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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한창 일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휴식이 절실해진다.
이 힘들고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먼 곳으로 떠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은 건 모두 그럴 터.
나 또한 몇 주 째 이어지는 주말 출근과 야근에 지쳐
오매불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드디어 그런 시간을 갖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대단한 여행이나 외출을 단행하는 것은 아니고,
읽고 싶었으나 바빠서 펼쳐보지 못한 책 몇 권을 들고
방 한켠 편한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거나
도서관의 한적한 자리를 찾아 책을 펼치는 게 전부다.
혹은 미루어두었던 포스팅을 쓰거나,
작업실에 가서 나중에 필요한 제반 작업을 하기도 했으니
누가 보면 이게 무슨 휴식이야 싶을 것이다.
이토록 '쉰다'라고 대단한 듯 결심을 해놓고도
제대로 쉴 줄 모르는 내가 우스워 피식하다가
그 휴식의 시간에 펼쳐든 책에서
'나 같은 사람 여기 또 있네.' 하며 동질감을 느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믿음에 대하여》라는
전작을 통해 호쾌하면서도 재미있는 글로
나에게 '믿고 보는 작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
박상영의 신작 에세이다.
이 책은 제대로 쉬는 데 영 소질이 없는 박상영의
‘쉼’과 ‘여행’에 관한 기록한 책이다.
1부는 광주, 강릉 등을 여행하며 20대 시절 힘들 때마다
유럽과 뉴욕으로 도망치듯 떠났던 추억들을 회상하고,
2부에서는 슬럼프 극복을 꿈꾸며 찾았던
제주 최남단의 섬 가파도에서의 이야기를,
3부는 여행 예능 도전기와 그에게 삶의 쉼표가 되어준
‘사람’ 이야기까지, 그의 삶에 존재했던 쉼의 전부를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읽어온 그의 작품의 영향인지
박상영 작가에 대해 굉장히 털털하고 수더분한
그러면서도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으로,
일을 할 때도 고민 없이 쉽고 과감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쉴 때는 확실하게 일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던지는
워라밸이 확실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대도시의 워커홀릭인 그는
온전한 쉼에 이르지 못하고 헤매는
유약한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휴식과 충전을 벼르고 들어간 가파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끝없는 벌레와의 전쟁이
이어지는 곳으로 때때로 태풍에 발이 묶이는가 하면
지긋지긋한 불면증으로 낯선 방에서 잠을 설치기 일쑤다.
하필 친구들이 방문하는 날 나타난 코로나 증상으로
20여 분을 걸어 PCR 검사까지 받았던 일은
그나마 가볍게 웃을 수 있는 해프닝이다.
도통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그 쉼에서도
그는 매번 코앞에 다가오는 마감을 마주하고,
어찌어찌 글쓰기를 이어가는 속에서
그럼에도 또다시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꿈꾼다.
그의 시간을 따라 전국 이곳저곳, 그리고 타국까지
타인의 시선으로 담은 다양한 여행지를 다녀오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서울살이가, 글쓰기가, 삶이 버겁다는 이유로
매번 그는 어딘가로 향하고,
완벽한 여행과 휴식에 끝내 실패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 아프고 탈이 나는 예민한 컨디션의 소유자이자
유리 멘탈인 그이지만,
곁에 늘 있어주는 든든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비록 완벽한 100퍼센트의 순도를 가진 휴식이 아니라도
그를 충분히 충전시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일상의 빈틈에서 채워나간 그리고 앞으로 채워나갈
소소한 휴식은 다시 삶을 내달릴 수 있는 힘이 되기도,
잊고 있던 마음과 감각을 되찾아줄 테니
그 순도를 따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작가는 이 여행의 기록을 갈무리하며 마지막에
다시 한번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누구보다 열렬히 생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며 또 다른 여행과 휴식을 꿈꾸는 포부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제대로 쉴 줄 모르는 자신에 대한 고백을 시작으로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여행 이야기를 따라가며
특유의 유쾌하고 즐거운 유머 코드에 웃기도 하고,
마감에 쫓기고 스스로에게 가진 강박과 불안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그에게 연민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여행 이야기를 담았어도 끝끝내 책의 말미에서조차
그는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실은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어떤 형태 로든의 '휴식'을 통해
다시금 일상을 살아낼 힘과 양분을 얻고,
열심히 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의 여행기가
실은 모두가 여행을, 휴식을 꿈꾸는 이유를
제대로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긴 격무를 끝내고 쉬며 펼친 책 속,
그 안에 담긴 그의 여행을 따라 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휴가 속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애씀으로
책을 읽는 나의 휴식이 완벽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