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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공익 - 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류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평점 :




한창 출근 시간대에 붐비는 지하철,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시위로
열차가 지연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다.
시위의 주된 메시지는 가려진 채,
그들의 시위행위로 인해
출근길에 나선 직장인들이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혹은 시위 과정에서
그들이 경찰을 가격해 놓고도
강경 진압을 이슈화한다는 기사가
인터넷의 메인을 차지하며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자기들 사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하도 많은 시간대 중에 일부러 출근시간을 골라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은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가리고
'떼쓰기'와 '폭력성 짙은 이기적 행위'로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끔 했다.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으며
나에게 영향을 주는 이슈가 아니었기에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들 고생했겠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조차 그들이 왜 그렇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자신의 사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불편을 초래했다'는
문장을 곱씹다가 문득,
과연 그들이 고집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 내용이 '사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
그게 침해받거나 혹은 보장되지 않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개선을 요구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아
강경한 방법을 택했을 수도 있는데
장애인, 약자, 노동자 같은 취약계층의
목소리라는 이유로
그것을 '사익'으로 치부하고
나조차 외면하고 방관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뒤늦은 생각에 조금 부끄러워지던 찰나,
우리가 생각하는 '공익'의 범주를 꼬집고
비틀어 다시 스스로 이를 톺아보게 하는
《불온한 공익》을 만나보게 되었다.
이 책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
하지만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기본권이
대치되는 상황에서 과연 개인의 혹은
권력층이 아닌 일반 국민의,
개인의 기본권은 보호될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법 앞에 모두가 공평하고,
동일하게 보호받는다는 믿음 아래 살고 있지만
우리가 실존하는 이 사회에서
국가가 나라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개인과 어떻게 갈등하고 있는지,
혹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공권력을 이용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때로는 변명하거나 근거 없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까발린
보고서이기도 하다.
2013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집회에
나갔다가 재판을 받기도 하고
스쿨 미투 정보공개 청구나
아파트 경비 노동자 갑질 사망사건,
삼성 노조 설립 투쟁 등
굵직한 '위험한 사익'으로 치부되는
사건들의 변호를 맡았던
공익변호사 류하경의 글로,
이 '위험한 사익'을 지켜내기 위한
현장에서 마주한 불온한 공익,
기꺼이 국가와 기득권 층이라는
단단한 바위에 부딪치는 계란이 되어 겪은
사익과 공익의 제대로 된 정의,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탄압되고 있는
개개인의 정당한 사익추구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트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공익을 구성하는
요건에 관해 깊이 논의하거나
그 정의와 조건을 타협하기 위해
대화해 본 적이 없다.
국가가, 사회가 말하는 '공익'을
이만큼 가까이 들여다보면
누군가 특정 집단의, 기득권 층의 사익이
사회적인 합의나 시민 편의, 다수의 행복이라는
정치적 언어를 사용해 둔갑하고 있다.
누군가는 쉽고 차분하게,
작은 목소리로 그저 '이야기만 해도'
지켜지고 보장되는 사익이거늘,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큰 소리를 외치고
자신을 불태우고 목숨을 내놓아도
겨우 그 이야기가 모두에게 닿거나
혹은 '떼쓰기'로 보이는 것이
과연 국가만의 잘못된 행동인가,
이를 받아들이고 접근하는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갈등 상황을 바라볼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를 떠나
그 싸움이 동일한 조건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그 싸움이 이뤄지는 경기장이 모두에게 공평한지
살펴본 적이 있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 역시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에 먼저 뛰어들어
그들을 변호하고 감싸 안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언젠가 그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사익을 통해 투쟁하는 순간을
분명 마주할 것이기 때문에,
돈과 권력, 국가 등 수단이 많은 힘센 자들과
불공평한 싸움을 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법 제도와 정치가
힘과 수단이 부족한 사람들을 보조할 수 있게
언젠가의 나를 위해서라도 소수자와 약자의
이권 투쟁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싸우는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무리 애써봐야, 그래봤자
기득권 층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싸워보기도 전에, 그게 옳지 않다고
문제 인식을 하면서도 외면하고
'내가 아니니까' 목소리를 높여 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나 한 명의 목소리는 힘이 없지만
이런 모두의 연대가 이루어지면
분명 큰 힘이 될 수 있을 텐데,
그저 외면하고 방관했던 과거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단단한 심지가 있는 글이었다.
변호사라는 타이틀,
분명 돈이 되는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
수임료만 해도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직업이지만
'불온한 공익'으로 인해
아스라이 무너지고 있는 '위험한 사익'을
지지하기 위해 함께 나서 투쟁을 하는
그의 커다란 목소리에 마음이 울린다.
그저 '법'으로 이를 꼬집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권 투쟁 속에서도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가장 최우선으로 두고,
누군가의 사익을 보장하기 위해
반대편의 사익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투쟁과 싸움의 현장에서도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 대화하며
마음을 다해 임하는 시도 아래
우리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며
끊임없이 부딪치며 마찰할 수밖에 없는
현 사회이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당장 답을 내릴 수 없어도 대화를 통해,
갈등 속에서도 쉽게 선동되거나 휘둘리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각자가
되기를 바라는 바람은
냉철하고 차가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누군가를 '변호'하는 직업의식을 떠나
따스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져
더 의미 있게 와닿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지금까지 마주했던
뉴스 속 수많은 투쟁에 대해,
외면하고 방관하며 떼쓰기라 생각했던
행위에 대해 그저 미디어의 소식대로
머리와 마음속에 담아두는 게 아니라
제대로 문제를 찾아보고 귀 기울여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방법에
힘을 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공익과 사익의 진짜 정의를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9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