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 1인분의 육아와 살림 노동 사이 여전히 나인 것들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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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따금 방송이나 유튜브 채널,

혹은 SNS에 올라오는 육아 영상 속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며

모든 일상과 생활의 중심을

아이에게 두고 살아가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 역시 부모의 희생 아래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보듬어준 노력의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거늘,

왜 엄마라는 존재는

늘 자식에게 희생해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은

언니 역시 마찬가지이다.

너무 육아에 치여서 현실이 버거우니

조금은 잿빛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아

기분전환하러 어디 같이 갈래,

하는 말을 꺼내 보아도

"애들은 어떻게 하고, 신경 쓰여서 안돼"

하며 한 번도 속시원히 그러자 하질 않는다.


이따금 아이들 일로 부탁을 하거나

혹은 양해를 구해야 할 때면

언니는 엄마나 우리를 비롯한 친정가족,

혹은 아이들을 지도해 주는 선생님이나

때로 아이들의 친구 가정에도

연신 미안하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낮은 자세로 굽실인다.


엄마가 되는 시간이란 뭘까,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것이

여성에게 가져오는 변화에는

과연 긍정적인 것이 있기는 할까?

더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별로 자신이 없네,

출산은 더더욱 엄두가 안 나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고독의 시간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더듬더듬 찾아가

진정한 자립을 이뤄낸

김수민 아나운서의 책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를 보며

여전히 '나'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을

이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을

조금은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만 21세에 SBS 역대 최연소 아나운서,

한예종 조형예술학과 졸업이라는

대단한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빛나지만

커리어에서 어떤 의미 있는 결과를

이뤄내기도 전에 그녀는 결혼을 택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면

'검사♥ 김수민 아나운서'로

결혼을 통해 얻게 된 타이틀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는 20대의 나이에

두 아이를 출산했다는 내용이 뒤따른다.


꽃 같은 나이에,

아직 무언가 많이 하고 싶을 그 시기에

덜컥 결혼을 결심하고 출산을 한

그녀의 삶이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이제 좋은데 시집갔으니까 된 건가'

혹은 '이제 방송인이나 인플루언서로

편하게 살려는 건가'하면서

커리어에서 이만큼 멀어져

어쩐지 어딘가에 안주하고 기대는 듯한

그녀의 선택이 마냥 곱게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가 미국에 있는 로스쿨에 합격했으며

변호사를 준비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제 '결혼과 육아'로만 채워질 거라고,

더 이상 그녀의 커리어에 발전은 없을 거라

단정 지었던 그 시간들 속에서

그녀는 차근차근 자신만의 속도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더듬더듬 손을 뻗어 찾았고

그걸 이뤄내기 위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정적인 행복에서 나와 한걸음 내디뎠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도

나를 대충 사랑하면서 지내고 싶지 않은,

어쩌면 그만큼 자신을 아끼고

나를 우선시하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이

결과로 나타나서야 비로소

그녀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어떤 과정으로, 어떤 마음으로

'나를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또 유지하게 되었는지,

이 책 안에 나를 내심 불편하게 했던

결혼 · 출산 · 육아를 외면하게 한

원인과 해결책이 담겨있을 것 같아

조금은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책의 서두에서는 여느 엄마가 그렇듯,

아이를 낳고 키우며 현실적으로 부딪힌

한계와 어려움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출산이라는 숭고함도 물론 있지만

때로는 초라하고 서글프게 하는

육아의 민낯은 비단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언니가, 모든 기혼여성이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을 일이었다.


아무리 해도 인정받을 수 없고,

대신할 수도 없는 그 현실 속에서

커리어나 존엄성, 정체성 같은 건

균형을 이룰 수 없는 평행의 개념처럼

마음을 답답하게만 했다.


하지만 육아전쟁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남편으로 인해

가부장적인 한계 속에서도

사랑과 선한 마음을 깊이 느끼며

가족이라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고,


아이가 새로운 표준시가 되었고

모든 것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에 너무 과몰입하지 않고,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라는 감각을,

후회할 수 없는 삶을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러 차례 로스쿨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육아와 병행하며 시험을 준비하고,

'엄마'로서의 타이틀뿐 만 아니라

'나는 언제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으며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자신을 마주한 끝에

쟁취한 꿈같은 결말은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능성'조차

꿈꾸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할 수 있다'는 좋은 동기부여로,


그로 인해 나를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은 달라진 사회를 만드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모성애, 엄마의 희생.

그것이 숭고하고 고맙다 생각하면서도

'그러고 싶지 않다' 혹은

그런 모습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사회에

소심한 반항처럼 불편하다는 생각만 했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는데

어쩌면 나 역시 결혼과 출산, 육아 앞에서

'엄마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결론 내리고

'아무것도 더 할 수 없다'

단정 지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혹은 통과한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 너머의 무수한 나를

그냥 지나쳐버리지 말자고,

포기하지 말고 타협하지 않고 쟁취하자며

그리고 그 삶을 사랑하는 용기를 내자는

똑 부러진 말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이

후회 없는 삶으로 이끌어주는

따스한 손길, 어루만짐이 될 것 같다.


자식들을 다 키운 뒤에도

가끔은 여전히 망설이는 엄마에게도,

'엄마'라는 타이틀만을 남기고

많은 것들을 스스로 지워나간

또 포기하고 있는 언니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고 싶은 것은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삶으로 만드는 것,

이 책을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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