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쓰는 마음
이윤주 지음 / 읻다 / 202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따금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빠진 듯

일상에서 모든 의욕이 사라진 채

기분이 가라앉는 시기가 있다.


누가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으면

"아니, 그냥 좀 기분이 다운돼서…."

하고 말끝을 흐리지만

사실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우울은

진작부터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현대인들에게 크고 작은 우울은

누구에게나 있을 감정.


나 또한 때로는 기약 없는 기다림처럼,

가라앉은 감정이 다시 바닥을 딛고 올라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일상을 되찾길 바라는

작은 우울감을 겪은 적이 있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언니가

우울증에 걸려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며

힘들어하고 있는데,

호떡과 잉어빵을 좋아해서

'겨울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볼까'하며

잠시 눈에 희망의 빛이 돌았다며


봄에는 수박주스로 여름을 버티게 하고,

여름에는 군밤으로 가을을 기다리게 하며

언니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SNS에서 이슈화되었던 글처럼


아스라이 무너지는 스스로를

겨우 붙들며 매일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참 많다.


그러면서도 겉으로 나에게

우울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혹은 드러내지 못하거나,

'그건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거야'하며

채근하는 타인의 시선 아래

더 많은 상처를 입고 더 깊은 우울에

빠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제 우울은 쉬쉬해야 하고 숨겨야 하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슬프지만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걷는

각자의 크고 작은 우울 속에서

오롯이 '나'를 되찾기 위한 생활과 노력은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별것 아닌 듯싶지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우울을 보듬고

조금이라도 '살고 싶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작은 노력이 참 예쁘다 생각했는데


아마도 이 책이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혹은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가

불투명해진 현대인들에게,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언니를 위해 계절음식을 챙겨주는

동생의 마음처럼 따스한 위로이자

새로운 내일을 깨닫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고쳐 쓰는 마음》은 40대의 문턱에서

우울증을 맞이한 이윤주 작가가

자신의 '우울'을 통해 배운 것들,

그 우울증을 마주하고 함께 살며

자신의 다친 마음을

버리거나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고쳐 쓰자'라고 다짐하며 지나온

지난한 시간들을 담아낸 글이다.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신나고 즐거운 것들만 곁에 두라며

'우울'이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거나

혹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겪은 가장 취약하고

또 어쩌면 제대로 꺼내보기 어려운 감정과

그 시간을 글로 담아낸 담담한 고백은

되려 보통날의 삶을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소박한 감사함이 느껴지기도 해서


불행 속에서도 세심한 관찰과 사색으로

삶의 고통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을 표현한 그녀의 글들은

마냥 어둡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우울증의 이미지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생활 속 작은 감사함이나 아름다움을

전혀 느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저 나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어쩌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더 깊은 물살로

끌려들어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아프고 쓰라린 상처를

마주하고 때로 작은 것들로 스스로를 보듬으며

나를 아끼고 곁에서 지켜주고자 하는

사람들의 애정 어린 보살핌 아래

그런 자신을 미워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고쳐 쓰자'라며 깊은 우울 속의 나에게

손 내밀고 마음을 뻗을 줄 아는 작가의 노력은

얼마나 어려웠을지 알기에

더 아름답고 빛나게 느껴졌다.


자신이 가장 취약했고,

어쩌면 남에게 고백하고 싶지 않은

치부와 같은 감정이지만

그 지나온 순간들을 담담히 고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삶의 진실을 발견해

잠겨있는 감정을 물결을 꺼내 보여준

용기 있는 이 자기고백의 글은


어쩌면 무겁고 같이 우울해진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들을 통과해 지나온 불행을

불행으로 멈춰있지 않게 만들어온

그녀의 노력에 미소 짓게 하고

이 글들을 통해 외면하고 있던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마주하고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그 어떤 '힘내'라는 말보다

혹은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보다

강하게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진심 어린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라면 참 좋겠지만,

고쳐 쓰는 마음도 나쁘지 않다고

이 또한 고통만 있는 게 아니라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각자가 가진 우울의 크기,

혹은 감당하고 있는 감정의 깊이는 다르겠지만

자신만의 이야기를 넘어

모두에게 손 뻗어 온기를 전하는 이 글이

잿빛 마음에 따스한 힘이 될 것 같다.


우울을 미화하지도 혹은 비난하지도 않고

자신이 마주하고 통과한 우울의 터널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그녀의 글이

작은 어린아이, 검정개를 가진 사람들에게

내일을 믿고 기대하고 감당하는 쪽으로

이끌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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