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의 신분을 망각하고 오지게 놀아제낀 주말이다.

 

 나의 주말은 한글날 덕분에 목요일 밤에 시작되었는데, 수영장 동생들과 함께 생애 처음으로 올림픽수영장에 방문했다. 수영인들에겐 성지같은, "나 올팍수영장 다녀왔어"라고 말하면 클라스가 달라보이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50m 길이에 2m 깊이의 수영장이다. 11월 1일 제1회 성동구민 수영대회가 개최되는데 수영장 사람들이 참가해보라며 나를 보채는 통에 못이긴 척 나가볼까 했으나 동영상을 찍어보니 알겠더라. 나가면 병신될듯...

 

 나의 수영복이 좀 야해서, 등판이 훤한 것이 첫째, 북방계의 다부진 체형으로 인한 것이 둘째의 이유로 다소 남자같아 보일 수 있으나 저입니다:) 원래는 발이 저렇게 물밖으로 많이 나오면 안되는데, 아직 부족하여ㅜㅜ 그래도 팔 모양은 마음에 들어서 서재 친구분들께 부끄럽지만 오픈합니다. 호호

 

 밤 9시부터 약 두시간을 물 속에서 놀아제끼고 마무리는 감자튀김과 크림생맥주. 캬-

 

 꿀잠을 자고 본격적인 공휴일의 시작은 조조영화로.

 

 11시, 광화문 씨네큐브. 홍상수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남1 여3의 친구들과 함께 관람했다. 손가락을 쥐어짜면서.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처음 본다. 지금까지 홍상수 영화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굉장히 허세스러워보여 나도 거기에 동참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으나 이번 영화는 제목이 너무 끌려서.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이다. 굉장히 센세이션했다. 술먹는 장면을 이토록 리얼하게,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이 또 있을 것인가. 1부와 2부 모두 정말 싫으면서도 정말 좋았는데, 어떤게 더 싫고 어떤게 더 좋은지 말할 수 없다. 똑같이 싫고 똑같이 좋았다.

 극중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함춘수'였는데 우리의 청일점 친구 또한 함씨다. 1부의 함춘수와 나의 친구 함씨는 내친구를 보고 만든 영화인가? 할 정도로 많이 닮아서 그의 친구들인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많이 웃었다.

 

 남녀 주인공이 스시에 소주를 아주 많이 마시는 관계로 남1, 여3의 친구들과 스시를 먹으러 갔다. 참치 대뱃살이 아주 인상적이었고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우리는 소주 대신 맥주를 많이 마셨다. 그리고 차를 타고 우리들 마음의 고향인 왕십리로 돌아와 한숨 돌리는 의미로 편맥(편의점 맥주)타임을 가진 후, 차를 가져온 친구 함씨 때문에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것에 슬퍼하다가 금방 해결책을 찾았는데, 함씨의 집 근처로 가자는 결론이였다. 함씨의 집은 서울의 매우 서쪽인 염창동이었지만 거리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부녀 1과 남친있는 여1은 떨어져나가고 솔로 정예인 나,여1과 함씨가 남았다.

 

 가는 내내 염창 곱창이라는 라임을 만들며 함씨에게 곱창을 사라고 종용했고 착한 그는 우리를 곱창 집으로 데려가 배불리 먹였다. 곱창이 자꾸 술을 불러서 술도 존나 마셨다. 6병 째를 시킬 때 곱창집 아주머니가 우리를 말리던 것이 생각난다. 우리는 그냥 웃었다. 2차는 쭈꾸미였고 술을 얼마나 더 마셨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지만 술은 좀 웬수같다.

 

 다음 날도 남의 내장으로 만든 해장국으로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했다. 남의 내장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미안하다...얘들아....이기적인 인간이라서.

 

 침대에서 앞으로 뒤집었다 뒤로 뒤집었다 하며 안톤 체홉의 <사랑에 관하여>를 읽었고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낮잠을 한소끔 잤다. 저녁이 됐는데도 뜨끈한 국물을 계속 들이키고 싶어서 닭칼국수로 두번째 해장을 하고 경마공원으로 향했다. 렛츠런파크 뮤직 페스티발 티켓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장기하가 나오기로 되어있었다. 예의 유부녀1, 여1과 사진으로만 보던 그의 친구 여1. 우리는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신경쓰지 않고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장기하의 "기상시간은 정해져있다"라는 노래에 무당처럼 춤을 추었고, 장기하가 나를 봐주길 바랬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고, 그는 예전부터 아이유의 남자친구였다. 제길. 아이유 극혐.

 

 우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종래에는 땀을 흘리며 공연장을 빠져나와 공통적으로 빨간 국물이 땡긴다는 느낌을 공유했고 아주 적절하게 육개장이라는 메뉴를 생각해냈다. 육개장 국물은 시골에서 먹던 깊은 맛은 아니었지만 자꾸만 숟가락을 담그게 되는 매력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런대로 만족했고, 그것이 미원의 힘이라는 데에 공통적인 의견을 모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수다를 떨며 소화를 시키다보니 어느덧 자정이 넘었고, 우리는 피곤에 절어 해산했다. 나는 잠을 아주 잘잤고, 후회없이 놀았다. 이제 공부를 할 것이고, 후회없는 주중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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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dy.K 2015-10-1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일기가 제일 매력적이야 그나저나 수험생이라니 생각보다 굉장히 어리네요 내 또래일 줄 알았어요

스윗듀 2015-10-11 16:39   좋아요 0 | URL
또래 맞을걸요. 직장생활 3년하고 다시 돌아온 수험생인데 공부도 꽤 오래 했어요 ㅋㅋㅋ 음..생각해보니 제가 언니일듯😅

한수철 2015-10-1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영 잘하시네요.^^ 처음엔 남성이 아닌가 싶었는데, 음 아니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ㅎㅎ


아무튼 재밌게 읽었습니다. 오늘 거의 처음 웃는 듯.....

스윗듀 2015-10-11 19:36   좋아요 0 | URL
수영 칭찬, 듣고 싶었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추사랑을 보지 못하신 겁니까? 추사랑을 보고 안웃으셨을리 없는데요.

치니 2015-10-2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니, 이런! 저와 수영하는 폼이 거의 똑같습니다? 아닌가, 저보다 잘 하시는 것 같기도...
초면에 수영 대결이나 하고 앉았다니, 죄송합니다. (꾸벅)
저는 한수철 님 페이퍼 보다가 놀러 온 치니입니다. 그간 이렇게 재미난 페이퍼도 모르고 살았다니, 아쉽지만 또한 기쁩니다. 반갑습니다. :)

스윗듀 2015-10-23 12:56   좋아요 0 | URL
헤헤 치니님 반갑습니다. 사실 전 아는 분입니다. 헤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이제라도 오셨으니 아무려나 좋습니다 헤헤 요즘에도 수영하시나용??