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트리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요즘이야 '시골 할머니 댁'이라는

표현이 드물 정도로

외가와 친가가 가까이 있는 집이 많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방학이면

'할머니 댁에 다녀왔어'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익숙한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

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시골만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풍경,

공부나 학원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든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인자한 할머니 댁에서의 시간은

나에게도 오래 마음에 남는 추억이기도 하다.


오가와 이토의 소설 《패밀리 트리》,

주인공인 류세이에게도

여름방학은 그런 추억의 시간이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소도시

호타카에서 자란 그는,

여름방학이면 외가로 찾아오는 소녀

릴리와의 시간을 항상 기다리곤 한다.


누나, 릴리와 함께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고이지 여관의 한 방을 차지하며

함께 풀숲을 뛰놀고 모험을 하며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그 시간은

엇비슷한 매일의 속에서

'살아갈 힘을 주는' 유일한 계절이 된다.


가을도, 겨울도, 봄도

아무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그저 여름의 기억만이 마음에 남아

환하고 선명하게 빛난 것.


그렇게 몇 번의 여름을 반복하며

그는 함께 뛰놀던 '친구' 릴리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쑥쑥 자라는 몸 만큼이나

서로에게 어색함을 느끼는 시간이지만

여전히 '함께하는 즐거움'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우연히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누군가 상자에 담아 버린 그 개를 발견하곤

그들은 '바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함께 정성을 다해 돌보고 마음을 쏟는다.


류에게 목숨만큼, 아니 그 이상 소중해진

강아지 바다와의 시간은

그를 이만큼 더 성숙하고 성장하게 만들고,

'내년 여름에 다시 바다를 만나러 온다'는

릴리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은 세 계절을 함께하며

대자연의 생명력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갑작스레 찾아온 사고,

그로 인해 뼈아픈 이별을 겪은 류는

더 이상 맑은 소년이 아닌

세상에 대한 절망과 누군가에 대한 미움,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조금은 비뚤어지게 되며

가족의 곁을 떠나 점차 어른으로 자란다.


그렇게 그들이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그동안 류세이가 몰랐던

가족의 특별한 비밀이 드러나고,

사건 이후 제각각의 모습으로 흘러가는

그들의 인생 서사는

여기저기로 가지를 뻗는 커다란 나무처럼

아예 다른 삶인 듯 하나로 이어져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예측할 수 없이 부딪치는 관계,

때로 갈등하지만

다시 화해하고 뭉쳐지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나무 아래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내듯

쑥쑥 자라는 이 가족의 연대기는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관계의 변화,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어두운 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삶의 의미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주인공인 류와 릴리의 이야기를 넘어

그들을 둘러싼 가족 모두 이야기이자,

이를 읽는 이에게는

'나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목숨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아끼는 존재를 잃은 사고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그렇지만 이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인 채 다른 가족과 거리를 둔

류가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런 그를 따스히 안아준 할머니,

그리고 거리를 두고 있지만

떠나지 않고 곁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가족들의 사랑은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렇게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어주었다.


한 사람의 인생 흐름을 따라

그가 만들어내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각자 다른 잎, 가지를 가지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패밀리 트리'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고


힘겹고 흔들리며,

서로 갈등하는 순간도 있지만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혈연이라는 테두리로

여전히 서로가 연결되어 있기에,

그에게서 받은 힘으로 인생의 발걸음을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는 믿음이

때로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견딜 수 있는

든든한 용기를 만들어주리라 기대된다.


끝없이 자애로운 사랑을 베풀어 준

기쿠 할머니의 인생,

그 아래로 세대를 거듭하며

조금씩 영혼을 물려받은 류와 릴리.


이들의 이야기는

혼자 세상에 뚝 떨어진 것 같지만

이 세상은 혼자 태어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연결된 존재라는 상냥한 메시지는

인생의 희로애락은 물론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다.


