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게임 - 쓰는 시간 5초 썩는 시간 500년, 애증의 플라스틱 추적기
신혜정.김현종 지음 / 프란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참 많다.
당장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 용기부터 시작해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가 담긴 통도 플라스틱이고
배달시켜 먹는 음식을 담은 용기도,
겨울에도 얼죽아를 외치며 커피를 담아오는
용기 역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새삼 이렇게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살짝 민망해지던 찰나
어느 날 문득 들른 커피 전문점에서
모바일 앱을 통해 주문하던 중

컵을 선택하는 란에
'매장컵, 개인컵, 일회용컵' 항목이 있고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주문할 수 있었는데
그때 문득 '플라스틱이 어째서 일회용인 거지?'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플라스틱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지구상에서 처음 만들어진 플라스틱도
아직 썩지 않고 남아 있다.'

그 말인즉, 내가 이 지구상에서 죽고 없어져도
오늘 마신 이 커피잔은 여전히 땅속에 남아 있다는 게
뭔가 소름 끼친다는 마음과 동시에
잘못되어도 이건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분명 튼튼하고 잘 부서지지 않아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일회용품처럼 생각해서 어마어마하게 사용되고
썩지 않고 점점 지구에 쌓여가는 플라스틱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 되려 놀랄 정도였다.

이 책은 그런 의심에서 시작된 책이다.

2020년 여름 우리나라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이어진
최악의 폭우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여름 내 이어진 비로 '유난히 추웠던 여름'으로 기억되는
그때의 날씨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라고 했다.

그런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제로 웨이스트, 즉 불필요한 쓰레기의 대표격인
플라스틱을 줄임으로써
장기적으로 화석연료 중심의 시스템을 바꾸고,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할 때
그리고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소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두 명의 기자가 그래서 달려들었다.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우리 생활 속에
'꼭 필요한지'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플라스틱 사용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그 플라스틱을 없애는 실험을 통해
'플라스틱 없이 사는 삶'의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당연히 '일회용'이라 생각하고
쉽게 쓰고 버렸던 비닐봉지를 시작으로,
제품을 살 때면 따라오는 플라스틱 트레이나
포장 용기처럼 당연한 과정을 거치듯
뜯자마자 버린 플라스틱까지 합치면
태어난 후 짧지 않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내가 만들어낸 플라스틱 쓰레기는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니
단순한 셈으로 어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기만 하다.

과자 트레이가 있어도 과자는 깨질 수 있지만,
깨진 과자가 들어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는다.
스팸 캔은 조금 찌그러진다 해도
제품이 새어 나오지 않는 한 상관없을뿐더러
라면 분말수프와 건더기 수프가 한 봉지에
함께 담겨있던 각각 따로 담겨있던
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제품을 사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렇다면 이 플라스틱이 없어도 된다고,
사실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게
이 실험이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조금 플라스틱을 덜 쓴다고 얼마나 달라져?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얇디얇아 '이 정도는 뭐'라고 생각했던
김 트레이 하나만 없어도
연간 340만 명이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고,
설과 추석 두 번의 명절 선물세트에 들어가는
스팸 뚜껑을 제거했을 뿐인데도
20여 톤의 플라스틱이 덜 사용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듣고 나니
'나 하나만 달라져도 바뀔 수 있겠다'라는
마음으로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부모님이 어리던 시절에는 그릇도 참 귀해서
봉지도 물에 헹궈 몇 번이고 재사용 했고
(심지어 라면 봉지는 튼튼해서 인기였다고),
여전히 음식 배달 온 용기를 설거지해 두었다가
일상에서 다회용기로 사용하고 계신다.

나 역시 시간을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500ml 음료수 병은 튼튼하면서도 두께가 얇아
한여름에 냉동실에 넣어두면 금방 물이 얼고,
휴대하기에도 가벼워 너 나 할 것 없이
음료수 병을 물병 삼아 물을 얼려서는
손수건으로 묶어 가지고 다니기도 했으니

그 길지 않은 10여 년 남짓의 시간 동안
플라스틱의 사용이 얼마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며,
플라스틱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회용에서 일회용으로 자연스레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라도 문제를 실감할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나 화장품을 새로 사고
다 쓴 공병들을 버리면서 마음속 한편
'아직 이런 용기는 튼튼하고 새 거니까
몇 번이고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찜찜한 마음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길 바라본다.

더 나아가 이런 쓰레기가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불필요한 플라스틱의 사용을 스스로 자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보다 많은 사람이 이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고
소비자로서 기업에게 정부에게,
그리고 지구의 한 일원으로서 지금 당장을 떠나
더 먼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의 자녀,
후손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플라스틱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마냥 낭비하고 있는 자원은 없는지,
불필요한 소비로 지구상에 내가 만든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로 인해 지구 어딘가에서 어떤 동물이 생명의
위기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경각심 있는 태도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겠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모두가 깨닫고 행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나부터라도 작게라도 지금부터 매일을
'플라스틱 게임'의 마지막 남은 참가자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체감하고 있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플라스틱과 환경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깨닫게 해준 의미 있는 독서였다.
이제 제대로 알았으니, 실행으로
그간의 무지함을 만회해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