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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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 가면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도슨트라는 안내인을 만날 수 있다.


'가르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용어로,

소정의 지식을 갖춘 도슨트는

일반 관람객을 안내하며 전시물 및 작가 등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전시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여기에 따스한 시선으로

우리의 인생에 대한

도슨트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을 쓴

철학자 이진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힘든 일이 있을 때

하찮아 보였던 사소한 일상이

나를 버티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의 힘'을

말하고 싶을 때마다

빵 냄새와 아침 햇빛의 온기가 느껴지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

〈우유 따르는 여인〉을 본다고 했다.


조용하고 평온한 부엌 풍경 속

제법 아름답고 묵직해 보이는 주전자,

투박하고 거친 빵을 닮아

소박하고 단단해 보이는 여인,

쓸모없을 법한 것에 손길을 더해

보드랍고 따뜻하게 바꾸는 모습이 담긴

이 미술 작품을 통해

부엌 노동의 아름다운 가치와

소박한 일상 속 묵묵한 노동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었노라고 말이다.


이런 깨달음을 자신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세상 모든 딸들에게

엄마로서 혹은 인생 선배로서,

그녀가 미술작품들을 통해 발견한

아홉 개의 단어에 철학과 문학을 곁들여

그림과 인생 이야기를 토닥이듯 써 내려간 책이

바로 《언니네 미술관》이다.


평상시 미술작품이나 그림이 낯선 나에게도

말랑하고 따스한 언어로 차근차근하게

작품을 설명하고 풀어가는 그녀의 글은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했는데,


단순히 그림에 대한 해석을 넘어서

책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그 작품에 담긴 선과 색채는 물론

물감 아래 가려져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고정관념,

부여되는 역할이나 이미지는 물론

충분히 고민해야 할 인간관계나 삶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건네는 따스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사유가 담긴 이 특별한 시선은

새로운 시야를 틔울 수 있는 기회이자

굉장히 신선한 자극이 되어,

미술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그동안 어렵게만 생각했던 미술에 대해

한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여러 미디어 등에서 미의 표준이나

상징 같은 의미로 많이 언급되었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도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풍만한 몸매 등

'보이는 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비너스의 복근에 초점을 맞춰

'기능하는 몸'으로 풀이하였는데


그런 해석을 통해 그동안 고정된 이미지로

각인되어 온 여성의 몸과 삶에 대해

한껏 최선을 다해 다양한 '동사'로

살아보길 바란다는 바람을,


〈마녀 키르케〉 3부작을 통해서는

오랜 역사 속에서 변화해 가는

여성의 모습을 조명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당부하는

당찬 메시지를 담아내었다.


신체적인 능력이나 시간이 지나면

저물 수밖에 없는 젊고 아름다운 것에

권력을 부여하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조언은

예술작품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동

그 이상의 울림을 주었다.


이 밖에도 가장 본질적이고 무해한 감정이지만

일상 속에서 잃어버리고 살기 쉬운

슬픔, 서투름, 사소함 같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에 대해

크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새끼를 잃은 어미 양을 그린 〈비통함〉을 통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에 공감하며,

본질적으로 슬픈 존재인 인간에 대해

그렇지만 함께 기대면서 아픔을 나누다 보면

또 살아갈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네기도 했고


밀레의 〈첫걸음〉과 이를 모사한

고흐의 작품을 통해서는

아이의 첫 발자국을 보며

아직은 미숙하고 서투르지만

찬란하게 아름다운 가능성을 기다리는

시간의 기쁨과 즐거움,

상대를 신뢰하고 북돋아 주는 힘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무미건조한 매일을 살아가며 잊고 지내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하나의 미술작품을 보는 데 있어서도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무해한 감정에서부터

이분법의 경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바라보는 익숙한 듯 낯선 감각을 깨우는

작가만의 특별한 시선을 통해


'이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미처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지나치던 발걸음이 여러 차례 멈춰

그의 글을 따라 깊이 있게 사유하고

몰랐던 근육을 찾아내듯 새로운 감각을

깨워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림 속 요소를 촘촘히 관찰하고 살펴보며

또 그만큼이나 스스로에 대해

몸에 있는 모든 감각을 온전히 느껴보자는

작가의 따스한 제안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충만하게 만들어줄 것이란

기대에 부풀게 하였다.


철학과 미술, 문학이 한데 어우러진

그녀의 글을 읽고 나니

분명 글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서 다채로운 작품을 보고 온 듯

시각적인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어렵게만 느껴지고,

'예술'을 아는 사람만 그림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깨우칠 수 있을 거라는 편견으로

미술작품에 먼저 거리를 두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눈에 들어오는 시선을 따라

그림 속 요소들을 쫓아 새로운 세계로

생각을 확장하고 마음을 열어

보이지 않는 곳은 바라본 이 경험은,


아기가 첫걸음을 떼고

자신의 손과 발을 움직이며

두렵지만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처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경험,

어렵지만 재미있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게 해준 기회가 된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9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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