릴리와 류가 그려냈듯,

우리 집의 '패밀리 트리'를 그려보며

내 뿌리와 시작을,

그리고 내가 이어 만들게 될 미래를

꿈꾸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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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 1인분의 육아와 살림 노동 사이 여전히 나인 것들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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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따금 방송이나 유튜브 채널,

혹은 SNS에 올라오는 육아 영상 속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며

모든 일상과 생활의 중심을

아이에게 두고 살아가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 역시 부모의 희생 아래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보듬어준 노력의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거늘,

왜 엄마라는 존재는

늘 자식에게 희생해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은

언니 역시 마찬가지이다.

너무 육아에 치여서 현실이 버거우니

조금은 잿빛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아

기분전환하러 어디 같이 갈래,

하는 말을 꺼내 보아도

"애들은 어떻게 하고, 신경 쓰여서 안돼"

하며 한 번도 속시원히 그러자 하질 않는다.


이따금 아이들 일로 부탁을 하거나

혹은 양해를 구해야 할 때면

언니는 엄마나 우리를 비롯한 친정가족,

혹은 아이들을 지도해 주는 선생님이나

때로 아이들의 친구 가정에도

연신 미안하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낮은 자세로 굽실인다.


엄마가 되는 시간이란 뭘까,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것이

여성에게 가져오는 변화에는

과연 긍정적인 것이 있기는 할까?

더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별로 자신이 없네,

출산은 더더욱 엄두가 안 나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고독의 시간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더듬더듬 찾아가

진정한 자립을 이뤄낸

김수민 아나운서의 책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를 보며

여전히 '나'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을

이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을

조금은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만 21세에 SBS 역대 최연소 아나운서,

한예종 조형예술학과 졸업이라는

대단한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빛나지만

커리어에서 어떤 의미 있는 결과를

이뤄내기도 전에 그녀는 결혼을 택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면

'검사♥ 김수민 아나운서'로

결혼을 통해 얻게 된 타이틀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는 20대의 나이에

두 아이를 출산했다는 내용이 뒤따른다.


꽃 같은 나이에,

아직 무언가 많이 하고 싶을 그 시기에

덜컥 결혼을 결심하고 출산을 한

그녀의 삶이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이제 좋은데 시집갔으니까 된 건가'

혹은 '이제 방송인이나 인플루언서로

편하게 살려는 건가'하면서

커리어에서 이만큼 멀어져

어쩐지 어딘가에 안주하고 기대는 듯한

그녀의 선택이 마냥 곱게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가 미국에 있는 로스쿨에 합격했으며

변호사를 준비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제 '결혼과 육아'로만 채워질 거라고,

더 이상 그녀의 커리어에 발전은 없을 거라

단정 지었던 그 시간들 속에서

그녀는 차근차근 자신만의 속도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더듬더듬 손을 뻗어 찾았고

그걸 이뤄내기 위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정적인 행복에서 나와 한걸음 내디뎠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도

나를 대충 사랑하면서 지내고 싶지 않은,

어쩌면 그만큼 자신을 아끼고

나를 우선시하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이

결과로 나타나서야 비로소

그녀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어떤 과정으로, 어떤 마음으로

'나를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또 유지하게 되었는지,

이 책 안에 나를 내심 불편하게 했던

결혼 · 출산 · 육아를 외면하게 한

원인과 해결책이 담겨있을 것 같아

조금은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책의 서두에서는 여느 엄마가 그렇듯,

아이를 낳고 키우며 현실적으로 부딪힌

한계와 어려움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출산이라는 숭고함도 물론 있지만

때로는 초라하고 서글프게 하는

육아의 민낯은 비단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언니가, 모든 기혼여성이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을 일이었다.


아무리 해도 인정받을 수 없고,

대신할 수도 없는 그 현실 속에서

커리어나 존엄성, 정체성 같은 건

균형을 이룰 수 없는 평행의 개념처럼

마음을 답답하게만 했다.


하지만 육아전쟁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남편으로 인해

가부장적인 한계 속에서도

사랑과 선한 마음을 깊이 느끼며

가족이라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고,


아이가 새로운 표준시가 되었고

모든 것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에 너무 과몰입하지 않고,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라는 감각을,

후회할 수 없는 삶을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러 차례 로스쿨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육아와 병행하며 시험을 준비하고,

'엄마'로서의 타이틀뿐 만 아니라

'나는 언제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으며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자신을 마주한 끝에

쟁취한 꿈같은 결말은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능성'조차

꿈꾸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할 수 있다'는 좋은 동기부여로,


그로 인해 나를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은 달라진 사회를 만드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모성애, 엄마의 희생.

