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아주는 마음
김지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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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혼이기에 자녀의 '첫 말 하기'의
짜릿한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조카들의 '말하기'를 보며 웃음 짓는 순간들,
그 어설픈 말 하기의 귀여움을 느낀 추억을
자주 되새기곤 한다.

모든 사람을 '엄마'하고 부르며
이것저것 해달라 하던 아이의 모습,
나비를 '마비'로, 여우를 '어우'라고 발음해도
마냥 예쁘고 반짝이던 순간을 말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어설픔'을 기다려주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던 시간,
옹알이를 하는 아이들의 알 수 없는 소리에도
'그치~ 그랬지' 하는 답변을 하며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는 행복한 추억의 한 조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과의 대화에
'언어치료'라는 말이 붙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금 전까지 어설픈 발음도 귀엽게 느껴지던 모습도
'언어 기관의 문제'나 '장애'로 느껴지며
이 발음이나 말은 '빨리 고쳐야만 하는'
범위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20여 년간 언어치료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온 김지호 언어치료사의 글로,
그가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우리가 모두 잊고 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제대로 된 발음을 하지 못하는 아이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어떤 문제로 인해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아이,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동네의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살피고
동네의 쓰레기를 치우는 아이 등

일상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쉽게 만날 수 있는
'하고 싶은 말이 분명 있을 텐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사연을 담았다.

언어치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유전적이든, 후천적인 신체기관의 발달지연으로
그저 발음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거나
혹은 지적장애나 발달장애로 인해
뇌의 발달이 충분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려운' 장애의 문제로,
그렇기에 이들에게 말을 하게끔 하는 언어치료는
그런 신체기관을 활성화하는
의료적인 치료행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언어치료사로 활동하는
작가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언어치료라는 것이 단순히 발음을 정확히 하고,
더듬지 않고 바로 말을 하는 행위적인 부분의
정확함이나 결함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 원인을 1차적으로 찾고,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냄으로써
그들이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가 앉고,
일어서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걷다가 엎어지는 수많은 성장의 과정을
우리는 '처음부터 똑바로 걸어야지'하며
매몰찬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넘어지고 부딪히고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울면서도
자꾸자꾸 스스로 일어나는 연습을 통해
언젠가 걷게 된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주며
때로는 박수와 칭찬으로 용기를 북돋아 준다.

처음 말을 배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에게 엄마라고 불러도,
조금은 새는 발음으로 혹은 자신만의 발음으로
사물을 불러도 다그치지 않고
웃으며 '아이만의 시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들의 성장을 기다려준다.

하지만 장애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디고 어설프다는 이유로
언어치료를 하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포용심을 베풀지 못한 채 선입견으로 대했음에
반성의 마음을 갖게 되기도 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어설프고 더딘 성장 속에서도
그만의 노력이 담겨있고,
자신만의 속도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가 너무 그 마음을 외면하고
어른들의 기준으로만 생각했던 건 아닐까 하고.

어딘가 아픈 아이, 부족한 아이라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와
또 그 아이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잔잔하게 써 내려간
작가의 메시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소리를 내고 싶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장애'나 '기능적인 문제'로 한정 짓지 않고,
어른들의 시선 속에 답답하기도 했던
자신의 어린 날에 빗대어
아이들의 감정을 되짚기도 하며

사실은 그들의 결함에 의존하고 있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러면서도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은
어른의 마음을 담았다는 점에서
나 역시 언어치료와 아이들의 '말'을 바라보는
마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그저 '치료'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또 공감을 매개로 아이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겉으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그의 섬세한 발맞춤이
바쁘고 삭막한 현대의 우리에게
많은 반성의 마음과 울림을 안겨준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바라보듯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기다려줄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많아지기를,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따스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말은, 대화는 '마음'으로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이렇게 다시 한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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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 공감부터 설득까지, 진심을 전하는 표현의 기술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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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쉼 없이 이루어지는 대화 속,
유난히 따뜻하고 다정한 말로 마음을 울리는 사람이 있다.
스스럼없이 대화하되 함부로 선을 넘지 않고,
친절하면서도 정확하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할 때면 나 역시 심도 있게 말을 고르고,
상대방이 그러했듯 배려 있는 태도로 귀 기울이며 집중하게 되는데
이렇게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논리정연하고
빠지는 곳이 없어 감탄을 금치 못한다.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배우고 익히게 되는 말인데도
타인과의 대화는 어렵기 마련인데,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업무 메일 등의
글쓰기는 더욱이 어떻게 써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많다.

