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훔치는 그림자 사유와공감 청소년문학 3
이성엽 지음 / 사유와공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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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아무 이름이 없다가,

부모님의 고민 끝에 나의 이름이 정해지고

그렇게 평생을 그 이름으로 불리면서 산다.


누군가와 처음 마주하게 되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이름을 묻고 답하고,

그 뒤로는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쌓는다.

그런 면에서 이름은

어쩌면 누군가를 알아가는 첫 단계이자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첫 단추가 아닐까.


사유와공감 청소년문학 시리즈 03

《이름을 훔치는 그림자》는

한 사람의 존재와 이름을 지켜주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과 목소리라는

강인한 메시지를 통해,

잊히고 지워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청소년들에게

우리 곁의 소중한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놀림으로,

집에서는 항상 바쁜 부모님에게 소외되며

자신의 이름이 불릴 새도 없이

외롭게 자란 소년 지훈.


그 외로움 속에서 소년은

차라리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이 세상과 모두에게 잊히길 바라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준서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준서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이름과 존재 자체를 잊고 있다.


준서의 마지막 목격자이자

그의 이름과 존재를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지훈은

친구 준서의 이름과 존재를 되찾기 위해

정체불명의 존재를 쫓게 되는데……


파랗다 못해 차가워 보이는 하늘,

넓게 펼쳐진 갈대밭 속에서

무언가를 응시하고 그리워하는 듯

생각에 빠진 맑은 한 소년의 이미지.


유일한 친구의 이름과 존재가 모두에게 잊히며

그를 되찾기 위해 용기를 낸

이 판타지를 녹여내듯

서정적인 표지 일러스트가

청소년 문학 특유의 감성을 담아냈다.


청소년기에는 유독 존재에 대한 고민이 많다.

사춘기라는 흔들리는 감정,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학교라는 풍경 속

나와 한 테두리로 묶이고 공감해 주는

친구의 존재라는 게 더없이 크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학교에서

때로는 이름으로 혹은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어울리기도 하고,

그 사이에서 소외된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불리지 못하고 조용히

그저 하루를 버티며 보내기도 한다.


활달하고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주목 받는 아이,

조용하고 말이 없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존재감이 없는 아이 등

우리의 일상 어디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이 비현실적인 판타지는

서로의 존재를 헤아리며

타인을 구원하는 진정한 힘을 깨닫게 한다.


책은 외로움 속에 스스로 '지워지는 존재'이길

갈망하는 한 소년의 마음으로 시작된다.

중학생 시절 아이들의 놀림과 웃음, 비아냥으로

누구에게든 잊히길 바라는 지훈이

갑작스러운 친구의 소멸을 마주하며,

그를 쫓아 이름과 존재를 되살리기 위해

용기를 내는 '성장'을 보여준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했던

그 마음의 본질에는 어쩌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

숨어있던 게 아닐까, 하고

지훈의 본심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청소년기의 불안과 소외,

단절과 상처를 다뤄내면서

같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감과 소통으로,

타인을 잊지 않기 위해

혹은 잃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우리가 서로로서 존재하는 것은

서로를 기억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 마음이 타인에게 얼마나 강인한

구원의 힘이 되는지 알려준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떤 때에서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소외감,

때로 나에게 장난을 치거나 놀리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혹은

'그 친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회피의 마음을 나 역시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소외받고 외로운 순간에도

나를 보듬어주고 내 존재와 이름을 새기며

나를 불러주는 친구가 존재했기에

그 시간을 이겨내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회피하고 싶은 불안과 소외의 감정이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이들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배려해 주는 희생,

기꺼이 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로

그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

지금의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너무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닐까,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에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주고

자신을 희생하는 지훈의 목소리가

이름과 존재에 대한

그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이었다.


준서의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정체불명의 그림자와 맞서가며

상처와 두려움을 넘어

오히려 흐릿했던 자기 존재와

타인의 존재를 지켜낼 수 있었던 지훈의 용기,

친구를 지키려는 여정은

이만큼 자란 어른인 나에게도

공감과 관계의 중요성,

망각과 기억에 대한 성찰,

타인을 기억하는 책임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어떤 존재이든 결국 기억되고 불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그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기억하고 불러주는 행위로

각자의 상처와 어둠, 소외를

품어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나

타인과의 소통이나 관계에

회의감을 가진 이들에게

타인의 이름과 존재를 용기 내어 불러주는

이 이야기가 많은 힘을 줄 것이다.


새 학기마다 친구 사귀느라 고민이 많은

조카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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