그것이 숭고하고 고맙다 생각하면서도

'그러고 싶지 않다' 혹은

그런 모습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사회에

소심한 반항처럼 불편하다는 생각만 했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는데

어쩌면 나 역시 결혼과 출산, 육아 앞에서

'엄마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결론 내리고

'아무것도 더 할 수 없다'

단정 지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혹은 통과한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 너머의 무수한 나를

그냥 지나쳐버리지 말자고,

포기하지 말고 타협하지 않고 쟁취하자며

그리고 그 삶을 사랑하는 용기를 내자는

똑 부러진 말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이

후회 없는 삶으로 이끌어주는

따스한 손길, 어루만짐이 될 것 같다.


자식들을 다 키운 뒤에도

가끔은 여전히 망설이는 엄마에게도,

'엄마'라는 타이틀만을 남기고

많은 것들을 스스로 지워나간

또 포기하고 있는 언니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고 싶은 것은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삶으로 만드는 것,

이 책을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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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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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어린 시절,

아빠가 언젠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미국에서는 18살만 되면 독립한데.

그때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집도 구하고

자기 인생 앞가림을 혼자 하는 거야."


우리에게 18살이 되면

독립해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안정적인 삶이

괜히 몇 년 남은 것 같지 않아

두려운 마음에 울컥 동요했던 기억이 난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면

결혼을 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는 게

아무리 사회가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보편적인 인생의 모습으로 비친다.


직장 생활을 4-5년 즈음하면

만나던 연인과 자연스레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며

평범한 또 하나의 가정을 만들어내며

부모와 같은 삶을 이어가는 게

당연한 이치이자 '약속된 룰' 같았다.


하지만, 막상 내 인생은 그렇게

'보편적'인 모양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20대를 지나치게 되었고

그러고 나니 맞이한 30대에서는

그동안 '정신없이 직장만 다니느라'

쫓지 못했던 자유랄까, 기분을 만끽하느라

그리고 나 하나 앞가림하기 바쁜 와중에

누구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오롯이 몫을 하는 한 사람으로 키워낸다는 건

너무도 벅찬 과업처럼 느껴졌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쭉 이어지던 부모님의 '결혼 잔소리'에도

내 인생인데 왜 본인들 입장에서 생각하며

결혼을 강요할까 싶어 서운했고,

아직은 '혼자'가 좋은 내 마음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때때로 부딪쳤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지금,

여전히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10대 후반부터 살기 시작한 지금 집에서,

그때 쓰던 방에서 여전히 지내며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아이처럼 지낸다.


요즘은 독립하지 않는 청년들을 두고

'캥거루족'이라 부르면서

부모에게 기대어 어쩌면 기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금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마냥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덧 성숙한 어른이 된 나와

그리고 이제는 조금 나이가 든 부모가

'육아'를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동행하는 지금의 삶도

나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나만 이렇게 부모님의 만들어 놓은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사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던 찰나


웹툰 작가이자 수필가인 구희 작가의 신작,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만나볼 수 있었다.


책은 구희 작가와 동생, 엄마와 아빠

4인 가족의 '구씨 집안 이야기'를 다룬다.


만화 형식으로 그려낸 이 책에는

장성한 다 큰 딸들을 챙기느라

진정한 '독립'이나 '자유'를 미뤄둔

엄마 아빠의 안쓰러움을 느낄 수도,

그 와중에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나

다정한 가족의 풍경 속에서

꼭 '모두에게 일반적인 형태의 가정'이 아니어도

제법 따습고 평온한 이 가족의 모습에서

'우리 집과 비슷하다'는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가끔 부모님과 다툼이 있어 투닥거리거나,