이 책은 의사소통의 기본인 말하기와 글쓰기라는 자기표현 방법에 대해,
저자가 10여 년의 직장 생활과 다양한 강의 활동 경험을 통해 깨달은
진심을 전하는 표현의 기술을 담았다.
전작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과
《더 좋은 곳으로 가자》로 '글쓰기' 재능은 물론,
<세바시> 출연으로 '말하기' 까지 인정받은 정문정 작가의 신작이다.

이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먼저, 1부 〈말은 부드럽게, 글은 선명하게〉에서는
첫 책 출간 이후 강연자로서 그리고 많은 인터뷰를 통해
저자가 깨달은 말과 글의 차이에 대해 정리했다.
말하기에는 공감과 배려가 중요하기에 친절한 표현을 쓰는 것이,
글쓰기에는 논리와 정리에 더 중요한 가치가 있기에
섬세한 표현을 쓰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

2부 〈공감은 영업인처럼, 설득은 과학자처럼〉 에서는
설득과 주장을 잘하기 위해서 배워야 할 말하기 기술을
저자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주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해 자신의 말과 글에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자영업자의 마음과
과학자가 가설을 재차 검증하며 이론을 세우듯 개인적인 믿음과
사실의 영역을 혼동하지 않고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과학자의 마음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3부 〈분노는 우아하게, 거절은 단호하게〉에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아하게 말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었다.
우리의 말과 글에는 설득, 거절, 위로와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오가기 때문에 이것이 상처가 될 때는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서일 때가 많으므로,
말과 글을 전달받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정을 거침없이 내뱉기 보다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대화할 때
서로에게 공감하고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게 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의 메시지보다 '~게 어떨까요?'의 청유형으로
스스로 자신의 말과 글을 돌아보며 고치게끔 하는 작가의 권유는
다양한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였기에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책 제목인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사람'의 전제는
내 목소리를 크게 내고자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대화 속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고 이성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내가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하기와 글쓰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서로를 존중하는 편안한 소통아래 관계에서 성장이 일어날 때
말하고자 하는 이의 진심이 전달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좋은 내가 되어, 좋은 네가 오도록'이라는 말처럼
상대의 태도를 탓하기에 앞서 나의 태도를 바꾸고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서로에게 공감하고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상대의 유쾌하지 않은 말이나 글을 접하면
'이왕에 하는 말(글) 예쁘게 하지' 하고는 똑같이 투덜거리거나
삐딱한 태도로 나가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상대에게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이 소통과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을 내뱉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다만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바람을 넘어
소통하는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까지
생각해보고 익힐 수 있었기에 더 마음에 오래 남는 책이 될 것 같다.

닮고 싶은 사람의 말과 글을 자주 보고 들으면
간절할수록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닮게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의 어여쁜 마음이 담긴 글을 자주 펼쳐보고 또 실행하면서
그녀를 닮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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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잤으면 하는 너에게 - 고단한 하루 끝, 숙면 기원 에세이
미내플(유민애) 지음 / 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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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유독 걱정 어린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지는 생각은
시간이 흐르도록 잠들지 못하고
계속된 생각의 늪에 나를 이끌어 힘들게 한다.

이렇게 잠들지 못하게 하는 밤의 원인에는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고민,
혹은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에 대한 갈등,
가족에 대한 서운함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이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고민의 밤이 이어지면
때로는 무력증이나 외로움에 빠지거나
사람에 따라 우울증이나 잘못된 방어기제로
일상이 망가지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상을 살게 된다.

이 책은 14만 구독자를 보유한 자기 계발 유튜버이자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고민 상담가로
'랜선 언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미내플 유민애의 숙면 기원 에세이로,

20여 년간 그녀가 직접 겪어온
무기력증, 번아웃, 체력 방전, 관계 단절 등
수많은 좌절의 경험 속에서도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스스로 일어서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는
따끔한 조언과 다정한 위로를 담아내었다.

고민이 있을 때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보다
때로는 한 발짝 떨어져 나의 문제를 바라보고
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에
해결책을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내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
말하는 과정 속에서 문제의 진짜 본질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딱히 심각한 고민이라 할 수는 없지만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마음 한구석의
이런 작은 고민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먼저 이런 고민의 시간을 거친 저자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나의 밤을 괴롭히는 부정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어 주었고,
일상을 망치는 나쁜 습관을 없애는 루틴,
건강한 동기부여를 위한 마인드 셋,
인간관계를 잘 가꾸는 기술이나
멘탈과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까지
섬세하면서도 내밀한 자신의 경험담을 꺼내며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 못 드는 이유가
사실은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깨달음과 문제 인식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다독이고 독려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명 유리멘탈이나 쿠크다스 같은 마음을
가진 내성적인 사람,
의욕이 없거나 체력 문제로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의욕적이지 못한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책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나답지 않게
상대에게 뾰족할 필요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나에게 괜히 더
호되게 굴 필요도 없이
그저 오늘 하루 푹 잘 수 있으면 장땡"이라고.

