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하라다 히카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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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건강한 식단과 요리법으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이 된 사야카.


퇴근 후 편의점에서 술 한 캔을 사서

한잔하는 남편의 습관은

어느덧 거리의 정식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식사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야카는 '그 정도는 집에서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그게 문제라면서 이제는 소용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인다.


남편이 이혼을 하자고 하는 데에는

매일같이 찾는 거리의 정식집 자츠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 사야카는

용기를 내어 그곳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곳의 메뉴는 너무 진하고 달고 자극적일 뿐이다.

심지어 가게 주인도 무뚝뚝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가게는

그녀에게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한다.


남편은 이혼 통보를 한 뒤 집을 나가버리고,

수입이 줄어들어 월세를 감당하기 난감해진 사야카는

문제의 정식집 자츠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안내문을 보게 되고,

남편이 이혼하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무뚝뚝한 중년의 노처녀 조우와 함께

정식집을 운영하게 되는데……


음식에 대한 맛깔스러운 표현과 특유의 감성으로

일본 힐링 소설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하라다 히카의 작품은

등장인물이 성장하는 감정선을 읽는 재미,

책을 읽고 있음에도 식사를 하는 듯

입안에 감칠맛이 느껴지고 군침이 도는 표현으로

신작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며 찾게 된다.


이번에는 거리의 백반집을 주 배경으로

이곳을 찾는 다양한 손님들과의 관계,

자라온 환경도 살아가는 모습도 다른 두 여성이

함께 일하게 되며 만들어내는 뚝딱거리는 케미로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남편이 이혼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찾은

정식집 자츠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곳을 찾는 걸까' 하며

자신이 만든 것만 못한 맛에 물음표를 던지던 그녀가


직접 자츠의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주인인 조우가 이곳 '자츠'만의 신념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자신이 가진 편견을 지우고

찾는 손님들과의 소통, 조우와의 함께하는 노동을 통해

점차 마음을 여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남편이 이곳을 찾는 이유와

밥과 술을 함께 먹지 않는 등

예전의 자신이 가졌던 강박을 내려놓는 성장의 과정이

책에서 소개된 메뉴와 어우러지면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성장이 사야카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정식집 주인인 무뚝뚝한 미사에에게도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도 참 좋았다.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사야카는 사야카대로,

기존에 얻게 된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미사에도

치유받고 변화를 가지게 되는

서로의 장점을 살린 시너지가 의미 있게 와닿았다.


시간이 더해가며 각자의 마음에 담긴 진심을 오픈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야카와 미사에의 모습을 통해


언젠가 '시간이 조미료야'라고 했던 조우의 말처럼

함께하는 시간 아래 맛으로 뭉친 그들의 연대가

각자 짊어진 상처와 허기진 삶으로 위축된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로, 뜨거운 응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끝내 이혼을 막지도

선대가 이어온 형태로 가게를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길에 들어서게 된 두 사람이지만,

진하고 달콤한 맛에 길들여진 조우가

사야카가 만든 소스나 맛을 도입해 변화를 가지게 되고

사야카도 스스로 이혼을 결정하며

자신의 의견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처럼


쉴 새 없이 변해가는 세상,

인생에 서툰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이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조금은 견딜만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대 마스터에 이어 두 번째 조우가 된 미사에,

그리고 앞으로 세 번째 조우가 될 사야카의

시간을 이어 연결되는 성장의 연대가

끝났지만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인생이라는 요리를 맛있게 변화시켜 가는 그들의 성장,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기대는 곳이라는 메시지는

맛깔나는 음식의 향연이 이어지는

이 문장들 깊이 박혀있는 진짜 '맛'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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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시호도 문구점
우에다 겐지 지음, 최주연 옮김 / 크래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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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이지만

유독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일 텐데

찾는 손님들에게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영업하는 곳이라는 게 느껴지면

일부러 시간을 들이더라도 자주 찾게 된다.


긴자에 있는 시호도 문구점 역시 그런 곳이다.