엄마와 아빠의 스타일, 그들의 편의대로

이렇게 저렇게 꾸려진 집 안에서

'나는 이런 집에서 이렇게 살고 싶은데…'하는

상상 속에 빠졌던 지난날이 오버랩 되며

그러면서도 '독립은 만만치 않아'하고

생각으로만 멈추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온실 속의 화초처럼

부모님이 만들어둔 안전한 테두리 안에

안주하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은 쉽게 '독립'을 꿈꿀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부모님 세대에도 '내 집 마련'이

평생의 숙원사업 같은 거였다지만,

요즘은 대출 없이는 내 집 마련은커녕

전세 얻기도 하늘에 별 따기요,

생활비나 물가를 생각하면 내가 번 돈을

전부 집에 쏟아붓는다고 해도 녹록지 않으니

이렇게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집을 구하고 생활을 하는

비용을 만들어낼 엄두는 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만끽하고 싶은 것들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면서

자꾸만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한다.

평생 일해도 내 집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데,

과연 연애와 결혼, 출산은 가능한 걸까

그런 고민이 오히려 현실적인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정한 부모님,

끈끈한 가족끼리의 결속이나

서로를 보듬어 챙기는 우리의 매일 속에서

누구에게나 '독립'은 필요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지금 이대로도 좋아, 하면서도

때로 힘들지만 독립한 개체로서

홀로서기든 결혼해 누군가와 함께하며

인생의 발걸음을 더해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만 너무 멈춰있는 걸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 걱정의 마음까지도

나만의 고민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어 좋았고,

그런 안정적이고 행복한(때로 투닥여도)

삶 속에서 차근차근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세상, 진짜 '독립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참 안락하고 안온하다.

하지만 때때로 답답한 벽이고

나를 옥죄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그 양가의 복잡한 다면의 감정 속에서

이만큼씩 성장하고 서로를 헤아리는

구씨 가족의 삶을 바라보며

'나라는 존재'가 꿈꾸는 독립은 무엇인지


내가 지금 만끽하고 있는 이 따스함,

가족과의 결속이 주는 감사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마냥 독립을 부추기는 것도,

현실이 퍽퍽하니 언제까지고 부모님과 함께

마냥 지금처럼 살겠다는 것도 아닌

그저 지금에 감사하고 가족과의 사랑을 만끽하면서도

스스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그 다짐만으로도 이미 독립된 개체로서

성장을 향해 다가간다는 메시지,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충만한 사랑과

따스한 보살핌 아래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간다면

가족과 나 사이 진정한 '독립'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다는 잔잔한 깨우침은

'나는 멈춰있는 사람' 혹은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작은 마음에

조금은 용기를 가지게 해 주었다.


독립을 꿈꾸는 사람에게도,

언제 까지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수많은 캥거루족에게도

앞으로의 내 삶을 위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독립적인 삶'의 모습을 깨우치기 위해

한 번쯤 펼쳐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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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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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외계 생명체의 지구 침공이나

우주로 떨어지게 된 지구인,

타임리프를 이용해 과거로 이동하는 상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기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따금 외계인, UFO를 담은 사진이나

과거의 사진 속에서

현대의 휴대전화나 카메라를 든 인물이

등장한 것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또 믿고 있는 것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다.


그런 호기심을 충만하게 자극하며

탄탄한 구성력과 근거를 더해

현직 우주과학 연구원이 써내려간

소설 《진공 붕괴》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

글만으로도 그 이야기와 세계관 속에

푹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각각의 이야기는 인공지능과 같이

한창 요즘 이슈가 되는 소재는 물론,

지구 멸망과 유토피아

그리고 외계 생명체와 우주선 등

SF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서

누구나 접하고 호기심을 가질만한

다양한 소재들을 이야기로 꾸려내었다.


너무도 존재할법한 표현,

어디하나 허술하지 않은 서사는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를 관찰하고 담아낸 듯 해서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는데


단순히 SF 장르 특유의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반영한

스토리 그 이상으로,

삶을 관통하고 읽는이의 가치관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각 등장인물의 사연에

내 선택을 덧씌워 생각해 보게 하였다.


