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1학년이었다
김성효 지음 / 빅피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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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이기에 스쳐 지나간 꽤 많은 시간들이 흐릿해졌거늘
그 와중에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 중 많은 부분이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다.

2월생 '빠른' 나이라 7살의 나이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 어린 나이라 상대적으로
몸집도 키도 작았던 나는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모른다.

유치원 때만 해도 20대의 이모 같은 선생님과 지내다
입가에 쪼글쪼글 주름이 있는 풍채 좋은 할머니 선생님과
수업을 해야 하니 무섭기도 하고 흥이 떨어지기도 했다.

처음엔 낯선 마음에 잔뜩 움츠러들었다가
시간이 갈수록 선생님이 보여준 진심과 사랑,
아낌없는 애정에 스르륵 녹아내렸는데

'진주'라는 내 이름 대신 '구슬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주며
머리를 쓸어주고 칭찬해 줬던 선생님의 모습은
이만큼 잔뜩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선명하기만 하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기억뿐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첫 사회생활의 데뷔였던 1학년은
굉장히 의미 있고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26년 차 교육자로
현직 교감선생님이자 많은 책을 써낸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성효 선생님께서 어른이자 선생님의 시각에서 바라본
1학년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 책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이만큼 펼쳐놓으면
선생님이 '그래, 그랬지.' 하며 응답해 주는 듯한 기분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포근하면서 따뜻한 포용으로
끌어안은 선생님의 사랑스러운 표현은
읽는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하다못해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도 미운 날이 있는데,
매일같이 부대끼며 분명 예쁘게 보기만은 어려운
아이들의 어설픈 행동과 개구진 장난 안에서도
어찌 그렇게 예쁜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싶어
어떤 면에서는 울컥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려 짐작하고 헤아리지 못했던
선생님의 마음을 어른이 된 이제서야 헤아려본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선생님의 사랑 아래
다시 한번 자라는 기분이기도 했다.

한창 언론을 통해 오르내리는 학부모와 선생님 간의 갈등,
혹은 노키즈존을 둘러싼 사회적 이슈까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요즘이다.

이렇게 삭막해지고 퍽퍽한 지금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선생님들이 여전히 있다는
진정성 있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잊고 있던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 본연의 사랑스러움을
다시 깨우치게 되었으니 참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또한 누구나 스쳐 지나온 시간이지만 잊고 있었던
소중한 1학년의 추억과 선생님의 사랑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눈과 마음을 맞추며
그들에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따금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구슬이 잘한다!" 하면서 등을 두드려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사랑스러워 어쩌지 못하겠다는 듯
귀여워해 주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그때 선생님이 베풀어준 사랑과 끝없는 칭찬,
확신에 찬 믿음이 지금껏 나를 이만큼 자라게 했노라고
이제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1학년 교실의 풍경과
선생님의 사랑에 행복하며 감사했고,
아이들의 천진한 귀여움을 만끽하며 참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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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게임 - 쓰는 시간 5초 썩는 시간 500년, 애증의 플라스틱 추적기
신혜정.김현종 지음 / 프란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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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참 많다.
당장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 용기부터 시작해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가 담긴 통도 플라스틱이고
배달시켜 먹는 음식을 담은 용기도,
겨울에도 얼죽아를 외치며 커피를 담아오는
용기 역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새삼 이렇게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살짝 민망해지던 찰나
어느 날 문득 들른 커피 전문점에서
모바일 앱을 통해 주문하던 중

컵을 선택하는 란에
'매장컵, 개인컵, 일회용컵' 항목이 있고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주문할 수 있었는데
그때 문득 '플라스틱이 어째서 일회용인 거지?'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플라스틱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지구상에서 처음 만들어진 플라스틱도
아직 썩지 않고 남아 있다.'

그 말인즉, 내가 이 지구상에서 죽고 없어져도
오늘 마신 이 커피잔은 여전히 땅속에 남아 있다는 게
뭔가 소름 끼친다는 마음과 동시에
잘못되어도 이건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분명 튼튼하고 잘 부서지지 않아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일회용품처럼 생각해서 어마어마하게 사용되고
썩지 않고 점점 지구에 쌓여가는 플라스틱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 되려 놀랄 정도였다.

이 책은 그런 의심에서 시작된 책이다.

2020년 여름 우리나라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이어진
최악의 폭우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여름 내 이어진 비로 '유난히 추웠던 여름'으로 기억되는
그때의 날씨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라고 했다.

