고,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현역이다.


얼마나 둘 사이가 견고한지 사에의 남편이

실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사에는 나쓰코에게 털어놓을 수 있으며


집 열쇠를 잃어버릴 때를 대비해 나쓰코가

사에의 집 열쇠를 맡아준다거나

자신과 똑같은 이불을 선물하고,

같은 이불이 깔린 나쓰코의 집에서도

내집인양 편하게 잠들수 있는 사에이기도 하다.


어느 날 사에의 남편 다이시가 불륜을 고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되고,

그가 결국엔 시체로 발견되면서 이 둘의 관계와

이야기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에 남편인 다이시의 죽음

자체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여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각 장에서 '주변인물'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주인공들에 대한 소스를 제공하는데

마치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일까'를

찾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 아닐까

하는 게 당연한 흐름이랄까.


그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파헤쳐지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둘의 관계를 깨닫는 순간,

내가 자연스레 믿고 있고 알고 있던

이들의 관계가 틀렸던 것인가 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반전에 다시 책장을

앞으로 넘겨 읽어보기도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속아 넘어가는 쾌감'이라는

책의 소개글이 제격인 것 같다.


비뚤어진 어머니 아래서 자라난 나쓰코,

그런 낫 짱을 전적으로 믿는 사에.

각기 서로를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그들의 복잡한 관계가 다 읽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는 듯 이해가 갔다.


이들의 관계까 진실한 우정일까,

혹은 비뚤리게 어긋한 사랑의 파국일까

사실 조금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았었는데

그 관계의 진실을 깨달아가며 몰입하고

반전에 깜짝 놀랬던 추리소설 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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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냥 - 죽여야 사는 집
해리슨 쿼리.매트 쿼리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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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자락에 있는 땅을 좀 갖고 싶어.
현관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면,
온통 자연뿐인 곳으로.
인간이 손댄 흔적은 내 집이랑 헛간이랑
작업장밖에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딱 꿈에 그리던 그런 집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한 해리와 사샤.

내다보이는 모든 곳에,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든 간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에
곧바로 이 집과 사랑에 빠진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일한 이웃인
노부부가 찾아와 수상한 인사를 건넸다.
"이사 온 걸 환영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곳에는 오래된 규칙이 있어요."

그들이 말한 세 가지 규칙은 기묘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는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절대 믿지 말 것.
당신이 죽인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 것.
규칙을 벗어나려 하면,
집이 그 의도를 알아챈다는 것.

미친 소리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들의
이야기에 불쾌해지던 찰나
봄과 여름, 가을에 걸쳐 이웃인 노부부가 말한
악령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떠날 수도 없는 이 집에 갇혀버린 신혼부부는
살아남기 위해, 이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사냥을 하기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포병으로 근무하며
사람을 여럿 죽인 경험이 있는 해리가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살인'에 대한 고백을
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마치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 같은 이 남자도 수상했지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한
그들의 새로운 집에 찾아온 노부부의 친절도
어쩐지 신뢰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이웃 사냥》이라는 책 제목 때문인지
이들의 집을 둘러싸고 매 계절마다 찾아오는
악령의 존재와 그 악령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웃지븨 댄과 루시가 어쩐지 그 악령과
연관되어 있는게 아닐까 싶은 부분도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이 하는 악령을 쫓는 방법 조차도
사실은 되려 악령이 이 둘 부부에게 다가오게끔
하는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이야기는
처음 책을 펼칠 때만 해도
'다 읽으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는데' 싶었으나
흡입력있게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문체는
순식간에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달리게 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각각 해리와 사샤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는데,
각 인물의 상황과 성격 등이 어우러져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그 시점을 따라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어느덧 책을 읽는 나 역시 이들이 접한
악령의 본질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듯한
알면 안되는 진실에 접근하게 된 듯한
두근거림을 느끼게 되었다.

계절을 거듭할 수록 그 강도가 강해지는 악령의 모습,
집과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해리와 사샤의 선택과 행동,
그 이면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죄책감과 상처 등이
눈에 보여지는 무언가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들의 문제는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가장 사랑하는 상대방을 지키기 위한
둘의 진심과 용기있는 행동,
자신이 가진 문제를 직면하고 제대로 바라보며
두려움 속에서도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해리와 사샤를 통해
공포를 넘어선 어떤 인생관이랄까
한 사람의 성장을 살펴보게 되어
완전히 닫힌 결말이 아님에도
안심하게 되는 마음이었다.