버드나무가 늘어선 골목,

새빨간 우체통 앞 고풍스러운 외관의

3층 건물에 위치한 이곳은

1834년 문을 연 이래 줄곧 자리를 지켜 온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서 깊은 문구점이다.


오래된 활판 인쇄기가 잠든 지하공간,

이런 물건은 어떻게 찾았을까 싶을 만큼

감탄이 터지는 다채로운 상품이 가득한 1층을 지나면

종이 공예나 캘리그래피 등의 워크숍이 열리기도 하며

단골손님이 애용하는 2층 공간이 펼쳐진다.


분명 찾는 게 있어 들렀음에도

뭘 사야 할까 고민하고 머뭇거리던 순간

정중한 목소리가 나타난다.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가요? 찾아드릴게요." 하는

문구점 주인 다카라다 겐이다.


마치 실존하는 듯 다양한 문구용품을 묘사하는

이 소설 속의 문장은 문구 덕후나

필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글이 될 것 같다.


평상시에 문구점에 가면 다양한 필기구와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편지지 속에서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시호도 문구점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실제로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들게끔 만들어 주었는데


이런 공간에 대한 로망을 넘어서

문구점을 찾는 각 손님들의 사연을 따라

사장 겐이 찾는 물건을 건네고,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분히 편지를 쓸 수 있도록 공간을 빌려주며

적절한 조언이나 방향을 일러주는 섬세함이

'내가 받고 싶었던 친절'을 느끼게 해주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만년필과 잉크에 대한 설명,

편지지의 다양한 소재와 고르는 요령,

상황에 맞게 쓰는 방법을 일러주는

묘사도 재미있고 좋았지만


첫 월급으로 할머니께 드릴 선물에

동봉할 편지를 쓰고자 들른 사회 초년생,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3년 동안 고백하지 못한

여고생의 손때묻은 노트,

오랫동안 신세를 진 사장님에게

퇴사하겠다는 말을 꺼내야 하는 직원이 찾는 퇴사원,

세상을 떠난 전처의 장례식장에서 읽을

조문의 말을 쓰기 위해 들른 사업가까지


각각의 애틋한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따라

고민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뻔한 전개인 듯 보이지만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처한 고민에

전전긍긍하는 손님들을 향해

기꺼이 손 내밀어 주는 섬세한 도움의 손길은,

타인에게는 관심을 두려 하지도

어려움을 보고도 애써 손 뻗으려 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목소리가 될 것 같다.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처럼

아직 어리고 미숙한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경험이 많은 어른도, 성공한 사업가도

때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기에

결국엔 누구도 타인의 지지와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며,

그렇기에 누구나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책 속의 메시지를 되새긴다면

조금은 더 따스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아날로그 방식으로 손 편지를 쓰고,

직접 노트에 필기를 하는 것도

모든 것이 간편해지고 디지털화되는 요즘 시대엔

과거의 낡은 것이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편지지를 고르고

고심해 펜을 들고 반듯하게 글씨를 쓰던

지난날의 설레던 시간,

각양각색의 펜과 예쁜 문구를 살 때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은 물론

초등학생 시절 아빠에게 선물 받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필통을 떠올리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이다.


책을 통해 오랜만의 과거의 시간을 여행하며

떠올린 추억으로 행복함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나처럼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되짚으며 소중함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문구점에는 특별한 판타지가 담겨 있지 않다.

손님에게 적절한 조언을 건네고

때로는 혼자 생각할 여백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주인 겐의 배려 안에서

각각의 등장인물은 스스로 고민을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오히려 그런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진행이

편안하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해주었고

되려 많은 여운을 남겼다.


또 어떤 손님이 찾아올까,

그 사람에겐 어떤 고민이 있을까,

또 어떤 문구가 새로 등장할까 하는 기대감과

그들의 고민을 내려놓게 하는 문구점 특유의 포근함을

더 맛보고 싶다는 갈증이 남는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오래 아껴 쓴 문구, 그에 담긴 특별한 추억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는

긴자 시호도 문구점.