마치 인생을 다 살아낸 사람처럼
어쩌면 무심한 한마디 같지만
누구에게나 근심 걱정으로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은 있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잠들지 못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도, 달라지는 일도 없기에

어떤 문제를 회피하거나 무작정 문제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저 다 끝난 하루에 미련을 두는 대신
새롭게 살아낼 내일에 집중하자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응원의 마음을 담았다.

숙면을 위한 대단히 의학적이거나
전문적인 방법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잔뜩 늘어놓는 고민에
'그래, 맞아. 나도 그랬던 날이 있었어." 하면서
묵묵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뒤에
그런 우울감과 무력감, 좌절감 등으로
상처에 빠진 나를 토닥이며 공감해 주고

같은 감정을 먼저 경험한 자신의 과거를 오픈하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그녀의 메시지는
괴롭기만 했던 밤이 '나만의 것'이 아니며
앞으로 다가올 불면의 밤들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마음으로 이끌어주었다는 점에서
사소한 듯 보이지만 잔잔하고 따스한 위로로 다가왔다.

생각이 많은 밤,
이제는 더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고민하느라
잠을 설치지 않겠다는 다짐이 든다.

침대에 누워 쉬는 시간만큼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충전 시간으로 삼을 수 있는
'진짜 휴식'이 될 수 있도록 하고

또 현명한 인간관계와 마음 컨트롤을 통해
나만의 개성이 가득 담긴
'나'라는 사람을 만듦으로써
이렇게 후회로 고민하는 시간들을
내일을 위한 기대로 채울 수 있는 연습으로
차근차근 나를 발전시켜가야겠다는 마음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방전되었을 때,
더는 달리지 못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
진작 이 책에 담긴 메시지들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흔들리는 순간을 무사히 지나가
한 단계 성장하는 방법을 배웠기에
다가올 고민의 밤이 더는 두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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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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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고는 하지만 인정받은 작품 하나 없는 은섬은

동료 몇 명과 함께 작업실을 함께 쓰고 있다.

각자 안 풀리는 작품에 고민이 많은 그녀들은

드라마 대본 작가 경은과 시나리오 작가 윤희의

주도 아래 '작가 전문 퇴마사'를 불러

이들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잡귀를 퇴치하기로 한다.


은섬은 그녀들의 부추김에 함께 하긴 했지만

마스터라 불리는 그를 믿어야 할지 의심스러운 찰나,

퇴마사는 은섬의 옆에 '이작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자가 서있다는 얘기를 한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너무도 놀라버린 은섬,

최근 은섬은 80여 년 전에 이작희 라는 여성이 남긴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있던 터.


어려웠던 은섬의 집안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고 또 영향력을 행사하는

큰아버지의 제안으로 시작한

이작희의 일기에 대한 분석과 동시에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에 발표한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인정을 받는

오영락 작가 문화관을 만들기 위한

일을 막 시작했던 은섬은,

왜 '이작희'가 자신의 곁에 나타난 것인지

무섭기도 하고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이작희는 공식적으로 현대에 남긴 작품이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일기장에는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김중숙이 써 내려간

소설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었고,


여성이라는 성별,

기득권이 아닌 평범한 계급(신분),

일제강점기 아래의 독립운동가 집안(민족)

이라는 굴레 아래에서도

고통스러운 삶 속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들의 삶은


알면 알게 될수록

은섬의 마음에 어떤 가책이랄까,

시대는 다르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쓴다는 공통점으로

점점 많은 공감과 동질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기에 그 일기장에 담긴

충격적인 진실을 제대로 알고,

또 세상 밖으로 꺼내기 위해

이 사건의 진실을 쫓아 그리고 쓰는 여자,

작희와 중숙을 쫓아 계속된 탐구에 나서게 되는데……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퇴마사를 만나

본인의 곁에 존재하는 과거의 여자를 인식하게 된

한 현대 여성작가가 진실을 찾고자

그들의 과거를 쫓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창작자로서의 연대와 공감의 마음을 담아낸 책으로


은섬이 있는 현대와

작희와 중숙이 있는 과거의 시점을 오가며

어떤 연유에서인지 서로를 만나게 된 그녀들이

그렇게 만나게 된 서로의 모습에서

자극 아닌 자극을 받아 '진짜 나'를 찾아가는

하나의 성장기를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작희의 어머니인 김중숙의 글쓰기 사랑,

혼인으로 학업을 중단한 어쩔 수 없는

시대상의 안타까움,

시집살이와 남편의 외도 등으로 힘들었던

그녀의 삶 속에서 유일한 희망이자

외로운 삶의 동지였던 딸 작희에 대한

다양한 서사가 이어진다.


