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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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뉴스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사건 현장의 사연,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의 생명을 구한 시민 영웅이나

가족을 대신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때면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두려운 상황에서도 나만 생각하지 않고

이타심으로 위험 속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고 타인을 위해 손 뻗는

사람들의 희생과 용기 앞에

안타까움과 존경 어린 마음,

그 희생으로 살아난 생존자의 앞날에 대한

축복까지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아파트 11층에 사는 자매 예정과 원.

나이차 나는 어린 동생을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켜서

함께 낮잠을 자던 중 발생한 화재.


윗집 할아버지가 던진 담배꽁초가

베란다를 통해 이들의 집에 들어와

쌓여있던 책과 잡지 등을 태우고는

그 불길이 번져 집 안으로 들어왔다.

각종 가구와 집기를 태운 뒤

불길은 더 거세게 커지게 되고,

자매는 꼼짝없이 집안에 갇히고 만다.


더 이상 물러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언니는 욕실로 뛰어들어가

샤워기로 온몸과 이불을 적시고는

구조를 기다리다 더는 피할 곳이 없게 되자

베란다 창밖으로 젖은 이불에 싼

여섯 살짜리 동생을 던지고

본인은 불타오르는 집 안에서 삶을 마감한다.


화재현장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어쩌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주민들,

그 속에 있던 한 40대 가장은

언니 예경이 던진 이불 속 원을 받아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오른쪽 다리가 박살 나고

긴 재활을 거쳤음에도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장애를 얻게 된다.


그로 인해 트럭 운전 일을 하던

그의 생계와 가정은 망가지게 되고,

시간이 12년이 흐른 지금

떠난 언니의 나이만큼 자란 유원은

언니를 여전히 그리며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미워하면 안 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들이 바라는 모습에 맞춰 사느라

자신을 잃고 괴로워하는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에 대한 감사함과

자신을 구한 누군가의 희생을 생각해서라도

행복해야 한다고 말이다.


남은 사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기대와 따스한 바람이

그렇게 살아남은 생존자에게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차라리 나를 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을 만큼

고맙지만 밉고, 증오하는

모순 투성이의 마음이 존재할 거라는 건

예상치 못했던 마음이기도 하다.


여전히 자신을 12년 전 그 '이불 아기'로 보며

내가 나를 설명하고 소개하기도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직접 겪어 알기도 전에,


사건의 생존자로 딱하고 안쓰럽게,

때로는 '마음껏 나태하거나 나쁘지 못하게'

규정하는 시선 속에서 헤매는

10대 유원의 시선을 따라 사건을 마주하며

그 예상치 못했던 마음의 결을 읽고

'행복하게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바람이 얼마나 폭력적인 시선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아저씨와

죽은 언니를 추억하는 친구 신아 언니,

남은 가족의 삶을 함께하는 엄마 아빠 등

다양한 인물과의 관계를

원의 시선에서 재조명해가며


과거의 사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내밀한 상처와 윤리적 딜레마에서 힘겨워하는

그의 인생에 얹어진 무게감을

이제야 짐작하고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저 평범하게,

똑같이 사랑받으며 자라나야 할

어린 시절부터

위로를 가장한 상처 어린 말과

선의 어린 표정과 시선에도

의심을 거둘 수 없었던 나날들은

스스로를 '나쁘고 비뚤어진 아이인가'

수없이 질문하게 했다.


자신을 구한 언니와 아저씨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힘든

10대 청소년의 여린 마음을 들여다보며

꼭 같지는 않지만

어린 날의 나를 달래는 시간을,


뉴스와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었던

수많은 사건들 속 생존자를 향해

쉽게 던졌던 불편한 시선들을

거두어들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보통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생존자에게

목숨을 얻은 '대가'로

생존자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자기'를 외면한 채

죽은 자와의 관계에 의한 정체성만을

강요하곤 한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상실이라는 고통 앞에,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책임감 앞에

일찍이 철이 들고 쉬이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어린 한 소녀가


그 고정된 시선이 힘들다고

때로는 무겁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자신만의 발걸음을 내디디며

용기 있게 날개를 펼쳐가는 이 이야기는


추천사의 말처럼

일상의 트라우마를 통과 중인 수많은 '나'들에게

새살을 돋게 하는 치유이자,

생에 가장 큰 용기를 내 진짜 나만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우리 모두의 생존기이기도 했다.


비로소 새로 태어난 것 같다고

그제야 언니 덕분에 누리게 된 지금의 삶에

오롯이 고마움을 실감하고,

또 자신을 구해준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과 증오에 얽매여

어쩌지 못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진짜 원하는 삶'을 찾아낸 원의 모습을 통해

무거웠던 마음을 털어내고

가볍게 함께 날아오르는 짜릿함을 느꼈다.


아슬아슬 위태로워 보이는

원의 복잡한 감정들을 쫓아

함께 많이 울고 흔들렸으며,

갈등하고 증오하고 슬퍼한 순간들이었다.

한껏 울고 난 뒤 되려 속이 시원해지듯

그녀의 성장 앞에 마음이 맑아지고

한편에선 울컥, 애틋해진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건의 생존자들이,

원이 그러했듯 때로 고통스럽고 헤매더라도

각자의 방법으로 치유하고 위로받아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기를,

그들의 '생존'에 많은 말과 기대를 덧붙이지

않기를 다짐해 본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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