그런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제로 웨이스트, 즉 불필요한 쓰레기의 대표격인
플라스틱을 줄임으로써
장기적으로 화석연료 중심의 시스템을 바꾸고,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할 때
그리고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소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두 명의 기자가 그래서 달려들었다.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우리 생활 속에
'꼭 필요한지'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플라스틱 사용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그 플라스틱을 없애는 실험을 통해
'플라스틱 없이 사는 삶'의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당연히 '일회용'이라 생각하고
쉽게 쓰고 버렸던 비닐봉지를 시작으로,
제품을 살 때면 따라오는 플라스틱 트레이나
포장 용기처럼 당연한 과정을 거치듯
뜯자마자 버린 플라스틱까지 합치면
태어난 후 짧지 않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내가 만들어낸 플라스틱 쓰레기는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니
단순한 셈으로 어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기만 하다.

과자 트레이가 있어도 과자는 깨질 수 있지만,
깨진 과자가 들어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는다.
스팸 캔은 조금 찌그러진다 해도
제품이 새어 나오지 않는 한 상관없을뿐더러
라면 분말수프와 건더기 수프가 한 봉지에
함께 담겨있던 각각 따로 담겨있던
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제품을 사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렇다면 이 플라스틱이 없어도 된다고,
사실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게
이 실험이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조금 플라스틱을 덜 쓴다고 얼마나 달라져?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얇디얇아 '이 정도는 뭐'라고 생각했던
김 트레이 하나만 없어도
연간 340만 명이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고,
설과 추석 두 번의 명절 선물세트에 들어가는
스팸 뚜껑을 제거했을 뿐인데도
20여 톤의 플라스틱이 덜 사용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듣고 나니
'나 하나만 달라져도 바뀔 수 있겠다'라는
마음으로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부모님이 어리던 시절에는 그릇도 참 귀해서
봉지도 물에 헹궈 몇 번이고 재사용 했고
(심지어 라면 봉지는 튼튼해서 인기였다고),
여전히 음식 배달 온 용기를 설거지해 두었다가
일상에서 다회용기로 사용하고 계신다.

나 역시 시간을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500ml 음료수 병은 튼튼하면서도 두께가 얇아
한여름에 냉동실에 넣어두면 금방 물이 얼고,
휴대하기에도 가벼워 너 나 할 것 없이
음료수 병을 물병 삼아 물을 얼려서는
손수건으로 묶어 가지고 다니기도 했으니

그 길지 않은 10여 년 남짓의 시간 동안
플라스틱의 사용이 얼마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며,
플라스틱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회용에서 일회용으로 자연스레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라도 문제를 실감할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나 화장품을 새로 사고
다 쓴 공병들을 버리면서 마음속 한편
'아직 이런 용기는 튼튼하고 새 거니까
몇 번이고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찜찜한 마음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길 바라본다.

더 나아가 이런 쓰레기가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불필요한 플라스틱의 사용을 스스로 자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보다 많은 사람이 이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고
소비자로서 기업에게 정부에게,
그리고 지구의 한 일원으로서 지금 당장을 떠나
더 먼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의 자녀,
후손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플라스틱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마냥 낭비하고 있는 자원은 없는지,
불필요한 소비로 지구상에 내가 만든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로 인해 지구 어딘가에서 어떤 동물이 생명의
위기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경각심 있는 태도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겠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모두가 깨닫고 행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나부터라도 작게라도 지금부터 매일을
'플라스틱 게임'의 마지막 남은 참가자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체감하고 있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플라스틱과 환경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깨닫게 해준 의미 있는 독서였다.
이제 제대로 알았으니, 실행으로
그간의 무지함을 만회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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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인, 중국상인, 일본상인
이영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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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으로 꽤나 짬밥을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연하게 판매처는 '당연히 한국 내에서만'이라는
테두리를 둘러놓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따금 애매한 한국어나 영어로
나는 중국에 있는, 혹은 대만에 있는 업체인데
너희 물건을 도매로 사고 싶다며 말을 걸어올 때면
"우리는 한국 내 배송만 가능하니,
국내에 물건을 받을 수 있는 주소가 있다면 주문하세요."
하는 식으로 에둘러 주문을 끊어내기도 했다.

괜히 혹여나 돈을 못받게 되거나 소통이 되지 않아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지는 일이 생길까봐 무서워
애초에 그 시작의 싹을 잘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의뢰가 들어오는 텀이 조금씩 짧아지면서
중국시장이나 인접한 일본시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찰나에
좋은 기회에 한국, 중국, 일본 3국 상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시장이 다르지만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었는데
몇 건의 중국주문 건들을 보며 각 나라의 시장상황이나
상인들의 '사업'을 임하는 태도가 꽤 많이 다르다는 걸
나도 직접 경험을 통해 몇 차례 체감하기도 했지만,
책속에 담긴 각 나라 상인과 관련된 속설과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읽어보며
그제야 비로소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다가도
막상 원하는 것을 다 얻고나면 모르쇠로 일관하며
돈과 이익 앞에서는 만만디가 사라지는 중국상인,

목적을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도 하며
상인에게 안심을 준 후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아
상대가 이 방식대로 따를수 밖에 없게끔 하는 일본 상인.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서 어디까지 이들의 말을 신뢰해야 하며,
또 그들의 속임수나 잔꾀를 피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직접 이를 겪어낸 작가의 경험은 그 어떤 조언보다 솔직하고
마음 가까이에 와닿았다.

