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의 일 - 11년간의 모든 기록이 담긴 29CM 카피라이터 직업 에세이 닻[dot] 시리즈 1
오하림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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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전공한 나에게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을 꼽아보자면 '카피라이팅'을 들 수 있다.


현업에서 아직 일하고 계셨던 노 교수님은

교재를 바탕으로 개론을 설명하고

사례를 통해 깨우침을 주는 다른 교수님과는 달리


실제 현업에서 일을 진행하듯,

우리에게 매주 '무얼 요구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던 과제들을 툭툭 던지며

'글 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셨다.


아직 '카피를 쓴다는 것'에 익숙지 않고,

그저 독특하거나 눈에 튀는 표현만 쓰는 게

광고 카피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우리에게

A4용지 세 장씩 각자 카피를 써와

'쓸만한 것'이 있을 때까지 컨펌하겠다며

강의실을 비웠던 교수님으로 인해

정말 '쓸 수 있는 모든 문구'를 동원해

카피를 써 내려갔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혹여나 통과할 만한 카피를 쓰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으로 교수님께 가면

무심한 듯 휙휙 넘겨보시다가

통과한 문구에 동그라미를 쳐주시곤 했는데,


내가 써 내려간 카피를 들여다보며

몇 개의 카피에 동그라미를 치다가

그제야 비로소 내 얼굴을 보시며

(그전까지는 한 번도 얼굴을 보신 적이 없었다)

"너는 좀 쓴다?" 툭 던져주신 말에

마치 뭐라도 된 양,

광고를 할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무사히 수업을 이수하고,

수없이 많은 전공과목을 듣고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지만

'과연 내가 광고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조금 다른 길로 빠져나와 살았고,

그렇게 광고는 '과거의 배움'으로만 남았다.


광고 일은 아니지만

마케팅을 하고 디자인을 하면서도

'글 좀 쓴다'는 그때의 칭찬은 나에게

자신감을 주고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카피라이팅'이 주는 어려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은 시간이 지나도

참 막막하고 두렵기만 하다.


그러니 현업에서 11년 동안,

그리고 회사에서 유일한 카피라이터로

모든 문구를 써 내려가야 했던

한 카피라이터의 그동안의 시간에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성장,

눈물과 기쁨이 공존할까 싶다.


이 책은 광고대행사 TBWA와 무신사를 거쳐

29CM의 헤드 카피라이터가 된

오하림의 직업 에세이로,


브랜드에 '굳이' 담긴 이야기를 찾아

큰 소리로 외치는 전달자이자,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 속에서 느낀

행복과 절망 사이에서 그를 지탱해 준 문장과

딴짓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쉬운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다양한 업무에 대한 소개는 물론

현업에서 고민하는 직업인으로서의

다양한 마음을 현장감 있게 담아내어

광고업계에서의 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그저 '멋있고 감각 있는 힙한 직업'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위에 썼던 것처럼,

한낱 수업에 불과했음에도

광고 지면 한 장에 들어가는 한 문장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문장을 써야 하는 것이

큰 부담이고 걱정이었는데,


실무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을 고려하며

더 많은 문장을 써 내려가야 할지

하루에 200여 개의 배너 문구를 쓰며

매일 손으로 쓰고 발로 뛰는

카피라이터의 '진짜 일과 일상'은

그저 '멋'과 '감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치열한 매일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많이 쓰는 만큼 지워야 할 수 있는,

제품과 브랜드에 담긴 저마다의 장점을

크게 외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수면 아래에 가려진 그들의 업무와

진정성을 이만큼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오랜만에 전공 가까이 다가간 듯

설레는 마음이기도 했다.


카피라이터의 업뿐만 아니라

11년째 직업인으로서의 먹고사는 일에 대해,

누구나 느낄법한 번아웃, 좌절, 희망 등을

솔직히 고백하는 내용은 일의 종류를 떠나

현실을 일개미처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를 주기도 했는데


나와 일 사이에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지키고 보듬어

'좋아하는 일을 더 오래 좋아할 수 있도록'

나름의 깨우침을 겪고 성장해 나간

작가의 경험을 통해

직업을 마주하고 일을 대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내 인생은 누구도 구해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의 날씨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것,

한 직업인이 써 내려간 일터에서의

숱한 고민과 나름의 해답은

비단 광고업계나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우리들에게도

좋은 인생 조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 직업을 선택에 긴 시간 달려온

그 열정 이면에 담겨있는

수없이 울고 웃으며 즐겁고 화났던

희로애락의 순간들,

그럼에도 더 잘 하고 싶어서

오래 좋아하고 싶어서 고민한

오하림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카피에 담겨

지금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유쾌한 듯 진지하고, 무겁지는 않지만

쉬이 흘려보내지 않은 시간 속에 담긴

이 이야기들이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점들이 많아

참 많은 밑줄을 그었다.


생소한 듯 흥미로운 광고 업계,

카피라이터의 시선이 담긴 일을 바라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방향성을 짚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독서였다.





※ 본 포스팅은 흐름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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