벌써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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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어둠
조승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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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파격적인 책 제목만큼이나 뜨거운 울림을 주었던

시각장애인 작가 조승리의 작품을 기억한다.


시각장애라는 암담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뜨겁고 치열하게 세상과 부딪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동정과 연민으로만 바라보던

장애인의 삶과 그들의 현실에 대해

그동안 갖고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을

녹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였다.


장애 당사자가 써 내려간 장애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굉장히 사실적이고 가감 없이 현실을 드러내어

필력이나 문학적인 가치를 떠나 좋았는데,

이번 작품 《나의 어린 어둠》에서는

작가로서 조승리의 필력을 느끼고 만끽할 수 있어

전작 못지않게 많은 감동을 받았다.


이번 책은 그녀의 이야기를 담아낸

에세이나 산문집이 아닌 '소설'이지만

분명 가상으로 만들어낸 창작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녀의 삶인 양 느껴진다.


실명을 앞둔 청소년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 작품의 화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실을 끌어안고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은

각기 그 모양은 달랐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조승리'들의 삶을 그대로 녹여내었기에

때로는 숨이 턱 막히는 막막함으로,

때로는 애틋함에 울컥 눈물이 차오름을 느끼며

단숨에 멈추지 않고 읽게 만들었다.


실명을 앞둔 중학생이 겪은 첫사랑,

갑자기 장애를 떠안게 된 자식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모와의 충돌,

특수학교에서의 기숙사 생활,

장애에 냉혹한 사회 앞에서의 좌절 등

일부러 극적으로 지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극적인 그들의 삶과 그 안에서의 성장은

픽션을 넘어 르포르타주에 가깝게 느껴져

더 감정을 이입하게 되었다.


시각을 잃어가는 각 작품의 화자들이

상실을 어떻게 예감하고 마주하며 성장하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재건축해나가는지 그 발걸음을 함께하며

독자 스스로가 각자의 삶에 얹어진 상실을 가늠하고

나는 어떻게 내 현실을 마주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시간을 갖게 했다.


첫 번째 이야기 〈네가 없는 시작〉은

실명 판정을 앞둔 중학생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한 학년 선배인 '너'와 사랑에 빠지지만

시각장애라는 현실 앞에

결국 이를 떠안을 용기가 없는 '너'의 회피로

관계가 단절되어 버리고 만다.


시각장애를 가진 자신을 망가진 존재로 인식하며

네가 더 망가지면 당당히 그 옆에 설 수 있을 거라는

'나'의 비틀린 감정과 절망은

이 시간을 직접 통과한 조승리가 아니었다면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놓칠까 봐 두려운 마음,

애틋한 사랑의 감정도 장애라는 현실 앞에

당연한 듯 단절되고 상실하게 되는 모습에서

그저 시력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삶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시각장애인들의 상처를 헤아릴 수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인 〈내 안의 검은 새〉는

장애를 가진 자식을 부정하는 아버지,

진로에 자립도 부정당하는 장애인을 보는 시선,

낯선 곳에서 혼자 설 수 없는 현실을

복합적으로 그려냈다.


갑자기 장애를 가지게 된 자식을 외면하고 싶고,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차별하는 부모의 마음이

속상함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상처로 와닿는 장애 당사자의 서러움은 물론


졸업도 진학도, 취업과 진로에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하기보다 보호자의 의견 아래

그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부정당하는 현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는 물론 어디에서든

이방인처럼 취급 당하며 쫓겨난 것처럼

처참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우리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고민해 보게 만들었다.


실명이 감각의 상실일 뿐 아니라

관계의 파열이나 불확실한 미래까지 받아들이게 하는

총체적인 체험임을,

이를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이

그저 수긍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막막함을

이렇게 문장으로나마 짐작해 본다.


세 번째 〈브라자는 왜 해야 해?〉에서는

앞선 두 작품에서의 그려진 상실의 과정을 지나

성장으로 나아간 장애인을 담았다.