꼭 중국, 일본 시장 뿐 아니라 '상인'으로 성공하기 위해
어떤 마인드로 접근하고 대처해야 할지
다양한 사례와 표현으로 잘 설명되어 있어
어떤 면에 있어서는 '상인을 위한 바이블'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하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의도와 속내가 파악되지 않아 난감했던 상황,
분명 관심을 보이다가도 어느순간 잠잠해져 이해가 안 가던
그들의 행동이 책을 읽고난 이제서야 비로소 이해가 간다.

나라별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장사를 하는데 이토록 중요한 것임을,
겉으로 드러나 있는 대화의 표면적인 의미 뿐 아니라
그들이 감추고 있는 속뜻을 짐작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비즈니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배웠다.

이 책을 진작 알았더라면
좀더 내 사업에 유리한 쪽으로 현명하게 이용하고
주도권을 이끌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기회에서는 이 독서를 발판삼아
좀더 여유있게 그들의 '상술'에 담긴 진짜 의미를 파악해
꽤 괜찮은 '장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든다.

이 모든 것을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겪어가며 깨우친
작가의 노력 덕분에 귀한 인생의 진리를
쉽고 빠르게 익힌 기분이 드는 감사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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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형 인간의 하루 - 찰나의 영감이 최고의 콘텐츠가 되기까지 필요한 습관
임수연 지음 / 빅피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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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라 하면 어떤 방안이나 물건 따위를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어떠한 미적 대상으로부터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내적 이미지를 객관적인 형식으로 정착시켜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일컫는다.

창의성과 개성을 중요시하는 창작은
그렇기에 참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여기, 창작을 본인의 業으로 삼아
찰나의 영감을 최고의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이들은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대중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결국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각 분야 7명의 크리에이터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일상 루틴과 작업 방식,
기록과 수집법부터 시작해 작업에 몰입하는 방법과
무기력이나 좌절, 불안 등에 대처하는 태도를 살펴 보며
'내 삶을 발견하고 만드는'데 좋은 자극이 될
인생관이자 동기부여를 담았다.

이 책을 펼쳐보게 된 데에는
나 역시 부끄럽지만 창작을 業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기존에 있는 것 말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창작에서의 고통을 나 역시 공감하고 있기에,
일상에서 영감을 찾고 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그 힘과 아이디어가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진짜 고수들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책을 펼쳐보기 전까지만 해도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PD, 소설가, 영화감독,
뮤지션이자 배우 그리고 미술가,
다큐멘터리 PD, 제작자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만날 수 있는 직업이 아닌
독특한 그들의 직업과 환경 자체가
평범한 우리의 일상과 다를 수밖에 없으니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도 좋은 자극을 받아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그들 역시 가정과 육아를 병행하거나
맡은 일을 해내기 위해 출근해 일을 하고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본인이 맡은 일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헤매고 두드리며 끝없이 다양한 도전을 해보는'
밀도 있는 노력이 그들의 매일에 쌓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결과물만을 볼 때는
단순히 타고나거나, 혹은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업무 환경에서 쉬이 얻어지는
아이디어라 쉽게 생각했었는데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일상을 털어내고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생활 루틴을 만들고
마음가짐을 바로잡는 등
부지런한 노력으로 매일을 쌓아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되며
나 역시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서
타인의 창작에 대해 쉽게만 생각했던
안일한 마음이 부끄러워 졌다.

확신없는 창작의 과정 속에서
매일같이 깊고 얕게 오르내리는 파도를 타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도 일과 나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법,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법,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등
자신만의 주관으로 흔들림 없이
내 것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크리에이터들의 심지있는 모습에 감탄과 자극을 받기도 했다.

그저 흘려보내면 그만일 하루하루에
할 수 있는 작은 최선을 다해
매일을 진심으로 쌓아간 결과로
'창작형 인간'이 되었음을 담담히 읊조리는
그들의 메시지를 통해
'창작형 인간'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쉬운 듯 보이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나 또한 그들이 쌓아온 것과 같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좀 더 좋은 창작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고,
누구 한 사람에게만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창작형 인간의 하루를 통해
이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지금부터라도 더 충실하게 나를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내 것을 만들 수 있게
매일을 더 다듬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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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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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휴식이 절실해진다.
이 힘들고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먼 곳으로 떠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은 건 모두 그럴 터.