붓을 땅에 심는 여자아이가 나오는 태몽을 꾼 뒤,

아이가 '이야기를 지으며 기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작희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준 중숙과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대신에 살림을 꾸리고자

서포(서점)를 운영하며 글쓰기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았던 그 시대의 여성들의 '꿈'과 '생'은

그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뿐인데도

맘껏 펼치지 못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런 힘듦 속에서도

무조건 이야기와 이야기를 쓰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이끌어 준

작희와 중숙의 모습,


이들을 통해 글에 기대어 나만의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애쓰는 은섬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선 공감과 결속으로

'쓰게 하는 힘'으로 통합되는

그녀들의 교감이 짜릿하기도 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

나만 빚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간

1,2 세대 여성작가의 모습은

비록 소설에 불과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창작자로서 꿈을 펼치고자 애썼던 그 노력은

당시의 누군가에겐 꼭 존재했을 것이란

믿음을 가져오게 했고,


그런 그들의 단단한 믿음이 더 나아가

현대의 은섬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연대로

나만이 해낼 수 있는

'내 삶의 주인공 되기'의 기적까지

맛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작품 속의 주인공인 은섬뿐 만 아니라,

창작자로 일하는 현대의 모든 은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중숙과 작희의 열정을,

또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마음에 담아 한걸음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은섬의 모습이 오래 잔상에 남을 것 같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적은 없지만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내가 꿈꾸는 곳을 향해

묵묵히 달려가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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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즘 -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
헤더 라드케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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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날이 따뜻함을 넘어 더위에 가까워지고,
옷차림이 한층 얇아지다 보니
'이제 슬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생긴다.

겨울에야 두툼한 옷을 입다 보니
상대적으로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데
여름에는 여지없이 짧고 얇은 옷감에 의해
몸매가 여실하게 드러나니 괜히 상대적으로
나만 뚱뚱해 보일까 봐 위축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엉덩이는 할 말이 많은 신체 부위이다.
바지를 입을 때면 유독 존재감을 나타내는 존재,
허리는 헐렁해도 양쪽의 허벅지가 달라붙거나
꽉 끼는 핏으로 둔탁해 보이는 뒤태는
거울을 통해서야 마주할 수 있고
나는 볼 수 없지만 타인은 쉬이 볼 수 있기에
내 신체 부위임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이는 게 많다.

그렇기에 외출 전 옷을 입어보고는
항상 현관 앞의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앞모습을 한 번,
어떻게든 뒤로 돌아 허벅지와 엉덩이의
뒤태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나만의 행위는 아닐 것이다.

유독 발달한 커다란 엉덩이를 가진 저자
헤더 라드케는 꽉 끼는 다리와 엉덩이,
상대적으로 헐렁한 허리를 가진 바지를 입고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양한 인종, 연령과 생활습관, 유전 등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외모나 몸매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엉덩이에 사람들은 이렇게 집착할까?
인류는 이토록 수많은 암시와 페티시와
혐오와 뉘앙스를 왜 엉덩이에 부과해왔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며 말이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많은 탐구를 통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았고,
그 답을 모아 이 책 《엉덩이즘》이 나오게 되었다.

✔ 엉덩이에 대한 기원
✔ 폄훼와 차별, 얼룩진 욕망으로 떠올리는
엉덩이에 대한 다양한 감정의 시작
✔ 백인 문화의 선택적 태도와 수치심
✔ 수많은 억압과 착취, 차별에 맞서는
통제에 대한 저항

까지 엉덩이를 둘러싼 다양한 이력과 연구로
바지를 입을 때마다 수치심에 휩싸이던 스스로의 감정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엉덩이의 기원을 설명하며 그녀는
이족보행 짐승인 인간의 든든한 지원으로 자리했던
엉덩이의 역할을 재조명했다.

근육과 지방을 결합한 큰 볼기근,
즉 엉덩이를 가진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사바나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한 이 근육은
순간속도가 빠른 네 발 짐승으로부터
도망갈 지구력을 선사하고,
큰 뇌를 떠받치며 빠르게 움직이도록 돕고,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고도 무사히 살아갈
열량을 축적하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했기에

인간의 '생존'에 관여하는 존재로서
엉덩이가 갖는 해부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엉덩이의 기원에 이어서는
폄훼와 차별로 얼룩진 욕망의 실루엣으로서
엉덩이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던
출발점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남아프리카 코이족의 여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영국의 노예로 팔려간 세라 바트먼,
상상 이상으로 엉덩이에 열광적이었던
19세기 런던의 분위기와 그녀의 큰 엉덩이는
권력가들의 욕망에 절묘하게 맞물려
서커스의 곰처럼 그녀의 몸을 전시하는
현실에 내몰리게 한다.

