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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어린 시절,
아빠가 언젠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미국에서는 18살만 되면 독립한데.
그때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집도 구하고
자기 인생 앞가림을 혼자 하는 거야."
우리에게 18살이 되면
독립해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안정적인 삶이
괜히 몇 년 남은 것 같지 않아
두려운 마음에 울컥 동요했던 기억이 난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면
결혼을 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는 게
아무리 사회가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보편적인 인생의 모습으로 비친다.
직장 생활을 4-5년 즈음하면
만나던 연인과 자연스레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며
평범한 또 하나의 가정을 만들어내며
부모와 같은 삶을 이어가는 게
당연한 이치이자 '약속된 룰' 같았다.
하지만, 막상 내 인생은 그렇게
'보편적'인 모양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20대를 지나치게 되었고
그러고 나니 맞이한 30대에서는
그동안 '정신없이 직장만 다니느라'
쫓지 못했던 자유랄까, 기분을 만끽하느라
그리고 나 하나 앞가림하기 바쁜 와중에
누구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오롯이 몫을 하는 한 사람으로 키워낸다는 건
너무도 벅찬 과업처럼 느껴졌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쭉 이어지던 부모님의 '결혼 잔소리'에도
내 인생인데 왜 본인들 입장에서 생각하며
결혼을 강요할까 싶어 서운했고,
아직은 '혼자'가 좋은 내 마음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때때로 부딪쳤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지금,
여전히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10대 후반부터 살기 시작한 지금 집에서,
그때 쓰던 방에서 여전히 지내며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아이처럼 지낸다.
요즘은 독립하지 않는 청년들을 두고
'캥거루족'이라 부르면서
부모에게 기대어 어쩌면 기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금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마냥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덧 성숙한 어른이 된 나와
그리고 이제는 조금 나이가 든 부모가
'육아'를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동행하는 지금의 삶도
나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나만 이렇게 부모님의 만들어 놓은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사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던 찰나
웹툰 작가이자 수필가인 구희 작가의 신작,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만나볼 수 있었다.
책은 구희 작가와 동생, 엄마와 아빠
4인 가족의 '구씨 집안 이야기'를 다룬다.
만화 형식으로 그려낸 이 책에는
장성한 다 큰 딸들을 챙기느라
진정한 '독립'이나 '자유'를 미뤄둔
엄마 아빠의 안쓰러움을 느낄 수도,
그 와중에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나
다정한 가족의 풍경 속에서
꼭 '모두에게 일반적인 형태의 가정'이 아니어도
제법 따습고 평온한 이 가족의 모습에서
'우리 집과 비슷하다'는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가끔 부모님과 다툼이 있어 투닥거리거나,
엄마와 아빠의 스타일, 그들의 편의대로
이렇게 저렇게 꾸려진 집 안에서
'나는 이런 집에서 이렇게 살고 싶은데…'하는
상상 속에 빠졌던 지난날이 오버랩 되며
그러면서도 '독립은 만만치 않아'하고
생각으로만 멈추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온실 속의 화초처럼
부모님이 만들어둔 안전한 테두리 안에
안주하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은 쉽게 '독립'을 꿈꿀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부모님 세대에도 '내 집 마련'이
평생의 숙원사업 같은 거였다지만,
요즘은 대출 없이는 내 집 마련은커녕
전세 얻기도 하늘에 별 따기요,
생활비나 물가를 생각하면 내가 번 돈을
전부 집에 쏟아붓는다고 해도 녹록지 않으니
이렇게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집을 구하고 생활을 하는
비용을 만들어낼 엄두는 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만끽하고 싶은 것들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면서
자꾸만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한다.
평생 일해도 내 집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데,
과연 연애와 결혼, 출산은 가능한 걸까
그런 고민이 오히려 현실적인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정한 부모님,
끈끈한 가족끼리의 결속이나
서로를 보듬어 챙기는 우리의 매일 속에서
누구에게나 '독립'은 필요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지금 이대로도 좋아, 하면서도
때로 힘들지만 독립한 개체로서
홀로서기든 결혼해 누군가와 함께하며
인생의 발걸음을 더해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만 너무 멈춰있는 걸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 걱정의 마음까지도
나만의 고민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어 좋았고,
그런 안정적이고 행복한(때로 투닥여도)
삶 속에서 차근차근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세상, 진짜 '독립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참 안락하고 안온하다.
하지만 때때로 답답한 벽이고
나를 옥죄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그 양가의 복잡한 다면의 감정 속에서
이만큼씩 성장하고 서로를 헤아리는
구씨 가족의 삶을 바라보며
'나라는 존재'가 꿈꾸는 독립은 무엇인지
내가 지금 만끽하고 있는 이 따스함,
가족과의 결속이 주는 감사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마냥 독립을 부추기는 것도,
현실이 퍽퍽하니 언제까지고 부모님과 함께
마냥 지금처럼 살겠다는 것도 아닌
그저 지금에 감사하고 가족과의 사랑을 만끽하면서도
스스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그 다짐만으로도 이미 독립된 개체로서
성장을 향해 다가간다는 메시지,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충만한 사랑과
따스한 보살핌 아래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간다면
가족과 나 사이 진정한 '독립'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다는 잔잔한 깨우침은
'나는 멈춰있는 사람' 혹은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작은 마음에
조금은 용기를 가지게 해 주었다.
독립을 꿈꾸는 사람에게도,
언제 까지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수많은 캥거루족에게도
앞으로의 내 삶을 위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독립적인 삶'의 모습을 깨우치기 위해
한 번쯤 펼쳐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