여섯개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누구든 고민되고, 결정하기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

단순히 생존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랑, 삶, 애증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꿰뚫는 질문들은

마음 속 나의 욕망, 가치관과 철학을

오롯이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각 등장인물들의 선택에 공감하기도,

때로는 반대하며

'나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하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탐독하게 했고

그렇기에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우주에 대한 이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로맨틱하게만 그려지던

로맨스 영화 속의 타임리프가 아닌

잔잔한 듯 보이는 그 안에서의

비뚤어진 이기심과

개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처참한 결말은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정하거나 따스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냉철하고 다소 삭막해 보이는,

끝이지만 끝나지 않게 흐릿해지는

이 이야기들의 결말은

되려 두렵고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지금의 현실이 주는

아늑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었고


과학적이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통해

내 마음속의 욕망이나 가치관,

개인의 철학까지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감성적'이지 않나 싶다.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겪는 사건들은 먼지 같다고 했다.

하찮은 인간들이지만

그렇게 힘없고 약한 존재인 인간들이

우주와 외계 생명체와 타임리프와

인공지능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때로 누구보다 강인하고 섬세하며

아름다운 '인간적임'을 드러내는 순간이

되려 더 멋지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있게

집중력을 꽉 움켜쥐는 소설들 덕분에

어렵게만 느껴지던 SF 소설,

우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충만하게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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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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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3년 전 갑작스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치매를 앓은 뒤로 요양센터에 몇 년을 계셨는데,

센터에서 식사를 잘 못하시는다는

얘기를 몇 번쯤 듣다가 병원에 모시고 간 길이

그대로 마지막 작별이 되어버렸다.


예상치 못했던 이별에 눈물을 쏟고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엄마 아빠는 분주하게 장례를 준비했다.


원래 이렇게 순식간에 모든 걸 결정하고

움직이는 게 맞나 싶을 만큼,

혹은 미리 준비했나 싶을 만큼

어른들의 움직임은 신속 그 자체였다.


따로 장례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예상했던 죽음은 아니었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승화원 겸 장례식장에

할머니를 모실 수 있어 그나마 수월했다.


그저 슬퍼하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던 장례는

막상 임해보니 결혼이나 돌잔치 못지않게

선택할 것도, 준비해야 할 것도 참 많았다.


대략적으로 예상되는 손님의 수에 따라

빈소의 크기를 결정하고

발 빠르게 화장 예약을 잡아야만

'원하는 날'에 모실 수 있다.

화장을 하기 위해 '오픈런'을 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빈소가 정해지기 무섭게 그다음에는

빈소에 놓일 꽃 장식을 고르느라 바쁘다.

마냥 다 '제일 좋은 것'으로 하면 좋지만

꽃의 단 수, 종류에 따라 몇십만 원 씩

차이가 나는 '돈' 앞에

장례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러고는 관도 고르고, 수의도 고르고,

빈소에 올릴 사진도 준비해야 해서

상주와 가족들은 미처 슬퍼할 틈도 없다.


부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문자 서비스도 등록하고,

부의금 계좌로 등록할 번호가

잘못 기재되어 있지 않은 지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이 밖에도 손님용 음식 주문,

장례도우미를 몇 명이나 둘 것인지

손님이 쓸 일회용 그릇을 받기 위해

회사에 신청을 해야 하는 등

수많은 절차가 이어진다.


조의 화환이 배달 와서

'어디에 둘까요?'하면 자리를 잡아주고

장례식장에 찾은 손님을 맞고,

그들의 신발을 정리하고 음식을 나르며

그 와중에 틈틈이 밀려오는 감정에

정신없이 울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손님을 맞다가

까무룩 잠이 들면 금세 아침이고,

초배를 지내고 상복 치수를 재기 위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그제야 이 풍경,

그리고 이 행사가 익숙해졌다.


이토록 많은 절차가 이어지며

어른들이 장례식에서 왜 많이 울지 않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시간이었다.


방금 전까지 절을 하면서 울다가

다시 일어나 손님을 맞고 슬쩍 웃기도,

끼니를 챙기고 커피를 들이마시며

3일이라는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그 허전하고 슬펐던 마음은

장례를 끝내고 나서야 폭풍처럼 밀려왔다.