특수학교에서 부장님이라 불리며

다른 이들을 책임감 있게 통솔하는 화자는

과도기를 거쳐 장애라는 현실에 적응한

성숙한 모습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 역시 장애가 있지만

정도가 더 심한 부희언니를 향해 느끼는

양가적 감정이 존재함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지만 특수학교 아이들과 지역 초등학생들이

트램펄린을 두고 벌어진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속,

장애를 가진 몸도 가난도 표가 나지 않는

다 똑같은 그림자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마지막 이야기는 책의 제목과 동명의 작품인

〈나의 어린 어둠〉이다.


시골길을 넘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고,

엄마의 농사일을 도우며 평범한 나날을 사는 성희.

이따금 눈앞이 까만 도화지를 펼쳐둔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꽉 감았다가 다시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앞이 보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고장 난 자전거 바퀴를 수리해두지 않아

걸어서 학교에 가야 했던 어느 날,

우산을 챙겨가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빈손으로 학교에 갔다가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에

온몸이 젖어들며 겨우 집에 돌아온다.


시력이 떨어진 거겠지 싶었던 눈에

소나기처럼 예고 없이 실명이 들이닥치고

주인공 성희는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듯

앞으로의 인생이 그러할 것이라는걸,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장마가

자신에게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


각 작품의 화자가 시각장애를 마주하며 겪는

가족, 사회와의 단절이나 절망감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상실이 끝으로 두지 않고 다시 일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의지가 녹아있다.


이는 비단 글을 쓴 조승리 작가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가 장애인 학교에서 만난 동료들에게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신과 그들의 인생을 되짚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그에게 녹아들었고,

그렇기에 이 작품이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왜 자전적 소설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고요하지만 뜨거운 빛을 품고 있는 어둠,

눈으로는 빛을 바라보지 못해도

손끝과 냄새와 기억으로 세상을 열심히 들여다본

한 사람의 뜨거운 몸부림을 통해

끝내 상실을 받아안을 수 있는

그 녹진한 마음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픽션이고,

어떤 부분이 사실일까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진정성 있게 자신의 삶과 상실, 성장을 담아낸

그의 문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여러 과정을 거쳐 힘겹게 찍어내 완성한 이 책을 넘어

그가 앞으로 써 내려갈 많은 문장들에도

뜨거운 진심과 글을 향한 갈망이 담기리라 기대된다.


그가 써내려갈 문장을 통해

수많은 비장애인들이 장애를 바라보는

비뚤어지고 편협한 시각과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었으면 좋겠고

장애당사자들 역시 절망을 이겨내고

앞을 기약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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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나이 드는 법 - 질병과 노화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스탠퍼드대 에이징 혁명
임영빈 지음 / 토네이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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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이

'제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젊게 나왔어요'라며

생활습관이나 운동방법 등을 소개하는 모습을

왕왕 볼 수 있다.


인류의 평균수명이 80세 이상으로 늘어나며

오래 사는 장수보다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

천천히 나이 드는 저속노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60대 중반을 넘어선 부모님을 보면서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매일 운동을 하기에 건강을 자부하던 아빠만 해도

체구가 많이 작아지고 다리는 가늘어졌으며

관절염 같은 질환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엄마 역시 걷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스쿼트며 플랭크 자세도 꾸준히 하지만

밤이면 종아리가 붓거나 쥐가 나서 잠을 설치기도 하고

건강검진에서는 골다공증 초기라며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하는 등

노화에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을까?

가는 세월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지만

수명이 다할 때까지 건강 문제로

고심하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 커진다.


이런 고민과 맞물려 찾게 된

이 책 《천천히 나이 드는 법》은

스탠퍼드대 노년내과 전문의 임영빈 원장이 말하는

식습관, 운동, 수면, 피부관리 등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저속노화 실천법을 담았다.


이제 인생의 반환점에 가까워지는 나에게도,

다가오는 노년을 앞둔 엄마 아빠에게도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았기에 금세 집중해서 빠져들었다.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하루 1%의 습관만 바꿔도 10년은 더 젊게 살수 있다며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

마냥 어렵게만 느껴져 외면하던 지난 시간을

되짚고 반성하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흡연, 음주, 과도한 체지방이나

높은 염증 수치, 당뇨와 같은

우리 몸에 가속노화를 유발하는 대부분의 요인이

'만성 염증'과 연결되어 있다 강조한다.


