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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평점 :

작가라고는 하지만 인정받은 작품 하나 없는 은섬은
동료 몇 명과 함께 작업실을 함께 쓰고 있다.
각자 안 풀리는 작품에 고민이 많은 그녀들은
드라마 대본 작가 경은과 시나리오 작가 윤희의
주도 아래 '작가 전문 퇴마사'를 불러
이들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잡귀를 퇴치하기로 한다.
은섬은 그녀들의 부추김에 함께 하긴 했지만
마스터라 불리는 그를 믿어야 할지 의심스러운 찰나,
퇴마사는 은섬의 옆에 '이작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자가 서있다는 얘기를 한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너무도 놀라버린 은섬,
최근 은섬은 80여 년 전에 이작희 라는 여성이 남긴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있던 터.
어려웠던 은섬의 집안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고 또 영향력을 행사하는
큰아버지의 제안으로 시작한
이작희의 일기에 대한 분석과 동시에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에 발표한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인정을 받는
오영락 작가 문화관을 만들기 위한
일을 막 시작했던 은섬은,
왜 '이작희'가 자신의 곁에 나타난 것인지
무섭기도 하고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이작희는 공식적으로 현대에 남긴 작품이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일기장에는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김중숙이 써 내려간
소설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었고,
여성이라는 성별,
기득권이 아닌 평범한 계급(신분),
일제강점기 아래의 독립운동가 집안(민족)
이라는 굴레 아래에서도
고통스러운 삶 속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들의 삶은
알면 알게 될수록
은섬의 마음에 어떤 가책이랄까,
시대는 다르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쓴다는 공통점으로
점점 많은 공감과 동질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기에 그 일기장에 담긴
충격적인 진실을 제대로 알고,
또 세상 밖으로 꺼내기 위해
이 사건의 진실을 쫓아 그리고 쓰는 여자,
작희와 중숙을 쫓아 계속된 탐구에 나서게 되는데……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퇴마사를 만나
본인의 곁에 존재하는 과거의 여자를 인식하게 된
한 현대 여성작가가 진실을 찾고자
그들의 과거를 쫓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창작자로서의 연대와 공감의 마음을 담아낸 책으로
은섬이 있는 현대와
작희와 중숙이 있는 과거의 시점을 오가며
어떤 연유에서인지 서로를 만나게 된 그녀들이
그렇게 만나게 된 서로의 모습에서
자극 아닌 자극을 받아 '진짜 나'를 찾아가는
하나의 성장기를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작희의 어머니인 김중숙의 글쓰기 사랑,
혼인으로 학업을 중단한 어쩔 수 없는
시대상의 안타까움,
시집살이와 남편의 외도 등으로 힘들었던
그녀의 삶 속에서 유일한 희망이자
외로운 삶의 동지였던 딸 작희에 대한
다양한 서사가 이어진다.
붓을 땅에 심는 여자아이가 나오는 태몽을 꾼 뒤,
아이가 '이야기를 지으며 기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작희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준 중숙과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대신에 살림을 꾸리고자
서포(서점)를 운영하며 글쓰기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았던 그 시대의 여성들의 '꿈'과 '생'은
그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뿐인데도
맘껏 펼치지 못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런 힘듦 속에서도
무조건 이야기와 이야기를 쓰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이끌어 준
작희와 중숙의 모습,
이들을 통해 글에 기대어 나만의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애쓰는 은섬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선 공감과 결속으로
'쓰게 하는 힘'으로 통합되는
그녀들의 교감이 짜릿하기도 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
나만 빚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간
1,2 세대 여성작가의 모습은
비록 소설에 불과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창작자로서 꿈을 펼치고자 애썼던 그 노력은
당시의 누군가에겐 꼭 존재했을 것이란
믿음을 가져오게 했고,
그런 그들의 단단한 믿음이 더 나아가
현대의 은섬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연대로
나만이 해낼 수 있는
'내 삶의 주인공 되기'의 기적까지
맛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작품 속의 주인공인 은섬뿐 만 아니라,
창작자로 일하는 현대의 모든 은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중숙과 작희의 열정을,
또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마음에 담아 한걸음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은섬의 모습이 오래 잔상에 남을 것 같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적은 없지만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내가 꿈꾸는 곳을 향해
묵묵히 달려가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