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아주는 마음
김지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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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혼이기에 자녀의 '첫 말 하기'의
짜릿한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조카들의 '말하기'를 보며 웃음 짓는 순간들,
그 어설픈 말 하기의 귀여움을 느낀 추억을
자주 되새기곤 한다.

모든 사람을 '엄마'하고 부르며
이것저것 해달라 하던 아이의 모습,
나비를 '마비'로, 여우를 '어우'라고 발음해도
마냥 예쁘고 반짝이던 순간을 말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어설픔'을 기다려주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던 시간,
옹알이를 하는 아이들의 알 수 없는 소리에도
'그치~ 그랬지' 하는 답변을 하며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는 행복한 추억의 한 조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과의 대화에
'언어치료'라는 말이 붙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금 전까지 어설픈 발음도 귀엽게 느껴지던 모습도
'언어 기관의 문제'나 '장애'로 느껴지며
이 발음이나 말은 '빨리 고쳐야만 하는'
범위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20여 년간 언어치료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온 김지호 언어치료사의 글로,
그가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우리가 모두 잊고 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제대로 된 발음을 하지 못하는 아이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어떤 문제로 인해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아이,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동네의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살피고
동네의 쓰레기를 치우는 아이 등

일상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쉽게 만날 수 있는
'하고 싶은 말이 분명 있을 텐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사연을 담았다.

언어치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유전적이든, 후천적인 신체기관의 발달지연으로
그저 발음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거나
혹은 지적장애나 발달장애로 인해
뇌의 발달이 충분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려운' 장애의 문제로,
그렇기에 이들에게 말을 하게끔 하는 언어치료는
그런 신체기관을 활성화하는
의료적인 치료행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언어치료사로 활동하는
작가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언어치료라는 것이 단순히 발음을 정확히 하고,
더듬지 않고 바로 말을 하는 행위적인 부분의
정확함이나 결함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 원인을 1차적으로 찾고,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냄으로써
그들이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가 앉고,
일어서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걷다가 엎어지는 수많은 성장의 과정을
우리는 '처음부터 똑바로 걸어야지'하며
매몰찬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넘어지고 부딪히고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울면서도
자꾸자꾸 스스로 일어나는 연습을 통해
언젠가 걷게 된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주며
때로는 박수와 칭찬으로 용기를 북돋아 준다.

처음 말을 배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에게 엄마라고 불러도,
조금은 새는 발음으로 혹은 자신만의 발음으로
사물을 불러도 다그치지 않고
웃으며 '아이만의 시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들의 성장을 기다려준다.

하지만 장애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디고 어설프다는 이유로
언어치료를 하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포용심을 베풀지 못한 채 선입견으로 대했음에
반성의 마음을 갖게 되기도 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어설프고 더딘 성장 속에서도
그만의 노력이 담겨있고,
자신만의 속도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가 너무 그 마음을 외면하고
어른들의 기준으로만 생각했던 건 아닐까 하고.

어딘가 아픈 아이, 부족한 아이라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와
또 그 아이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잔잔하게 써 내려간
작가의 메시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소리를 내고 싶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장애'나 '기능적인 문제'로 한정 짓지 않고,
어른들의 시선 속에 답답하기도 했던
자신의 어린 날에 빗대어
아이들의 감정을 되짚기도 하며

사실은 그들의 결함에 의존하고 있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러면서도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은
어른의 마음을 담았다는 점에서
나 역시 언어치료와 아이들의 '말'을 바라보는
마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그저 '치료'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또 공감을 매개로 아이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겉으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그의 섬세한 발맞춤이
바쁘고 삭막한 현대의 우리에게
많은 반성의 마음과 울림을 안겨준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바라보듯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기다려줄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많아지기를,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따스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말은, 대화는 '마음'으로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이렇게 다시 한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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