만성 염증이란 우리 몸의 면역 반응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채 미세하게 지속되면서

만성적으로 신체 곳곳에 손상을 일으키는 상태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새 생물학적 노화를 촉진하고

결과적으로는 노화와 관련된

다양한 질환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포와 조직 기능의 약화는 물론

몸을 서서히 늙고 쇠약하게 만들기에

노화를 막는 생활법을 실천하기 이전에

내 몸에 염증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과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저속노화로 가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라면이나 과자, 인스턴트 음식 같은

가공음식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이 줄어드니

꾸준히 운동이 중요하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혈당 스파이크나

운동 부족으로 인해 나타나는 신체의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었는데


이런 증상이 일어나는 동안

내 몸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어떤 질병을 가져오고 얼마나 노화가 가속화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식단 관리, 운동, 수면 등 생활습관 변화의 필요성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가장 흥미 있게 읽은 부분은

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가장 큰 자산임을 알려주는

4장 〈근육 자산을 기르는 습관〉 이었다.


근감소증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부모님에게서 보이는 증상과 꼭 맞는

'엉덩이 기억상실증'에 대한 설명은

꾸준한 운동에도 불구하고

'왜 허리가 아프지, 왜 종아리가 당기지'하는

물음표에 적절한 답이 되었고,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막상 질긴 고기의 식감으로 섭취를 꺼리거나

치아 건강으로 염려가 많은 걱정에 대해서도

동그랑땡이나 새우, 계란, 두부를 활용한 메뉴 등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정보를 알 수도 있어

유익하게 느껴졌다.


이뿐만 아니라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가속 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김치나 요거트 등의 발효 음식의 섭취가

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등

장수하는 사람들의 식단을 통해

현재 우리의 식탁에서 개선하거나

추가해야 할 부분을 깨우칠 수 있었고


모든 건강 습관의 기초에는 수면관리가 중요하며

영양제 형태로 먹기도 하는 멜라토닌과

아데노신을 생활 속에서 조절하는 방법,

빛과 어둠을 활용해 적절한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팁,

보습이나 자외선 차단, 주름에 대처하는

피부관리 일상 루틴까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모님 세대의 고민에 대해

마음을 읽는 듯한 눈높이 해결책은

어렵지 않지만 중요한 본질을 꿰뚫기에

더 실용적으로 와닿았다.


책을 펼치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나에게 공감을 일으키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을까 싶었다.


부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펼친 책이지만

오히려 건강은 아직 가지고 있을 때

더 일찍 준비하고 시작할수록 좋기에

앞으로 다가올 중, 장, 노년의 삶을 위해서

지금 이렇게 펼쳐본 것이

오히려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앞으로의 생활습관에 대한 동기부여로,

연세가 든 어르신들에게는 앞으로의 건강수명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말하는 저속노화 루틴을 되새겨

앞으로의 시간을 잘 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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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집밥을 좋아하지만 지쳐버린 이들에게
고켄테쓰 지음, 황국영 옮김 / 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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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바깥에서 끼니를 먹는 날이 많아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집밥이 좋았는데,

퇴사 후에는 집에서 만든 반찬과 밥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집밥의 소중함이 희미해졌다.


매 끼니 엇비슷한 반찬,

아무리 제철 음식으로 신경 써서 만든다고 해도

두세 끼니, 며칠째 같은 반찬을 놓고 먹다 보면

질린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정성이 담긴 음식,

평생을 먹어오며 추억이 쌓이고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음식이건만

이따금 반찬투정하는 어린아이처럼

'오늘은 다른 거 뭐 먹을 것 없나'하면서

배달 앱을 기웃거리기도 하는 걸 보니

이 아이러니한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터.


대부분의 집밥은 여전히 엄마의 손길 아래 만들어지지만

이제 60대 중반에 들어선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따금 직접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만들곤 한다.