나 또한 몇 주 째 이어지는 주말 출근과 야근에 지쳐
오매불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드디어 그런 시간을 갖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대단한 여행이나 외출을 단행하는 것은 아니고,
읽고 싶었으나 바빠서 펼쳐보지 못한 책 몇 권을 들고
방 한켠 편한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거나
도서관의 한적한 자리를 찾아 책을 펼치는 게 전부다.
혹은 미루어두었던 포스팅을 쓰거나,
작업실에 가서 나중에 필요한 제반 작업을 하기도 했으니
누가 보면 이게 무슨 휴식이야 싶을 것이다.

이토록 '쉰다'라고 대단한 듯 결심을 해놓고도
제대로 쉴 줄 모르는 내가 우스워 피식하다가
그 휴식의 시간에 펼쳐든 책에서
'나 같은 사람 여기 또 있네.' 하며 동질감을 느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믿음에 대하여》라는
전작을 통해 호쾌하면서도 재미있는 글로
나에게 '믿고 보는 작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
박상영의 신작 에세이다.

이 책은 제대로 쉬는 데 영 소질이 없는 박상영의
‘쉼’과 ‘여행’에 관한 기록한 책이다.
1부는 광주, 강릉 등을 여행하며 20대 시절 힘들 때마다
유럽과 뉴욕으로 도망치듯 떠났던 추억들을 회상하고,
2부에서는 슬럼프 극복을 꿈꾸며 찾았던
제주 최남단의 섬 가파도에서의 이야기를,
3부는 여행 예능 도전기와 그에게 삶의 쉼표가 되어준
‘사람’ 이야기까지, 그의 삶에 존재했던 쉼의 전부를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읽어온 그의 작품의 영향인지
박상영 작가에 대해 굉장히 털털하고 수더분한
그러면서도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으로,
일을 할 때도 고민 없이 쉽고 과감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쉴 때는 확실하게 일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던지는
워라밸이 확실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대도시의 워커홀릭인 그는
온전한 쉼에 이르지 못하고 헤매는
유약한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휴식과 충전을 벼르고 들어간 가파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끝없는 벌레와의 전쟁이
이어지는 곳으로 때때로 태풍에 발이 묶이는가 하면
지긋지긋한 불면증으로 낯선 방에서 잠을 설치기 일쑤다.
하필 친구들이 방문하는 날 나타난 코로나 증상으로
20여 분을 걸어 PCR 검사까지 받았던 일은
그나마 가볍게 웃을 수 있는 해프닝이다.

도통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그 쉼에서도
그는 매번 코앞에 다가오는 마감을 마주하고,
어찌어찌 글쓰기를 이어가는 속에서
그럼에도 또다시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꿈꾼다.

그의 시간을 따라 전국 이곳저곳, 그리고 타국까지
타인의 시선으로 담은 다양한 여행지를 다녀오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서울살이가, 글쓰기가, 삶이 버겁다는 이유로
매번 그는 어딘가로 향하고,
완벽한 여행과 휴식에 끝내 실패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 아프고 탈이 나는 예민한 컨디션의 소유자이자
유리 멘탈인 그이지만,
곁에 늘 있어주는 든든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비록 완벽한 100퍼센트의 순도를 가진 휴식이 아니라도
그를 충분히 충전시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일상의 빈틈에서 채워나간 그리고 앞으로 채워나갈
소소한 휴식은 다시 삶을 내달릴 수 있는 힘이 되기도,
잊고 있던 마음과 감각을 되찾아줄 테니
그 순도를 따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작가는 이 여행의 기록을 갈무리하며 마지막에
다시 한번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누구보다 열렬히 생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며 또 다른 여행과 휴식을 꿈꾸는 포부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제대로 쉴 줄 모르는 자신에 대한 고백을 시작으로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여행 이야기를 따라가며
특유의 유쾌하고 즐거운 유머 코드에 웃기도 하고,
마감에 쫓기고 스스로에게 가진 강박과 불안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그에게 연민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여행 이야기를 담았어도 끝끝내 책의 말미에서조차
그는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실은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어떤 형태 로든의 '휴식'을 통해
다시금 일상을 살아낼 힘과 양분을 얻고,
열심히 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의 여행기가
실은 모두가 여행을, 휴식을 꿈꾸는 이유를
제대로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긴 격무를 끝내고 쉬며 펼친 책 속,
그 안에 담긴 그의 여행을 따라 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휴가 속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애씀으로
책을 읽는 나의 휴식이 완벽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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