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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되어 줄게 ㅣ 문학동네 청소년 72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세상 그 무엇보다 끈끈함과 동시에
때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불통 그 자체이다.
나를 누구보다 믿고 사랑해 주는 존재이자
낳고 키워준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도는 마음이 들지만
그러다가도 한순간 쏟아지는 잔소리나
'이런 엄마가 어디 있니' 하면서
라떼는 말이야, 하는 타령을 하는 엄마를 볼 때면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날도 참 많았다.
한창 입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던 고3 시절,
0교시부터 시작해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나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야말로 몸과 마음 모두 녹초가 되곤 했다.
하루 종일 갑갑하게 입고 있던 교복 대신
편안한 옷을 입고 늘어지고 싶고,
책상 앞 의자에 종일 앉아있느라
퉁퉁 부어있는 다리의 피로를 풀거나
눈이 아프고 시리도록 쳐다보던
책과 문제집 대신에
친구가 보낸 메일을 보거나
인터넷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야속하게도 그때의 엄마는
"무슨 애가 고3이면서 집에서 공부를 안 하니?"라며
마음에 비수가 되는 말을 했었고
"학교에서 내내 공부하고 왔는데…" 하고 말끝을 흐리면
"공부에 끝이 어디 있니?" 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대학을 가려고 그러냐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혀를 차고 홀겨보는 통에
마지못해 책상 앞에 앉게 만들고는 했었다.
모든 일이 서로의 입장이 되어봐야
혹은 내가 직접 겪어봐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
뒤늦게 못다 한 학업을 이어가며 엄마는
이제야 그런 말을 한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만 해도 너무 힘들구나.
눈도 아프고 계속 보고 있는다고 책에 있는 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엄마 근데 우리 고3 때는 이랬었잖아 하면
푸념 아닌 푸념을 했더니 기억도 안 난다는 듯
"내가 그랬니? 몰라서 그랬어." 하며
뒤늦게 미안한 표정을 짓곤 하는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때로 서운하고 서러웠던 기분을,
아무것도 모른다며 마음의 문을 닫았던 과거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은 나와 엄마처럼,
절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의 평행선을 가진
한 모녀가 특별한 일주일의 시간으로
서로를 비로소 이해하고 보듬게 되는
마음 따뜻한 기적의 순간을 담았다.
2023년의 중학생인 윤슬이는
별것 아닌 일로 엄마와 다툼을 하게 된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낯선 풍경 속으로 이동하게 된다.
엄마 최수일이 중학생이던 1993년의 어느 날로.
반대로 엄마는 남편을 데리러 운전을 하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냈는데 깨어보니
딸의 몸을 가진 자신을 마주한다.
어떻게 해야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또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며
서로의 몸으로 서로의 시간을 살게 된 모녀는
일주일 동안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서로의 삶을 살아보며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며
꼬인 시간 속 각자가 가진 문제의 매듭을 풀어내고
서로에게 가진 오해를 풀며,
동시에 서로를 향해, 진심을 향해
과거와 미래에서 각자의 자신을 기억하고
기다리며 그리워한 이들을 향해 달려나간다.
사실은 누구보다 서로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며
필요로 하는 엄마와 딸이
오해로 소원해졌던 최절정의 순간,
자신의 삶으로 서로를 소환하며 공감하게 된
특별한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추억여행을 하듯 1993년의 엄마 최수일의 10대,
이해하기 힘든 2023년 딸 강윤슬의 10대를 쫓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살펴보며
청소년기 별것 아닌 일들로 울고 웃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던 과거의 추억도 떠올랐고,
요즘의 '어른보다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청소년들의 삶을 보며
애잔한 안타까움과 예민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헤아려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만약 내가 엄마의 10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엄마의 얘기를 통해 들었던
먹고 사느라 치열했던 그 시절,
가정 형편과 상황으로 여의치 않았던 현실 속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엄마의 소녀 시절을 과연 내가 감당하고
또 살아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엄마의 과거로 가게 된 딸 윤슬이
다시 돌아올 엄마를 위해 연습장에 써 두었던 말처럼,
나 역시 그 시절의 엄마에게 한마디 말을 남길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하다 보니
'나중에 다 잘 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문득 엄마의 삶에 꼭 미래의 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그런 따스한 말 한마디를 해주었더라면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을까
혹은 더 용기 있게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각각 다른 시간이지만
각자의 시간이 서로에 영향을 주며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라고,
때로는 과거에 몰랐던 의미를 미래에 깨달으며
멈춰있던 혹은 닫혔던 과거의 시간이
비로소 제대로 흐르게 된다는 메시지가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지' 하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늦게라도 지나친 마음을 후회 없도록
붙잡고 바로잡는 용기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과거와 현재의 타임슬립이라는 소재,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기에
그렇게 해서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
사랑하고 아껴주며 믿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듬뿍 담아낸 이 이야기가
되려 '실제로 그럴 수만 있다면' 하는
간절함으로 와닿게 된다.
한 번쯤 엄마도 읽어보았으면
그리고 한창 사춘기를 맞아 투닥거리는
언니와 조카가 서로를 생각하며 읽어도
참 좋겠다 싶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