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3년 전 갑작스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치매를 앓은 뒤로 요양센터에 몇 년을 계셨는데,

센터에서 식사를 잘 못하시는다는

얘기를 몇 번쯤 듣다가 병원에 모시고 간 길이

그대로 마지막 작별이 되어버렸다.


예상치 못했던 이별에 눈물을 쏟고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엄마 아빠는 분주하게 장례를 준비했다.


원래 이렇게 순식간에 모든 걸 결정하고

움직이는 게 맞나 싶을 만큼,

혹은 미리 준비했나 싶을 만큼

어른들의 움직임은 신속 그 자체였다.


따로 장례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예상했던 죽음은 아니었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승화원 겸 장례식장에

할머니를 모실 수 있어 그나마 수월했다.


그저 슬퍼하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던 장례는

막상 임해보니 결혼이나 돌잔치 못지않게

선택할 것도, 준비해야 할 것도 참 많았다.


대략적으로 예상되는 손님의 수에 따라

빈소의 크기를 결정하고

발 빠르게 화장 예약을 잡아야만

'원하는 날'에 모실 수 있다.

화장을 하기 위해 '오픈런'을 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빈소가 정해지기 무섭게 그다음에는

빈소에 놓일 꽃 장식을 고르느라 바쁘다.

마냥 다 '제일 좋은 것'으로 하면 좋지만

꽃의 단 수, 종류에 따라 몇십만 원 씩

차이가 나는 '돈' 앞에

장례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러고는 관도 고르고, 수의도 고르고,

빈소에 올릴 사진도 준비해야 해서

상주와 가족들은 미처 슬퍼할 틈도 없다.


부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문자 서비스도 등록하고,

부의금 계좌로 등록할 번호가

잘못 기재되어 있지 않은 지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이 밖에도 손님용 음식 주문,

장례도우미를 몇 명이나 둘 것인지

손님이 쓸 일회용 그릇을 받기 위해

회사에 신청을 해야 하는 등

수많은 절차가 이어진다.


조의 화환이 배달 와서

'어디에 둘까요?'하면 자리를 잡아주고

장례식장에 찾은 손님을 맞고,

그들의 신발을 정리하고 음식을 나르며

그 와중에 틈틈이 밀려오는 감정에

정신없이 울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손님을 맞다가

까무룩 잠이 들면 금세 아침이고,

초배를 지내고 상복 치수를 재기 위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그제야 이 풍경,

그리고 이 행사가 익숙해졌다.


이토록 많은 절차가 이어지며

어른들이 장례식에서 왜 많이 울지 않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시간이었다.


방금 전까지 절을 하면서 울다가

다시 일어나 손님을 맞고 슬쩍 웃기도,

끼니를 챙기고 커피를 들이마시며

3일이라는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그 허전하고 슬펐던 마음은

장례를 끝내고 나서야 폭풍처럼 밀려왔다.


한 사람이 태어나 수십 년 살아오고,

그 마지막 맺음까지의 과정.

내가 '내 마지막'을 직접 준비할 수 없으니

남은 가족들의 몫이기에

'먼저 가신 분들이 무얼 원했을까'

혹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쫓느라 허둥지둥한다.


그나마 그 과정 과정을 도와주던

장례 노동자들로 인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형식과 절차를 따르는

유족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록 노동자 희정이 쓴 이 책 《죽은 다음》은

죽음과 애도를 둘러싼

노동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장례지도사, 의전 관리사, 시신복원사,

화장기사, 수의 제작자, 묘지 관리자,

상여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

각 분야의 장례업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지금 우리 시대의 죽음과 애도와 관련된

내용들을 담아내었다.


그저 3일의 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장례를 준비하고 치르며

함께하고 도와준 분들을 떠올리게 하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는

'남의 죽음을 업으로 삼아 돈 버는 사람들'

이라는 생각에 편견을 가졌던 시야를

반성하고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라는 관점보다

이를 준비하는데 그들이 쏟아내는

진심, 정성, 사명의식은 물론

때로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느라

슬퍼할 틈도 없어 실감이 나지 않았던

유족들의 마음까지도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할머니는 어떤 걸 원하셨을까'

그런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산업화 되어가는 현대 장례문화와

장례제도를 넘어서,

'고인이 소외되지 않을,

내가 미리 준비하는 나의 죽음'까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장례를 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겠지만

그저 '고인을 위한 마음'만으로는

이 의례를 해나갈 수 없다.


하다못해 '상주'를 누가 하느냐,

혹은 수의를 결정하고

어떤 장례법으로 할 것인가

(매장을 할지 화장을 할지)까지

암묵적인 룰, 세상의 문법이 정해져있어

때로 누군가는 내가 원하고

고인이 원하는 뜻에서 멀어져

'보편적인' 장례를 선택하게 된다.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라는 질문을 던질 새도 없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빨리 '결정'하고

움직이야 하는 현대의 장례문화에 대해

꼬집은 부분도 있어서


아직 먼 미래의 일이지만

'나의 죽음은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크게 와닿기도 했다.


더 나아가 장례 절차와 노동에서

이중으로 작동하는 성별 규범이나

낙인과 터부, 역사와 규범, 제도까지

폭넓게 우리의 '죽음'을 조명하면서

임종 직후부터 묘에 모시는 것까지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몰랐던

죽음 이야기를 다각도로 접할 수 있었다.


'죽으면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바람은

암묵적으로 입에 올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때로 부모님이 나는 나중에 수의 대신

이런 옷을 입고 싶어 하면

'왜 벌써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하며

애꿎은 화를 내기도 하지만

막상 그런 '죽음의 의례'에 결정해야 할

수많은 선택지를 앞두고 나면

'진작 어떻게 할지 물을 걸 그랬나'

싶을 것이다.


마냥 쉬쉬하거나 먼 미래로 미뤄둔 일,

혹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를 이 과정을

책을 통해 미리 접함으로써

좀 더 '고인의 선택을 반영한 죽음'에

가까워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벌써 몇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 이렇게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의 마음이 종종 떠오른다.


죽음이 고인만의 마침표가 아니라

남은 가족들의 삶에도,

또 다가올 누군가의 죽음에도

영향을 주는 연결고리처럼 이어져 있다.


이렇게 죽음을 둘러싼 노동자,

우리의 장례문화와 절차, 산업을 재조명한

이 책을 통해서 '고인이 꿈꾸는 장례'를 넘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죽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과제가 남았다.


살았을 때도 일반적인 규범,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분위기에

휩쓸리느라 내 뜻대로 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죽음 다음에도 이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누군가의 죽음을,

또 그를 애도하는 사람들을 재조명한

이 글을 통해서

우아하고 불온하게, 나답게 죽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곧 떠나갈 사람들을 위해,

아직 남아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 번쯤 모두가 '알아야만 할'

의미 있는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