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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0월
평점 :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은
아무리 대항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이는 불가능한 상황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상황에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자칫 무모한 듯 무의미해 보이지만
생존을 위해 용기 있게 강자에 맞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신념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행위나 움직임이
세상을 뒤집거나 바꿀 수 없을지라도
바위를 깨뜨리지는 못해도 더럽히기라도 하고
약간의 균열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진 사람들을 조명해
승자 중심으로 기록되고 해석되는 역사를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한계가 존재하는 세계사의 다양한 시대,
역사의 변곡점에서 세상을 바꾸고 뒤흔들고자 애쓴
총 30개의 사건들을 다뤘다.
1장 <생존을 위해선 못할 게 없다>에서는
거인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애썼던
생존 전략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련에 맞섰던 핀란드, 미국에 맞선 베트남,
나폴레옹에 맞선 스페인의 게릴라 투쟁,
수나라에 맞선 고구려를 통해
때로는 납작 엎드리거나 과감하게
뼈아픈 선택을 하는 등 자유와 승리를 위한
지혜로운 모습을 보인 역사 속 약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고
2장 <용기 있는 자만이 역사를 바꾼다>에서는
아우슈비츠로 자진 입소한 비톨트 필레츠키,
3만의 중공군을 상대한 600명의 영국 대대,
똥물 뒤집어쓴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를
촬영한 이기복 사진사 등
세계사 속 역사를 바꾼 용기 있는 선택은 물론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목소리를 냈던
언더독의 모습을 보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과연 무의미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3장 <한목숨 바쳐 강자에 맞선 약자>에서는
은혜를 갚으려 몽골과의 전투를 불사한
시씨 가문 사람들,
생을 걸고 민중을 격동시킨 혁명가 등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면서도
개인적인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사회나 역사의 빌런에 대항하고
민중을 격동시킨 열정을 담아내었는데,
책 속의 사례는 나만 생각하고
이득을 셈하며 행동하기 쉬운
요즘의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다.
4장 <지혜롭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에서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태도의 천재였던 칭기즈칸,
국방력을 강화하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에티오피아의 메넬리크 2세,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성냥 공장 여성 노동자 등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무책임과 무대책 속에서 속절없이 스러진
수많은 희생자들을 위해
희생양을 불사르며 직성을 푸는 것보다
사태의 진실과 책임을 명확하게 공유하고 파악하는
신중함을 가진 이들의 지혜는
지나간 역사는 물론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역사에서도 끊임없이 필요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안겨주었다.
마지막으로 5장
<신념을 지니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에서는
거대한 손 앞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힘을
끊임없이 밀어붙인 자들의 이야기다.
나치 고위 관계자들 앞에서 세리머니를 한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축구 스타,
간토 대학살 당시 ‘조센징’을 지키는 데
앞장섰던 일본인 경찰서장 등이다.
작은 힘으로 세상을 뒤집은
승리의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작가가 프롤로그에 언급했듯
세상을 바꾸려는, 조금이라도 균열을 내려는
시도가 끊인 적은 없었으니
한번 힘을 내어 함께 뭐든 해보자는
용기 어린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나 하나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고
생각하기 쉬운 시대의 흐름 앞에
자신의 뜻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더 나아가 목숨을 바치고 현명한 전략으로
그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가능의 영역으로 끌어당긴 이들을 통해
우리가 그저 순응하고만 있는 시류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역사에 남아있는 승자의 기록이 아닌,
역사에서 주목하지 않은
그 공을 치하하지 않는 노력에도
두려움 없이 그 길을 선택한
숭고한 그들의 발걸음이
수없이 변해가는 시대와 장소에서도
끊이질 않는다는 점은
굉장히 울림 있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꽤나 익숙한 역사 속의 사건부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혹은 가볍게만 알고 있었던 사건을
새로운 시선에서 재조명하여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숨겨진 세계사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라는 서정적인 동화로 알고 있던
성냥공장 노동자의 소녀들의 일화처럼
우리가 외면하거나, 혹은 안타깝게만 여기고
지나칠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이를 겉으로 드러내고
때로는 부딪쳐 죽음에 이르더라도
약간의 '변화'라도 이끌어내고자
그들이 만들어 낸 '균열'이
지금 우리의 시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분명 역사를 담아내었음에도
여태껏 접해왔던 다른 책과는 달리
하나하나의 사건과 그 속의 인물들을
복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그들의 마음에 이입해 해석해 내어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틔워준
계기가 된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주관적이고
작가 개인적 측면의 시선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역사 속 하나의 사건과 세계사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계가
내 기준에서는 꽤나 신선한 자극이었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불가능하고
무모해 보이는 모든 움직임과 노력이
결국에는 무언가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씨앗이 된다는 점에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대단한 발걸음이 아니더라도 목소리를 보태
힘을 실어야 할 일은 없는지
지켜봐야겠다는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세계사와 역사를
30여 개의 사건을 통해 들여다보며
많이 공감하고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생각되던
과거의 시간들을 끄집어내 되짚어보며
승자 중심의 역사를 약자의 시선과 입장에서
다시 풀이해 보았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발전의 서두가 아닌가 싶다.
히틀러에 저항한 평범한 노동자부터
죽음 앞에서 사랑을 택한 사우디 공주까지
한 명의 개인의 선택과 움직임이
세계사를 뒤흔들었듯,
이렇게 약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역사의 해석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켜
그들에게 주목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모두가 귀 기울여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