한 사람이 태어나 수십 년 살아오고,

그 마지막 맺음까지의 과정.

내가 '내 마지막'을 직접 준비할 수 없으니

남은 가족들의 몫이기에

'먼저 가신 분들이 무얼 원했을까'

혹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쫓느라 허둥지둥한다.


그나마 그 과정 과정을 도와주던

장례 노동자들로 인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형식과 절차를 따르는

유족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록 노동자 희정이 쓴 이 책 《죽은 다음》은

죽음과 애도를 둘러싼

노동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장례지도사, 의전 관리사, 시신복원사,

화장기사, 수의 제작자, 묘지 관리자,

상여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

각 분야의 장례업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지금 우리 시대의 죽음과 애도와 관련된

내용들을 담아내었다.


그저 3일의 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장례를 준비하고 치르며

함께하고 도와준 분들을 떠올리게 하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는

'남의 죽음을 업으로 삼아 돈 버는 사람들'

이라는 생각에 편견을 가졌던 시야를

반성하고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라는 관점보다

이를 준비하는데 그들이 쏟아내는

진심, 정성, 사명의식은 물론

때로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느라

슬퍼할 틈도 없어 실감이 나지 않았던

유족들의 마음까지도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할머니는 어떤 걸 원하셨을까'

그런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산업화 되어가는 현대 장례문화와

장례제도를 넘어서,

'고인이 소외되지 않을,

내가 미리 준비하는 나의 죽음'까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장례를 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겠지만

그저 '고인을 위한 마음'만으로는

이 의례를 해나갈 수 없다.


하다못해 '상주'를 누가 하느냐,

혹은 수의를 결정하고

어떤 장례법으로 할 것인가

(매장을 할지 화장을 할지)까지

암묵적인 룰, 세상의 문법이 정해져있어

때로 누군가는 내가 원하고

고인이 원하는 뜻에서 멀어져

'보편적인' 장례를 선택하게 된다.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라는 질문을 던질 새도 없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빨리 '결정'하고

움직이야 하는 현대의 장례문화에 대해

꼬집은 부분도 있어서


아직 먼 미래의 일이지만

'나의 죽음은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크게 와닿기도 했다.


더 나아가 장례 절차와 노동에서

이중으로 작동하는 성별 규범이나

낙인과 터부, 역사와 규범, 제도까지

폭넓게 우리의 '죽음'을 조명하면서

임종 직후부터 묘에 모시는 것까지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몰랐던

죽음 이야기를 다각도로 접할 수 있었다.


'죽으면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바람은

암묵적으로 입에 올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때로 부모님이 나는 나중에 수의 대신

이런 옷을 입고 싶어 하면

'왜 벌써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하며

애꿎은 화를 내기도 하지만

막상 그런 '죽음의 의례'에 결정해야 할

수많은 선택지를 앞두고 나면

'진작 어떻게 할지 물을 걸 그랬나'

싶을 것이다.


마냥 쉬쉬하거나 먼 미래로 미뤄둔 일,

혹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를 이 과정을

책을 통해 미리 접함으로써

좀 더 '고인의 선택을 반영한 죽음'에

가까워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벌써 몇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 이렇게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의 마음이 종종 떠오른다.


죽음이 고인만의 마침표가 아니라

남은 가족들의 삶에도,

또 다가올 누군가의 죽음에도

영향을 주는 연결고리처럼 이어져 있다.


이렇게 죽음을 둘러싼 노동자,

우리의 장례문화와 절차, 산업을 재조명한

이 책을 통해서 '고인이 꿈꾸는 장례'를 넘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죽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과제가 남았다.


살았을 때도 일반적인 규범,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분위기에

휩쓸리느라 내 뜻대로 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죽음 다음에도 이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누군가의 죽음을,

또 그를 애도하는 사람들을 재조명한

이 글을 통해서

우아하고 불온하게, 나답게 죽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곧 떠나갈 사람들을 위해,

아직 남아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 번쯤 모두가 '알아야만 할'

의미 있는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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