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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 강인욱의 처음 만나는 고고학이라는 세계
강인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평점 :





고고학이라 하면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넓게 펼쳐진 공간 위, 여기저기 땅이 파헤쳐 져 있고
여럿의 사람이 가만히 그 앞에 앉아
섬세한 붓으로 흙을 털어내고 유물을 캐는 모습.
이따금 뉴스에 등장하는 유물 발견 뉴스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 작품을 통해 접하게 되는
고고학의 존재와 이미지는
'과거의 흔적이나 사용했던 물건, 보물을 찾는'
탐구 행위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한창 이슈가 되었던, 춘천 레고랜드 부지에서
유물 터가 나오며 잠시 개발이 중단되었던 일이나
우리나라의 오랜 유물들이 전쟁과 약탈로 인해
외국의 박물관으로 팔려가 다시 우리나라로
반입할 수 없게 된 것 같은 이슈로
미디어에 언급되는 잠시를 제외하고는
고고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일은 드물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고학이 궁금해진 계기가 생겼는데,
여행지에서 방문한 박물관에서 마주한
고고학자들의 손놀림으로 찾아낸
과거의 어마어마한 유물을
눈으로 직접 마주했을 때 느껴졌던 경외심이
그 시작이 되었다.
그동안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땅속에 파묻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던' 과거의 숨결이
고고학자들의 발굴과 해석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가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과거와 현대의 우리를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우리가 아는 과거와 관련된 학문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문헌 등을 통해 과거의 사람들이 직접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내용을 찾고
이를 해석하는 역사학과
과거의 사람들이 일부러 남기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생활, 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유적과 유물의 조사를 통해
과거의 삶을 해석하는 고고학이다.
이 중 문헌으로 남겨진 역사학의 경우에는
그 당시 사용했던 언어나 글을 알고
그 시대상을 추측할 수 있다면 해석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저 장소와 물건으로만 남은 과거의 숨결에
어떤 의미와 뜻이 담겨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고고학은
굉장히 매력적이면서도 그 과정이 고독하고
또 어려운 학문인 것도 같다.
이렇게 현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과거를 쫓고
광대한 시간을 뛰어넘어 옛이야기를 찾는
고고학의 본질, 이를 찾고자 하는
고고학자들의 숙명은 무엇인지,
그리고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지금의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하던 찰나
여러 저서와 미디어를 통해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하는데 앞장서 온
강인욱 교수의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선사시대부터 청동기와 철기,
그리고 더 먼 시대를 건너
다양한 생활을 추측하고 삶 속 유물을 캐내어 내는
저자의 다양한 체험과 유물에 숨겨진 이야기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고고학의 본질과 의미를 되새기게 되면서
'옛것을 찾아내는 고루한 학문'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봤던 고고학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가지게 해 준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늘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더라도
유명한 왕릉이나 '보물'처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니고서는 '그냥 토기네' 정도로만
생각해왔던 부끄러운 과거였다.
대단한 관광수입을 가져올 수 있는 건축 부지에
유물이 나왔다고 해서 모든 개발을 멈추고
'과연 이 유물을 캐는 것이 맞는 것인가'
갸우뚱했던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말이다.
꼭 지금이 아니라더라도
언젠가의 미래에 캐낼 수 있는 유물을
굳이 지금 꺼내서 해석하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쉬운
요즘의 '가치 중심, 물질 중심'의 시대에,
과거의 삶을 통해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밝히고
그들이 기후와 환경에 적응해왔음을,
즉, '살아있음'을 밝히고자
본질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춘 그 우직한 발걸음은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어렸을 때 매일같이 숙제로 쓰느라
별로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던 일기가,
시간이 지나고 펼쳐보았을 때
흐릿해진 기억 속 추억을 자극하고
또 그저 흘려보냈을 하루의 의미와 시간을
나만의 역사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듯
책을 덮을 때 즈음에는 고고학에 대해,
누군가 일부러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더라도
과거의 생활과 삶을 쫓는 고고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그동안 정확히 알지 못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제대로 마주하고 기억하게 해주었기에
무엇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현대의 우리가 쌓아 올린 수많은 것들이
언젠가 땅 밑으로 가라앉게 되면,
지금의 고고학자들이 그래왔듯
후대의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미래의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의 삶을 유추하고 해석할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쫓는 고고학자들의 손길 아래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시간에서도
우리는 미래의 그들과 만나 맞닿고
소통하게 되는 아름다운 만남을 이뤄내,
시대를 넘어선 소통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침묵으로 남겨진 과거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그것을 현재와 더 나아가 미래로 연결하고자 하는
고고학자들의 노력은 그렇기에 그 어떤 것보다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렵지 않게 쉽게 풀이하는 저자의 노력으로
그동안 무지했던 고고학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어 의미 있는 독서였다.
지나간 것은 낡고 진부한 것이라 생각하며
마냥 미래를, 발전만을 쫓기보다는
과거를 통해 오늘과 미래를 연결하고자 하는
고고학자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박물관의 유물 하나, 혹은 뉴스에서 마주할
유적지의 발견이나 개발 앞에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단단한 주관을 가지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