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실은 집밥을 좋아하지만 지쳐버린 이들에게
고켄테쓰 지음, 황국영 옮김 / 윌북 / 2023년 3월
평점 :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바깥에서 끼니를 먹는 날이 많아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집밥이 좋았는데,
퇴사 후에는 집에서 만든 반찬과 밥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집밥의 소중함이 희미해졌다.
매 끼니 엇비슷한 반찬,
아무리 제철 음식으로 신경 써서 만든다고 해도
두세 끼니, 며칠째 같은 반찬을 놓고 먹다 보면
질린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정성이 담긴 음식,
평생을 먹어오며 추억이 쌓이고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음식이건만
이따금 반찬투정하는 어린아이처럼
'오늘은 다른 거 뭐 먹을 것 없나'하면서
배달 앱을 기웃거리기도 하는 걸 보니
이 아이러니한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터.
대부분의 집밥은 여전히 엄마의 손길 아래 만들어지지만
이제 60대 중반에 들어선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따금 직접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만들곤 한다.
처음엔 '매일 먹는 것과 달라 맛있네'하고
신선한 맛에 즐거워지는 것도 한두 번이지,
금세 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서 요리하는 노동에 지쳐
'누가 해준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새삼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집밥과 도시락을 수십 년간 싸온 엄마의 매일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싶다.
이 책 《사실은 집밥을 좋아하지만 지쳐버린 이들에게》는
가족들을 위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이 세상의 모든 '집밥러'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얹어진 부담감과 고됨,
집밥의 굴레 속에 괴로워진 마음을
조금은 희석시키고 달래주는 요리 에세이이다.
요리가 힘들어진 원인과 해결 방법은 물론
집밥을 차리는 사람의 지친 마음을 헤아릴 뿐 아니라
한 번도 집밥을 만들어본 경험 없이
누군가 만든 집밥을 '먹기만'하는 사람에게도
꼭 함께 읽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어릴 때는 불이나 칼, 조리도구가 위험하니까
요리는 당연히 내 몫이 아니었다.
주로 살림을 담당하는 엄마의 손길 아래서
온 식구가 먹을 음식이 척척 만들어졌고,
마냥 '엄마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어'하는 시기를 넘어
어느 정도 머리알이 큰 뒤로는
'이건 좀 짜네, 이건 좀 질렸어' 하면서
만들지도 않는 음식에 대해 지적질을 하고
투정을 부린 날도 적지 않았다.
여전히 적극적으로 요리에 가담하지는 않지만
어른이 되고 직접 요리를 하고 끼니를 챙겨보며
그 요리의 수고스러움이 얼마나 큰지,
오늘은 뭘 먹을까 메뉴 고민부터 장 보는 것까지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그 순간만의 감정일 뿐,
여전히 집밥은 내 일이 아니라며 외면했던 건 아닐까
그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밖에서 먹는 밥, 조리된 음식을 사 오는 건
건강하지 않고 낭비라는 인식,
직접 만드는 요리만이 건강을 보장하고
애정과 정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요리를 직업으로 삼은 전문가라 하더라도
매일 같이 이어지는 '집밥'의 굴레에서
즐겁지 않고 때로 불행하고 힘들었다는 고백 아래
우리의 엄마들이 수십 년을 이어온 부엌 분투기가
말로 하지 않았을 뿐 똑같이 힘들었음을
요리가 주는 이상과 현실이 이렇게 달랐음을
부끄럽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고,
여전히 이런 고민 아래 있는 수많은 주부, 엄마들에게
집밥을 만들며 가지는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고
고민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며
부담감과 고민 아래 집밥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
마음까지 헤아리고 토닥여주는 책을 통해
앞으로 내가 집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게 되었다.
풍성한 식탁, 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가족들,
그 모습에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엄마의 모습이라는
숭고한 노력과 희생으로 포장되는 집밥이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이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부엌에 설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며,
부엌 앞에서 그날의 피곤함을 감각하는 모든 이들이
무리하지 않도록 제안하는 이 따스한 시선은
요리에 지친 당사자뿐 만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음식을 먹기만 하는 우리 모두가
꼭 알아야 할 그리고 깨달아야 할 마음이라 생각된다.
꾹 눌러 담은 밥 한 공기에 갓 만든 따끈한 반찬,
어떤 날에는 급한 마음에 대충 끓여 낸 라면 한 그릇도
허기를 달래기에는 똑같이 충분하고 부족함이 없다.
꼭 힘주어서 온 힘을 다해 만든 요리가 아니라
그럭저럭 적당히 힘을 뺀 음식,
우리의 식탁에 적용할 수 있는 메뉴를 담은 레시피는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반가운 해결책이 될 것이다.
매일 잘 해야 한다, 신경 써서 만들어야
'몫을 다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드는 집밥에 대해
부담을 내려놓고 생각을 환기시켜주어 고마운 독서였다.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 끼니에 고민이 많은 언니에게도,
매주 주말이면 일주일 치 반찬을 만드느라
조금은 예민해지는 엄마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