되려 이웃 사냥이라는 말이 그 '이웃'을 의심하게 하고
악령의 진실이 무엇일까
일부러 헷갈리게 한 듯한 느낌이다.
현현하는 각 계절별 악령의 모습과
그 사이에서 인간적으로 고뇌하면서도 용기를 낸
해리와 사샤의 모습이 넷플릭스와 만나
어떤 영상으로 펼쳐지게 될 지
기대하고 궁금하게 하는 책이었다.

덥고 습한 여름날의 날씨,
오싹한 공포는 물론 몇 번이나 책 속의 이야기가 떠올라
보이지 않는 어떤 두려움을 끄집어내 준
그런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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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만이라도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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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다루는 작가 마스다 미리.

《수짱의 연애》 를 비롯한 다양한 만화 작품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이자 만화가로 알려진 그녀는
만화를 제외하고는 여행에세이 등의
작품활동을 주로 하는 편이지만,
드물게 장편소설도 집필하곤 했는데
이 책이 그녀가 써낸 두 권의 장편소설 중 하나이다.

사별 후 여유로운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고 있는
기요코 이모의 제안으로 불쑥 갑자기
브라질 패키지 여행을 떠나게 된 히나코.

그녀는 이혼 후 혼자 살아가고 있는
언니 야요이의 집에 얹혀
파견직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30대로,

화려하고 뜨겁게 빛나는 브라질에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에 빠진듯한
느낌에 휩싸여 총 천연색으로 빛나는
새로운 삶의 자극을 받게 된다.

여행을 준비하며 외모가 별로라 관심없던
직장의 영업팀 정규직인 이시오카씨가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 하나로
그를 새로이 보게 되서는
여행을 계기로 그와 공감을 이뤄 관계를 진전해
인생의 반려자가 되면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하는
소위 '김치국'을 마시기도 하고

같은 패키지에서 알게 된 화과자 가게를 운영하는
기무라 부부의 미혼 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그들 중 하나와 결혼해 기무라 부부의 가업을 물려받아
'젊은 사모님'의 역할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히나코가 함께 살고있는 언니 야요이는
결혼을 이유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다가
이혼으로 인해 경단녀(경력단절 여자)로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동생이 여행을 간 동안
평소에는 하지 않을, ‘매일 새로운 일을 하는 룰’을
정해 하나씩 기록해나가기로 하며
그녀 역시 나름대로 일상에서의 일탈을 통해
본인의 삶에 변화를 주는 시간을 갖게 된다.

언니인 야요이 역시 동생 히나코처럼
요양보호사로 방문하는 가정에서 알게 된
아들과의 미래를 잠시나마 떠올린다거나
수영장에서 만나 새로이 알게된
(부자이며 여유있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와 함께 일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며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렇게 일탈을 통해 빛나는 장밋빛 인생을
꿈꾸고 상상하던 그녀들은
각각 여행이 끝나고 일명 '현타'로 인해
와장창 다시 조금은 암울한 현실로 돌아온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지만,
능력도 없고 노력할 의지도 없는 그녀들은
여전히 현실에서도 기요코 이모의 유산과 같은
요행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여느 픽션과 달리
마스다 미리의 소설에서는 어림없는 소리이다.
꿈에서 와장창 깨서 현실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과하지 않은 현실적이고 신선한
마스다 미리식 마무리에 피식하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녀들의 꿈처럼 장밋빛 미래가
현실이 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약간만 일상에서 변화를 주어도
그 일상 속에서 내 모습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그리고 평범한 그녀들의 일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매일을 살아내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기요코 이모는 여행을 통해
내심 자신을 데려가지 싶어 질투가 난 듯한 언니와,
노력하지 않는 히나코,
머릿속으로 계산이 빠삭해 약은듯 싶은 야요이까지
세 여자에게 좋은 자극은 물론
새로운 삶을 스스로 이끌어내는 방법을
일깨워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어떤 의미로든 이 여행을 통해
엄마는 오래된 본가의 주방 리모델링으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고
히나코는 좀더 코드가 맞는 직장을 찾게 되었으며
야요이는 마지못해 하고있다고 생각했던
요양보호사 일에 대한 확신을 다시 얻게 되는 등
각자의 성장을 얻게 되었으니,
다뤄지지 않은 그들의 미래는
좀더 뜨겁고 뜨겁게 빛나는 시간으로
바뀌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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