그 과정에서 암묵적인 인종 차별과 성차별을
양산해냈다고 작가는 지적했는데,
약자의 나체를 대상화해서
인종적 위계, 기이한 성 착취 구조를 사회에 퍼뜨린
서구 열강의 속내를 까뒤집어 보여주고,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이 위험하고 폭력적인
선입견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점을
고발하며 울림을 주었다.



그다음으로는 엉덩이의 형태와 관련된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집착의 모습을 담았다.

바트만의 사례 이후
19세기 유럽 여성들 사이에 유행한
커다랗고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어
성적으로 어필하려는 버슬이라는 장식의 유행,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반대로
새로운 부르주아 여성인 플래퍼들에게
마르고 호리호리한 몸에 적합한
코코 샤넬의 옷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유행했다는
극단의 다양한 집착을 보여주었고,

대량생산을 통한 기성복의 시대가
도래하며 등장하게 된 평균의 탄생에 대해 언급했다.

여전히 마네킹 속 '이상적인 엉덩이'를
열망하는 분위기가 식을 줄 모르는 사회 속,
실질적으로 이상적인 엉덩이에 수렴하는 엉덩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이 극소수의 '평균'에 해당하는 엉덩이의 소유주조차
자기 엉덩이에 만족할 줄 몰랐다는 사실이
참 기이하게 다가왔다.

이런 변덕 심한 사회의 시선 속에서
유행이 바뀔 때마다 자기 엉덩이를 미워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모습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자본가들로 하여금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게 했는데

아프리카 트워킹을 자신의 정체성과 시장성
확장의 기회로 삼은 마일리 사이러스,
선정적 이미지와 모호한 인종 정체성을 이용해
큰돈을 벌어들인 킴 카다시안 등의
아이콘들을 사례로 들어 이야기하기도 했다.

더불어 큰 엉덩이를 떼었다가 붙이고,
하위문화로 취급했던 흑인문화를 차용하고 제거하는
백인 문화의 선택적 태도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선택적 글래머'들의 대중없는 폄하로부터
엉덩이를 지키는 방법은
그동안 외면해온 수치심에 직면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모든 수치심의 근원에서 고개를 돌릴 때,
우리는 남들에게 해를 입힌다.
그리고 우리의 수치심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영영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 자신에게도 해를 입힌다."라고 말이다.


역사의 흐름을 따라 착취와 억압 속에서도
꿋꿋했던, 눈초리 속에서도 당당했던 엉덩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엉덩이 등
시대 흐름 속에서 유의미한 굴곡을 만든
엉덩이에 대한 내용들을 소개하며

다양한 '크고 작은 엉덩이'에게
특정 태도를 강요하지 않고,
다만 우리 몸을 바라보는 마음에,
환기의 기회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본인도 이런 연구와 집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엉덩이에 대한 수치심에서
해방될 수 없었지만,
이런 엉덩이를 바라보는 수치심의 근원을
직면함으로 인해 생겨난 약간의 변화들이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분명 새로운 의미를
전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놓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엉덩이에 대한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평균'의 모습에
의구심을 갖지 않고 그 틀에 내 엉덩이를 맞춰
수치심을 느낄 뿐 어떤 의문이나 행동을
취하고자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시선과 감정에 대해 '왜 그래야 하지?'라는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책에 쓰인 작가의 시선을 따라
엉덩이의 기원, 엉덩이를 바라보는 감정의 변화,
그릇되게 자리 잡은 엉덩이의 이미지나
그 안에 숨겨진 인종, 성차별적인 시선을
새로이 알게 되고 관련된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면서

각기 다른 엉덩이에 대한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고
덜 수치스러워하고 조금은 당당할 수 있기를,
유독 커다란 엉덩이를 가진 사람의 뒤태를 보며
생기는 감정을 입에 올리지 않는
스스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된 감정이 아닌가 싶다.

유독 엉덩이에 담긴 혐오감의 기원과 시작,
그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고 나니
약간은 오래 묵은 시선과 편견을
털어낼 수 있게 된 것 같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사회가 규정하고 정해놓은
청바지, 거들, 비키니 등에 몸을 욱여넣으며
그 욕망에 나를 맞추기 보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들을 시작으로,
조금은 삐져나오고 다른 부피를 가진 내 몸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으며 저항할 수 있는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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