처음엔 '매일 먹는 것과 달라 맛있네'하고

신선한 맛에 즐거워지는 것도 한두 번이지,

금세 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서 요리하는 노동에 지쳐

'누가 해준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새삼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집밥과 도시락을 수십 년간 싸온 엄마의 매일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싶다.


이 책 《사실은 집밥을 좋아하지만 지쳐버린 이들에게》는

가족들을 위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이 세상의 모든 '집밥러'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얹어진 부담감과 고됨,

집밥의 굴레 속에 괴로워진 마음을

조금은 희석시키고 달래주는 요리 에세이이다.


요리가 힘들어진 원인과 해결 방법은 물론

집밥을 차리는 사람의 지친 마음을 헤아릴 뿐 아니라

한 번도 집밥을 만들어본 경험 없이

누군가 만든 집밥을 '먹기만'하는 사람에게도

꼭 함께 읽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어릴 때는 불이나 칼, 조리도구가 위험하니까

요리는 당연히 내 몫이 아니었다.

주로 살림을 담당하는 엄마의 손길 아래서

온 식구가 먹을 음식이 척척 만들어졌고,

마냥 '엄마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어'하는 시기를 넘어

어느 정도 머리알이 큰 뒤로는

'이건 좀 짜네, 이건 좀 질렸어' 하면서

만들지도 않는 음식에 대해 지적질을 하고

투정을 부린 날도 적지 않았다.


여전히 적극적으로 요리에 가담하지는 않지만

어른이 되고 직접 요리를 하고 끼니를 챙겨보며

그 요리의 수고스러움이 얼마나 큰지,

오늘은 뭘 먹을까 메뉴 고민부터 장 보는 것까지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그 순간만의 감정일 뿐,

여전히 집밥은 내 일이 아니라며 외면했던 건 아닐까

그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밖에서 먹는 밥, 조리된 음식을 사 오는 건

건강하지 않고 낭비라는 인식,

직접 만드는 요리만이 건강을 보장하고

애정과 정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요리를 직업으로 삼은 전문가라 하더라도

매일 같이 이어지는 '집밥'의 굴레에서

즐겁지 않고 때로 불행하고 힘들었다는 고백 아래

우리의 엄마들이 수십 년을 이어온 부엌 분투기가

말로 하지 않았을 뿐 똑같이 힘들었음을

요리가 주는 이상과 현실이 이렇게 달랐음을

부끄럽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고,


여전히 이런 고민 아래 있는 수많은 주부, 엄마들에게

집밥을 만들며 가지는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고

고민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며

부담감과 고민 아래 집밥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

마음까지 헤아리고 토닥여주는 책을 통해

앞으로 내가 집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게 되었다.


풍성한 식탁, 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가족들,

그 모습에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엄마의 모습이라는

숭고한 노력과 희생으로 포장되는 집밥이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이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부엌에 설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며,

부엌 앞에서 그날의 피곤함을 감각하는 모든 이들이

무리하지 않도록 제안하는 이 따스한 시선은

요리에 지친 당사자뿐 만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음식을 먹기만 하는 우리 모두가

꼭 알아야 할 그리고 깨달아야 할 마음이라 생각된다.


꾹 눌러 담은 밥 한 공기에 갓 만든 따끈한 반찬,

어떤 날에는 급한 마음에 대충 끓여 낸 라면 한 그릇도

허기를 달래기에는 똑같이 충분하고 부족함이 없다.

꼭 힘주어서 온 힘을 다해 만든 요리가 아니라

그럭저럭 적당히 힘을 뺀 음식,

우리의 식탁에 적용할 수 있는 메뉴를 담은 레시피는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반가운 해결책이 될 것이다.


매일 잘 해야 한다, 신경 써서 만들어야

'몫을 다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드는 집밥에 대해

부담을 내려놓고 생각을 환기시켜주어 고마운 독서였다.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 끼니에 고민이 많은 언니에게도,

매주 주말이면 일주일 치 반찬을 만드느라

조금은 예민해지는 엄마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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